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신앙생활

 

 

 

[사도행전 22장 30절 - 23장5절 말씀 묵상]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어그러진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바르 고 곧은길로 가지 않고 구부러진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구부러진 길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절대 진리를 부인(거부)하고 거짓을 진 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마음도 삐뚤어져 있습니다. 마음이 삐뚤어져 있기에 말과 행동 다 삐뚤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어그러진 세상에서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바울은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 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빌2:15). 우리는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예수님의 빛을 나타내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바른 성경 관을 가지고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송사하는 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바울의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저희 앞에 세우는 모습을 봅니다(22:30). 그 때 바울이 공회를 힘 있게 쳐다보면서 변론하기 시 작합니다(23:1).  저는 오늘 이 바울의 변론 중 사도행전23장1-5절 말씀 중심으로 과연 바 른 신앙생활은 어떠한 것인지 한 세 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바울의 모범 된 바른 신앙생활을 본 받아서 어그러진 이 세상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살아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바른 신앙생활은 범사에 선한 양심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3장 1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 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바울은 공 회 앞에서 모인 제사장들과 공회원들 앞에서 자기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담대히 고백하였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 없이 정직하고 진실 되게 하나님을 섬겼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렇게 양심에 거리낌 없이 정직하고 진실 되게 하나님을 섬겼던 바울의 모범된 신앙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각자 자신에게 질문하 고 또 질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과연 나는 선한 양심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란 질문입니다. 우리는 양심을 수시로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합니다. 이 일을 게을리 하던지 중단하면 우리는 망합니다. 양심이 세상 것들로 오염되기 시작하면 진 정 진실과 거짓을 구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거짓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진실한 척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거짓을 포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진실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진실은 거짓으로 포장될 수가 없습니다. 결코 마음의 진실함이 거짓으로 표출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고후4:2). 그리고 우리는 궤휼 가운 데 행해서는 아니 됩니다. 더 이상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추천)해야 합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우리 주위 모든 사람들의 양심에 내 자신을 스스로 추천할 수 있을 정도로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진리를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러한 삶을 살라고 바 울은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딤전1:19) 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혹여나 우리 양심에 거리낌이 있는 숨기는 부끄러움의 일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양심의 책망을 받은 죄 는 즉시 자백해야 하며 보혈에 의해 씻음을 받아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도록 해야 합 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날마다 선한 양심을 소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 사도행 전 24장 16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 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둘째로, 바른 신앙생활은 위선을 경멸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3장 3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가로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 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 냐 하니.” 이 말은 바울이 모인 공회원들에게 자기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선한 양심대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했을 때(1절)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바울의 입을 치라고 하여 바울이 대제사장 아나니아에게 말할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회칠한 담”이란 표현은 “겉은 아름답지만(희지만) 속은 온갖 더러운 것(흙)으로 가득 찼다 는 말”입니다(유상섭). 한 마디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위선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대제사장 아나니아에게 ‘당신은 위선자’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당신 을 치실 것이다’고 꾸짖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회칠한 겉모습은 율법에 따라 심판하기 위해서 재판 석에 앉아 있는 것이고, 더러운 속 모습은 율법을 어기고 바울을 치 라는 명령에 있습니다(유상섭).  이 바울의 말은 예수님께서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 신 말씀들과 유사합니다.  성경 누가복음 11장 39, 44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르시되 너 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회칠한 무덤 같다고 질책하셨습니다(마23:27). 이 말씀은 회칠한 담이든, 회칠한 무덤이든 겉은 아름답지만 속은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찼음 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종교적 예식을 철저히 감당하는 겉모습은 사람이 보기에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고 깨끗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유대인 종교 지 도자들 속에 있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함을 보고 (알고) 계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위선의 상징’으로 ‘바리새인’을 꼽았습니다. 그들은 당시 유 태 사회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은 만큼 신앙적 과시욕 또한 대단해서 외식, 허식, 가식의 전 형으로 비쳐졌습니다. 거짓으로 꾸미고 자기 의(self-righteous)를 과시하는 위선자들 이였 습니다. 어거스틴은 배우들이 그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고, 그들의 본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교회 안과 모든 인간 생활에서 본래의 자기 모습이 아닌 것처럼 가장하려는 모든 사람은 위선자이거나 배우라고 말했습니다(인터넷).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 라”(마12:1). 우리는 너무 겉으로 사람에게 옳게 보이려고 힘쓰지 말아야 합니다(23:28). 오히려 우리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겉도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26절). 우리는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우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벧전 1:22).

 

마지막 셋째로, 바른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3장 5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가로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 제사장인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 더라.” 바울이 공회원들에게 범사에 양심을 따라(선한 양심대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고백 했을 때 그의 입을 치라고 명한 사람에게 “회칠한 담이요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라고 말하면서 그의 위선을 꾸짖었을 때 바울의 곁에 선 사람들이 “하나님의 대제사장 을 네가 욕을 하느냐”고 바울에게 말해 주었습니다(4절). 그 때 바울은 그가 대제사장인줄 알지 못 하였다고 고백하였는데 칼빈은 바울의 이 말은 하나의 풍자라고 하였습니다(칼빈). 곧, 바 울이 아나니아의 폭력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를 대제사장으로 여길 수 없기 때문에 그를 꾸 짖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박윤선). 아나니아는 대제사장 의복을 입고 공회 의장석에 앉아 있었을 것이므로 바울이 아무리 시력이 나쁘다 할지라도 명령하는 자가 대제사장인 줄 몰랐 다고 보기가 어렵습니다(유상섭).   오히려 바울의 말은 그가 대제사장답지 않게 행동했기 때문에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유상섭). 그러기에 바울은 출애굽기 22장 28절 말씀인 “너희 백성의 지도자를 비방하지 말라”는 명령에 불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위 선자인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참된 지도자가 아니었기에 그 타락한 제사장을 꾸짖은 것은 출 애굽기 성경 말씀에 모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박윤선). 범사에 양심을 따라(선한 양심대 로) 하나님을 섬겼던 바울의 꾸짖음은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양심을 찔렀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나니아는 회칠한 무덤처럼 겉으로는 대제사장 의복을 입고 공회 의장석에 앉아 있 는 모습이 참 거룩하고 경건하고 의롭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그 속은 온갖 탐욕과 악독 같 은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눅11:39).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선 하나님의 말씀에 찔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미 묵상한 사도행전2장에서 성령 충만한 사도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 파했을 때 그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 까’(37절) 물었던 사람들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좀 마음에 찔림이 필요합니다. 왜 마음에 찔림이 필요합니까?   그래야 우리는 양심의 악을 깨달아(히10:22) 거룩하신 하나 님께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양심의 악이 있습니까?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 자(딛1:15)는 “하나님을 (입술로)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합니다 (16절). 이러한 자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입니다(16절).   이 말씀에 저와 여러분의 마음과 양심에 찔림이 있으십니까?   우 리는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찔림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복종(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선한 양심대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힘써야 합니다. 위선과 가식과 외식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구부러지고 거스리는 이 세상에서  저와 여러분은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범사에 선한 양심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위선을 경멸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바른 교훈, 바른 신앙생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위선을 경멸하며 진실 된 삶을 추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