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행사

 

 

 

[전도서 814- 91절 말씀 묵상]

 

 

요즘 여러분은 이 세상을 살아가시면서 무엇을 깨닫고 계십니까? 저는 요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생은 짧다는 것’과 ‘그 짧은 인생 동안에 우리가 행하는 많은 일들이 참 무익하고 헛된 것이다’라는 것을 전보다 조금 더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저는 매주 수요기도회 때마다 전도서를 묵상하면서 제 마음에 드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 질문은 ‘왜 하나님께서는 악인으로 하여금 형통하도록 가만 보고 계시는가?’입니다. 우리가 지난 주 수요기도회 때 배운 것처럼 ‘악인들은 그들이 행한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 할진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속히 징벌하지 않으실까?’라는 질문이 듭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의 대답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이미 전도서 8장 9-13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솔로몬 왕이 마음을 다하여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살펴본 후 내린 결론을 배웠습니다. 그 결론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잘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솔로몬 왕이 내린 결론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는 결코 잘되지 못하고(13절)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만이 잘 될 것이다(12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후 그는 오늘 본문 전도서 8장 17절에 와서는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본 후 이러한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그는 하나님께서 해 아래서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살펴보며 애써 궁구해 보았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하나님의 행사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솔로몬 왕의 결론을 중심으로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행사’란 제목 아래 두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아 순종하므로 이 세상에서 지혜롭게 살아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과연 솔로몬 왕이 깨달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행사가 무엇이었는가?’입니다.

2 가지로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솔로몬 왕이 깨달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행사는 의인이 악인처럼 잘 안 되는 일이 있는 반면에 악인이 의인처럼 잘 되는 일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8장 14절을 보십시오: “세상에 행하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의 행위대로 받는 의인도 있고 의인의 행위대로 받는 악인도 있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솔로몬 왕이 이 세상에서 깨달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행사는 의인이 악인처럼 잘 안 되는 일이 있는 반면에, 악인이 의인처럼 잘 되는 일도 있다는 것입니다.(박윤선) 좀 달리 말한다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의인이 악인처럼 징벌을 받는가 하면 악인이 의인처럼 보상을 받는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깨달을 수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맥도날드).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어떻게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의인을 악인처럼 징벌하시고 악인을 의인처럼 보상을 하시는지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저는 이 질문이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 저는 성경을 읽다가 예레미야 12장 1절에서 제 시선이 멈췄습니다. 그 이유는 여태껏 성경 인물 중 시편 73편을 쓴 아삽만이 의인의 고통과 악인의 형통에 대한 문제로 고민한 줄 알았는데 예레미야 선지자도 고민한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 예레미야 12장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그의 공의로우심에 대하여 질문하기를 ‘왜 악인의 길이 형통하며 편안하게(안락하게) 사는 것입니까?’입니다. 이 질문이 솔직히 저와 여러분이 마음으로 하나님께 가끔 던지는 질문이 아닙니까? 우리가 던지는 질문의 핵심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신데 왜 악인을 형통케 하시고 의인은 고통을 겪게 하시는가?’

 

(2) 솔로몬 왕이 깨달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행사는 의인 또는 지혜자에게 임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인지 미움의 표시인지 사람이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9장 1절을 보십시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 본 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솔로몬 왕이 이 세상에서 깨달을 수 없었던 또 다른 하나님의 행사는 의인 또는 지혜자에게 임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인지 미움의 표시인지 사람이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맥도날들). 분명한 것은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데 분명하지 않은 것은 왜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반드시 이 세상에서 육적으로 번영케 하시지 않는 것인지(박윤선) 그것이 사랑의 표시인지 미움의 표시인지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경륜을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그 주님의 원대한 뜻을 깨달아 알 수 있겠습니까? 많은 때에 우리는 모든 일이 지난 후에야 하나님의 경륜을 어렴풋이 깨닫긴 하지만 결코 우리는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충분히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고 궁구하며 애쓸지라도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반드시 이 세상에서 육적으로 번영케 하시지 않으시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므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고난과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이라고 말하며 믿고 있지만, 어쩔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사랑하신다면 왜 이렇게 고통을 당하게 하시는가?’라는 질문도 던집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셔서 그러시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성경 신명기 1장 27절을 보십시오: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는 고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원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27절).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시려고 자기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다고 말하였습니다. 참으로 그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나님께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셨으면 뭐하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셨겠습니까.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신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미워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허락하시는 고통이 사랑의 표시입니까? 아니면 미움의 표시입니까? 솔로몬 왕의 결론은 우리가 그 대답을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둘째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행사를 깨달을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입니다.

2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행하시는 일을 깨달을 수 없을 때 우리는 깨달을 수 없는 것을 해결하려고 애쓰기보다 그 난제가 하나님의 손 가운데 있는 줄 알고(9:1)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8:16-17)(박윤선).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난제를 접합니까? 참으로 우리 인생에 난해한 문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과연 그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여러분은 깨달을 수 있습니까? 왜 그러한 문제들이 여러분의 삶에 오는지 여러분은 이해하십니까? 과연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충분히 알 수 있으십니까? 솔로몬 왕은 인생의 난제의 원인을 이해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 난해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론은 우리는 우리가 깨달을 수 없는 난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기보다 그 난제가 하나님의 손 가운데 있는 줄 믿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이 세상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저와 여러분이 확신 있게 믿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인생의 접하는 모든 난한 문제들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 수 없는 우리의 미래도 다 하나님의 손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비록 저와 여러분은 우리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가 미래에 어떠한 일들을 접할지 아무도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운 문제들이나 우리의 미래를 다 알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우리의 삶 속에 난제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미래도 그분의 뜻대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믿을 때 설상 우리 앞에 고통과 역경이 놓여 있을지라도 우리는 믿음으로 이겨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2)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행하시는 일을 깨달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우리가 받은 분복에 있어서 만족을 느끼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8장 15절을 보십시오: “이에 내가 희락을 칭찬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해 아래서 나은 것이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으로 해 아래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중에 이것이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니라.”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접하는 수 없는 많은 난해한 문제들,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무수한 일들을 접할 때 우리는 그 모든 일들을 주님의 손아래 있다는 사실을 믿고 다 주님께 맡긴 후 우리는 하루하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복을 만족하며 누리면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솔로몬 왕은 우리가 받은 분복인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육체적 쾌락을 누리면서 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그는 이미 육체적 쾌락의 시험 삼아 추구해 보았지만, 그의 결론은 ‘헛되다’인 것을 보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비록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깨달을 수 없을지라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아래 있다는 사실을 믿고 하루하루 하나님께 받은 복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서 2장 24절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복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주님 안에서 받은 복을 즐기면서 살아가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복을 세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이미 받은 신령한 복들을 즐거이 누려야 합니다. 괜히 우리가 깨달을 수도 없는 난해한 문제들에 얽매여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고 시간과 힘을 쓰기보다 우리는 불공평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당하는 어려운 문제들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그 와중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분복을 즐거이 누려야 합니다.

 

오늘 운전하고 교회로 오다가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흥미로운 이야기는 다름 아닌, 한국 경남 함안군에서 고려시대 연 씨앗을 심어 700년 만에 연꽃을 피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떻게 700년 전에 연 씨앗을 심었는지를 알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인간의 생명이 길어도 칠·팔십인데 이렇게 꽃의 생명이 긴 것이 참 놀랍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참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면서 꽃의 생명도 이렇게 주관하신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솔로몬 왕처럼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애써 궁구해 볼 때 우리는 결코 다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연 씨앗이 700년 후에 연꽃으로 피는 것조차도 깨달을 수 없을 진데, 어떻게 이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며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의인을 악인처럼 징벌하시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며, 악인을 의인처럼 보상하시는 것 같이 보이는 것입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과연 우리가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반드시 이 세상에서 육적으로 번영케 하시지 않은 것인지 그 이유를 압니까? 그것이 과연 사랑의 표시인지 미움의 표시인지 우리가 알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깨달을 수 없는 것을 해결하려고 애쓰기보다 모든 난제가 하나님의 손 가운데 있는 줄 믿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복에 만족하면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러한 지혜로운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깨닫지 못하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아래 있다는 진리를 믿는 믿음 안에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복을 깨달아 알아 하루하루 겸손히 누리며 기뻐하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