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0: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민수기 16장 3, 7절 말씀 묵상]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의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 (민수기 16장 3, 7절).

 

교회가 전도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 어두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활을 감당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이 세상에 나타내 보여야 하는데 교회 안에서 질투와 시기, 싸움과 다툼, 분쟁이 비일비재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들어내야 하는데 너무나도 세속화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세속화 되어가는 교회 안에 분쟁의 원인이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그 대답 중 하나를 오늘 본문 민수기 16장 3, 7절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그 대답은 바로 분수에 지나침입니다.

 

         오늘 본문 민수기 16장을 보면 레위의 자손인 고라와 르우벤 자손인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당파을 짓고(1절)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250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2절)와 아론을 거스리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3절).  이들이 함께 모여서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3절)라고 거스렸습니다.  이들의 거스림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제사장 직분을 시기함에서 나온 것으로써 레위 자손들은 제사장 직분을 탐냈던 것입니다(박윤선).  왜 레위 자손들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제사장 직분을 탐냈습니까? 그 이유는 레위 자손들은 자기의 직분을 작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레위 자손들에게 한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9절).  결코 레위 자손들의 직분도 작은 일이 아닌데 그들은 작게 였기므로 말미암아 더 크게 보이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제사장 직분을 탐했던 것입니다.  각자의 직분을 귀하게 여기 그 직분을 충실히 잘 감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레위 자손들은 분수에 넘치게 생각하여 분수에 넘치는 말과 행동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하게 되면 분수에 넘치는 말을 하게 될 위험이 많습니다.  그 분수에 넘치는 말 중에 하나는 바로 레위 자손들이 모세와 아론에 말한 것처럼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3절)입니다.  자기들 스스로가 분수에 지나침에도 불구하고 분수에 넘치는 발언과 더불어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하게 되면 우리는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 분수에 넘치는 행동 중 하나는 바로 지도자들을 거스리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을 거스리되 분수에 넘치는 생각 속에서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당파를 짓습니다.  마치 레위 자손 고라와 르우벤 자손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1절)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 모세와 아론을 거스렸던 것처럼(2절) 교회 안에서도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당파를 짓고 나서 교회에 유명한 사람들 또는 중진들과 함께 일어나 교회 지도자들을 거스립니다.  왜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교회 지도자들을 거스립니까?  그 이유는 자기들 스스로를 높이길 원하기 때문입니다(3절).  이들은 교회 안에서 높아지고 싶어서 당파를 짓고, 당파를 지은 후 교회 안에 힘(?)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끌어 모아 교회의 지도자들을 거스립니다.  그리고는 결국 그들은 교회 안에 분쟁을 일으킵니다.  이들은 화평케 하는 자들이 아니라 화평을 깨는 자들이요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입니다.  이들로 인해서 교회는 세상에서 욕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분쟁을 보면 주로 지도자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담임 목사님과 장로님들 사이에 분쟁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분쟁 사이에는 목사의 사모님과 장로님들의 부인 권사님들이나 집사님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종종 들리는 교회 안에 분쟁의 소식들을 보면 안수 집사님들도 교회 안에 분쟁의 압장 서는 모습을 봅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 분쟁을 보면 대부분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우리들은 싸우고 다투며 분쟁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교만 때문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을 높이려고하기 보다 우리 자신들을 스스로 높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스스로 낮추면 주님께서는 때가 되면 우리를 높이실텐데 우리는 스스로 높아지길 원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높이고자 하는 것은 분수에 지나친 것입니다.  우리는 정신차리고(롬12:3) 믿음의 분수대로(6절)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직분을 결코 작게 여겨서는 아니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직분을 작게 여기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직분을 직분으로 여기기보다 직위로 여기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더 크게 보이는 직위을 시기하며 탐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들 장로, 권사가 되려고 난리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교회 안에서 장로가 되려고 세상 정치판처럼 선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선거판(?)에는 부인들이 더 앞장서서 자기 남편을 장로되게 만드려고 한답니다.  남편 장로 만들기에 앞장서는 이 부인들로 말미암아 이 선거판은 더욱더 시끄럽고 난잡해 지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가 이 선거판엔는 돈과 물질들도 오고가는가 봅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교회 안에서 장로 투표를 할 때 세상처럼 경사도파 전라도 파로도 나눠진다고 합니다.  장로 피택된 사람이 경사도 출신이면 투표하는 교인들 중 경사도 출신들은 그 피택 장로님을 뽑는가 봅니다.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진자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그저 들은 이야기들 이지만 왠지 무조건 만들어 낸 이야기들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이가 없는 일들이 주님의 거룩한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들으면서 과연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겨야 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각하데 우리는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겨야 합니까?  먼저 우리는 겸손히 섬겨야 합니다.  찬송가 347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가 생각납니다.  1절 가사는 이렇습니다: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으나 구주여 내게 힘주사 잘 감당하게 하소서.”  우리가 겸손히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길 때 괴로운 일들이 많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계속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어떠한 힘으로 섬겨야 합니까?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힘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신실하게 섬겨야 합니다.  은혜의 힘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 공로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면서 공로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끝없이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섬김의식을 가지고 겸손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신실하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결코 우리에게 주어진 직분을 가볍게 여겨서는 아니됩니다.  바라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한 직분을 하나님의 큰 은혜로 여기므로 말미암아 그 은혜의 힘으로 겸손히 주님의 몸된 교회를 신실하게 섬겨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경계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힘으로 겸손히 교회를 섬기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