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 두지 못할 사람”

 

 

 

[사도행전 25장 23-27절 말씀 묵상]

 

 

만일 여러분이 대학교 교수님이라면 ‘마지막 강의’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지난 주 금요일(2008년7월25일) CNN.com Front page에 “’Last lecture’ professor taught others how to live” (‘마지막 강의’ 교수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살 것은 가르쳤습니다)라 는 제목 아래 기사가 있어 흥미를 갖고 읽어 보았습니다. 그 기사 내용을 보면 한 아내의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빠인 47살인 Randy Pausch라는 Carnegie Mellon University 교수가 췌장암으로 3개월에서 6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약 한 달 후 2007년 9월 Carnegie Mellon 대학 강단에서 마지막으로 한 강의 내용과 더불어 그의 죽음 소식을 알리 는 뉴스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 강의가 궁금해서 YouTube.com에 들어가서 요약한 강의 내용을 들어 보았습니다. “Really Achieving Your Childhood Dreams”(당신의 어릴 때의 꿈들을 진정으로 이루는)란 제목 아래 강의를 하였는데 그는 강의를 ‘만일 여러분이 마지막 강의를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시작하였습니다. 그 강의 내용 중 마음에 다가왔던 부분은 그가 어릴 때 갔었던 디즈니랜드를 생각하면서 그 디즈니 회사에 직장을 잡으려고 이력서를 썼는데 거절당한 후 끈기에 대한 중요성(importance of persistence)에 대한 말입니다: “The brick walls are there for a reason ... to show us how badly we want something, … because the brick walls are there to stop the people who don't want it badly enough. They're there to stop the other people”[벽돌 담(큰 장벽)이 거기 에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 우리가 얼마나 그 큰 장벽을 넘어 무엇인가를 원하 는지를 보여줍니다. … 그 큰 장벽이 거기 있는 이유는 그 무엇인가를 그리 간절히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멈추게 만들고자 있는 것입니다. 그 큰 장벽이 거기 있는 이유는 다른 사람 들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 Pausch 교수님은 어릴 때 꿈을 이루고자 디즈니 회사에서 직장을 잡으려고 했지만 거절을 당하면서도 그는 멈출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암이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더 유명해져서 그의 인터뷰와 특히 마지막 강 의(3.2 millions 사람들이 작년 12월에 YouTube에 강의가 올려 진 후 그 접속하였다고 함) 를 통하여 많은 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도전을 주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러한 사람이 지 난 주 금요일 결국 췌장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아, 저 사람은 좀 더 오래 살았어 야 하는 사람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Randy Pausch 교수님처럼 ‘아 저 사람은 좀 더 오래 살았어야 하는 사람인데’라는 생각을 듣게 만드는 사 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 저 사람은 진짜 살려 둬서는 아니 될 사람인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한국 뉴스를 인터넷으 로 보다 보면 토막살인 사건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한 뉴스를 읽다 보면 경찰은 죽은 사람의 잘려진 시신 부분들을 여기저기서 찾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저렇게 죽일까 하는 생각 속에서 그렇게 사람을 죽인 사람은 진짜 살려 둬서는 아니 될 사 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물론 생사화복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저는 하 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이 땅에 태어나서 살도록 하신 이유가 다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데 그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이 또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저리도 비참하게 죽이는 뉴스를 접할 때에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 사람은 살려두지 못할 사람이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5장23-27절을 보면 유대인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 하는 바울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묵상하였지만 바울은 청렴결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는 자신의 생명을 걸면서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였던 사람입니다(11절). 그는 “유대인 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한 사람이었습니다(8 절). 그는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10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유대인 모든 무리에게 살려 두지 못할 사람으로 낙인 찍혔습니다. 지금 우리 말로 하자면, 그 당시 모든 유대인들의 관점으로 볼 때 바울은 사형수나 마찬 가지였습니다. 모 든 유대인들은 바울이 사형 당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을 사형 선고를 받게 하고자 바울을 총독 벨릭스에게 또한 2년 후 벨릭스에 후임자인 총독 베스도에게 그를 고 소하였고 또한 암살 결사대까지 조직하여 재판 절차 없이도 바울을 죽이려는 시도까지 했었 습니다(유상섭). 그러나 이러한 유대인들의 관점과 달리 총독 벨릭스나 그의 후임자 총독 베스도는 바울이 사형 당할 정도로 범죄 한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24:22, 25:25). 특히 총독 베스도는 유대 왕인 아그립바에게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 다”라고 까지 증언하였습니다(25절). 총독 베스도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바울을 고소하 므로 재판 자리에 앉아 바울을 심문한 결과 바울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가이사 로마 황제에게 호소한고로 그에게 보내기 앞서 로마법 에 상소할 죄목이 없이 바울을 가이사 황제에게 보낼 수 없기에 총독 베스도는 오늘 본문에 서 유대 왕인 아그립바와 가이사랴 지방 고위 관료들 앞에 바울을 세웠습니다(25-27절). 흥미롭지 않습니까? 한 쪽에서는 바울을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외쳐 되고 또 다른 한쪽인 총독 베스도는 바울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느 쪽이 맞습니까? 물론 총독 베스도 쪽이 맞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 울은 사형 당할만한 아무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모든 유대인들에게 “살려 두지 못할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2007년 12월30일 사실상 사형폐지 국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2개월 전 수원지법이 안양초동학생 이혜진, 우예슬 양 과 정모 여인 등 3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성현(39살)에게 사형을 선고하면서 또 다시 사형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인터넷). 특히 김문수 경기지사가 “21명을 토막 살인한 유영철의 인권을 따져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 우리나라는 인권이 없는 나라”라며 “조속히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형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찬반논쟁을 불러 일으켰다고 합니다(현재 한국은 약60명 사형수들이 있다고 함). 2008년 3월21일 SBS '김 어준의 뉴스앤조이'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리얼미 터”에 의뢰해 조사를 실시한 결과, '사 형제가 폐지돼야 한다'는 의견은 22.2%에 그쳤고 '존속되어야 한다' 57.0%로 조사됐다고 합니다. 그 당시 안양 초등생들 유괴살해사건을 계기로, 사형제가 존속되어야 한다 는 의 견이 급증한 것으로 조사된 것입니다(인터넷).  그러나 사형제가 폐지 돼야 한다고 주장하 며 캠페인을 벌이는 사람들 중 2006년 6월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제도 폐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에 보낸 기고문을 보면 이러한 이유로 사형제도 폐지 를 지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형의 경우 집행되고 나면 그 잘못을 시정할 길이 없다.  …  우리는 검사나 판사가 잘못 판단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김 전 대통령은 인혁당 사건 등 과거 한국에서 자행된 ‘사법살인’을 예로 들어 사형제 폐지의 필요성을 강 조하였습니다. “독재자들이 민주주의 주창자들과 정치적 반대자들을 탄압하고 몰아내는 수 단으로 사형제를 잘못 사용한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  한국에서는 인혁당의 감담자들 이 잘못 기소된 뒤 사형됐고, 나조차도 사형 언도를 받고 거의 사형에 처할 뻔했다”(인터 넷).

 

저는 여기서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론을 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죄도 없 는데 억울하게 사형 당할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25장23-27절에는 모든 유대인들이 바울을 가리켜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 라고 외쳐 되었습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선포하며 다니고 있었 던 바울은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었습니까?  과연 그는 사형당해야 마땅한 사람이었습니 까? 사형수로 모든 유대인들에게 낙인찍힌 사도 바울을 묵상하면서 저는 예수님이 생각났 습니다. 예수님도 고소를 당하셨을 때 빌라도는 온 유대 무리들이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습니다(눅23:14).  그는 도무지 예수님에게서 저의 행한 것 은 죽일 일이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15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가 “이 사람을 없이 하고” 바라바라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18-19절)라고 외치면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 서”(21,  23절)라고 재촉 하였을 때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22절) 빌라도 는 유대인 무리들이 원하는 데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였습니다. 우리 사람 들이 볼 때에 이 얼마나 억울한 죽음입니까?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을 유대인들의 관점 에서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였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민란과 살인을 한 바라 바가 사형당해야 하지 않았습니까? 왜 예수님께서는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 셔야만 했습니까?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왜 인간 을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 만에 갈보리 산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습니까? 그 이유는 저와 여러분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선물인 영생 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경 로마서 6장23절을 보십시오: “…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여러분, 이 영생의 선물을 받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 영생의 선물은 오직 구원에 이르는 믿음(saving faith)으로만 가능합니다: ”… 주 예수 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영원히 살려두지 못할 죄인,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