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 외식

 

 

 

[시편 50편 말씀 묵상]

 

 

            애드린어 고스틱 & 다나 탤포드의 “신실: 세상을 얻는 비즈니스 경쟁력”(The Integrity: Advantage & Works)이란 책을 보면 신실한 사람의 10가지 특징이 나옵니다. 그 10가지 특징 중에 세 번째 특징은 바로 “실수했을 때는 솔직히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이 특징에 대하여 저자들은 이러한 의미 심장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수는 큰 잘못이 아니다.  정말로 큰 잘못은 그 실수를 덮으려는 행동이다.”  그러나 우리의 본능은 우리의 실수를 덮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우리의 죄를 숨기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죄악된 본능입니다.  그러기에 “외식”이란 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외식이란 무엇입니까?  히브리어 의미는 ‘자기를 감추는 자’ 또는 ‘위선자’입니다.  신약에서는 원래 무대에서 가면을 쓰고서 연출하는 배우를 가리킨 것으로서, 후에는 위선자, 외식하는 자를 의미하는 단어 ‘휘포크리테스’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특히 종교인들에게 상용된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는 거짓된 태도를 뜻합니다.  겉으로는 아주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하면서도 내면으로는 거짓과 위선이 가득한 경우가 바로 외식의 적합한 표현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외식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왠지 이 외식을 생각할 때에 저는 오늘 새벽 기도회 때 묵상한 다윗의 범죄가 생각이 납니다.  자기의 범한 죄를 은폐하려고 임신한 밧세바에게 우리아를 보내려고 했던 다윗, 그러나 충성된 우리아가 집으로 내려가지 않자 결국은 요압 장군과 짜고 이방인의 칼에 충성된 군인 우리아를 죽인 다윗, 그리고 그 모든 죄를 덮고 있었던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시사 다윗의 죄를 들춰내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세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일을 행하리라” (삼하12:12).  우리는 은밀히 죄를 범하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들춰내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50편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시편 기자 아삽은 성도를 가리켜 제사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나의 성도”, 즉 하나님의 성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성도들을 자기 앞에 모으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까?  그 이유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성도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식 때문이였습니다(박윤선).  과연 외식하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그의 앞에 모으시고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인지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는 기회로 삼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외식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50편 6절을 보십시오: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셀라)”.  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공의를 공공연하게 보편적으로 선포하 심에 있어서 외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신다고 시편 기자는 아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삽은 외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얼마나 큰 것을 다음과 같이 힘있게 지적하였습니다: (1) 첫째로, 외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한 심판 광경을 온 천하 사람들더러 보라고 합니다 (1절).  하나님께서는 외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은밀히 죄를 범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들춰내시되 공공연하게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셔서 그들 앞에서 들춰내시겠다는 무서운 심판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에베소서 5장11절 말씀처럼 우리는 빛의 자녀들로써 어두움의 일을 책망하지[들춰내지(expose)] 않고 우리가 그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들춰내십니다.  (2) 둘째로, 하나님께서 외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심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그의 계시하신 말씀으로 하시되(2절), 그것이 불이나 광풍과 같이 두렵다고 합니다(3절).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된 교회의 진리(빛)대로 심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그의 말씀이 필경 심판한다고 하셨습니다(요12:48).  시편 119편130절 말씀을 보면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라고 시편 기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밀히 죄를 계속 범할 때에 우둔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강퍅해 집니다.  우리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게됩니다.  그러한 우둔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으로 하여금 우리 마음에 비취사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3)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외식하는 성도들을 먼저 심판하신다고 합니다(4절).  하나님의 교회는 특이한 축복을 받은 것인만큼, 무거운 책임을 지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심판이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먼저 실시됩니다(벧전4:17) (박윤선).

                       

둘째로, 하나님은 외식하는 우리의 형식주의를 경계하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50편 7절을 보십시오: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 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여기서 하나님은 외식하는 이스라엘에게 증거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식, 곧 형식 주의를 경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형식주의는 그 때 유대인들이 성전에 찾아 가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만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줄 았았습니다(박윤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보다 외부적 의식을 거행하는데만 열중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편 기자 아삽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예배함에 있어서 세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첫째로,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제사(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4절)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  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3절).  그리고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자는 입술 뿐만 아니라 감사의 삶을 삽니다.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또한 예배의 삶을 삽니다.  (2) 둘째로, 하나님께 서원을 갚으라고 합니다[(14절하) “…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신실한 사람의 특징 중 하는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렇게 약속을 잘 지키는 신실한 사람이 우리 주위에 몇이나 됩니까?  참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기가 힘든 세상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다른 사람하고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하고 한 약속을 지킬 수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앞에 약속을 지킴은, 하나님의 은혜를 중단사키지 않도록 하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박윤선).  그러므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중단시키지 않도록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꼭 갚아야 합니다.  (3) 셋째로, 환난날에 하나님을 부르라고 합니다[(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제물을 우리가 받치는 것보다 신앙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도를 요구하십니다(Ridderbos).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은 외식하는 우리들의 죄악을 지적하십니다.

 

외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은 무엇이였습니까?  한 마디로, 경건은 말로만 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였습니다(박윤선).  오늘 본문 시편 50편 16절을 보십시오: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이것은 외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로만 하나님의 종교를 전문하고 있음을 꾸짖고 있는 말씀입니다(박윤선).  오늘 본문 17절을 보십시오: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무슨 말씀입니까?  외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교훈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 뒤로 던집니다.  이것이 우리의 외식이요 죄가 아닙니까?  주일,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예배당을 나아갈 때에 그 말씀을 우리의 뒤로 던지고 세상에 나아가서 또 다시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우리가 아닙니까.  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뒷전에 미뤄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면서 살아갑니까?  그 원인을 칼빈은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외식하는 종교가달의 증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그들의 경외심의 결핍이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의 결핍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미워하고 뒤로 던지는 죄악을 범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외식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지 않고 있었던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계명의 7계명과 8계명을 범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보십시오: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여기서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란 말씀은 제 8계명인 “도적질하지 말지니라”는 제8계명을 어긴 것이고, “간음하는 자 와 동류가 되며”란 말씀은 “간음하지 말지니라”는 제 7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둘째로, 십계명의 9계명을 범하였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는 9계명을 어겼습니다.  셋째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죄였습니다.  20절 보십시오: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이것은 제 6계명인 “살인하지 말지니라”를 어긴 죄입니다.  요한일서 3장15절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 다 살인하는 자니 …”.

                                    

하나님은 외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권면하시며 경고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같이 죄에 대하여 무관심하신 줄 착각하였습니다(21절).  다시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죄를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외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계속 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외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계속 범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잠잠하고 계시닌까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죄에 대한 무관심…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차례로 심판하여 징벌하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2절에 가서는 이렇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자 없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 여기고 죄를 범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만 잊은게 아니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를 생각하라”고 권면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지적하시고 그들의 형식주의를 경계하시면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가 있을 것이며 어느 누구도 그들을 건질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연 외식하는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오늘 시편 50편의 말씀이 우리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그의 전에 모으시사 동일한 말씀을 우리에게도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식을 경계하시고 우리의 죄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식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외식하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서원한 것을 갚아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참된 예배와 또한 예배의 삶을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외식하는 자가 아닌 참된 예배자로 세움 받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목사 나눔

(안과 밖이 일치된 삶을 추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