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와 기회

 

 

 

[전도서 911-12절 말씀 묵상]

 

 

저는 지난 주 인터넷 CNN 뉴스에 한 흥미로운 기사가 있어서 좀 읽어 보았습니다. 그 기사 내용은 하버드 대학 캠퍼스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미첼 하이즈만이란 한 35살난 사람이 유대인들의 속죄의 날(Yom Kippur)인 9월 18일 토요일 한 오전 11시 쯤 자살을 했는데,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1,905페이지나 되는 유서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 유서를 가리켜 ‘자살 노트(Suicide Note)’라고 합니다. 그 자살 노트에는 소크라테스, 뉴턴,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또한 자유, 허무주의, 하나님, 유대교, 유대인 기호, 유대인의 IQ는 앵글로 색슨의 역사에 관한 지혜에 관한 내용들이 있다고 합니다(인터넷). 저는 이 내용들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가 인생에 대해서 한 말 중 공감 된 부분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나누고 있습니다. 그 말은 다름 아닌 “Life is meaningless”(인생은 헛되다)라는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을 인터넷 뉴스 기사에서 읽으면서 스치고 지나갔던 생각은 바로 전도서 1장 2절 말씀이였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미 성경에 쓰여 있는 말씀을 그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자기 자살 노트에 쓴 이 사람의 기사를 읽으면서 저는 좀 안타까웠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삶의 헛됨은 깨달았는지 모르겠지만, 예수님 안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예수님 안에서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면 그는 분명히 자살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기회를 최선을 다해 살려서 주님을 위해 살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일 그가 예수님 안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주님을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살다가 죽었다면 결코 헛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도 듭니다. 오히려 그는 주님 안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귀중히 보시는 성도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요즘 ‘타이밍(timing)’에 대해서 좀 생각하곤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저는 요즘 질병 중에 고통당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살려보려고 노력하다가 언제 그 노력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이 세상을 떠나시도록 해야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랑하는 장인 어르신 때문입니다. 그분의 주치 의사는 이젠 마지막을 준비하셔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했습니다. 어느 면으로 보면 의학적으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포기하고 마지막 떠나시는 그 날까지 호스피스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편안하게 하는데 좋다는 권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장모님은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타이밍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의사 선생님이 포기하고 마지막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할지라도 우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치유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계속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는 이유는 혹시나 하나님께서 살려주실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한 예로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여 낳은 첫째 아기가 병들었을 때 다윗이 금식하면서 기도했던 모습을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삼하12:14)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금식하며 간구하였습니다(16절). 왜 그가 그렇게 간구했습니까? 그 이유를 다윗은 사무엘하 12장 22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오늘 본문 전도서 9장 11절 하반 절을 보면 솔로몬 왕은 “이는 시기와 우연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말씀의 의미를 알기 전에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여기서 ‘우연’이란 한국어 번역은 오역입니다(박윤선).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우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로서 그저 우연히 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 안에서 이루어진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Good luck”이란 말, 즉 “행운을 빕니다”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요즘 한국 합동 측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혁개정판 성경을 보면 오늘 본문 전도서 9장 11절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개역개정판은 ‘우연’이라고 번연하지 않고, ‘기회’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번역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여기서 솔로몬 왕이 말하고 있는 ‘기회(chance)’란 무엇입니까? 인터넷 네이버 국어사전을 보면, 기회란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적절한 시기나 경우’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이버 한자사전을 보면 ‘기회’란 ‘기대하던 그 때, 일을 하기에 적당한 시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네이버 사전). 보편적으로 우리 사람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포착하여 일을 하므로 기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공이 아닙니까? 그러면 성공을 하기 위해서 기회를 기다리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하되 앞으로 다가 올 기회를 충분히 살려서 성공하기 위해선 자기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여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9장 11절을 보면 솔로몬 왕은 한 다섯 부류의 준비된 사람들, 또는 능력 있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삶의 기회를 준비하는 자들로서 나름대로 자기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여 잘 준비된 사람들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첫째는, ‘빠른 경주자들입니다. 빠른 경주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경주에서 일등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빠른 경주자들은 더 빨리, 남들보다 더 빨리 달리려고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주라는 기회가 주어 질 때,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골라인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일 먼저 골라인에 들어가서 1등을 하기 위해입니다.

 

(2) 둘째는, ‘용사들입니다. 용사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군인들은 진정 용맹스러운 군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3) 셋째는, “지혜자들입니다. 지혜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실제적으로 삶 속에 잘 사용하여서 살림에 보탬이 되어야 합니다. 그저 쓸모없는 지식으로 밥벌이도 제대로 못하면서 사는 자가 되고 싶은 지혜자는 없을 것입니다.

 

(4) 넷째는, “명철한자들입니다. 명철한 자들 또한 자기의 똑똑한 두뇌를 사용하여서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자 힘쓸 것입니다.

 

(5) 다섯째는, “지식인들입니다. 이들은 열심히 배워서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은총을 받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다섯 부류의 준비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성공을 기대하며 기회를 포착하여 최선을 다했다 할지라도 그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 전도서 9장 11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 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아무리 잘 달리는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해도 경주에 일등 하는 것도 아니고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도 아니라는 등등의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간섭으로 발생하는 사건들로서 우리 사람들이 어떻게 뭐라고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박윤선). 그러므로 사람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거기 필요한 조건을 구비했다 할지라도 자력으로 성공을 가져올 듯이 교만하면 안 됩니다. 그는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아야 됩니다(박윤선).

 

우리 인간의 본능은 자기의 자력으로 성공했다고 자랑하는 교만함이 있습니다. 그 한 예로 우리 사람들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자랑하길 원하는 교만함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신명기 8장 17-18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우리 사람들이 잘 나서(능력이 있어서) 재물을 많이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성취해 주셔서 재물을 많이 얻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셔야 재물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4:16). 왜 우리는 이러한 허탄한 자랑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9장 12절을 보십시오: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무슨 말씀입니까?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여 기회를 포착하여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예상 밖에 일도 일어 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기대하지 않았던 예상 밖에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홀연히 임하는 재앙의 날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듯이, 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우리 인생에게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천하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전3:1-8). 또한 우리는 무론 무슨 일에든지 시기와 판단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8:6) 특히 우리가 홀연히 임하는 재앙의 날에도 잊지 말아야 할 진리는 바로 이 모든 것의 결국은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하신다는 것입니다(3:11)(위어스비). 여러분, 비록 지금 우리 삶 속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우리가 기대한데로 되어가지 않고 오히려 재앙처럼 여겨질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들지라도 우리는 주님께 소망을 둔 것을 내려놓아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우리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통하여 결국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 인간의 관점으로 볼 때 홀연히 임한 재앙의 너무나 어둡고 전혀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재앙조차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 사,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빛 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여러 번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란 말씀을 종종 하셨습니다(요2:4, 7:6, 8, 30, 8:20, 12:4, 23, 27, 13:1, 17:1).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나의 때”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그 때란 바로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구속하시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그 때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때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때를 가리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 사,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다시 오실 것이라고 우리에게 약속하였습니다. 그 시기와 때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마24:36).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 어두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의 완성으로 아름답게 하실 것입니다. 그 때를 소망하며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 아기 주영이의 죽음을 통해서도 아름답게 하시 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