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들과 성도들의 관계

 

 

 

[사도행전 28장 11-15절 말씀 묵상]

 

 

지난 주 수요일(10월1일), 고국 한국 뉴스를 접하신 분들은 국민 탤런트라는 최진 실씨의 자살 소식을 듣고 다들 놀라셨을 것입니다. 20년 동안 톱 탤런트로서 정상을 지켰 다는 고인의 죽음 소식은 그녀를 TV나 신문 등을 통해서 알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겐 충 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한 달 만에 또 다른 유명 연예인의 자살 로 인하여 한국 연예계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충격 속에 잠긴 것 같습니다. 아니라 다를까 염려되었던 모방 자살이 3일 동안 한국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고 최진실을 모방해 압박붕 대로 목을 맨 자살 사건이 전라남도에 살고 있었던 박모(55, 여)씨와 강원 강릉시에서 살고 있었던 이모(30, 여)씨가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 갔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한나랑 당 한 의원은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제정 안’을 국회 에 제출했다고 합니다. 이 제정 안은 국가가 국민의 자살시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 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라고 합니다. 정취 권에서는 자살 예방법안 뿐만 아니라 ‘최진실법’ 도입을 거론하며 첨예한 공방을 펼쳤다고 합니다. 이 법은 고 최진실씨가 인터 넷 악플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향후 근거 없는 모욕과 악플을 처벌 하자 는 내용이라고 합니다(인터넷).

 

이러한 고국 소식들을 들으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한두 가지를 좀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살”을 우리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과 요 즘 인터넷 상에서 볼 수 있는 악플이란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할 때 오래 전 어떤 형제가 저에게 와서 자신의 사촌 형이 자살한 것을 이야기 하면서 ‘목사 님, 자살하면 천국가요, 아니면 지옥가요?’라는 식이 질문을 한 기억이 납니다. 저희 노회 한 어르신 목사님은 우리 젊은 목회자들에게 교회 안에 자살한 성도가 있으면 목회를 실패 한 것이라고 한두 번 정도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번 9월 노회 때에도 ‘자살하면 지옥 간다’라고 강조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때 그 형제에게 자살 하면 천국 가냐 지옥 가냐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답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 그러한 질문을 저에게 한다면 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자기 목숨을 스스로 앗아 가는 행동은 죄’라는 것입니 다.   생사화복은 주님이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고 그의 때에 우 리를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스스로 앗아가 서는 아니 됩니다. 자살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 분에게 주신 생명은 고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함부로 해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자살” 외에 또 한 가지 생각해 보게 된 것은 “악플”이란 것이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여 요즘은 컴퓨터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죄악 된 일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수 없이 많습니 다. 특히 고 최진실씨가 죽었어도 인터넷 상에는 입에 담지 못할 글들이 많이 올라 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악한 글들을 올리고 있는지 저는 아예 보고 싶지도 않습 니다. 뉴스를 통해 이 한 연예인의 자살에는 이러한 악플들의 책임도 있다는 기사들을 보면서 저는 한 세 가지 “악”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악플, 악성루머, 악한 마음. 우리가 이미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사단의 전략 중 하나가 바로 ‘악성 루머’를 퍼트리는 것이라고 배웠 습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악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어서 소문을 내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러한 악한 소문(악성루머)을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많은 사람들에게 순식 간에 퍼트릴 수가 있습니다. 그 방법이 바로 인터넷에다가 악플을 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러한 악성 루머를 악플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에 순식간에 전하는 사람들의 악한 마음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악한 마음 또한 악한 의도로 악성 루머(소문)를 퍼트리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도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싸우는 교회, 그래서 법정까지 가는 교회들을 보면 조금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근거 없는 소문으로 인하여 교회 가 뒤숭숭하다가 결국은 이런 저런 일들로 법정까지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중심에는 목회 자가 있는 것을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목회자에 대하여 이런 저런 말을 하던 것이 부풀어져서 별의 별 얘기가 나오면서 그러한 악성루머에 시달리다가 사모님까지 병이 들고 그러다가 결국 대형교회에서 담임 목사님이 사임하는 경우도 기독교 뉴스에서 접한 적 도 기억이 납니다. 하기야 부교역자들도 자기들의 담임 목사님에 대해 이상한 소문을 내고 교회를 떠나는 것을 근래에 보고 참으로 이젠 교회 안에서도 서로 믿고 신뢰하기가 이렇게 힘들 정도로 되어버렸는가 하는 회의도 듭니다. 교회 안에서 교역자들끼리도 이렇게 서로 상처를 준다면 과연 교역자들과 성도님들과의 관계에서는 어느 정도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 게 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저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28장11-15절을 묵상하다가 과연 목 회자들과 성도님들 간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피난처’란 뜻을 가진 멜리데란 섬에서 바울과 그의 일행들이 3개월을 지낸 후 알렉산드리아란 배를 타고 그곳을 떠나 로마를 향하는 중 “보디올”이란 곳에 이르 러 바울이 한 7일 동안 그곳 형제들과 교제를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후 바울 압비오 저자와 삼관이란 곳에서 기독신자들을 만나 교제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연 교역자들과 성도들의 관계는 어때야 하는지를 한두 가지로 생각 해 보았습니다.

 

먼저 성도님들은 교역자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할 때 오늘 본문에서 주는 교훈은 성도님들은 교역자들의 마음을 위로해야 한다고 가르 쳐 주고 있습니다.

 

과연 성도님들이 교역자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습니까? 여러 방법이 있을 것입 니다.   그 중에 저는 개인적으로 성도님들이 교역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믿 음의 진보를 위해서 힘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므로 열심히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공부하며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교역자들은 큰 위로를 받습니다. 이 외에도 성도님들이 교역 자들을 위로하는 방법이 교역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기, 교역자들의 말씀 순종하기, 교회를 열심히 섬기기, 등등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서 성도님들이 교역자들을 어 떻게 위로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가 하면 교역자들을 진심으로 환영(영접)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8장 14절을 보면 바울과 그의 동역 자(들)는 이탈리아 남 부의 주요 항구 인 보디올이란 곳에 배가 한 7일간 머물러 있었을 때 그곳에 거하는 기독 신자들을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7일 동안 그들과 함께 유숙하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 했습니다(유상섭). 이들은 바울과 그의 동역 자(들)를 집으로 초대하고 대접하며 그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안식처를 제공하였습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 자(들)는 위로를 받 았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러 로마로 향하여 가는 도중에 보디올이란 곳에 사는 기독신자 들이 마음과 집을 열어 바울과 그의 동역 자(들)를 초청하여 집에 유숙하게 하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대접했을 때 바울은 분명히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을 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과연 여러분은 교역자들에게 여러분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계십니까?

 

게리 채프먼(Gary Chapman) 박사님이 쓴 “사랑의 언어 5가지”(The Five Love Language)란 책을 보면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의 욕구는 사랑의 언어를 통해 채워짐 을 받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5가지 사랑의 언어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인터넷):  인정 에 주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육체적인 접촉, 봉사. 사랑의 언어가 틀릴 경우 서로 사 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흡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이렇게 보디올이란 곳에서 기독 신자들에게 사랑의 영접과 대접을 받은 후 보 디올(로마에서 약 122마일)에서 한 80마일 떨어진 “압비오”란 곳(로마에서 한 40마일)과 “압비오”를 지나서 여행자들을 접대하는 여관이 많은 지방인 “삼관”(박윤선)에 도착했습니 다(15절). 그 때에 바울은 로마에서 부터 자기를 만나러 온 기독신자들로 인하여 마음에 위 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이들은 약 40마일이나 먼 곳까지 바울과 그의 동역 자(들)를 만나 러 왔습니다. 이들을 만났을 때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한 담대한 마음을 얻었습니다 (15절).

 

그러면 교역자들은 성도님들과의 관계에서 어때야 합니까? 한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 첫째로, 교역자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성도님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8장 15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과 누가(“우리”)는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온 형제들을 보고 “하나님께 사례”, 즉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성경 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큰 풍랑으로 인하여 살 소망이 없는 가운데서도 배 안아서 하나님 께 감사한 후 떡을 떼었던 바울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선장과 선주 의 말을 듣고 행선하였던 로마 백부장 율리오로 인하여 바울뿐만 아니라 모든 275명의 사 람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었을 때도 바울은 불평,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떡을 떼어 먹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 다른 사람들도 다 안심 하고 떡을 받아먹었습니다(27:35-36).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우리 교역자들은 불순종하는 성도님들이 있다 할지라도 불평하고 원망하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또한 성 도님들이 교역자들을 위로하던 안하던 교역자들은 바울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았으 므로(받으므로) 모든 성도님들 앞에서 항상 감사하는 태도를 보여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목사님들과 전도사님에게만 적용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모님들에게도 적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교역자 부부들은 모든 성도님들 앞에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교역자들과 성도님들과의 만남에는 ‘하나님께 감사’가 있어야 합 니다.

 

  • 둘째로, 교역자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성도님들로 인하여 담대한 마음 을 얻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역자들은 자신들을 사랑으로 영접하며 위로해 주는 성도님들을 만 남으로 담력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박윤선). 만일 교역자들이 성도님들을 만날 때마다 힘을 얻고 용기를 얻기보다 그 성도님들로 인하여 교역자들이 힘 빠지며 낙심하게 된다면 이러한 만남은 서로에게 유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약 3년 전에 로마에 있는 기 독 신자들에게 보낸 서신(편지)에서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로마서 1장 11-12절을 보십시오: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서로의 반가운 만남 가운데 서 로의 믿음으로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고 싶다고 편지를 썼었던 사도 바울은 약 40마일이 되는 먼 거리 까지 바울을 만나러 온 로마 기독 신자들로 인하여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러한 힘과 용기를 성도님들에게 얻기 위해선 교역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 며 또한 성도님들에게 묵상할 말씀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서로의 믿음으로 인하여 피차 위로와 힘 과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는 교역자들과 성도님들과의 관 계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과 보디올과 로마의 기독신자들과의 관계가 되길 원합니다. 성도님들은 교역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교역자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성도님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힘과 용기(담대함)를 얻는 그러한 아름다운 관계로 세워지므로 말미암아 다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교회를 세워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 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에게 감사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위로와 담대함을 얻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