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

 

 

 

[전도서 67-12절 말씀 묵상]

 

 

어제 화요일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저희 교회 집사님 한분을 뵈러 갔었습니다. 폐가 안 좋으신지 지난 주 금요일 입원하셔서 병원 측에선 계속 검사를 하시고 원인을 파악하여 치료하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어제 아침에 들렸을 때 집사님은 85평생 살아오시면서 결론은 모든 것이 허위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솔로몬 왕의 전도서 말씀이 생각나서 그 분에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일평생 살아오신 한 어른신의 결론을 들으면서 저는 과연 이러한 헛되고 헛된 일평생을 어떻게 살아드려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6장 12절을 보면 전도자 솔로몬 왕은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이란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림자’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저는 ‘그림자’ 하면 첫째로 생각나는 것은 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저는 ‘그림자’하면 생각나는 것은 그림자는 생겼다가 오래 머물지 않고 순식간에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이 일평생을 그림자 같이 보낸다고 말한 그 의미는 한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첫째로,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이란 말씀은 신속히 보내는 일평생을 뜻합니다.

 

성경 욥기 14장 1-2절을 보십시오:“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이 욥의 말처럼 이 세상에서의 우리 사람의 삶은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되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합니다. 이 사실은 시편 90편 10절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기자 모세는 이 세상의 자랑이 수고와 슬픔뿐인 칠·팔십사는 인생, 신속히 가니, 날아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둘째로,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이란 헛된 생명의 모든 날들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이란 이 세상에서의 짧고 헛된(의미가 없는) 날들을 가리킵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6장 12절을 보십시오: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 우리가 이미 묵상한 전도서 말씀들만 뒤 돌아 보아도 솔로몬 왕은 계속 반복적으로 ‘헛되다’(1:2; 2:15, 19, 21, 23; 3:19; 4:7, 8; 5:10),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다’(1:14, 17; 2:11, 17, 26; 4:4, 16), ‘무엇이 유익한고’, ‘무익한 것이로다’(1:3; 2:11; 4:8; 5:11, 16)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속히 가는 그림자 같은 일평생, 아무 유익하지 못한 무익한 일을 하면서 보내는 것, 헛된 생명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들은 아무리 이 세상이 짧고 신속히 가는 일평생일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유익하고 의미 있는 일평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죄인을 가리킵니다(6:1-6). 그 죄인이란, 낙태된 자보다 못한 자를 가리킵니다. 낙태된 자보다 못한 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 재물, 부요, 존귀 및 자녀의 복과 장수의 복을 받았을지라도 그 모든 것을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몸이 매장도 되지 못하는 자입니다. 이러한 죄인은 일생은 마치 그림자와 같아서 짧고 의미가 없는 헛된 날들을 이 세상에서 보냅니다.

 

그러면 그림자 같은 일평생, 신속히 가는 일평생, 왜 헛된 것입니까? 왜 무의미한 것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첫째로, 그림자 같은 일평생이 헛되고 무의미한 이유는 만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묵상한 전도서 1장 8절을 보면 솔로몬 왕은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눈이나 귀가 보고 또한 들어도 족함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사람의 욕심은 만족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인간의 욕심에는 만족함이 없기에 이 세상이 헛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오늘 본문 전도서 6장 7절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하느니라.”여기서 솔로몬 왕이 가리키는 ‘사람’은 ‘그 사람’으로서 3절에 진술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즉, 그 사람이란 영혼에 만족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낙태된 자보다 불행한 자로 간주된 자입니다(박윤선). 이 사람은 자기 입을 위하여 아무리 수고를 하여도 자기의 식욕이 차지 않습니다. 즉, 그는 자기의 영혼에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왜 이 사람은 자기의 영혼에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데 그는 하나님을 떠나 식욕을 채우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혼에 만족함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낙을 누리지 못하고 수고만 하므로 결국 헛되고 무의미한 삶을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2)둘째로, 그림자 같은 일평생이 헛되고 무의미한 이유는 구원의 길을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6장 8절을 보십시오: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뇨 인생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가난한 자는 무엇이 유익한고.” 여기서 솔로몬 왕이 말하고 있는 것은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은 이 세상일에 있어서 지혜 있는 자나 미련한 자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박윤선). 아무리 이 세상에서 일들을 지혜 있게 처리하는 겸손한 자라 할지라도 핵심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영혼에 구원을 받지 못 한자로서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묵상한 전도서 2장 12-17절을 보면 솔로몬 왕은 지혜자와 우매자에 대해서 말하였는데, 거기서도 핵심적인 교훈은 바로 이것 이였습니다: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16-17절). 지혜자나 미련한 자나 다 가야할 길은 죽음, 문제는 죽음 후입니다. 죽은 후에 그 영혼이 영생을 얻느냐 아니면 영원히 멸망을 당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이 땅에서 지혜로 와서 일을 겸손히 잘 처리한다 할지라도 그 영혼이 구원의 길을 걷지 않고 있다면 죽은 후에 그 영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속히 가는 그림자 같은 일평생,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구원의 길을 걷지 않으면 의미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살아드려야 그림자 같은 일평생 하나님 보시기에 유익하고 의미 있는 삶이 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면, 그림자 같은 일평생, 하나님 보시기에 유익하고 의미 있는 삶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림자 같은 일평생, 하나님 보시기에 유익하고 의미 있는 삶이란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유익과 의미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의 길을 걸으면서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자족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림자 같은 일평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해주실 수 있으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영혼은 영원을 사모하기 때문에 영원한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풍부함과 궁핍함 가운데서, 즉 “어떠한 형편에든지” 우리는 자족하기를 배워야 합니다(빌4:11).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님 한분으로만 만족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한분으로 만족하면서 그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영원한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림자 같은 일평생을 하나님 보시기에 유익하고 의미 있는 삶입니다.

 

둘째로, 그림자 같은 일평생, 하나님 보시기에 유익하고 의미 있는 삶이란 주님의 일을 겸손히 지혜 있게 처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6장 8절을 보십시오: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뇨 인생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가난한 자는 무엇이 유익한고.”이 8절 말씀은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반대로 생각하여 우리 영혼의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적용한다면 우리가 그림자 같은 일평생, 하나님 보시기에 유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선 주님의 일을 겸손히 지혜롭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새벽기도회 때 저는 사무엘상 15장 17절 말씀 중심으로 스스로 작게 여겼던 사울이 결국 나중엔 교만해 져서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비록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범죄 하였을지라도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높임을 받고자 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에게 스스로 작게 여겼던 과거와 지금 현재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리할 때 성령님께서는 제 자신의 죄를 슬퍼하게 하시 사, 자백하며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저도 모르게 슬퍼졌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제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게 하셨으며,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를 베풀어 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주님께서는 제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겸손히 섬기길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섬기게 주님의 겸손함을 본받아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제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섬기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우리는 겸손히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한 겸손하고 지혜로 섬기는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유익한 삶이요 의미 있는 삶입니다.

 

셋째로, 그림자 같은 일평생, 하나님 보시기에 유익하고 의미 있는 삶이란 현재의 좋은 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6장 9절을 보십시오: “눈으로 보는 것이 심령의 공상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이 구절을 어느 학자는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다른 좋은 것을 생각함보다는 현재의 좋은 것을 즐기는 것이 낫다.” 즉, 지금 솔로몬 왕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를 즐기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박윤선). 솔로몬 왕이 이 세상에서 본 폐단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물질의 복, 자녀의 복, 장수의 복 등을 다 받았을지라도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1-6절).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모든 영적인 복을 누리고 계시므로 여러분의 심령에 낙이 족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로 베풀어 주신 복들을 현재의 삶 속에서 즐겨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영적인 복 중, 우리를 양자 삼으셨다는 복을 생각할 때 우리는 현재에 이 축복을 겸손히 지혜롭게 누리므로 우리 영혼이 기쁨을 맛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배워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면서 우리가 그림자 같은 일평생을 살아갈 때, 그러한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유익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넷째로, 그림자 같은 일평생, 하나님 보시기에 유익하고 의미 있는 삶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진리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6장 10절을 보십시오: “이미 있는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 이름이 칭한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이 말씀은, 인간의 위치와 정도가 하나님 앞에서 벌써부터 확정되어 있는 것인 만큼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한 걸음씩 현실 생활에서 진리를 순종할 뿐이라는 것입니다(박윤선). 헛되고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다투면서 자기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합니다. 그는 자기의 존재와 분수를 결정하여 주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나 될 듯이 덤빕니다(박윤선). 이것은 헛됩니다(11절).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림자 같은 일평생이 모두 다 헛됩니다(12절)(박윤선).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유익하고 의미 있는 삶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서 책의 결론 말씀입니다. 성경 전도서 12장 13절은 전도서 책을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저는 오늘 본문 전도서 6장 7-12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러한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졌습니다: ‘과연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드려야 하는가?’ 그림자 같이 신속히 가는 세월, 하나님 보시기에 유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드려야 하는데…. 저는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주님의 일을 겸손히 지혜롭게 행하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또한 현재의 주어진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신 모든 영적인 축복들을 세워가면서 즐기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지혜로 솔로몬 왕이 전도서에서 결론적으로 이미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러한 헌신 기도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있길 기원합니다.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주님의 일을 겸손히 지혜롭게 감당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오늘 하루도 즐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