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전도서 723-29절 말씀 묵상]

 

 

여러분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아가고 계십니까? 물론 모든 인간관계가 갈등으로 가득 찬 것은 아니지만, 어느 한 사람과의 관계는 너무나 갈등이 많아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며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이 우리 안에 우리의 제일 나쁜 점들을 끌어내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사람이 저에게 나타나면 갈등을 원치 않기에 그 사람을 피합니다. 저는 그 사람과 대면하고 싶지도 않고 대화하고 싶지도 않아 그 사람을 피하게 됩니다. 과연 이것에 주님의 뜻일까 자문해 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인간관계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제 아내에게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힘들게 하고 당신 안에 제일 나쁜 점들을 끌어내는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죄를 깨닫게 해주고 계신 줄도 모르겠다.” 참 웃기지 않습니까? 제가 제 자신의 인간관계에서 제가 피하고 싶은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쩌면 저의 죄를 깨닫게 해주시고 계실지도 모를 텐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아내에게는 그러한 깨달음을 하나님께서 주시고 계실지 모른다고 말한 것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요즘 주시는 깨달음은 죄를 깨닫는 것이 큰 축복이란 것입니다. 전에는 죄를 깨닫는 것이 너무나 괴롭고 죄책감 속에서 저를 낙망시키기에 죄를 깨닫는다는 것이 큰 축복인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자 어거스틴(Augustin)이 한 말 “O Happy Sin!”(오 경사스런 죄여!)이 제 마음에 계속 울려 퍼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말의 의미를 제 삶 속에 조금씩 조금씩 깨닫게 해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23-29절을 생각할 때 깨달음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큰 축복이라 믿습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23-29절을 보면 솔로몬 왕은 ‘깨달았다’라는 단어를 세 번 사용합니다: “내가 깨달은즉 …”(26절), “… 이것을 깨달았노라”(27절) 그리고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29절) 저는 이 반복되는 단어를 생각할 때 ‘과연 솔로몬 왕이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했을 때 저는 솔로몬 왕이 깨달은 것을 오늘 본문 중심으로 4가지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솔로몬 왕이 깨달은 것은 스스로 지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도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솔로몬 왕은 지혜로운 왕이었습니다. 성경은 솔로몬 왕의 지혜는 천하 열 왕보다 크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대하9:22). 그리고 솔로몬 왕 자신도 큰 지혜를 많이 얻어 자기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들보다 자기의 지혜가 낫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전 1: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 왕은 더 지혜로운 자가 되고자 힘썼습니다. 전도서 1장 17절을 보십시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좀 이해가 안 되는 점은 그는 지혜를 알고자 마음을 썼던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 깨달았다고 말한 후(1:17) 이렇게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23절에 와서 또 지혜를 시험하면서 더욱더 지혜자가 되려고 애썼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내리는 결론은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입니다(23절). 솔로몬 왕은 더 지혜로와 지려고 스스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그가 내릴 수밖에 없는 결론은 스스로 지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스스로 지혜자가 될 수 없고 하나님께서만이 우리를 지혜자로 만드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야 우리가 지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솔로몬 왕도 자기가 노력해서 스스로 지혜자가 된 것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그가 일천 희생으로 번재를 드렸더니(대하1:6) 하나님께서 밤에 솔로몬 왕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7절)하였을 때 솔로몬 왕은 ‘지혜와 지식’을 구하지 않았습니까?(10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솔로몬 왕처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구하되 우리는 지혜를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약1:5).

 

둘째로, 솔로몬 왕이 깨달은 것은 지혜를 통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24절을 보십시오: “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여기에 나오는 ‘통달하다’라는 단어의 국어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부문의 지식, 기술 따위에 막힘이 없이 환히 통하다’인데 원어 헬라어 의미는 ‘탐구하다’(examine) 또는 ‘찾아다니다’(search)입니다(인터넷). 지금 솔로몬 왕은 인류 사회의 깊은데 있는 지혜를 찾아보려고 힘썼지만, 그는 결국 그것을 알기 어렵다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박윤선).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면 우리가 지혜를 아무리 찾아보려고 애써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찾는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기에 우리는 탄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스스로 지혜자가 될 수 없는 우리가 지혜를 통달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통달하게 해주셔야 우리가 지혜를 통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10).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성령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깊은 것을 찾아다니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왜 바울은 이렇게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고 통달, 즉 찾아다니신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바울은 하나님의 관점보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관점에서 편지를 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실 필요가 없으시지만,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들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찾아다니게 역사하실 필요가 있으시기에 바울은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찾게 하시고 또한 그 말씀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생각)을 알게 하시므로 그 뜻에 순종케 해주시고 계십니다. 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사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므로 우리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롬8:26). 아멘. 간구하시되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27절).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달아 알아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솔로몬 왕이 깨달은 것은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인생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더 지혜로운 자가 되려고 힘쓰고 애썼습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25절을 보십시오: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하여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 인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그가 이렇게 스스로 더 지혜자가 되려고 힘쓰고 애써서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결이 우리 안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 우리 안에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이 없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6절을 보십시오: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 여기서 우리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 말씀은 우리 마음이 사망보다 독하여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의 미혹(유혹)에 빠지기가 쉽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우리에게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잠2:16-19, 5:1-14, 6:24-29, 7:1-27)(맥아더). 우리가 지혜를 가까이 하면 우리를 말로 호리는 간교한 음녀에게 빠지지 않게 할 것입니다(잠7:5). 그러나 미련한 자는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입니다(22절). 이것은 마치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린 줄을 알이 못함과 일반”입니다(23절). 스스로 더 지혜를 얻고자 했던 솔로몬 왕이 결국 깨달은 것은 인간의 미련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미련함은 스스로 무덤을 파듯이 음녀와 같은 이 세상의 유혹에 빠져 결국 올무와 그물에 걸려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지혜로운 자는 이 세상의 유혹에 빠져 스스로 올무와 그물에 걸리지 않고 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솔로몬 왕이 깨달은 것은 참으로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박윤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생의 모든 문제의 대한 해결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믿으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문제의 대한 해결이 여러분 안에 있다고 믿고 계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아직도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 여러분 안에 있다고 믿고 살아가고 계신다면 여러분은 스스로 올무와 그물에 걸려 죄의 종노릇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믿고 사신다면 여러분은 올무와 그물에서 벗어나 죄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넷째로, 솔로몬 왕이 깨달은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들은 많은 꾀를 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29절을 보십시오: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인생의 모든 문제의 대한 해결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솔로몬 왕은 인생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는 자가 쉽지 않다는 것을 오늘 본문 27-28절에서 이렇게 탄식하고 있습니다: “…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궁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 문제들을 해결해 나아가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는 자가 많지 않은데, 특별히 여자들 중에 그렇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나아가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다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솔로몬 왕처럼 우리 마음이 아무리 찾아도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기 어렵게 된 것입니까?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 원인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 자신에게 있습니다(박윤선).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기 어렵게 된 원인은 우리 자신이 정직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지만, 우리 사람들이 많은 꾀를 내므로 말미암아(29절) 우리가 우리 인생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결국 우리 사람들이 우리 자신의 꾀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지혜와 진리를 깨달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죄인들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셔서 죄가 없으신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므로 저와 여러분을 정직하게 다시 새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깨달음 속에서 더욱더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하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축복을 지금 누리고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요즘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깨닫고 계시는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지혜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지혜를 통달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이 우리 자신에게 없고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지만, 사람들은 많은 꾀를 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깨달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참 지혜가 되심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주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참 지혜가 되시는 예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가운데 우리는 인생의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비록 우리의 깨달음이 충분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그 적은 깨달음 속에서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앞으로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깨달으므로 나의 나됨을 깨닫기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오늘 하나님께 드린 임종 예배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