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원하는 것

 

 

 

[사도행전 26장 24-32절 말씀 묵상]

 

 

여러분은 오늘 주일 아침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교회 나오시기 전 거울을 보셨습 니까? 독일의 어느 백화점이 엘리베이터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고객들의 불평 때문에 최 신형 엘리베이터로 교체를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예산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 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여자 청소원이 엘리베이터 안에 아주 크고 좋은 거울을 설치하면 불 평이 없어질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백화점은 곧바로 커다란 거울을 엘리베이터 안에 설 치했다. 놀랍게도 고객들의 불평이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보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느리다는 사실을 잊게 된 것입니 다(인터넷). 여러분은 무엇에 관심이 많으십니까?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 저것 을 시도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왠지 그렇게 살기는 시간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게 느껴집니다. 즉, 신속히 흘러가는 세월, 우리는 한 가지 일에 관 심을 가지고 그 일을 이루고자 힘쓰고 애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가수 조용필의 “일 편단심 민들레”가 생각납니다. 왜 민들레에 일편단심이 붙었는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색 깔보다 뿌리 때문이라 합니다. 즉, 뿌리가 곧게 내리 뻗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옆으로 뻗 은 실뿌리는 아주 빈약해 있으나 마나 하지만 중심뿌리 하나는 굵고 곧게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일에 흔들리지 않고 한 가지에만 절개를 지킨다는 의미로 일편단심 민들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잡초처럼 자라 꽃을 피우는 민들레지만 일편단심 정절을 지키는 것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쉽게 변하는 우리네 인간보다 훨씬 나은 모습은 아닐까?”(인터 넷). 적어도 정절을 지킨다는 일편단심 민들레, 다른 일에 흔들리지 않고 한 가지에만 절 개를 지킨다는 민들레, 그러나 왠지 우리 사람들은 우리 자신의 이익에 따라 쉽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한 우물을 파야 합니다. 한 가지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 다윗이 시편 27편4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것 한가지 일”이 있어야 합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원하는 한 가지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오늘 본문 사도행전 26장24-32절 중 특히 29절 말씀을 보면 바울은 그의 “변 명”(24절)을 들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하나님께 원하는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원하였던 것은 바로 “결박한 것 외에는” 다 자기와 같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이었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 이다 하니라.”   바울은 자신의 간증을 들은 베스도 총독과 그의 여동생 베니게, 그리고 아 그립바 왕과 고위 관리들 모두 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하나님께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모두 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되기를 하나님 께 간절히 원하는 마음을 표현한 이유는 바울의 간증을 이미 들었던 베스도 총독이나 아그 립바 왕 등 다 바울의 복음에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총독 베스 도의 반응을 보십시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 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24절). 총독 베스도의 반응은 바울이 변명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교리(신앙)가 미친 사상이라고 외쳤습니다(박윤선). 베스도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로마인과 헬라인의 합리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이를 허무맹랑한 소리로 간주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처형한 예수가 살아났다는 것,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 바울에게 나타나 말했다는 것을,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 뻔합니다(유상섭). 이 때 바울 은 베스도 총독에게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을 하나이다”(25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는 베스도 총독에게 바울은 자기가 미친 것이 아 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 즉 “진리와 신중함의 말들을 하나이다”라고 답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베스도 총독이 자기의 변명을 배척하지 말고 신중한 생각으로 받아 줄 것 을 촉구한 것입니다(유상섭). 그리고 나서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시선을 돌려 담대히 말 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되어진 일을 왕도 알고 있음을 승인할 것은 권면하였습니다(26 절).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선지자의 예언 성취로서 아그립바 왕도 모른 다고 할 수 없는 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27절). 그 이유는 아그립바 왕의 조부인 대 헤롯 왕 때부터 큰 화제 거리가 되어 온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건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박윤선).  그러기에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 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27절)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이 때 아그립바 왕 의 반응은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였습니다(28절). 베스도 총독처럼 아그립바 왕 또한 바울의 복음 증거에 냉담하게 반응하였습니다. 아그립 바 왕도 바울이 전파한 복음에 믿음으로 반응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 둘 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경홀히 여겼습니다(박윤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도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경홀히 여기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도 불신자들이 안디옥 교회에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행 11:26)이라는 별명을 붙여 조롱한 것처럼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스도인”이란 명칭은 존귀 한 명칭이라기보다 조롱이 썩힌 명칭이 되었습니다. 그 한 예로 “그리스도인”이란 참으로 영광스러운 명칭인데 요즘은 그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그리스도인” 이란 명칭이 “개독”이 라고 불리며 조롱거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현대 기독교 이미지 평가보고서인 “나쁜 그리스 도인”(원제:Unchristian)이란 책이 습니다. 이 책에는 그리스도인이지만 그렇게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 속에 기독교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원인에 대해 평가하고 있습니다. '미국 비 그리스도인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인들의 이미지 조사'라는 논쟁적 연구 보고서입 니다. 초대교회 당시 “그리스도인”이란 명칭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삶을 바라본 비 기 독교인들이 만들어낸 말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감동 받은 사람들이 정말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라는 극존칭을 한 것인데 이제는 이러한 극존칭의 의미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 원인에 대해 가장 크게 주장하는 것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처럼 살지 못하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법에 암초가 있다는 점입니 다. 이 암초를 만든 사람들은 신실하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기보다 미지근한 회색주의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위선적이고, 안일하며 전도라는 목적에만 열을 올리고, 동성애자를 지나치게 혐오하고 정치적이며 타인을 판단만 하는 자기 살핌이 없이 교회를 드나드는 사람 들로 인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조차도 “그리스도인”이란 존칭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 니다.   “자연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우월한 척을 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전도에 대한 지나친 집중은 사람이 아니라 목표물 취급을 받는다고 느끼고 있다고 본다. … (또한 자유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은 타인을 쉽게 판단하고 비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태도나 관점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다고 보고 있다”(인터넷). 교회의 외적 성장과 늘어난 성도수가 외적인 영향력을 가졌지만 이미지가 내려가 내적인 영향력에 실패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세와 이미지가 신뢰, 호감, 감동 보다는 위선자, 판단 자, 말쟁이로만 비쳐지는 사태가 이미지를 추락시킨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란 영광스러운 명칭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는 바울처럼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하나님께 간절히 원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하나님께 간절히 원해야 합니까? 그 이유를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 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우리가 바울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므로 모든 사람이 다 우리처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하나님께 간절히 구(원)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원하심이 저와 여러분의 원함이 돼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이 돼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 든 사람들이 우리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축복, 영생 복락을 누리며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죽음의 공포조차도 극복하 면서 담대 하게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으면 서 때에 따라 돕는 은혜를 받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을 깨달아 순종하길 기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영혼 구원에 관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