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간증

 

 

 

[사도행전 21장 37절 – 22장 21절 말씀 묵상]

 

 

여러분 혹시 이명박 장로 대통령의 간증을 들어 보셨습니까? “TV 간증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이명박 장로편”(인터넷): “저는 오늘 교회 장로의 자격으로 여기 왔습니다.  저 는 여러분들 앞에 고백을 좀 하려고 합니다. 사실은 제 신앙을 간증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온 것은 저희 어머니 덕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라 고 말을 시작하면서 그의 간증 내용에 이런 글이 있어 나눕니다: “저희 어머니는 매일 아침 새벽이면 새벽 4시가 되면 6형제 전부 엎드려서 기도했습니다. 새벽 4시가 되면 기도하시 고, 어머니는 다시 새벽기도에 나가셨습니다. 돌아와서 행상하러 나가셨어요. 그렇게 힘들 어도 하루도 빠지지 않았어요. 어머니의 기도는 똑같은 기도였어요. 하나님께 감사, 나라의 안정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어릴 때는 어머니의 기도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예수 믿지 않 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 그 다음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어머니 의 기도는 위대하다 생각이 듭니다. 우리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결박 받는 바울”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사단이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 들을 사용하여 어떻게 바울을 결박 받게 하였는지 한 4가지로 묵상하였었습니다. 잠깐 복 습을 한 다면 (1) 첫째로, 그들은 성전 안 남자의 뜰 안에 있었던 유대인들을 바울에 대한 근거 없는 거짓 주장을 하므로 사람들을 “충동”하였습니다. (2) 둘째로, 아시아에서 온 유 대인들은 충동된 유대인 남자들과 함께 결국 예루살렘 성안에 “소동”을 일으키므로 요란하 게 만들었습니다. (3) 셋째로, 사단의 전략은 악성 루머(소문)를 퍼트리는 것이라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4) 마지막 넷째로, 무리들은 바울을 “포행”하였습니다. 결국 바울은 천부장 의 명령으로 인하여 군사들에게 들려서 로마 주둔군 진영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바울이 천부장과 대화를 하는 가운데(37절) 바울은 자기를 죽이려고 때리고(32절) 제 거하려는(36절) 유대인 무리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39절). 그 때 천부 장은 바울의 요청을 허락하므로 말미암아 그는 계단 위에서 백성들에게 손을 흔 든 후 히브리 방언 곧 아람어로 연설을 하였습니다(40절). 그 바울은 연설은 바로 바울의 간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 21장 37-22장29절 말씀 중심으로 “바울의 간증” 이란 제목 아래 바울의 간증을 한 3부분으로 나눠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오늘 바 울의 간증을 듣고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받는 계기가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바울의 간증 첫 부분은 “예수님 만나기 전”(Before Christ)입니다 (3-5절).

 

 바울의 간증의 첫 부분은 바울 자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한 네 가지로 유대인 무리들에게 진술하였습니다.

 

  •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이며 이방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난 시민임을 밝혔습니 (3절). 그는 자신도 모인 무리들처럼 유대인임을 강조하면서 자기는 소읍이 아닌 길리기 아 다소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였습니다. 다소는 그 당시는 큰 도시요, 로마제국 시대에 다 소는 길리기아소아시아 지역의 정치적인 수도였고, 희랍과 로마 시대에 다소는 아테네, 알 렉산드리아와 함께 소아사이에서 학문과 문화의 중심도시였습니다. 바울이 자부심을 가질 만도 했습니다.

 

  • 바울은 예루살렘 성에서 성장했다고 말하였습니다(3절). 비록 바울은 이방 다 소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줄곧 예루살렘에서 교육을 받았으니만큼 열심 있는 유대주의자(율 법주의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였음을 밝혔습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유대인으로서 예루 살렘 성은 중요하였습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성장했다고 말하므로 말미암아 자기도 듣는 유대인 무리들처럼 예루살렘 중요시하는 사람임을 강조하였습니다.

 

  • 바울은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방식에 따라서 철저히 교육을 가말리엘 문화에서 배웠다고 말하였습니다(3절). 그 당시 가말리엘은 유대교의 두 최고 학파 중 하나인 힐렐 (Hillel) 학파를 대표하는 존경 받는 인물이었습니다(유상섭). 그 가말리엘 문화에서 바울은 바리새파 전통에 따라 엄격한 율법 교육을 받았다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율법으로는 바 리새인이었습니다(빌3:5).

 

  • 바울은, 모인 모세 율법에 열심히 있는 유대인들처럼 자기도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고 말하였습니다(3절). 어느 정도로 열심히 있었는가 하면 바울(사울)은 예 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여 그들을 죽이기까지 하고 기독교인 남녀를 결박하여 옥 에 넘기기도 했다고 말하였습니다(4절). 바울은 다메섹에 가서 거기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에 끌어다가 형벌을 받게 하려고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에게 공문까지 받아가지고 갔었던 모세의 율법에 열심히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열심으로는 교회 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빌3:6). 그는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 로들이 내(자기) 증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의 이 예수님 만나기 전에 과거에 대한 고백은 한 마디로 자기도 자기를 죽이 려고 하는 모인 모세 율법에 열심 있는 유대인들처럼 자기도 전(과거)에는 그랬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 율법에 대한 불붙는 열정도 자기도 전에는 있었고 그 열정 속에서 예 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적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를 핍박하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4 절) 했다는 이러한 과거의 이야기는 그 말을 듣는 모인 분노하고 자기를 죽이려는 유대인들 에게 과연 어떻게 들렸을까 생각해 봅니다. 바울은 자기의 말을 듣고 있는 율법에 열심 있 는 유대인들의 열심히 결코 올바른 열심히 아닌 줄 알고 있었습니다. 즉, 바울은 모인 유 대인들의 열심이 삐뚤어진 열심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과거, 즉 예수님 만 나기 전에 자신의 삶을 디모데전서1장13절에 이렇게 고백(묘사)하였습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 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불신앙 가운데서 또한 무지함 속에서 바울은 과거에는 훼방자요 핍 박자요 포행 자였습니다.

 

둘째로, 바울의 간증 두 번째 부분은 “예수님 만난 그 순간”(On Christ)입 니다(6-16절).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곳은 바로 다메섹에 거의 다 와서 그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행21:6).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던 사울(9:1), 불신 앙과 무지 가운데서 예수님의 도를 좇는 사람들을 만나면 남녀를 안 가리고 다 결박하여 예 루살렘으로 잡아 오려고 다메섹으로 향하던 중(2절)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려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 냐”(22:6-7)라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 때 사울은 “주여 뉘시니이까” 물었을 때 예수 님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말씀해 주셨습니다(8절). 이 주님의 음성은 사 울 외에는 동행하는 사람들 중 들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9절). 이 음성을 듣는 순간 사울의 모든 신학은 철저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 순간이 바로 핍박 자 사울이 예수 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목숨 걸고 증거하는 선포 자가 되는 대전환의 순간 이었습 니다.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영광중에 계신 주님에 의해 구원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예 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땅 끝까지 가지고 갈 자로 부름 받았습니다(유상섭). 다시 말 하면, 사울의 중생(Conversion)과 부르심(사명)(Commission)이 여기 다메섹 도상에서 있었 습니다. 이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의 회심(중생)과 사명을 받은 바울은 그 후 주님의 명령 대로 일행의 도움을 받아 다메섹으로 들어가(9-11절)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 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12절)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 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 바울의 간증을 듣는 율법에 열심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바울에 대 한 신임을 줄 수 있는 발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주님께서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는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다메섹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박윤선). 결국 바울은 아나니아를 만 나 보이지 않던 눈이 즉시 열려 보게 되었고(9:18) 또한 아나니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 기를 택하사 그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14절). 즉, 하나님께 서는 바울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게 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15절). 그런 후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일 어나 세례를 받고 주의 이름을 불러 자기 죄를 씻으라고 말하였습니다(16절). 결국 바울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만한 자격이 전혀 없었던 사람인데 주님께서 그를 사랑하사 창세전에 선택하시고 그를 귀히 쓰시고자 다메섹 도상에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을 대적하 고 그의 복음을 대적하고 또한 예수님을 좇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였 던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 자이었던 바울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사 그를 변화시켜 주신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 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은혜를 경험한 바울은 디모데전서1장14절에서 이렇게 고백하 였습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 하였도다”. 또한 고린도전서15장10절에서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   이러한 은혜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식구, 친척 모든 분 들에게 있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바울의 간증 세 번째 부분은 “예수님 만난 후”(After Christ) 입니다(17-21절).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아나니아를 통 하여 눈을 뜨게 되고 주님의 뜻을 알게 된 후 바울이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예루살렘으로 돌 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하였습니다(17절).   이 사실은 지금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이 생각 하고 있었던 바와 다릅니다. 즉, 지금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은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 들의 거짓 주장한 바울은 거룩한 성전을 더럽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터인데 바울은 결코 성전을 더럽히고 멸시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21:28). 오히려 그는 다메섹 도 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 받아 성전을 찾아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22:17).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었을 때 비몽사몽 간에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 다. 그 주님의 말씀 내용은 간략하게 말한다면 예루살렘을 속히 떠나 이방에 선교사로 가 라는 내용이었습니다(18-21절)(박윤선).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의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할 것을 알고 계셨기에(18절) 그를 멀리 이방인에게 보내사 복음을 증거케 하시고자 하셨습니다(21절).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오늘 본문 19-20절을 보면 그 주님의 음성을 들은 바울의 반응입니다. 즉, 바울은 자기가 과거의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처럼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때리고 스데반의 죽음까지도 곁에 서서 찬성하 고 동참한 일들을 주님께 말하면서 어느 면으로 보면 바울은 자기가 유대인들을 잘 알고 있 기에 자기가 그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면 잘 들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은 주님께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두 번이나 바울에 게 이방인에게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18, 21절).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바울의 복음 증거 를 듣지 아니할 것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18절).

 

어떤 때에는 인간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론도 주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주 님의 말씀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바울의 전하는 복음에 응종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18절 하).  바울은 주님의 이와 같은 계시를 따라서 이방의 사도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서 우리는 한 가지 원칙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전도자는 그 입지를 택함에 있어서 어디까 지나 자기의 판단을 버리고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전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박윤 선). 참 일리기 있는 말입니다. 자기 판단을 버리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전진해야 합 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그 사람을 제일 잘 알 고 친하니 내가 그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복음을 전하면 분명히 들을 것이야’ 등.   만 일 내 생각대로 그 사람이 복음을 듣고 교회를 나온다면 분명히 우리는 내가 했다는 생각으 로 자긍하게 되며 교만에 빠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공로로 되었다는 자만 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까?  그리 우리의 생각 되로 복음 증거 및 열매가 쉽게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그리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도우심, 주님의 역사가 없이는 우리의 태신 자들이 우 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그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복음 증거에 힘을 써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직도 잊지 못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정연희 전작 장편소설 “내 잔이 넘치나이다”입니다.   이 책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살다가 6.25. 전쟁 때 죽은 한 신앙의 선배   “맹의순” 형제님에 대한 글입니다.   “우리 민족의 대 비극인 육이오 시대를 살면서 고난을 통해 아름답게 피어난 우리의 믿음의 선배에 대한 책인 것이다. 시대적으로 고난과 비극의 시대인 일제시대 말기에 태어나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1952년까지 겨우 26년 8개월을 살았던 한 젊은이의 고난”을 다룬 책입니다. “일제시대에 평양의 비교적 부유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장로의 아들로 태어난 맹의순은 민족의 식민 상황이라는 아픔 외에는 아무 어려움 없이 자라나는 한 젊은 청년이었다. 중학교 졸업할 무렵 그렇게도 사랑했던 누님의 죽음, 그리고 채 석 달이 되지 않아서 학도병으로 끌려갔던 형님의 전사 소식, 그리고 해방 이후 이북에 세워지는 공산정권으로 인해서 남하하던 나머지 가족은 모든 재산을 사기 당하 고 빈털터리로 목숨만 건져 이남으로 내려오게 된다. 연이어 곧 뇌졸중으로 쓰러져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님과 이유 없이 죽어버린 여동생,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그 의 어이없는 삶의 여정, 육이오 전쟁 속에서 남쪽으로 남하하던 중, 공산군 첩자로 오해를 받아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되는 비극의 삶으로 점철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몇 몇 친 구들의 수고 끝에 석방될 기회를 가졌음에도 그는 그것을 거절하고, 그 곳을 하나님이 주신 최상의 사역지로 생각하고, 포로수용소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중공군 포로 병동에서 예수님 의 사랑과 살신성인의 본을 좇아 환자들을 돌보는 것을 소명으로 생각하며 무리해서 사역하 던 중, 시편 23편의 '내 잔이 넘치나이다'를 암송하면서 쓰러져 20대 후반의 꽃 같은 나이 에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정연희).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간증을 통하여 예 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며 그의 이름이 높아지길 기원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과 예수님을 만났던 그 순간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후의 삶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길 기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중생뿐만 아니라 사명을 받았음을 망각하지 않길 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