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

 

 

 

[사도행전 22장 22-29절 말씀 묵상]

 

 

여러분, 간증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저는 국민학교(초등학교) 때 한국에서 극 장에서 본 “사랑의 원자탄”이란 영화를 잊을 수 없습니다. 강대진 감독의 '사랑의 원자탄 '(1977년)은 손양원 목사의 삶과 신앙을 영화화한 것인데 그 당시 그 영화를 본 후 저뿐만 아니라 극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엉엉 울고 그랬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왜 그렇게 울 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영화를 보면서 목사님의 삶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신 사참배 반대와 옥살이하는 고난당하시는 목사님을 보면서 울었던 것 같지만 특히 저는 해방 공간의 좌우익 대결 상황에서 아들들을 잃고도 오히려 자식들을 죽인 청년을 양자로 삼은 손 목사님의 삶이 마음에 감동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자기 자식들을 죽인 “원 수”(?)인 공산당 재선이란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용서하는 손 목사님의 삶 을 영화로나마 보면서 참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렇게 손 목사님처럼 나의 삶과 죽음 이 과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그러한 삶을 살고 싶고 그러한 죽음을 맞 이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 … 예수님의 향기를 들어내는 삶과 죽음을 말입니 다. 이러한 삶과 죽음이야 말고 참으로 예수님을 증거(witness)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바울의 간증”(행21:37-22:21)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삶과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그 순간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대하 여 사도행전 21장 37절에서 22장 21절 말씀 중심으로 묵상하였습니다. 오늘은 본문 사도 행전 22장 22-29절 말씀 중심으로 바울의 그 간증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면서 주 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주시는 교훈을 받고 우리 모두 예수님의 증인 (witness)으로 합당한 삶을 살아 드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바울의 간증을 듣는 유대인들의 반응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2장 22-23절을 보십시오: “이 말하는 것까지 저희가 듣다가 소리 질러 가로되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바울의 간증이 끝나기도 전에 듣고 있었던 유대인들 은 소리 질러 바울의 말을 중단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들이 소리 질렀던 내용은 “이러한 놈 은 세상에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였습니다. 한 마디로, 유대인들은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옷을 벗어 던졌습니다. 왜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까? 그 이유 는 바울이 이방인들을 유대인과 동등시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이 바울 의 간증을 듣다가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바울이 이방인도 메시아의 구원 축복에 참 여한다고 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율법을 자랑하고 율법 없는 이방인들을 멸시하 던 유대인들, 자기들이 선민족 이라고 자부하던 그들의 입장에서 바울의 이방인 발언은 용 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메시아(그리스도)의 구원 축복을 참 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그들에게 이방인들도 그 축복에 참여한다는 바울의 말에 분노하며 유대인들은 바울을 돌러 쳐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 무모한 유대인들의 행동을 생각할 때 왜 이들이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저질렀을 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생각해 볼 때 저는 그 대답을 무지라고 생각합 니다. 즉, 바울을 죽이려는 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나 님께서는 창세전에 그가 사랑하사 택하신 백성들(그들이 유대인이던 이방인이던)을 구원하 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건만 유대인들은 그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예수님을 좇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렇게 무지함이란 무모한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호세아4장6절 말씀을 기울어 들어 야 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교회 안에서의 무모한 행동을 보면 그 원인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렸 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지함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므로 무모한 행동을 하 므로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묵상한 사단의 전 략대로 이들은 교인들을 충동(질)하여 교회 안에 소동을 일으키고(요란케 함) 악성 루머까지 퍼트려 결국 목회자를 제거하는 (좇아내는) 일까지 비일비재합니다. 우리는 지금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처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암8:11)을 맞이하였습니다. 사람 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받지 아 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고 있습니다(딤후4:3-4). 우리의 간지러운 귀를 긁어 주는 그러한 헛된 교훈에 귀를 돌려서는 아니 됩니다. 결코 우리는 사욕을 충족시키고자 “허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절대로 진리에서 돌이켜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속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결코 우 리는 바울을 간증을 듣다가 그를 죽이려고 했던 유대인들처럼 귀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영적 귀머거리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 다. 듣데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마음)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 들어보고 순종할지 안 할지 결정하겠다는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지막 둘째로, 바울의 간증을 듣는 로마 군인들의 반응

 

유대인들이 바울의 간증을 듣다가 소리 지르면서 겉옷을 집어 던지는 등 바울을 죽 이려고 하자 로마 군대 천부 장은 군인들에게 명령하여 우선 바울은 진영 안으로 데려가라 고 명하였습니다(24절). 그런 후 천부 장은 군인들에게 바울을 채찍질하며 신문하여 왜 이 같이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항하여 외치는지를 밝혀내라고 지시했습니다(24절). 그래서 백 부장 이하 군인들은 바울을 가죽 끈으로 동여매고 채찍질하면서 바울을 심문하려 했습니다 (25절). 그 때 바울은 곁에 서 있었던 백부장에게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25절).   그 당시 종이나 로마 시민이 아닌 사람을 심문할 때는 고문이 허용되었다고 합니다(유상섭).   그러나 로마 시민에게 재판 이 전에 가혹한 고문을 가하는 것은 로마법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 백부 장은 천부장에게 가서 바울이 로마 사람임을 보고했을 때(26 절) 천부 장은 그 사실을 확인 하고자 바울에게 와서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고 물었습니다(27절). 그 때 “그러하다”라는 바울의 답변을 듣고(27절) 천부 장은 자기는 돈을 많이 들여 로마 시민권을 얻 었다고 말했습니다(28절). 그 때 바울은 “나는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임을 알려주었습니다 (28절). 그 때 바울을 심문하려던 로마 군인들이 즉시 떠났습니다(29절).   그리고 천부 장 도 바울이 로마 사람인줄 알고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였습니다(29절). 그 이유는 로마 시민인 바울을 공식적인 재판 없이 결박하고 심문하므로 로마 당국의 엄중한 문책을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유상섭).   이 로마 군인들의 반응을 생각해 볼 때 이들 또한 바울이 로마 사람임을 모르는 무지함 가운데 바울을 결박하고 채찍질하며 심문하려고 했습 니다. 물론 이들은 바울의 간증을 듣던 유대인들이 왜 소리지르면서 옷을 벗어 던지고 바 울을 죽이려고 했는지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었겠지만 바울이 로마 사람인지 유대 사람인지 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그를 가죽 끈으로 결박하고 심문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무모 한 행동을 한 것은 그들의 무지함 때문입니다. 바울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면서 무조건 결 박하고 채찍질하면서 심문하려고 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다른 형제의 간증을 들을 때 그 형제의 간증을 통하여 하나님 께서 나에게 들려주시고자 하시는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확인이 필 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간증을 하는 형제의 삶을 통하여 그 간증은 확인돼야 하는 것입니 다. 만일 그 형제가 간증을 은혜스럽게 하고 난 후 교회 안에서 그의 삶을 볼 때 그의 간 증과 다른 메시지를 다른 성도님들에게 준다면 그의 간증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 입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간증을 나눠야 하며 또한 그 간증의 진실성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들어내야 합니다. 즉, 우리는 간증하며 증인의 삶을 살아가 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들입니다. 간증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증거하 고 또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므로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십시 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바라기는 우리가 약속의 말씀인 사도행전1 장8절 말씀을 붙잡고 모여 합심하여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충만하여 증인의 삶을 신 실하게 살아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합심하여 기도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사랑하는 지체들의 간증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