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사람

 

 

 

[전도서 97-10절 말씀 묵상]

 

 

요즘 여러분은 무슨 낙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여러분은 무슨 기쁨을 맛보고 계십니까? 비록 저와 여러분이 슬픈 많은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지만, 성경 말씀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명하고 있는데, 과연 저와 여러분은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기 위해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9장 7절 하반 절을 보면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그 대답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들입니다(박윤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은 기쁘게 살아갑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자들은 어떻게 기쁘게 살아가는지 저는 오늘 본문 중심으로 한 4가지로 생각하면서 주시는 은혜를 받아 누리길 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자들은 기쁨으로 먹고 마십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9장 7절 상반 절을 보십시오: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어떠한 축복을 주십니까? 성경 전도서 2장 24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하나님께서 말씀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은 그들로 하여금 먹고 마시며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십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먹고 마시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고 계십니까? 저는 전도저 2장 24절과 오늘 본문 9장 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먹고 마시는 이미지를 생각할 때 ‘잔치(feast)’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잔치’ 또는 ‘연회’를 생각할 때, 저는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 혼인 잔치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는 얼마 전 들은 팀 켈러(Tim Keller) 목사님의 가나 혼인 잔치에 대한 강의가 생각났습니다. 그 강의에서 도전 받은 것은 ‘The Kingdom of God is feast’(하나님의 나라는 잔치입니다)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매일 삶이 잔치여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에 왕이신 예수님께서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우리 신자들이 함께 모일 때 우리는 잔치처럼 기쁨으로 먹고 마시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 하는 떡과 잔을 받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우리는 먹고 마시면서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천국에 들어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을 만한 자들은 기쁨으로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마시면서 매일 매일 삶이 잔치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자들은 정결한 삶과 기쁨의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9장 8절을 보십시오: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여기서 “너의 의복을 항상 희게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삶이 항상 정결해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너의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삶 가운데 기쁨이 항상 있게 하라는 말입니다(에리드 매처). 지금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삶은 정결한 삶이요, 또한 기쁨의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정결함과 기쁨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결한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결한 삶을 살지 않는 자에게는 기쁨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죄란 우리에게 기쁨을 절대로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죄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정결한 삶을 추구합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길 원한다면 우리는 정결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길 원한다면, 우리는 마음의 정결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표면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정결한 삶을 살아가면서 마음으로는 온갖 범죄를 행할 수 있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의 정결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며 날마다 우리의 죄를 자백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죄를 십자가에 앞에 내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누리는 기쁨, 참으로 마음이 정결한 자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자들은 사랑하는 배우자와 함께 즐겁게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9장 9절을 보십시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솔로몬 왕은 헛되고 헛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고하여 얻은 분복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서는 우리가 먹고 마시는 잔치를 즐거워하고(7절), 정결한 삶을 즐거워하며(8절), 또한 사랑하는 아내를 즐거워해야 합니다(9절). 솔로몬 왕이 잠언에서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잠18:22),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잠19:14).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자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아내의 복을 겸손히 누리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자기들의 아내를 사랑합니다. 사랑하되 마치 예수님께서 교회를 향하여 기뻐하듯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은 그의 아내를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우리들의 배우자를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과연 사랑하는 배우자와 함께 즐겁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이번 주 월요일 YMCA에 운동하러 갔다가 Locker room에서 한 80살 되신 미국 할아버지가 또 다른 할아버지하고 대화를 하시는데, 얼마 안 있으면 결혼 60주년이 가까온다고 말씀하시니까 그 말을 듣던 다른 할아버지가 “요즘 결혼하고, 이혼하고, 재혼하고 다들 그러는데 어떻게 60년을 그렇게 부인하고 함께 살 수 있었느냐”는 식으로 물었습니다. 그 80살 되신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내 아내가 참 나를 잘 참아주었소”라고 말씀하시더군요.ㅎㅎㅎ 그런 후 그 할아버지는 좀 있다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우리는 비슷한 점들이 많고 또한 서로를 신뢰한다오….” 저는 이 80살 되신 미국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면서 참 마음에 흐뭇했습니다. 결혼 생활 약 60년 동안 함께 아내와 살 수 있었던 것을 아내가 자기를 잘 참아줬다고 칭찬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꼈습니다. 요즘 그 다른 할아버지 말대로 얼마나 많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또 재혼하고 합니까? 그러한 사회 흐름 속에서도 아내와 함께 60년을 살면서 아직도 아내를 사랑하는 모습을 엿볼 때, 과연 우리가 어떻게 우리 배우자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까? 성경 잠언 5장 18-19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우리는 우리의 배우자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꾸만 눈을 딴 여자에게 돌려서 그 여자를 연모하게 되어 결국은 바람을 피우고 간음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자들은 힘을 다하여 열심히 일합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9장 10절을 보십시오: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위어스비 목사님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일을 저주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책무(a stewardship)로 보았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은 일을 함에 있어서 신적 소명을 가지고 일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맡겨주신 일을 감당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본문 전도서 9장 10절을 생각해 볼 때 지금 솔로몬 왕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희가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는 데로 열심히 일을 하라’, ‘너희가 일할 수 있을 때에 최선을 다해서 일하라.’ 왜 솔로몬 왕은 일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일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일할 수 없는 밤이 속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찬송가330장<구370장>).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주님의 일을 할 때 즐거운 마음으로 일 자체를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직장에서 일을 할 때나 교회 에서 일을 할 때 계속 불평, 불만을 하면서 일을 한다면 그 얼마나 곤욕입니까? 특히 만일 우리 가 일을 함에 있어서 유대인들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책무라는 소명의식이 분명하지 않으면, 우리의 일은 열심히 하기란 힘들고, 더욱더 일 자체를 즐긴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약에 나오는 사도 바울처럼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일을 하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던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 청지기 의식이 뚜렷하고, 소명의식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들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사람들이 이렇게 일을 합니다. 힘이 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쁨으로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마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7절).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정결한 삶과 기쁨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8절). 그리고 우리는 사랑하는 배우자와 함께 즐겁게 살아가야 합니다(9절). 우리는 일할 수 있을 때 힘을 다하여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10절).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를 수요기도회 때 찬양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