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받는 나라

 

 

 

[전도서 1016-20절 말씀 묵상]

 

 

어제 화요일 새벽에 인터넷 뉴스를 통하여 북한의 한국 연평도 포격 도발 뉴스를 접했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또 연평도 포격 도발로 인하여 젊은 해병대 군인 두 명과 민간인 두 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반도에서 거듭 일어날까 생각해 볼 때, 제 개인적인 생각은 북한의 지도자들이 참 큰 문제라 생각합니다. 언젠가 고 황장협씨가 주장한 인터넷 기사를 읽어 보았는데, 그 분의 주장은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한 사람의 지도자가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이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만큼 한 나라의 지도자가 참 중요합니다. 어느 면으로 생각해 보면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그 나라의 지도자에게 달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10장 16-20절을 보면 솔로몬 왕은 ‘화 받는 나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에 연락하는 이 나라여 화가 있도다.” 과연 어떠한 나라가 화 받는 나라입니까? 한 3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다스리는 자가 없는 나라는 화 받는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10장 16절을 보십시오: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에 연락하는 이 나라여 화가 있도다.” 이 말씀은 나라에 다스리는 왕이 있고 신하들이 있을지라도 왕은 어려서 다스릴 수가 없고, 그의 신하들(‘대신들’)은 방탕한 고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기에 그 나라를 화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박윤선). 물론 왕이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역대하 34장에 나오는 유다 왕 요시야입니다. 그는 그의 나이 8살 때 왕위에 올라(1절) 8년 만인 그의 나이 16살 때부터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3절). 그러나 오늘 성경 전도서 10장 1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나이가 어린 왕은 나이도 어리지만 미성숙하여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하는 왕을 가리킵니다(위어스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나이 어린 왕은 어린아이 같이 솔직하고 순진하기보다(childlike)어린애처럼 유치하게(childish) 자기 멋대로 방종 하는 왕을 가리킵니다(제미이슨). 만일 한 나라의 지도자인 왕이 이렇다면 적어도 그의 신하들은 성숙해서 정신을 바짝 차려서 나라를 지혜롭게 다스려야 하는데 대신들은 아침에도 연락하고 있습니다(16절). 즉, 그들은 일찍부터 연락에 빠진다는 뜻입니다(박윤선). 그러니 그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왕은 미성숙하고 어린 애처럼 자기 멋대로 방종하고, 그의 신하들은 아침 일찍부터 연락에 빠지니 어찌 그 나라에 있다고 다스리는 지도자가 말할 수 있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한번 우리 교회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에 지도자인 제가 미성숙하여 자기 멋대로 할지라도 저와 함께 교회를 섬기시는 성숙하신 윤 장로님이 바른 신앙관을 가지고 교회를 다스린다면 적어도 우리 교회는 다스리는 지도자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제가 나이도 어리고 미성숙하여 자기 멋대로 방종할 때에 만일 윤 장로님 마저 아침 일찍부터 연락하며 방탕하다면 우리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과연 교회 지도자가 교회를 다스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가장인 남편이 성숙해야 하며, 또한 그 남편을 돕는 아내도 지혜로 와서 함께 가정을 잘 다스릴 때 그 가정에는 질서가 있고 화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에 가장인 남편이 미성숙하여 자기 멋대로 방종하고 아내조차 아침 일찍부터 세상의 연락(쾌락)을 즐긴다면 그 가정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한 가정에도 다스리는 자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이 화를 받는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에는 다스리는 자가 없습니다. 그와 반면에, 솔로몬 왕은 복 받는 나라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10장 17절을 보십시오::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무슨 말씀입니까? 여기서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귀족들의 아들’이란 말은 존귀한 성품의 소유자란 뜻입니다(박윤선).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귀족들의 아들로서 존귀한 성품을 소유했다면 어찌 그가 나라를 잘 다스리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어서 솔로몬 왕은 그러한 왕의 ‘대신들’, 즉 ‘신하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존귀한 성품을 소유한 왕의 신하들은 방탕하지 않고 먹는데 있어서도 절제 있게 행한다는 뜻입니다(박윤선). 이 얼마나 화 받는 나라의 지도자들과 대조적입니까? 이러한 나라는 왕이나 신하들이나 성숙하며, 성품이 존귀하여 나라를 잘 다스리기에 그러한 나라는 참으로 복 받는 나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으로 복 받는 나라는 선한 정치가 시행되는 나라입니다(박윤선).

 

저는 교회와 가정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과 가정의 지도자가 성품이 존귀하여 함께 섬기는 지도자들도 방탕하지 않고 절제 있는 삶을 산다면 그러한 지도자가 다스리는 가정과 교회는 참으로 복 받는 교회요 복 받는 가정입니다. 특히 여기서 저는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에 있어서 지도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품’과 ‘절제’입니다. 물론 지도자들에게는 실력도 필요하고 능력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필요한 것은 성품입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성품에 문제가 있다면 그러한 지도자들을 좇는 사람들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성취감을 맛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선한 영향력을 받아 변화되어 가는 삶을 살지 못할 것입니다. 절제 또한 우리 지도자들에게 필수적입니다. 사탄의 많은 유혹들과 영적 싸움하는 지도자들로서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인 절제가 없다면 지도자들은 유혹에 빠져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범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지도자이든 교회의 지도자이든 가정에 지도자이든 필요한 것은 존귀한 성품과 방탕과 연락 같은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절제(력)입니다. 그러한 지도자들을 좇은 나라의 시민들이나 교회의 성도들이나 가정에 자녀들은 참으로 복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 한국과 미국이 그러한 복 받는 나라가 되길 기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러한 복 받는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육신의 가정이 하나님께 복 받는 가정이 되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게으르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지도자가 있는 나라는 화 받는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10장 18-19절 상반 절을 보십시오: “게으른즉 석가래가 퇴락하고 손이 풀어진즉 집이 새느니라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이 말씀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게으른 통치자들의 방탕한 생활을 진술합니다. 그들은 희락을 위하여 연락을 일삼고 기쁨을 위하여 포도주를 계속 마십니다. 그들에게는 민중을 위하여 봉사하는 책임감과 정의감이 전혀 없습니다(박윤선). 상상해 보십시오. 나라의 지도자들이 이렇게 나라 백성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책임감과 정의감이 없다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 나라의 지도자들이 자기의 책임을 망각하고 그저 흥청망청 술만 마시면서 연락을 즐기고 있다면, 그 나라는 무슨 꼴이 되겠습니까? 가끔 한국의 옛날 역사를 다루는 드라마를 보게 되면 왕의 신하들이 술과 여자들을 즐기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패하여 자기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감당하려는 정직한 신하들을 음해하여 죽이는 모습을 봅니다.

 

요즘 인기 있는 한국 드라마 중 ‘대물’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그래도 대통령에 대하여 좋은 이미지를 그리고 있는 반면에 야당 대표는 부패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드라마들은 한국이란 나라의 역사와 현실을 좀 부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적인 역사와 현실의 모습은 바로 부정부패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라를 잘 다스려서 시민들로 하여금 잘 먹고 잘 살게 해야 할 정치인들이 사리사욕에 빠져 자기 배만 채우려고 자기의 지위를 남용하여, 부정부패를 범하는 모습들을 우리는 드라마 뿐만 아니라, 뉴스를 통해서도 접합니다. 참으로 무책임한 나라의 지도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어스비 목사님은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지도자들 중 자기의 오피스를 사용(use)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그저 그 오피스를 유지(hold)하는 사람들이 있다(딤전3:10).’ 미성숙한 사람들은 자기이게 주어진 특권을 즐기면서 자기의 책임은 망각한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들은 자기의 책임을 특권으로 알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그 책임을 감당한다’(위어스비).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오피스를 사용하는 지도자가 있는 반면에 그저 그 오피스를 유지하는 지도자가 있다는 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더 나아가서 참 큰 문제는 그 오피스를 남용하여 시민을 섬기기보다, 자기 배만 섬기는 지도자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로 말하자면 직분은 있는데 그 직분을 잘 사용하여 교회를 섬기기보다 그저 그 직분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성숙하여 자기의 직분에 충실하지 못하고 게을러서 주님의 몸 된 교회의 한 지체로서 자기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거부하는 직분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교회 안에 자기의 직분을 남용하여 섬기기보다 섬김을 받기를 즐기는 지도자들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지도자들로 인하여 병들고 있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은 그의 책 ‘게으름’에서 게으름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게으름의 정체는 실증, 게으름의 뿌리는 자기 사랑, 게으름의 발전은 정욕, 게으름의 선택은 부주의, 게으름의 결과는 고통…’(인터넷). 한 나라의 지도자들이 게으를 때 그들의 게으름이 발전하여 정욕대로 자기 사랑을 표출하므로 말미암아, 결국 방탕한 생활을 하고, 부정부패 가운데 그 나라를 화 받는 나라로 만드는데 앞장서게 됩니다.

 

챨스 R. 스윈들(Charles Swindoll) 목사님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우리 마음에 찾아와 삶에 대한 건전한 의욕과 열정을 앗아가곤 하는 전문적인 도둑(professional thief)이 있다"라고 하면서, 그 도둑의 이름은 바로 '내일로 미루기'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즉, 일 자체를 귀찮게 여기면서 미루는 게으른 태도가 삶에 꼭 필요한 열정과 도전 정신을 식게 만들어, 결국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을 앗아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 다시 한 번 강조되어야할 삶의 가치는 바로 '성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인터넷). 맞습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필요한 덕목은 바로 성실입니다. 게으르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지도자는 결코 복 받는 나라를 세우는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성실하고 신실한 지도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한 나라를 세우십니다. 가정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가정과 교회를 세우심에 있어서 게으른 지도자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신실하고 성실한 지도자를 사용하셔서 한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복 받는 나라와 교회와 가정을 세우기 위해선 우리 지도자들은 성실해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지도자가 있는 나라는 화 받는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10장 19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 돈은 범사에 응용되느니라”. 이 말씀은 화 받는 나라의 지도자들은 게으르고 방탕하여 돈이면 나라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나라의 지도자들이라면 분명히 돈을 사랑하는 지도자들로서 하나님 보다 돈을 의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아래 게으른 생활과 방탕한 생활을 즐기면서 나라를 다스리는데 무책임하면서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여 나라가 이 모양 이 꼴로 모든 시민들이 고통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라의 세금만 계속 더 올리므로 나라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할 것입니다(맥아더).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결국 돈을 사랑하고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도자들은 돈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요즘 많은 사람들이 ‘돈이 힘이다’(Money is power)란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참 위험한 생각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고 한 교회를 다스리려고 하며, 한 가정을 이끌려고 한다면 그러한 나라와 교회와 가정은 꼭 돈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결국 돈으로 인하여 그 나라와 교회와 가정은 화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경계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돈을 의지하는 지도자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경계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러한 지도자들을 좇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좇아야 할 지도자들은 돈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경건한 지도자들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풍부한데도 거해보고 궁핍한데도 거해보면서 자족의 비결을 배운 지도자들을 좇아야 합니다. 우리는 돈으로 만족하지 말고 예수님 한분만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와 우리의 나라가 하나님께 복 받을 것입니다.

 

저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고 믿습니다. 가정과 회사와 교회도 만찬가지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나라를 잘 다스리는 책임을 잘 감당해야 할 나라(가정, 교회)의 지도자들이 게으르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이러한 지도자들로 인하여 그 나라(가정, 교회)는 화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화를 받을 수밖에 없는 나라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 전도서 10장 20절을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방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만일 우리의 지도자들이 게으르고 방탕하며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 아래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러한 부족한(또는 부적절한) 지도자들을 저주하며 비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몰래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을 저주하는 것이나 비판하는 소리가 그 지도자들의 귀에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술을 절제하고 우리나라의 부적절한 지도자들을 저주하고 비판하기보다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되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구하면서 또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나라(가정, 교회)의 지도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품과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인 절제, 성실과 예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자족의 비결을 가르쳐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나라(가정, 교회)가 하나님께 복을 받을 것입니다.

 

 

 

복 받는 가정과 교회와 나라로 세워 주시길 하나님께 기원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방탕과 돈 사랑을 경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