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지혜는

 

 

 

[전도서 81-8절 말씀 묵상]

 

 

우리 한국 속담에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궁지에 빠뜨린다는 뜻의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전도서 7장 23-29절을 묵상한 후 이 한국 속담이 종종 생각났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우리 사람의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다는 말씀 때문인 것 같습니다(26절).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있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면 올무와 그물에 걸려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지 않겠지만, 만일 우리가 미련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결국 우리는 스스로 우리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격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참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미련하고 미련한 면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미련함 가운데서 빈번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결국 스스로 올무와 그물에 빠져 환난과 고난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제 자신이 그리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미련하여 생각과 입술을 절제 못하여 스스로 제 자신을 궁지에 빠트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아무리 나중에 뒤돌아보면서 후회한들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로 인하여 제 자신을 스스로 궁지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번 노회 때 제가 한 장로님에게 던진 한 마디의 말이 이렇게 제 자신을 좀 궁지에 빠트릴 줄 몰랐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그것이 뭐 궁지이겠는가 충분히 말할 수 있지만, 저에게는 이런 저런 스트레스를 준 궁지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그 일로 인하여 제가 자 자신을 보면서 이런저런 번뇌 가운데 있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혹시 저처럼 미련하여 자기 자신을 스스로 궁지에 빠트리신 적이 없으십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 전도서 8장 1-8절 말씀 중심으로 사람의 지혜에 관하여 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한두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람의 지혜는 무엇인지, 그리고 둘째로, 사람의 지혜가 우리에게 주는 이익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 지혜로운 삶을 살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누리길 원합니다.

 

첫째로, 사람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8장 2절을 보십시오: “내가 권하노니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음이니라.” 여기서 ‘왕’이란 말은 이 세상의 왕이 아닌, 하늘의 왕 곧, 하나님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지금 솔로몬 왕은 하늘의 왕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백성이라고 맹세하였기 때문입니다(2절)(박윤선).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지혜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일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란 오늘 본문 3절 하반 절에서 4절에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 왕은 그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함이니라 왕의 말은 권능이 있나니 누가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으랴.”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시기에 주권자 하나님께서는 하시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말씀은 로마서 9장 20-21절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주권자 하나님께 반응해야 합니까?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께 “무엇을 하시나이까?”라고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 피조물들은 조물주 하나님의 주권에 힐문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의 말씀에 그저 겸손히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4절). 이것이 바로 사람의 지혜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말씀에 겸손히 순종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자는 주권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권능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그리고 미련한 자는 악한 것을 일삼아 하나님께 범죄합니다(3절). 솔로몬 왕은 저와 여러분에게 이러한 미련한 자가 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에게 지혜로운 자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 그는 우리에게 지혜로운 자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사람의 지혜가 우리에게 주는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사람의 지혜가 우리에게 주는 이익은 무엇입니까? 2 가지로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사람의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화를 당하지 않게 해줍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8장 5절을 보십시오: “무릇 명령을 지키는 자는 화를 모르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시기와 판단을 분변하나니.” 이 얼마나 우리에게 귀한 교훈입니까? 지혜가 있을 때 화를 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반대로 생각하면 지혜가 없으면 곧 미련하면 화를 당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미련한 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가 바로 미련한 자입니다. 그리고 미련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에 화를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지혜로운 자는 화를 당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지혜가 우리로 하여금 화를 모면하게 해줍니까? 바로 지혜는 우리에게 시기와 판단을 분변하게 해주므로 우리로 하여금 화를 모면하게 해 줍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는 우리에게 시기를 분변하게 해 줍니다. 예를 들어 지혜는 우리에게 지금이 어느 때인지 성경적 분별력을 줍니다. 지금은 어느 때입니까? 성경은 지금은 마지막 때, 즉 말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성경은 지금은 어느 때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지금은 구원 받을 때입니다. 또한 지혜는 우리에게 바른 판단력을 줍니다. 성경 전도서 8장 7절을 보면 우리는 장래 일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주장할 수도 없고, 죽는 날도 주장할 수 없는 등 우리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8절).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판단력은 우리는 무능력하다는 사실과 하나님은 전능하시 사, 이 모든 일들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지혜가 우리에게 이러한 판단력을 줍니다. 이러한 판단력 속에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들로 하여금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셨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7:14).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 또한 모래, 앞으로 미래에 우리에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형통한 날도 있을 것이지만 또한 곤고한 날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14절). 바로 지혜는 이러한 알 수 없는 장래의 일어날 일들에 대해 바른 판단력을 줍니다. 예를 들어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게 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게 만듭니다(14절).

 

(2) 사람의 지혜는 우리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해줍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8장 1절을 보십시오: “지혜자와 같은 자 누구며 사리의 해석을 아는자 누구냐 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솔로몬 왕은 사람의 지혜는 우리 얼굴의 광채가 나게 하고, 우리 얼굴의 사나운 것도 변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사람의 미련함은 우리 얼굴의 사나움으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얼굴을 사납게 하고 다니는 것, 참 본이 되지 않습니다. 비신자들이 우리의 사나운 얼굴을 볼 때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링컨 대통령이 말했다고 하죠? “사람은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 이젠 저도 제 얼굴을 책임져야 할 나이가 지났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처럼 제 얼굴에 사나운 면이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봅니다. 어떻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은 후 얼굴이 좀 변화 되었습니까? 얼굴의 광채까지는 나지 않을지라도 우리 얼굴의 좀 사나운 면이 없어졌습니까? 참으로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은 얼굴의 사나운 것도 변하였지만, 그 얼굴에 광채까지 납니다. 다시 말하면, 참으로 지혜로운 자의 얼굴에는 참된 평화가 가득합니다(박윤선).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참되이 알고 순종하던 스데반이 죽을 때에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났던 것처럼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죽을 때에도 얼굴에 참된 평화가 가득합니다. 이렇게 지혜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이익을 줍니다.

 

참된 우리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화를 당하지 않게 해 줍니다. 더 나아가서, 사람의 지혜는 우리의 얼굴도 변화시켜 광채가 나게 해 줍니다. 이러한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지혜의 유익을 사모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