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경주

 

 

 

[전도서 78-10, 14절 말씀 묵상]

 

 

이번 주 사랑하는 선배 목사님하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선배 목사님은 올해 48세이신데 앞으로 2년이 목사님에게는 참으로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0살 되기 전에 교회 기초가 견고히 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선배 목사님은 목회하시는 듯 보였습니다. 50대가 되어서도 목회가 안정이 되지 않으면 참으로 목회가 평탄하지 않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60대가 되어서도 목회에 시달리는 목사님들도 없지 않아 우리 주위에는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은퇴하신 목사님들도 접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곤 합니다.  과연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어떻게 목회를 감당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기도하게 되곤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희 교회 90대 어르신들, 80대, 70대, 60대, 50대 분들과 교제하면서 인생을 100마일 경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인생이 100세를 넘게 살 수도 있고 또한 그 전에 죽을 수도 있지만 한 100세를 산다고 가장에서 인생을 한 100마일 경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저는 한 40마일은 하나님의 은혜로 달려오게 되었습니다. 과연 남은 인생의 경주를 어떻게 달려야 할지 오늘 본문 말씀 중심으로 한 다섯 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인생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8절에서 솔로몬 왕은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경주를 하면서 끝까지 달릴 생각을 하지 않고 달린다면 그 경주는 어찌 되겠습니까?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달리되 경주를 시작할 때만 열심히 달려서는 아니 됩니다.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려는 자세로 달리되 시작보다 끝이 더욱더 아름다워야 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끝이 아름답지 못해 많은 성도님들에게 상처를 주는 소식을 접하곤 합니다. 목회를 삼, 사십 년 잘 하시다가도 은퇴할 때 은혜스럽게 은퇴하지 못하시는 목사님들에 대해 들으면서 참으로 목회 초년병이 저에게 오늘 말씀인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는 말씀이 귀한 교훈으로 마음에 다가옵니다. 이 교훈을 결코 우리 목회자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인생의 마지막 부분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또한 사람들이 보기에 아름답게 마치고자 힘쓰고 애쓸 것입니다.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되 우리의 끝이 시작보다 더 아름답고 예수님의 향기가 들어나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인생의 경주를 참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달려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8절에서 솔로몬 왕은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인생의 경주를 달리고자 힘쓰면서 우리는 참고 참아야 할 상황을 많이 접하게 됨을 경험합니다. 인내심이 요구되는 마라톤 인생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은 인생살이에 우리는 참고 견디며 끝까지 인생의 경주를 완주해야 합니다. 이 참는 마음 외에도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인생의 경주를 달려야 합니다. 시작은 겸손한 마음으로 인생의 경주를 달리다가 나중에 교만한 마음으로 인생의 경주를 달려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사울 왕은 처음엔 스스로 작게 여기며 겸손했지만, 나중에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했습니다. 솔로몬 왕도 처음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치리 하였지만, 그의 인생의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결코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며 신앙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두렵습니다. 처음 목회 시작할 때에는 세례 요한처럼 광야의 외치는 소리였지만, 나중엔 교만해져서 도시 한 복판에서(왕궁에서) 다윗 왕처럼 죄를 범하는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두려운 것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은 지키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경주를 완주하고자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은 끝까지 참고 견디며 또한 끝까지 겸손한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시작도 겸손 끝도 겸손이 되어야 합니다. 참는 마음으로 또한 겸손한 마음으로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십시다.   

 

       셋째로, 인생의 경주를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면서 달려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9절을 보면, 솔로몬 왕은 우리들에게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마라톤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마라톤을 달리는 달리기 선수가 시작부터 급한 마음으로 빨리 달리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일 조급한 마음으로 달렸다가는 결코 경주를 끝까지 완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생을 좀 저보다 더 많이 사신 분들은 잘 알 것입니다. 인생은 결코 조급한 마음으로 달려서 다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인생을 게으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게으름도 죄이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히 인생의 경주를 달려야 합니다. 그러나 조급하게 달려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또한 인생의 경주를 달리면서 우리는 노를 발하면서 달려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급하게 달릴 때 급한 마음에서 노를 발하기가 쉽습니다. 언젠가 양로원에 교회 권사님 만나러 갔다고 다른 두 할머님들이 소리 지르면서 싸우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화가 나셨길래, 욕하면서 싸우시는지 저는 놀랬습니다. 제 아이들에게 교육상 안 좋을 것 같아 부랴부랴 그 양로원에서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 얼마나 추한 모습입니까? 인생을 살만큼 사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신의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여 욕하며 싸우는 모습이 말입니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킵니다(잠15:18). 링컨 대통령의 말대로 이젠 저도 40대, 제 얼굴을 책임져야 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노하는 얼굴, 화내는 얼굴로 인생의 경주를 달려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분주한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좀 여유로운 마음으로, 침착하게, 분노를 절제하면서 인생의 경주를 달리고 싶습니다.

 

       넷째로, 인생의 경주를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달려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10절을 보면 솔로몬 왕은“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 찜이냐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10절). 즉, 지혜로운 자는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현재 경주를 달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마라톤 선수가 경주를 달리면서 ‘아 경주 시작은 내가 제일 빨리 뛰고 있었는데...’ 하면서 이미 달려온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지금 경주를 달리고 있다면 과연 그의 경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과거 향수에 젖어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살기에 삶 자체가 발전이 없습니다. 또한 자기 스스로를 개발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래도 내가 한 때는…’ 하면서 과거 잘나가던 때만 그리워한다면 현재 삶에 충성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자기의 가능성을 충분히 사용하여 경주를 달릴 수 없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앞을 바라보면서 달립니다. 뒤돌아보면서 달리는 마라톤 선수는 없습니다.  마라톤 선수는 골라인(목표지)을 바라보면서 달립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인생의 경주를 끝까지 달리기 위해선 우리는 뒤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과거의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은혜에 머물러 있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과거보다 현재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사43:18-19).  그러므로 우리는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위하여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면서 우리의 신앙의 경주를 달려야 합니다. 더 큰 은혜를 사모하며 달려야 합니다. 분명히 쌓아두신 은혜를 우리에게 풍성히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째로, 인생의 경주를 형통함과 곤고함이 병행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믿음으로 달려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14절을 보면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형통함과 곤고함을 병행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셨습니까?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앞으로 장차 될 일을 알면 더 좋을 것 같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람은 우리의 장래를 알면 분명히 하나님께 더욱더 범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장래를 알면 분명히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자기가 주인인양 마음대로 살려고 할 것입니다. 게을러 질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포기하면 될 때로 되라고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장래는 모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축구 게임도 이미 다 끝나 점수를 알고 보면 재미가 없습니다. 아예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좀 모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장래를 몰라야 합니다. 우리의 장래가 형통할지, 곤고할지 알 필요가 없습니다. 형통하면 기뻐하며 곤고하면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무조건 우리의 인생에 형통함만 있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교만해 집니다. 또한 너무나 우리의 인생에 곤고함만 있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범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제일 잘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경주에 평탄한 길과 언덕길이나 굴곡의 길을 병행하게 하셨습니다. 두 종류의 코스는 마라톤에 있어 필요하듯이, 우리 인생의 경주에도 필요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감사, 찬양, 기도하면서 주님만 바라보며 의지하며 이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의 경주하면 우리는 디모데후서 4장 7-8절과 사도행전 20장 24절 말씀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우리 모두 사도 바울처럼 달려갈 길을 잘 마치십시다. 우리!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십시다. 우리의 시작보다 우리의 끝이 더욱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신앙의 경주를 달리십시다.  인내심을 가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끝까지 달리십시다. 급한 마음과 분노함으로 경주를 하지 마십시다. 어떠한 곤고한 일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지라도, 모든 일을 합력하여 형통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십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50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