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변론

 

 

 

[사도행전 24장 10-23절 말씀 묵상]

 

 

지난주일 우리는 사도행전24장1-9절 말씀 중심으로 “고소당하는 바울”이란 제목 아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이 더둘로라는 변호사를 통하여 총 독 벨릭스에게 4가지 죄목으로 바울을 고소한 사실을 묵상했습니다. 그 4가지 죄목이란 (1) 첫째로, 바울은 “염병”이라는 것(태평을 헤치는 자), (2) 둘째로, 바울은 “소요케 하는 자”라는 것(선동하는 자), (3) 셋째로, 바울은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것, (4) 그리고 마 지막 넷째로, 바울은 “성전을 더럽게 하려”는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24 장10-23절 말씀 중심으로 더둘로 변호사에게 4가지 죄목으로 고소당한 바울이 총독 벨릭스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변호하는지 한 3가지로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이 바울의 변론을 묵 상하는 가운데 과연 참된 신앙, 믿음 생활은 무엇인지를 배우는 귀한 기회가 되길 기원합니 다.

 

첫째로, 바울의 변론은 ‘나는 염병과 소동케 하는 자가 아닙니다’라는 것이 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총독 벨릭스로부터 자기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더둘로와 달리 총독에게 아첨의 말을 하지 않고 유대 민족의 재판장인 총독에게 자기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하였습니다(10절). 그 첫 번째 변명의 내용은 변사 더둘로가 고소한 첫째 죄목 과 둘째 죄목에 대한 변론으로써 사도 바울은 자기는 염병도 아니고 소동케 하는 자도 아니 라고 자기 자신을 변호하였습니다(11-13절).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이 선교하다가 유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11절) 온지 12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짧은 시일 동안에 어떻게 대 소란을 일으켜 유대의 태평을 해칠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입니다(유상섭). 바울은 자기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 자기를 고소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나 더둘로나 그가 옳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자기가 성전에서나 회당에서 또한 성중에서 아무 와 변론하는 것이나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고 총독 벨릭스에게 진술하였습 니다(12절). 즉, 그는 자기를 고소하는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과 변사 더둘로 그리고 그들의 고소를 옳다고 동조하는 유대인들은 바울을 송사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능히 총독 벨릭스 앞에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고 당당하게 총독에게 진술하였습니다(13절).   사실상 바울을 고소한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의 대변인인 더둘로는 바울을 고소한 내용을 입 증할만한 물증이나 증인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유상섭).

 

바울은 염병처럼 태평을 해지며 유대 성전이나 회당이나 도시(성중)를 소동케 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평강의 복음을 전하는 자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예수님을 전염시키는 그리스도인(Contagious Christian)이였습니다. 에베소서2장14절을 보 면 성경은 예수님은 “화평”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화평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 셔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셨을 뿐만 아니라(16절) 우리 사람들을 서로 화목케 하셨습니다. 그는 오셔서 우리에게 평안을 전하셨습니다(17절). 바울은 예수님께 부름 받아 사명을 받고 파송을 받은 사도로서 이 화평케 하는 사역을 감당 하였습니다. 그는 화평케 하는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화평케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화평케 하는 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화평을 전염시키는 자들이야 말로 참된 신앙인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바울의 변론은 ‘나는 이단의 괴수가 아닙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변론은 변사 더둘로가 바울이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세 번째 죄목에 대한 바울의 변호입니다.  그는 총독 벨릭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나는 저희가 이단이 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 으며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 으리라 함이라”(14-15절).   여기서 바울은 유대 종교 자들과 더둘로가 말하는 “이단”은 실 상 이단이 아니라 “도”(the Way), 즉, 참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믿는 기독교임을 말하 면서 자기는 그 예수님을 좇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은 그 도를 좇아 이스라엘의 조상 의 하나님을 섬기고 또한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유대인들이 믿 고 기다리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자기도 가졌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소망은 다름 아닌 의인과 악인의 부활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하나님을 향한 부활의 소망, 즉 예 수님께서 십자가의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의인의 부활의 소망, 생명의 부활을 바울은 소망하였습니다. 이 부활에 대한 소망으로 인하여 바 울은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고 총독 벨릭스에게 고백 하였습니다(16절).

 

바울은 나사렛 이단의 괴수가 아니었습니다. 결코 나사렛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는 결코 이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는 거짓된 교리를 가르치는 집단이 이단입니다. 바울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신자로서 우리는 그에 게서 참된 신앙생활을 볼 수가 있습니다: (1) 첫째로, 바울의 참된 신앙생활은 조상의 하나 님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2) 둘째로, 바울의 참된 신앙생활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즉,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았습니다. 특히 그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참된 부활의 소망 이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바울처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바울의 변론은 ‘나는 성전을 더럽게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4장 17-20절을 보면 바울은 변사 더둘로의 네 번째 죄목인 ‘바울은 성전을 더럽게 하려는 자’라는 주장에 대한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그 변 호 내용을 살펴보면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온 이유는 유대 민족을 위해서 구제할 것과 희 생 재물을 드리기 위해 올라왔다고 총독 벨릭스에게 고백하였습니다. 결코 변사 더둘로가 주장한 것처럼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태평을 헤치고자 예루살렘에 올라온 것은 아닙니다(유 상섭). 그 증거로 바울은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 을 저희(유대인들이)가 보았”다고 말하였습니다(18절). 그러면서 그는 자기를 대적하는 아 시아로부터 예루살렘까지 온 유대인들이 바울이 변사 더둘로가 주장하는 것처럼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태평을 헤치고 성전을 더럽게 하였다면 벨릭스 총독에게 와서 바울을 송사했어야 하는데 오지 않은 것만 보아도 그들의 주장은 신비성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19절). 우리 가 이미 사도행전21장28절에서 묵상했었지만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바울이 성전에 있었을 때 이방인인 헬라인을 데리고 이방인이 들어 갈 수 없는 성전 뜰에 있었다고 주장을 하였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총독 벨릭스에게 와서 바울을 송사하지 않았습니까?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이 주장은 참 지혜롭게 변사 더둘로 의 거짓된 주장을 잘 반박하여 자기 자신을 잘 변호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바울은 만 일 자기가 진정으로 성전을 더럽혔다면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지금이라도 총독 벨릭 스 앞에서 바울이 성전을 더럽혔다는 증거를 진술하도록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만큼 바 울은 자기가 성전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자신의 무죄함을 확신 가운데 자신 있게 총독 벨릭 스 앞에서 주장하였습니다.

 

바울은 결코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령님의 전인 자신의 마음과 양심에도 거리낌이 없기를 힘썼습니다.   그는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깨 끗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깨끗한 양심을 가지 고 깨끗한 삶을 도모해야 합니다.

 

우리는 바울의 변론을 통하여 참된 신앙생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된 신앙생활 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화평을 전염시키는 것,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특히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깨끗한 삶 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깨끗한 양심과 깨끗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지혜롭게 변론할 줄 알아야 함을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