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본을 보이는 장로

 

 

 

[사도행전 20장 28-38절 말씀 묵상]

 

 

“장로교회 대의정치, 장로가 바로 잡자: '잘 다스리는 장로'는 통치자가 아니라 돌 보며 앞장서는 자”라는 뉴스엔조이 인터넷 기사를 보았습니다(인터넷). 성경 디모데전서 5 장 17절 말씀에 대해서 기사를 쓴 것입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여기서 “잘 다스리는 장로”란 말씀에 “다스린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프로이스테미”로써 “앞에”를 뜻하는 “프로”와 '서다'를 뜻하는 “히스테미”의 합성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스린다'(프로이스테미)는 말은 '앞에 서 다' 곧 앞장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다스린다'(프로이스테미)는 말의 뜻은 '앞에 두다 (제출), 앞서 가다(인도), 뛰어나다, 돌보다, 다스리다'를 뜻합니다. 곧 인도하고 돌본다는 의미가 됩니다. 장로들은 기본적으로 존경할 자인데, 잘 다스리는 장로를 배나 존경해야 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존경”은 대가, 평가, 존중, 영예, 인정을 뜻합니 다. 다시 말해서 존중 받고 인정받을 만한 대가를 치른 상태입니다. “존경은 속에서 우러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겉으로 하는 것은 존경이 아니지요. 그러므로 장로는 성도 들에게 속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을 만큼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는 모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인터넷).

 

오늘 본문 사도행전20장28-38절 말씀을 보면 에베소 교회에서 3년간 사역을 하면 서 모본을 보였던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기에 앞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초청하여 고별 설 교를 한 내용입니다. 그 내용 중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자기를 본 받아 모본을 보이는 장로들이 되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 중심으 로 “모본을 보이는 장로”란 제목 아래 모본을 보이는 장로는 어떠한지 한 3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모본을 보이는 장로는 삼가 조심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0장 28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 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 를 치게 하셨느니라.” 바울은 고별 설교를 하면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성령님께서 그 들을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목양하도록 감독자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자 기 자신들과 또한 온 양떼, 즉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삼가 조심하라고 권면하였습니 다. 이 말씀은 정신을 바싹 차리고 잘못된 삶이나 가르침으로부터 자신들과 온 양떼를 보 살피라는 말씀입니다(유상섭). 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오늘 본문 29-30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 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는 장차 에베소를 떠난 후 “흉악한 이리”와 같 은 거짓 선생들이 에베소 교회 들어와서 “어그러진 말”(30절), 즉 “참과 거짓을 섞어 말”하여(박윤선)을 하여 성도들을 미혹하여 거짓된 교리와 자기 자신들을 좇게 할 것을 알고 있 었기에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삼가 조심하라고 경계하며 권면한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3년 동안 목회하던 사역지인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서 고별 설교 를 장로들 앞에서 하는 바울, 그는 자기가 떠난 후 에베소 교회에 거짓 선생들이 들어와서 미혹할 것을 알고 있었다면 그 사랑하는 에베소 교회를 떠나는 그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 까? 저는 전에 새벽기도회 때 묵상한 신명기31장27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너희의 패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날 내가 생존하여 너희와 함께 하여도 너희가 여호와 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부터 광야를 통하여 약속의 땅인 가나안 앞까지 다 와서 죽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목전에 악을 행할 것을 알고 있는 모세,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단자들이 에베소 교회에 두 방향으로 출연할 것을 예상하 였습니다: (1) 첫째 방향은 교회 밖에서 에베소 교회 안으로 이단자들이 들어올 것을 사도 바울은 예상하였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 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2) 둘째 방향은 교회 안에서 이단자들이 있을 것이라 고 바울은 예상하였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부의 적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불러다가 그들 앞에서 고별 설교를 하면서 ‘거짓 스승들(이단자들)이 에베소 교회에 들어올 터인데 너희 중에도 그런 거짓 스승이 있을 것이다’라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최후의 만 찬에 가롯 유다와 같은 자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는 장로들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바 울은 에베소를 떠나면서 장로들을 불러다가 고별 설교를 하면서 ‘삼가 조심하라’고 경계하 며 권면한 것입니다. 즉, 그는 “정신을 바싹 차리고 잘못된 삶이나 가르침으로부터 자신들 과 온 양떼를 보살피라”고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권면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우리 교회에 적용할 수가 있을까요? 가르치는 장로인 우 리 교역자(목사님)들이나 치리하는 장로인 장로님에게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맡겨주신 성도님들을 감독하라고 장로들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책임은 무엇입니 까? 우리의 책임은 양떼들이 흉악한 이리의 밥이 되지 않도록 양떼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졸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떼들은 흉악한 이리의 밥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 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거짓된 가르침에 빠지지 않도록 바른 교훈에 견고히 서 있어 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장로들은 교리적으로 확고한 지식을 구비해야 합니다. 그러 므로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성도님들이 거짓된 가르침이나 또는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보 호해야 합니다. 목회 서진에서 감독자의 자격은 가정적으로,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본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교리적으로도 확고한 지식을 구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들을 말씀 으로 잘 가르치고, 이단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습니다(유상섭).

 

둘째로, 모본을 보이는 장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히 서 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0장 3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 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서 앞으로 장차 있을 이단들의 거짓된 가르침으로 인한 위험을 알고 에베소 교회 장 로들에게 ‘삼가 조심하라’고 경계하고 권면하면서 다시금 어떻게 성도들을 목양해야 하는지 를 자신이 3년 동안 함께 있으면서 보여준 목회 생활을 본받으라(“기억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31절). 이 구절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모범된 목회 생활의 3가지 면을 보고 배 워야 합니다:

 

  • 울의 사역은 일깨우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 깨우는 삶에 부지런했으면 그러한 가운데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지 런히 일깨웠던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는 자신이나 성도들이 정신 차리고 깨어 있어 서 거짓된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바울의 모범된 목회 생활은 바로 영적 파수함이였습니다.

 

  • 바울의 삶은 근면이었습니다. 그는 3년 동안 에베소에 있으면서 밤낮 쉬지 않 고 에베소 성도들을 훈계하였습니다. 그는 깨어 부지런히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 르쳤습니다.

 

  • 바울의 목회자의 심정은 ‘사랑’이였습니다. 그는 3년 동안 에베소 목회를 감당 하면서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였습니다. 이것은 그 영혼들을 사랑하는 감독자의 마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범된 목회 생활을 에베소 교회 장로들도 본받아 바 울이 떠나고 나서도 에베소 장로들이 감독자의 사역을 잘 감당하길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에베소 장로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 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32절). 비록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지만 주님과 그의 말씀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과 함께 계실 것이기에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주님과 그의 말씀에 부탁 하였습니다. 그 말씀은 첫째로 주님의 은혜의 말씀이요 둘째로, 우리를 든든히 세울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그 은혜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기업(안식)이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역자들과 장로님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히 서 있어야 합니 다. 그리고 여러분도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견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 그러기 위해선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의 믿음이 자라나야 합니다. 성경 로마서 10장 1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 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을 화합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안식(기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경 히브리서 4장2-3절을 보십시오: “저희와 같이 우 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치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 도다 ….” 하나님 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 유익되기 위해선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을 화합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면서 성도들보다 오히려 교회 장로들이 염려가 되 었습니다(유상섭). 그 이유는 내부적으로 교회 지도자인 장로들 중에 거짓된 가르침에 치 우쳐 이단적인 교리나 가르침을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치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30 절). 그러므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주님과 그의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였습니다.

 

우리 교회 교역자들이나 장로님은 디모데후서2장15절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 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변할 수 있는 말씀의 사람 이 되야 합니다. 그러한 교역자들이 또한 장로님이 돼야 합니다. 그리할 때 교회에 흔들 림이 없기 견고히 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모본을 보이는 장로는 약한 자들을 돕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0장 35절을 보십시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바울은 장차 에베소 교회 내부적으로나 또한 밖 에서부터 침투할 거짓된 선생들인 흉악한 이리들에 대해서 말하면서 오늘 본문 29절에서 그들은 양떼들인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아끼지 아니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 본문 35절에서 자기는 그 거짓 선생들과 달리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아끼는 참 된 목자로서 그들에게 모본을 보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5절).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에 베소 성도들에게 모본을 보였습니까?

 

  • 그는 탐욕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분명 히 양떼들을 아끼지 아니하는 거짓 선생들은(29절) 자기의 사심과 사욕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유상섭). 그러나 참된 목자인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사랑하며 아끼는 마음이 있었기에 “내가 아무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다고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백 하였습니다.

 

  • 바울은 자기 손으로 열심히 수고하였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 여”. 아마도 사리사욕에 빠진 거짓 선생들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아끼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들과 가정을 아끼는 가운데 열심히 자기 손으로 수고하기보다 바쁜척하면서 놀고먹는 그러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 말입니다(살후3:11).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하였습니다(10절). 그러한 사 람들이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더욱더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했습니다(8절). 그러므로 아무에게 누를 끼치지도 아니하였고 또한 모든 이들에게 본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바울을 본받게 하려 하였습니다(9절).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도 3년간 사역하면서 성도들에게 본을 보이고자 열심히 자기 손으로 일하고 수고 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동역 자들의 필요까지도 자기 손으로 해결하였습니다(유상섭).

 

  • 바울은 약한 자들을 도왔습니다.

 

우리가 이미 읽은 오늘 본문 35절 말씀처럼 바울은 에베소 교회 3년간 있으면서 약한 자들에게 특히 관심을 갖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고 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하심을 기억하면서 그는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실히 땀 흘려 일하여 번 돈으로 연약한 자들을 돕는 베푸는 삶을 바울 은 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의 의무임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관심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우리는 강하고 힘 있는 자들보다 연약 한 자들에게 관심을 더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연약한 자들을 사도 바울처럼 도와야 합 니다.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탐욕을 경계하고 열심히 수고하여 자신의 필요뿐만 아니라 연약한 자들의 필요까지 돕는 자들이 돼야 합니다.   그리하므로 연 약한 자를 도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의 돕는 사역을 통해 나타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였습니다(36절). 그러자 에베소 장로들은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베에까지 바울을 전송 했습니다(37-38절).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랑하는 목자(사역자)인 바울, 이젠 헤어지면 이 땅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에베소 교회 장로들은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그리 고 이러한 슬픔과 아픔을 가지고 바울을 배까지 배웅하며 이별을 고했습니다(유상섭). 자 기들을 사랑하여 3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고 도와주며 삶의 본을 보여준 사랑하는 바울을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헤어짐 속에서 슬퍼하는 에베소 장로들, 이젠 그들에게는 바울의 고별 설교를 듣고 그가 권면한 말씀들을 순종해야 할 책임 이 남았습니다. 바울의 권면 말씀처럼 삼가 조심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히 서있어야 하며, 바울처럼 연약한 자들을 도와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 사도 바울의 고별 설교 말씀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 일한 권면의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거짓된 선생이나 거 짓된 교리를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어떠한 흉악한 이리와 같은 자들의 거짓된 가르침과 교리 등등에 미혹되어 흔들 리며 요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하신 주님의 말 씀을 기억하고 연약한 자들을 돕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범을 보이는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가 되고 싶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히 서서 조심할 것은 조심하길 기원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