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뜻대로 이루어 지이다”

 

 

 

[사도행전 21장 1-14절 말씀 묵상]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매우 힘들 거라 생각하지만 성경적인 관점은 매우 다릅니다. 그분께 기꺼이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밝히 드러내 십니다. 이 진리를 통해 마지막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그저 고 려해 보겠노라 말하는 사람에게는 뜻을 보여 주시지 않습니다. 즉 당신이 “뭐, 할 수도 있 고요, 안 할 수도 있습니다. 대신 다른 계획을 보여 주실 순 없을까요, 주님?”이란 태도로 나올 때는 결코 보여 주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한다면 그 전에 먼 저 뜻에 순종할 것인지 아는지부터 결정해야 합니다(인터넷).

 

오늘 본문 사도행전21장14절을 보면 이러한 말씀이 나옵니다: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 로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는 제목 아래 주님의 뜻에 관하여 한 3가지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묵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을 향하신 주님의 뜻은 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의 경영이었고 또한 하나님의 경영이었습니다. 그래서 바 울은 사도행전 20장 22-23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님의 뜻인 줄 어떻게 알았을까요?  바로 성령님의 인도하심 받으므로 바울 은 주님의 뜻을 알게 된 것입니다[(22절)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비록 동일한 성령 님께서 “각성에서” 바울에게 결박과 환난이 자기를 기다린다고 증거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23절) 그는 예루살렘에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주님의 뜻임을 확 신하고 있었기에 어떠한 결박과 환난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는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길 원 하였습니다. 그는 살던지 죽든지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길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왠지 우리는 사도 바울과 달리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데 참으로 어려움을 많 이 겪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때에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고민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특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인 주님의 뜻인지 그 것이 내 뜻인지 분별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과연 주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성경 로마서12장 2절을 보십시오: “너 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 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주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몇 가지 교훈을 주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 첫째로, 우리는 주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대는 어떠한 세대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1장 29절에서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마치 구약 의 노아 시대처럼 심히 부패한 시대 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시대는 노아의 시대처럼 죄악이 관영 한 시대입니다. 사람의 마 음이 악하여 하나님을 탄식케 하여 근심케 하는 시대라 생각합니다 (창6:56).   이러한 시대 에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로서 이악한 시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 다.

 

  • 둘째로, 우리는 주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 를 받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되 시편 기자 다윗이 시편 51편 10절에 기도한 것처럼 우리는 기 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선 로마서12장3절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따라 지혜롭게 생각할 때 부패한 마음이 변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꾸준히 추구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주님의 선 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에 있어서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물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하나는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간적 동정심입니다(박윤선). 오늘 본문 사도행전 21장 4절을 보십시오: “제자 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 가지 말라 하더라.” 이 말씀은 두로라는 지역의 제자들도 성령님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바울에게 환난과 결박이 있을 것을 알게 되어 바울과 함께하는 7일 동안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을 계속 만류했음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유상섭). 이러한 간청을 뿌리쳐야 하는 사도 바울,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뜻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두로라는 지역에 서 그를 사랑하는 제자들도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 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니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바울은 성령의 매인바 되어 예루살 렘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두로 지역의 제자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권면 함에 있어서 성령의 감동으로 했다(4절)는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까? 두로 지역의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간청하고 권면하였다는 말씀은 예루살렘 에 올라가면 위험한 일을 당할 줄 성령님께서 알게 하여 주신 것이지 결코 동일한 성령님께 서 두로 지역의 제자들에게 바울더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음성을 들려주신 것은 아닙니다(박윤선). 그들이 바울을 만류한 것은 그들 자신의 인간적 동정심 이였습니다. 이 러한 인간적 동정심은 바울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고 오늘 본문 13절 상 반절에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머물러 있었을 때 유다로부터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전에도 흉년을 예언한바 있는(행 11:28)] 가 내려 와서 예언하되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환난을 당할 것이다(10-11절)라는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 예언을 들은 바울의 일행들은 가이사랴 지방에 성도들과 더불어 사 도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울면서 간절히 당부하였습니다(12절). 이 때 바울은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라고 탄식하였습니다(13절). 여기 서 ‘마음을 상하게 한다’는 말씀은 ‘마음을 깨뜨린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약하게 만든다’라는 뜻입니다(박윤선).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도 성령님이 각성에서 자기에게 증거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과 환난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고 있었는데 주위에 사랑하는 형제들도 그것을 알고 인간의 동정심 속에서 안타까운 마음으 로 자꾸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사랑한답시고 계속 권면하면 바울의 마음이 어떠하 였겠는가…… 마음이 연약해 지기가 쉬운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에 있어서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 입니까? 누가 또는 무엇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연약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저는 사랑하는 가족식구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시 말하면, 만일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바울처럼 사명을 감당하고 완수하고자 경영함에 있어서 걸어가고자 하는 길이 있을 때 그 길에는 고난과 역경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랑하는 가족 식구들이 그 길에는 어려움과 고난이 많으니 그 길을 가지 말라고 만일 울면서 권면(간청)한다면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서 가르치”셨을 때(마16:21) 베드로가 예수님 을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 다”(22절)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성경 마태복음 16장 2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 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 베드로는 인간의 동정심 속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원치 않으므로 “이 일”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 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베드로의 생각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생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기보다 사람의 생각을 하게 만들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이루고자 하기보다 사람의 뜻을 이루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림에 있어서 어떠한 어려움들이 있을지라도 사람의 생각을 하 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특히 인간의 동정심을 경계할 필요가 있 습니다.

 

마지막 셋째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죽을 각오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 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 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바울은 인간의 동정심 속에서 울면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는 그의 일행과 가이사랴의 제자들의 간청 가운데서도 비록 마음 이 상하였지만 그는 그럴수록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한 자기의 사명 완수에 대한 확고한 결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결심 은 우리가 이미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보았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 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명에 따라 움직였던 바울은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함에 있어서 자기 생명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는 자기의 운명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예수 님의 이름을 위해 고난 받고 능욕 받는 것을 기뻐한 것같이(5:41), 바울 역시 이들에 뒤지 지 않게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박윤선).

 

언젠가 읽었던 “영광의 문”이란 책을 다시 펼쳐 보았습니다. 이 책은 에콰도르 정 글에 사는 아우카 족에게 복음을 전하려다가 순교한 5명의 북미 선교사님들 중 한 사람인 짐 엘리엇의 부인 이였던 엘리자벳 엘리엇이 쓴 책입니다. 이 책 끝 부분에서 그 5명 순교 자 중 한 사람의 부인인 바바라 유데리안의 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 대위가 우 리에게 강가에서 네 시체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하나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 런 옷차림을 한 사람은 로저 밖에 없었다 ….  이틀 전 하나님은 내게 시편48편 14절 말씀 을 주셨다.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로저의 죽음소식을 접하면서 내 마음은 찬송이 충만했다. 그는 본향에 가기에 합당한 자였 다. 주님, 제가 엄마 역할과 아빠 역할을 다 잘하게 도와주소서.  ‘주의 교양과 훈계’(엡 6:4)를 알게 하소서 …. 오늘밤 베스가 천국에 가신 아빠를 위해 기도하며 내게 물었다. 아빠한테 편지를 쓰고 싶은데 아빠가 천국에서 내려와 편지를 받아갈 수 없느냐고. 내가 ‘그럴 수는 없단다. 아빠는 예수님과 함께 있거든’ 했더니 베스는 ‘하지만 예수님이 아빠가 내려오도록 도와주실 수 있잖아요. 하나님이 아빠가 미끄러지지 않게 아빠 손을 붙잡아 주 실 거예요’했다.” 이러한 자녀의 말을 들을 때 그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바바 라 유데리안은 선교 후원자들에게 편지를 써 자기가 누리는 평화를 설명했다고 합니다: “나 는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것은 생명을 갉아먹는 사탄의 도구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라 확신한다. 많은 사람들이 말할 것이다. ‘히바로족 사역을 맡은 로저가 어쩌자고 이 일에 가담했다 말인가?’ 이유는 로저가 자기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 러 왔기 때문이다. 주님은 비애와 광분에 우리 마음을 닫으시고 당신의 완전한 평화로 채 우셨다”(엘리엇).

 

 

 

오직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어려운 일 당할 때도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