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의 입술

 

 

 

[전도서 1012-15절 말씀 묵상]

 

 

여러분은 “말의 숨겨진 놀라운 능력”을 아십니까? 한 인터넷 사이트를 보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말을 해야 하는데, 원석을 갈고 다듬으면 다이아몬드가 되듯이 우리말도 갈고 닦고 다듬으면 보석처럼 빛나는 삶의 향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말에 대하여 여러 가지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여러분과 나눕니다(인터넷): (1) “입에서 나오는 데로 말하지 말라. 체로 거르듯 곱게 말해도 불량 율은 생기게 마련이다.” (2) “말에도 맛이 있다. 입맛 떨어지는 말을 하지 말고 감칠맛 나는 말을 하라.” (3) “칭찬, 감사, 사랑의 말을 많이 사용하라. 그렇게 하면 사람이 따른다.” (4) “말로 입은 상처는 평생 간다. 말에는 지우개가 없으니 조심해서 말하라.” (5) “말이 씨가 된다.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라.”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말을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 우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전도서 10장 12-15절을 보면 솔로몬 왕은 우매자의 입술, 즉 어리석은 자의 입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매자의 입술”(12절), “그 입의 말”(13절), “우매자는 말을 …”(14절). 그는 어리석은 자의 입술에 대하여 4가지 특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4가지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어리석은 자의 입술은 자기 자신을 해롭게 합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10장 12절을 보십시오: “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키나니.” 솔로몬 왕은 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로운 반면에 어리석은 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를 삼킨다는 말은 자기 자신을 해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즉, 어리석은 자의 입술은 자기 자신을 해롭게 합니다. 어떻게 해롭게 합니까? 어떻게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입술로 자기 자신을 해롭게 합니까? 성경 잠언 10장 32절을 보십시오: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지혜로운 자는 상대방을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할 줄을 알기에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합니다(잠25:11).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자기 입술을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그 상대방이 상처를 입던 말던 말을 함부로 말합니다. 그것은 곧 어리석은 자는 자기 자신을 상처 입히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 자기 자신을 해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자기 자신과 사람을 해하는 입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웃을 쳐서 거짓증거 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살이니라”(잠25:18). 잠언 기자는 이웃을 쳐서 거짓증거 하는 입술을 가리켜 “방망이요 칼이요 뽀족한 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의 입술이 바로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살과 같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해하고 상처 입히며, 또한 파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 야고보는 혀를 가리켜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약3:5-8). 이렇게 혀라는 것은 무섭습니다. 미련한 자의 혀는 참 위험하고 위험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해롭게 하는 어리석은 자의 혀를 경계해야 합니다.

 

둘째로, 어리석은 자의 입술은 점점 악화됩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10장 13절을 보십시오: “그 입의 말의 시작은 우매요 끝은 광패니라.” 어리석은 자는 자기 입술로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해롭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가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어리석은 자의 입의 말의 시작은 우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어리석은 자의 입의 말의 시작이 우매라면 그 끝은 무엇이겠습니까? 솔로몬 왕은 그 끝은 ‘광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어리석은 자의 입의 말의 끝은 악한 미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주로 어리석은 자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합니다. 보통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다가, 말을 하면 할수록 더 미치광이처럼 말을 합니다. 마치 빈 깡통 소리가 처음에는 한두 번 조용히 나다가 나중에 가서는 수십번 나면서 시끄러운 것처럼 어리석은 자의 미련한 소리를 가면 갈수록 더 시끄러워져서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말을 합니다. 성경 잠언 29장 11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말을 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노를 다 드러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더 나아가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므로 감정까지 폭발하여 쏟아 붇는 말이 들어오면 마치 미친 사람처럼 말을 합니다. 결국 사람의 어리석음이란 시작은 미약할지 모르지만 나중에 창대하여 미친 행동까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악화되는 어리석은 자의 입술에서 선한 말이나 지혜로운 말이나 유익한 말이 나올 것을 기대하면 아니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리석은 자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아무 유익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대화를 중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떠나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중단하지 않고 계속 어리석은 자와 대화를 한다면, 우리는 어리석음의 끝이 미친 행동까지 보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어리석은 자의 입술은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고 말을 많이 합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10장 14절 상반 절을 보십시오: “우매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 어리석은 자는 말을 많이 합니다. 마치 빈 깡통이 소리를 더 내는 것처럼 지식이 없는 어리석은 자는 말을 많이 하므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나타냅니다. 어리석은 자는 길에 행할 때에도 지혜가 결핍하여, 각 사람에게 자기의 어리석은 것을 나타냅니다(10:3). 어떻게 그는 자기의 어리석음을 나타냅니까? 그는 적은 어리석음을 가볍게 여기므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나타낼 뿐 아니라, 자기의 주권자에 대항하므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나타냅니다(1,4절). 저는 이 말씀을 오늘 본문 전도서 10장 14절 상반절 말씀과 연관해서 생각해 보았을 때, 어리석은 자의 입술은 적은 어리석은 말을 가볍게 여기므로 말미암아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고 계속 어리석은 말을 하되 나중에 더 큰 어리석은 말을 합니다. 또한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권자에게 말로나마 대항하므로 말미암아 자기의 어리석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0:19). 우리는 혀를 쓰기를 좋아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 잠언 18장 21절을 보십시오:“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오히려 우리는 말을 아껴야 합니다. 우리는 지혜가 있는 자처럼 말을 아껴야 합니다(잠17:27).

 

마지막 넷째로, 어리석은 자의 입술은 자기 자신을 자랑합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10장 14절 상반 절부터 15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신후사를 알게 할 자가 누구이냐 우매자들의 수고는 제각기 곤하게 할 뿐이라 저희는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아무도 장래 일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지만,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또는 자기의 미래가 자신의 지배 안에 있는 것처럼 떠든다는 것입니다(위어스비). 그 결과 어리석은 자는 모든 사람을 괴롭히며 시끄럽게 하는 것입니다(15절)(박윤선).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솔로몬 왕은 어리석은 자는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5절). 다시 말하면, 어리석은 자는 성읍에 들어가는 길이 공개되어 있어서 사람마다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련한 자는 그것도 모르는데(박윤선) 어떻게 그는 장차 올 일까지 다 안다고 자기 입술로 말을 많이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어느 면으로 보면 어리석은 자는 미래를 아는 것처럼 떠들곤 있지만, 현재 자기 일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기에 미래에 대해서 아는 것처럼 떠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어리석은 자가 이렇게 자기 입술로 장차 온 일을 아는 것처럼 입을 열어 말을 많이 하는 것입니까? 그 의도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성경 잠언 27장 1절은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어리석은 자는 내일 일을 다 아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자랑합니다. 이러한 자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바로 야고보서 4장 14-16절 입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요즘 저는 전도서를 묵상하면서 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리할 때 저는 ‘참 제 자신이 미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제 자신의 미련함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랑할 것은 우리의 미련함뿐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지혜로우심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 또한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5).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입으로 우리 자신을 해하기보다, 다른 이를 위로하고 세우므로 우리 자신도 위로를 받고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입의 말의 시작도 지혜요, 끝도 지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입의 말은 점점 선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입술을 제어해야 합니다(잠19:19). 우리는 우리의 입술로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러한 지혜로운 입술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길 기원합니다.

 

 

 

지혜로운 입술을 구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어리석은 자의 입술을 날마다 버리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