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자로 능력 있게 하는 지혜

 

 

 

[전도서 719-22절 말씀 묵상]

 

 

저는 요즘 제 주위에 연로하시고 몸이 아프신 분들을 접하면서 우리의 결국이 죽음이라는 전도서 7장 2절 말씀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 인간의 결국에 대해서 유심하게 됩니다. 저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우리 육신의 장막인 몸이 점점 더 쇠약해져 갈 수 밖에 없음을 봅니다. 그리고 몸이 점점 쇠약해지면 이런 저런 병이 걸려 고생하시는 분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몸이 쇠약해지면 면역성이 떨어지면서 이런 저런 병이 걸리기 쉬운 것처럼, 우리 영혼도 힘이 없으면 이런 저런 유혹에 쉽게 빠져 범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영적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이 영적 능력을 받기 위해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이 기도는 말씀 중심적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마 어떤 사람은 영력을 기도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도의 능력 하니까, 얼마 전 경상도 분하고 대화하면서 들은 말이 생각납니다. 그 말이란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할 때 ‘빡시게’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ㅎㅎ 아마 열심히 기도한다는 말을 경사도 분들은 ‘빡시게 기도한다’고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몇 년 전에 어떤 어르신에게 젊은 목사로서 영력이 부족하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영력이란 의미를 잘 몰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지만, 그 후로 제가 제 자신을 볼 때에도 영력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지력이 부족하고 실력, 실천력, 체력 등등 다 부족함을 느낍니다. 부족함을 느끼되 저는 무기력함까지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영력이나 지력이나 실력, 실천력, 체력 등 부족한 점들을 강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어떻게 강화시킬 수 있습니까? 특히 영력을 어떻게 강하게 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19절을 보면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 말씀의 뜻은, 지혜가 지혜자를 한 도시를 치리하는 열 명의 통치자들보다 더 능력 있게(강하게) 해 준다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지혜는 지혜자로 능력 있게 해준다는 말씀입니다. 과연 지혜가 어떻게 지혜자를 능력 있게(강하게) 해 줍니까? 한 3가지로 오늘 본문에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지혜는 이 세상에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이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므로 지혜자를 능력 있게 합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20절을 보십시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솔로몬 왕은 이 세상에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 입니까? 이 말씀은 이 세상에는 선행을 행하므로 스스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을 지키는 인간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말씀입니다.(롬3:20)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0절). 지혜란 선행으로 구원을 받을 자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지혜자에게 알게 해 주므로 그를 능력(힘)있게 해줍니다. 어떻게 지혜는 지혜자를 능력 있게 해줍니까? 바로 지혜는 지혜자로 하여금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들므로 그를 능력 있게 해 줍니다. 지혜는 이 세상에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이 없다는 사실과 인간의 노력인 선행으로 구원을 받을 만한 사람이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므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죄인을 의롭다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므로 우리를 능력(힘)있게 해 줍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지혜는 지혜자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시고 죄를 범치 아니하신 참 의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므로 우리를 능력(힘)있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로 하여금 능력 있게 하는 이 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는 금은보화보다 더욱더 이 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 저와 여러분은 이 지혜가 우리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므로 우리를 능력 있게 합니다. 한 마디로, 지혜는 우리에게 주는 힘은 바로 은혜의 힘입니다. 지혜는 은혜의 힘으로 우리를 능력 있게 합니다.

 

둘째로, 지혜는 지혜자에게 분별력 있는 귀를 주므로 그를 능력 있게 합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21절을 보십시오: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귀는 참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남의 말을 경청하는 귀가 그리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삶 속에는 느끼는 것은 힘들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것이 참 귀한 위로의 사역 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남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선 자기 자신을 절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절제하되 사도 야고보의 말처럼 우리는 말하기를 더디해야 하기에 남의 말을 적극적으로 듣는다는 것은 노력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듣기를 속히 하라는 야고보의 말을 우리 삶 속에 실천하기 위해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약3:19).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실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겸손히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분별력을 가지고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 지혜자는 무조건 아무 말이나 다 듣지 않습니다. 오리려 지혜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분별하여 듣습니다. 한 마디로, 지혜자는 분별력 있는 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들을 말은 듣고, 들을 필요가 없는 말은 걸러내서 듣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미련하여 이러한 분별력 있는 귀가 없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말에 다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우리에 대해 수군수군하는 사람들의 말까지 다 듣고 우리 마음에 두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모든 사람의 말을 듣고 마음에 두다가는 우리는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도 듣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전7:21). 우리가 너무 심각하게 모든 사람들의 모든 말들에 관심을 기울여 듣다가는 그들 중 우리를 저주하는 목소리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목사님은 그의 목사 후보 학생들에게 ‘목사는 보이지 않는 눈 하나와 들리지 않는 귀 하나가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사람들의 혀를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은 당신 자신의 귀를 멈추게 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한 말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위어스비).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구하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별력 있는 귀를 허락해 주시길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분별력 있는 귀로 들어야 할 말과 듣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구별하여 들어야 할 말만 들어서 우리에게 유익되게 해야 합니다. 그 들어야 할 말 중 하나는 바로 지혜자의 책망입니다. 성경 전도서 7장 5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어느 누가 자기를 책망하는 목소리를 듣기 좋아 하겠습니까? 그러나 지혜는 지혜자로 하여금 지혜자의 책망을 듣게 만듭니다. 책망을 듣게 할 뿐 아니라,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분별력 있는 귀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별력 있는 귀로 세상의 음성과 주님의 음성을 구별하여 주님의 음성 듣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지혜가 우리에게 주는 힘은 바로 말씀의 힘입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능력 있게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지혜는 죄를 깨닫게 해주므로 지혜자를 능력 있게 합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22절을 보십시오: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 지혜가 지혜자로 하여금 세상의 음성과 주님의 음성을 구별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해 줄 때 우리는 그 주님의 음성을 통하여 우리 죄를 깨닫게 됩니다. 비록 세상의 음성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죄로 여기지 않게 하여 동일한 죄를 계속 범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죄로 여기게 해줍니다. 그 한 예로, 지혜가 지혜자로 하여금 죄를 죄로 여기게 해주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의 죄입니다(22절). 그리고 그 마음의 죄란 우리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것을 가리킵니다(22절). 우리가 분별력 없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다보면 우리는 저주하는 말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만일 우리가 분별력이 없다보면 우리는 우리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마음의 소리도 듣지(깨닫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는 이러한 마음의 소리도 지혜자로 하여금 듣게(깨닫게) 해 주므로 그를 능력 있게 해 줍니다. 어떻게 지혜가 지혜자를 능력 있게 해줍니까? 바로 지혜는 지혜자의 죄를 질 수 밖에 없는 무능력함을 깨닫게 해줌과 동시에 죄를 사해주시는 예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케 하므로 지혜자를 능력 있게 해 줍니다. 다시 말하면, 참 지혜는 지혜자로 하여금 마음의 죄를 깨닫게 해 줄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 마음의 죄를 사해 주시고자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므로 죄에서 자유를 누리게 해줍니다. 여러분, 죄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지혜는 지혜자로 하여금 죄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므로 능력(힘)있게 해 줍니다. 지혜는 예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며, 또한 경험하게 해 주므로 지혜자를 능력 있게 해 줍니다. 한 마디로, 지혜가 우리에게 주는 힘은 바로 보혈의 힘입니다. 지혜는 예수 십자가의 흘리신 보혈로 우리를 힘 있게 합니다.

 

지혜는 지혜자로 하여금 능력 있게 합니다.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힘 있게 합니다. 어떻게 지혜가 우리로 하여금 힘 있게 합니까? 지혜는 이 세상에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므로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시고 죄를 범치 아니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 결과 지혜는 은혜의 힘으로 우리를 능력 있게 합니다. 그리고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은혜의 힘으로 능력 있게 하므로 우리 마음에 감사가 넘치게 합니다. 또한 지혜는 우리에게 분별력 있는 귀를 주므로 우리를 능력 있게 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음성과 세상의 음성을 분별하게 하므로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음성을 걸러내서 듣지 않게 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므로 우리를 능력 있게 합니다. 즉, 지혜는 말씀의 힘으로 우리는 능력 있게 합니다. 그리고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말씀의 힘으로 능력 있게 하므로 우리로 하여금 순종의 길을 걷게 합니다.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므로 우리를 능력 있게 합니다. 특히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죄를 깨닫게 해주므로 그 죄를 사해주실 수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지혜는 보혈의 힘으로 우리는 능력 있게 하므로 우리로 하여금 자유의 기쁨을 맛보게 합니다. 이러한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길 기원합니다.

 

“주 예수여 충만한 은혜 내 영혼에 부으소서 주 예수만 나의 힘 되고 내 만족함 됩니다” (찬송가 486장 후렴)

 

 

 

은혜의 힘, 말씀의 힘, 보혈의 힘을 사모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