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자의 섬김

 

 

 

[전도서 78-10절 말씀 묵상]

 

 

저는 오늘 오전에 식사를 한 후, 교회 한 두 분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 두 분께서 반찬을 만들어 주셨기에 저는 먹어 본 후 감사 전화를 드린 것입니다. 그 두 분 중 한 분은 제가 감사 전화를 드렸더니, 우리 교회가 좋다고 하시면서 죽을 때까지 우리 교회 나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를 오래 다니면서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드셨다고 말씀하시는 이 분의 말씀을 듣고 저는 참 감사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우리 교회에 나오시겠다는 이 분의 말씀…. 교회란 공동체 안에서 서로 섬기고 또한 주님을 함께 섬기는 것은 참 아름답습니다. 이러한 섬김의 아름다움을 우리가 서로의 삶 속에서 엿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서 작은 예수를 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은 예수들이 함께 하는 모임이 참된 예수님의 공동체라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러한 섬김의 공동체가 되길 기원합니다. 그러면서 던지는 질문은 과연 나(우리)는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입니다.

 

우리는 전도서 7장을 묵상하기 시작하면서 7장 1-4절에서는 ‘지혜자의 마음’에 대해서, 그리고 7장 5-7절에서는 ‘지혜자의 책망’에 대해서 교훈을 받았었습니다. 그러한 가운에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8-10절에서는 ‘지혜자의 섬김’에 대해서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8-10절 말씀 중심으로 지혜자는 어떻게 주님의 일을 하는지 한 3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지혜자는 끝까지 일을 하여 결실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8절 상반 절을 보십시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 솔로몬 왕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말하면서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고 말하였습니다(3:1-2). 그리고 그는 우리 모든 사람의 결국인 죽음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7:2). 성경은 우리 모든 사람의 이 세상에서의 끝은 죽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일의 시작보다 끝이 낫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8절).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일의 끝’이란 것은 사람이 그 하는 일에 있어서 결심함을 말합니다. 그것이 ‘시작보다 낫다’는 것은 일을 시작만 하고 마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박윤선).

 

우리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돌아보면 우리가 시작만 하고 마는 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는 책을 펴고 읽기를 시작은 하지만 대부분 끝까지 읽지를 못하고 중단한 후, 그 다음 날이나 다른 날들로 미룰 때가 많습니다. 책 읽는 것 외에도 시작한 일을 끝을 내지 못하고 중단한 후, 미루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일을 하면서도 우리는 ‘일은 시작이 반이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로하면서 일을 마무리 못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시작만 하지 말고 끝까지를 일을 마무리 하여 결실을 맺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도서 3장 1-2절과 7장 2절, 그리고 오늘 본문 7장 8절 상반 절을 종합에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리했을 때 지금 솔로몬 왕이 목적이 이룰 때와 죽을 때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하면서 우리가 죽음 앞에서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목적을 이루므로 말미암아 맺은 열매가 무엇인가를 저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과연 나는 여태껏 주님의 일을 하면서 무슨 열매를 맺었는가?,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주님의 일을 통하여 어떠한 열매를 기대하고 있는가?, 내가 죽어서 주님 앞에서 서서 회계할 때 과연 나는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열매가 있는가?’ 등등. “열매 없는 무화과가 되어서는 아니 될 텐데...” 라는 생각과 더불어 저는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또 하나의 열매를 기대하실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인생은 끝까지 달려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작이 아무리 창대했었을 지라도 끝이 초라하면 안 될 것입니다. 비록 시작은 미약했었을 지라도 끝이 창대하면 아름다운 것입니다. 물론 끝이 꼭 창대해야 한다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일을 하면서 신앙의 경주를 함에 있어서 우리는 결코 도중에 하차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야 합니다. 달리되 우리는 끝을 생각하며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칭찬할 만한 결실이 우리의 삶에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지혜자는 참는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8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 …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지난 주에 만난 선배 목사님과 이런 저런 대화를 진솔하게 많이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 분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저에게 들려주셨던 음성은 바로 ‘인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겸손함과 더불어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권면의 말씀은 제 마음에 책망도 됩니다. 그 이유는 제 안에 조급함을 보기 때문입니다. 성격도 급한 면도 제게 있지만,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인내하지 못하고 너무나 조급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급하게 생각하다 보면 언행의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보다 더 큰 위험은 하나님의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르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보다 앞서 가므로 그르치는 것입니다. 결국 제가 제 자신을 보면 왜 조급한가 생각해 볼 때 그 원인은 ‘교만한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8절). 교만한 마음에는 참는 마음(인내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교만한 마음에는 조급함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언행뿐만 아니라, 생각의 영역에서도 조급하게 주님 보다 앞서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나 저처럼 조급한 분들은 잠언 기자는 잠언 21장 5절과 29장 20절에서 하는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함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21:5),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잠29:20). 성경은 조급한 사람에게는 바랄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조급한 사람은 궁핍함에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전7:9). 주님의 일을 끝까지 함에 있어서 우리는 여러 힘든 일들도 접할 수 있지만, 또한 화나는 일들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참지 못하고 미련한 자처럼 급한 마음으로 분노를 내게 되면 주님의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9:11). 오히려 우리는 화나는 일이 있을 때 오래 참음으로 우리를 화나게 한 사람을 설득시켜야 합니다. 성경 잠언 25장 15절을 보십시오: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분노할 때 오래 참는 것, 그리고 부드러운 혀로 상대방에게 말을 하는 것, 그러므로 그 상대방의 마음을 설득시키므로 함께 협력하여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우리는 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끝까지 신실하게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 야고보서 5장 10-11절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우리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인내하며 기다릴 때, 주님께서 주시는 좋은 결말을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지혜자는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현실에 충실합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10절을 보십시오: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다보면 어렵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끝까지 완수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끝까지 신실하게 주님의 일을 감당하여 열매를 맺어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힘든 일을 접하고 또 접할 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마음이 교만해지면 그 힘든 일을 중단할 때가 있습니다. 끝까지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합니다. 시작은 거창 했을지 몰라도 완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교만할 때 인내심을 잃고 조급함 속에서 속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역경 속에서 분노할 때도 있습니다. 상황에 분노하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분노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분노합니다. 이러한 자를 가리켜 오늘 성경은 우매자, 즉 미련한 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9절하). 이러한 미련한 자는 현재의 난관과 역경보다 과거의 형통했을 때를 그리워합니다(10절). 마치 일을 시작할 때 좋았었는데, 일을 계속 하다 보니 이런 저런 어려움들을 접할 때 과거의 일을 시작할 좋았을 때를 그리워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미련한 자의 생각입니다. 그러다보니 미련한 자는 현실을 직시하고 일을 끝내고자 하는 사명감에 이끌려 현재의 충실하기보다 자꾸만 달콤한 환상 속에서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현재의 삶에 불충실합니다. 그러기에 미련한 자는 자꾸만 현실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그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드립니다. 지혜로운 자는 현실이 어떠하던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그는 현실에 충실합니다. 그는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과거에 머물러 있기보다, 현재의 난관과 역경 속에서 오히려 과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므로 현재 그 은혜를 기념합니다. 기념하되 그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현재 그가 당면한 난관과 역경에서도 자기를 건져주실 줄 믿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갑니다. 그리할 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자는 미래의 소망을 두고 앞으로 전진해 나아갑니다. 그는 결코 과거 지향적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빌리자면 지혜로운 자는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자입니다. 신앙의 경주로 말하자면 골라인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자가 바로 지혜로운 자입니다. 골라인을 통과하면 상급이 주어지는 것을 알기에 그 상급을 바라보고 달리는 자가 바로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 왕은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라고 묻지 말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10절). 아니, 권면이라기보다 책망입니다. 우리는 이 지혜자의 책망을 겸손히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요즘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깨달음 중 하나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면서 지혜가 부족함을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이러한 자신의 부족한 지혜를 보게 될 때, 한 가지 고백은 참 오늘까지 오게 된 것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오늘 이 시간까지 우리 교회를 섬길 수 있었다고 고백하면서 저는 저의 부족한 지혜로 인하여 양 떼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 제목이 생겼습니다. 그 기도 제목이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5절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전도서 말씀을 이렇게 매주 수요기도회 때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전도서를 통하여 마음의 지혜를 가르쳐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8-10절 말씀 중심으로 지혜자의 섬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3가지로 저와 그리고 여러분에게 교훈을 주셨습니다: (1)첫째로, 지혜자는 끝까지 일을 하여 결실을 맺습니다. (2)둘째로 지혜자는 참는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3) 마지막 셋째로, 지혜자는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현실에 충실합니다. 이러한 지혜롭게 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끝까지 인내하며 그리고 즐기면서 완수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