Day 15: “괴로울 때”

 

 

 

[이사야 53장 7-9절 말씀 묵상]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이사야 53장 7-9절).

 

괴로울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십니까?  복음성가 “괴로울 때 주님을 얼굴보라”라는 찬양이 생각납니다: (1절)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2절)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주시고 늘 지켜주시리”, (후렴)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그러나 과연 우리는 괴로울 때 주님을 얼굴을 바라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괴로울 때 괴로운 환경을 바라보면서 낙심과 실망과 아픔 가운데서 하나님께 오히려 원망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이사야 53장 7절을 보면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8절에도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 어떻게 하셨는지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가 괴로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 3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괴로울 때 우리는 침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53장 7절을 보십시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 침묵하셨습니다.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고 이사야 선지자는 7절에서 두 번이나 반복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리스도께서는 입을 열어 변명하지 않고 침묵을 하실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면 입을 열어 변호합니다.  이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예를 들어 잘 못이 없는데 누명을 쓰게 되면 법정에 서서 변호사를 통하여 우리를 변호하는 것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근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으신 분이신데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7절).  헨리 나우웬은 그의 책 “기도의 삶”에서 이러한 솔직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는 저주의 말이나 내가 쓸모 없다든지 모자란다든지 하는 말을 듣기가 너무 두려워, 다시 입을 열어 계속 말하고 싶은 유혹에 금방 넘어간다.  두려움을이겨보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억울한 누명을 써서 곤욕을 당하므로 괴로울 때에 두려움 속에서 또한 억울함 속에서 입을 열어 계속 말하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입을 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본능을 뛰어넘은 행동을 하신 것 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저는 그 대답을 이사야 30장15절 말씀에서 찾아 봅니다: “…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in quietness and trust is your strength).  메시야, 곧 그리스도 예수님은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습니다(53:7).  그 분은 괴로울 때 하나님 아버지를 잠잠히 신뢰하셨습니다.

 

우리는 괴로울 때 침묵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헨리 나우웬의 말을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은 침묵으로 이끌고 침묵은 말씀으로 이끈다.  말씀은 침묵 안에서 태어나고 침묵은 말씀에 대한 가장 깊은 반응이다.”  “침묵은 말씀에 대한 가장 깊은 반응”이라는 말, 참 도전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잠잠히 신뢰하는 가운데 침묵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많은 음성들이 들릴 것이고 또한 많은 말을 하고 싶겠지만 우리는 괴로울 때 침묵해야 합니다.  침묵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 음성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 들으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인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침묵 속에 들어가 세상의 시끄럽고 귀찮은 잡다한 음성을 따 돌리고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작고 친밀한 음성을 가려 듣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과감히 고독을 끌어안고 침묵을 벗삼는다면 우리는 그 음성을 알게 된다.”  우리는 과감히 고독을 끌어안고 침묵을 벗삼아야 합니다. 

 

둘째로, 괴로울 때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53장8절을 보십시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고난에 대하여 이미 묵상한 바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4절)고 생각(착각)하였지만 예수님은 마땅히 형벌 받을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곤욕과 심문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8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죄한 자로서 우리를 대신하여 곤욕과 심문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를 속죄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침묵 가운데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성경적 생각을 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괴로울 때 바른 생각, 즉 성경적 생각을 하지 못할 위험이 많기 때문에 더욱더 괴로우면 괴로울 수록 침묵 속에서 말씀에 입각하여 성경적 생각을 해야 합니다.  보통 우리는 괴로울 때 침묵하지 못하고 불평이나 원망하기가 쉽습니다.  또한 우리는 논리적 생각 (이성)이 앞서기보다 감정이 앞서서 분노하기가 쉽습니다.  또한 우리는 말씀 중심으로 생각하기보다 감정에 이끌려 생각의 죄를 범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괴로울 때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괴로울 때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괴로울 때 침묵하는 가운데서 예수님의 고난과 그의 죽으심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괴로울 때 우리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53장9절을 보십시오: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우리는 괴로울 때 범죄하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입술로 하나님께 범죄할 수 있으며 또한 행동으로도 하나님께 범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괴로울 때 범죄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그가 괴로울 때 그 입에 궤사가 없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괴로울 때에 입술로 범죄치 않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강포도 행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괴로울 때 언행으로 범죄치 않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죽기까지 범죄치 않으셨습니다.  비록 그의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고 그 묘실이 부자인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었지만 우리 예수님은 입술로나 행동으로나 어느 면으로나 하나님께 범죄치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하다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욥을 보면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좀 알 수 있습니다.  욥은 그 많은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도 언행으로 범죄치 않았습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욥이 가능했기에 우리도 가능합니다.  욥기 1장22절과 2장10절 말씀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1:22),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학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2:10).  오히려 욥은 괴로울 때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1:20).

 

그러므로 우리도 괴로울 때 입술로나 행동으로나 하나님께 범죄치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괴로울 때 침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침묵 가운데서 하나님 아버지의 세밀한 음성인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잠잠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머물러 있는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괴로운 환경에서 감정에 이끌림을 받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적인 생각으로 우리는 괴로운 상황을 바라봐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괴로움을 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므로 우리의 괴로운 환경을 이겨 나아가야 합니다.  승리!

 

 

 

괴로울 때 침묵 가운데서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기를 기원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고난 주간 셋째날 새벽기도회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