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 (2)

 

 

[전도서 31-14절 말씀 묵상]

 

 

오는 금요일 저희 교회 최 집사님의 아드님의 추모예배가 있습니다. 저는 55세의 젊은 나이게 갑자기 사망한 집사님의 아드님의 추모 예배를 준비하면서 지난 주 수요일에 묵상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1)’이 생각났습니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도 있는 우리의 인생, 언제가 우리 모두 죽음을 맞이해야 할 때가 올 터인데, 이미 고인이 된 최 집사님의 아드님을 생각할 때 죽을 때에도 주님의 목적, 주님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어 나아가시므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실 줄 믿고 기도하며 기대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 수요기도회 때 본몬 전도서 3장 1-14절 말씀 중심으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1)’이란 제목 아래 하나님께서 어떻게 때를 따라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시는지 그 첫 번째 말씀을 받았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모든 목적을 이루시므로 때를 따라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1절). 여기서 ‘때’에 대하여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 전도서 3장 2절부터 8절까지 여러 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여러 때를 한 5개로 나눠서 묵상하면서 그 모든 때를 따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어 나아가시므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신다고 말하였습니다: (1)날 때와 죽을 때(2절), (2)징계하실 때와 회복하실 때(3, 5-6, 7절 상반절), (3)울 때와 웃을 때(4절), (4) 잠잠할 때와 말할 때(7절 하반 절), (5)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때 가운데서도 자신의 목적을 이뤄 나아가시므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태어날 때나 죽을 때나, 헐 때나 세울 때나, 울 때나 웃을 때나, 잠잠할 때나 말할 때나, 사랑할 때나 미워할 때나 등등 범사에 기한이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한에서도 그의 주권적인 뜻을 이뤄 나아가시므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를 하나님께 찬양을 들리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은 이어서 본문 전도서 3장 1-14절 말씀 중심으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2)’란 제목 아래 마지막 두 번째 어떻게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시는지 묵상하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므로 때를 따라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3장 11절 상반 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 헛되고 헛된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솔로몬 왕처럼 던져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내가 이 땅에서 일하면서 수고하는 것에 대한 이익이 무엇인가?’입니다. 솔로몬 왕은 이 질문을 오늘 본문 전에 이미 두 번이나 던졌습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1: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2:22). 그런데 이렇게 오늘 본문 전도서 3장 9절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이렇게 던지고 있습니다: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이렇게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진 후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3:10). 그는 이 땅에서의 우리가 일하면서 수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일하면서 수고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분명히 솔로몬 왕은 “일평생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고 말하면서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2:23)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헛된 일 또는 헛된 수고를 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저는 그 대답을 오늘 본문 전도서 3장 11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살아가면서 우리로 하여금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시는 이유는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영원한 것을 추구하게 만드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헛된 일이나 헛된 수고를 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영원한 것을 추구하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미 있는 일과 수고를 하길 원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의미 있는 수고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3장 12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선을 행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남들에게 유익한 일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박윤선). 그러면 남들에게 유익한 일이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된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남들을 유익하게 함에 있어서도 영원한 관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 즉 남들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을 우리는 영원한 관점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관점으로 남들을 유익하게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남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들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영원하신 주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즉,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들 또한 우리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므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만큼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고 마시면서 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수고하므로 우리는 낙을 누려야 합니다(전3:13). 다시 말하면,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목적, 즉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드리므로 말미암아 낙을 누려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the gift of God)입니다. 과연 지금 우리는 이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누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수고하되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전도서 3장 14절을 보십시오: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우리는 영원히 있을 것인 하나님의 행하신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동참하되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행하시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실 것입니다.

 

저는 이번 주 월요일에 차 안에 가지고 다니면서 가끔 들고 밖에 가지고 나아가 읽는 작은 신약 성경책을 펴서 로마서를 읽었습니다. 읽다가 저의 시선은 로마서 13장 11절에 좀 멈추게 되었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때는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다는 이 하나님의 말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마지막 때에 우리의 구원이 가까이 왔음을 여러분은 느끼면서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 구원을 사모하며 갈망하고 계십니까?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 때, 우리의 구원을 통하여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영원을 사모하는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영생복락을 누리면서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지고 오늘도 이 땅에 살아가면서 때에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수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영원한 관점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길 기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더 보길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