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자의 자세

 

 

 

[사도행전 20장 1-16절 말씀 묵상]

 

 

과연 여러분은 어떠한 대통령을 원하십니까? 요즘 TV나 신문 등을 보면 미국 대 통령 후보 경선이 한참 뜨겁게 열기를 다루고 있는데 공화당은 죤 메케인 후보가 확실시되 고 있지만 민주당 쪽은 오바마 후보와 클린턴 후보가 막상막하의 대결을 버리고 있습니다. 미 성공회와 조그비 풀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는 이렇습니다[크리스천 투데이, 2. 20. 2008]: 이번 조사는 미전역서의 인종과 연령 분포에 따른 성인 1008명을 대상으로 실시되 었으며 이 중 25%가 중생한 신자였는데 미국 유권자들 대부분은 성경적 측면에서 이상적 인 리더십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이 들에게 있어서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성품은 ‘진실성’과 ‘성실함’을 꼽았으며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하는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응답이 75%에 달했다”고 합 니다. 한편 하나님을 믿지 않는 후보에게는 투표하지 않겠다는 유권자가 50%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설문조사를 보면서 느낀 것은 다시 한 번 지도자의 성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 닫게 됩니다. 특히 우리 지도자들은 진실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으로 다시 삼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자신과 우리 교회 식구들을 생각할 때 다시 한 번 우리 교회 회원 자격에 나와 있는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영적 자세들(spiritual attitudes)”을 상기하기를 원합니다. 특히 그 영적 자세들에 대해서 논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핵심 문구가 있 습니다: “당신이 행하는 일보다 당신이 어떠한 사람인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The kind of person you are is far more important than the kind of work you do).” 사역 가운데 우 리의 제일 중요한 우선순위들 중에 하나는 우리 마음 가운데 적합한 영적 자세들을 개발하 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순종, 겸손, 신실함, 일관성, 충성, 팀 스피릿(team spirit) (사역)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랑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20장1-16절 말씀 중심으로 우리 모든 교회 사역자들이 어 떠한 자세를 지니고 있어야 할지  한 4가지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 가 바울처럼 사역자들로써 합당한 자세를 지니고 있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는 모든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사역자의 자세는 위로하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0장 1-2절을 보십시오: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 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 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바울은 에베소에서 일어났던 대소요가 그치매 한 3년 동안 정 들었던 아시아 선교 본부라고 할 수 있는 에베소(유상섭)를 떠나기 전에 제자들을 불러 권 면한 후 작별 인사하고(1절, 박윤선) 마게도냐로 가서 제 2차 선교 사역 중 교회를 세운 지 역을 방문하면서 그곳에 있는 제자들에게도 권면하였습니다(2절, 유상섭). 그가 과연 에베 소에서나 마게도냐에서 그의 제자들을 어떻게 권면했는지는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바울은 그의 제자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차원에서 권면의 사역을 감당하였을 것입니다(유상섭). 특히 에베소의 제자들의 권면 경우는 앞으로 그들이 사회적 인 압박과 위협을 어떻게 지혜롭게 처리하며 성실하게 신앙 생활해야 하는지에 대해 권고했 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지난 3년간 바울이 힘써 강조했던 교훈을 상기시키는 내용도 있 을 것입니다(유상섭).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드로아에서 밤중까지 강론할 때에(7절) 졸 음을 이기지 못하고 삼층 누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라 하는 청년(9절)을 살리므로 말미암 아 그 산 유두고를 보고 사람들이 위로를 적지 않게 받게 되었습니다(12절). 이렇게 그는 가는 곳마다 신자(제자)들의 신앙을 굳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권면하였습니다(박윤선).

 

이것이 바로 우리 모든 사역자들의 자세가 되야 합니다.   우리는 형제, 자매들의 신앙을 굳게 하는 위로와 권면의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위로하고 권면해야 합니까? 성경 디도서 1장9절을 보십시오: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를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이 것은 권면의 말씀은 지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행동으로 바로 옮겨져야 그 효력이 있 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권면은 교훈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생각이나 유 익을 따라 권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하여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인 터넷). 그러면 권면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권면의 목적에 대하여 성경 데살로니가 전서 4장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 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의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이 바울의 권면의 최종적 목적은 하 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사역 자세는 위로 받기보다 위로해야 합니 다. 그리고 사랑으로 형제, 자매들을 권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사역자의 자세는 작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0장 3절을 보십시오: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 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오늘 본문을 보면 ‘작정하였다’(determined)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첫 번째 ‘작정하였다’는 단어는 3절에 나옵니다. 이 구절을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제자들을 권면한 후 작별인사를 한 후 마게도냐에서 석 달을 있으면서(3절)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 러 말로 제자에게 권면하고 배를 타고 수리아(안디옥)으로 가려고 했을 때 유대인들이 자기 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였습니다. 두 번째 ‘작정하였 다’는 단어는 오늘 본문 16절에 나옵니다. 이 구절을 보면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 는 그의 경영 가운데 치밀하게 여행 계획을 세웠는데 그 여행 계획이 오늘 본문 중 특별히 13절에서 16절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 16절에서 바울은 시간을 아끼고자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두 구절에서 우리가 볼 수 있듯이 바울의 결심은 분명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로마에서까지 가 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먼저 가고자 하는 그의 경영 가운데 치밀한 계획을 세 웠고 또한 그 계획 가운데 자기를 해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를 알고는 계획을 바꿔서라도 그의 목적지에 가고자 결심하고 노력했습니다.

 

성경에 또 다른 결심의 사람은 바로 다니엘입니다. 성경 다니엘 1장 8절을 보십시 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 장에게 구하니.” 다니엘은 결심하였습니다.   바벨 론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뜻을 정하였습니다. 그리 고 그는 실행으로 옮겼습니다. 그 결과 열흘 동안 채식을 먹고 물을 마신 다니엘과 그이 세 친구의 얼굴이(단1:12) 왕의 진미를 먹은 자들의 얼굴보다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 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였습니다(15절).

 

우리의 결심은 어떠합니까? 과연 하나님의 경영이 우리의 경영이 되어 복음 전파 로 인하여 영혼 구원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강한 결심이 있습니까? 저는 개 인적으로 찬송가 349장 3절을 좋아합니다: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으옵소서” (후렴)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내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에 이 찬송가 가사를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임: ‘주여, 내 모습 이대로 받으옵소서’.  사역 에 있어서 중요한 영적 자세는 우리가 하나님의 경영에 있어서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자 하는 강한 결심입니다. 그리고 그 결심한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사역자의 자세는 협력하는 것입니다 .

 

오늘 본문 사도행전 20장 4절을 보십시오: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 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 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이 구절에는 일곱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 습니다. 이들은 각 지역의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소바더는 바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을 때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날마다 상고한 베뢰아 교회(17:11-12), 아리스다고와 세 군도는 데살로니가 교회(17:4), 가이오와 디모데는 남부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16:1-2), 두 기고와 드로비모는 에베소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교회를, 각각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유상섭). 이들은 이방 교회 대표자들로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하여 연보한 금액을 맡아 가지고 가는 사명을 받은 자들 이였습니다(롬15:25-26; 고후8:1-2, 9:1-2)(박윤선).    이들 이 오늘 본문 사도행전 20장 5절을 보면 바울과 그의 동행자보다 먼저 두로아에 가서 그들 을 기다렸다고 말씀하였는데 결국 바울과 그의 동행자도 6절에 보면 그들과 함께 하는 것 을 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일곱 각 지역 교회 대표들은 바울과 동행하며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그 목적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금을 가지고 가는 사역을 감당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박윤선).

 

우리가 이미 사도행전19장22절에서 묵상했듯이 바울에게는 신뢰할 만한 신실한 돕 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인 디모데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20장4절에도 나옵 니다. 이렇게 신뢰 할 만한 신실한 돕는 자들과 함께 주님의 일을 협력한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많은 선교지에는 선교사님들 끼지 서로 협력하여 선교를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김회창 목사님은 그의 “협력선교의 필요성과 과제”란 글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나 되기 위한 복음을 전파 하는 선교사들이 자신의 배경이나 소속 혹은 사역 때문에 서로 경쟁하고 경계하고 불화한다 면 그것은 불의한 방법으로 선한 목적을 이루려는 어리석은 행동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 는 이렇게 강조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건전하고 효율적인 선교를 하기 위해서 개별주의적 선교자세를 지양하고 협력선교를 해야 한다. …

 

 

  • 첫째로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을 듣는 선교지 자체상황이 협력선교를 요청하고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변화되어야 할 이 세상은 철저히 분열되어 있다. 국가와 국 가 간에 분열이 있고, 종족과 종족 간에 분열이 있고, 계층과 계층 간에 분열이 있고, 부자 와 빈자 간에 분열이 있고, 지역과 지역 간에 분열이 있다. 심지어 같은 집단 내에서 혹은 한 가족 구성원 내에도 분열이 도사리고 있다. 모든 인간은 고독과 개인주의에 지쳐있다. 이 세상은 분열이라는 열병에 걸려 서서히 파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극심한 분열이 있다. 이런 세상을 선교하려는 선교사가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일치와 연합의 정신이다. 분열된 세상을 화합시키러 간다는 선교사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연합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선교사역은 무위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협 력선교는 선교의 장인 세상 자체가 요구하는 것이다.

 

  • 둘째로, 선교사들이 전하기 위해서 들고 가는 복음 자체가 협력선교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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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선교는 성서의 요청이며 기독교 진리의 요청이다. 성서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 나님은 그 본질과 사역에 있어서 연합하고 있다.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삼위 하나님은 함께 존재하셨으며, 이 세상을 창조할 때에 같이 사역하셨고, 창조 이후에 인류 역사와 우 주의 운행도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이 함께 감당하고 있다. 함께 존재하시고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이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진 인간과 사귐을 회복하고 하나가 되려는데 복음의 핵심이 있다. 이런 복음을 들고 가는 선교사들은 먼저 그들 자신부터 하나 될 필요가 있다.

 

  • 셋째로, 복음전파의 효율성을 위해 협력사역이 필요하다.

 

센크와 스투츠만은 그들의 공저 Creating Communities of the Kingdom에서 선교 지에 교회를 개척할 때 선교사들이 서로 협력하면 혼자 개척할 경우 얻을 수 없는 여러 가 지 유익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특히, 협력사역이 선교 활동에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는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함께 일하는 선교사들이나 선교단체들 혹은 교단 간의 협력사역은 효과적인 면에서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킨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하면 두 사람이 개별적으로 일하여 얻을 수 있는 효과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효과를 거두어들일 수 있다. 두 사람 이 상이 일하다 보면, 혼자서 얻을 수 없는 능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협력사역에 있 어서 서로의 영적 은사를 활용하여 선교사역에 필요한 일들을 효율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한 선교사가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선교 지는 제한되어 있지 않고 협소하지도 않 다. 협력사역을 하면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서로의 영적 은사를 발휘하여 효 율적으로 처리될 수 있다. 복음전파의 효율성이라는 면에서 협력선교는 강하게 요청되고 있다”(인터넷).

 

마지막 넷째로, 사역자의 자세는 지체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0장 16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 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오늘 본문 사도행전 20장은 지난 3년 동안 바울이 성공적인 사역을 했던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을 경유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과정 을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바울의 상세한 이동 경 로입니다(유상섭). 먼저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와(1절) 그리고 아가야 지역을 순회하였습니다(2절). 그리고6절 말씀을 보면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드로아에 가서 열심히 강론한 후 하나님의 능력으로 유두고를 살린 후(12절) 바울은 드로아 를 떠나 앗소로 갔습니다(13절). 거기서 그는 그의 동행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미둘레네 항구에 도착하여 거기서 기오 그리고 사모를 들려 각 항구에서 하루씩 정박하였습니다(15 절). 그리고 그의 계획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아시에서 지체하지 않고 급히 에베소를 방문하지 않고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16절).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밀레도에 오기까지 경과된 날수는 빌립보에서 드로아까지 5일(6절), 드로아에서 7일(6절), 드로아에서 밀레도에 오기까지 5일 (14-15절)을 모두 합치면 대략17일입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장 로들을 만나는데 걸리는 3-4일을 추가하면 20-21일 정도 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에 게 남은 날짜는 대략 30일입니다. 그는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할 계획을 가지고 있 었기 때문에 남은 날은 이보다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유상섭). 그래서 바울은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고 에베소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급히 갔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로마에까지 가 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아니 그는 예수님의 명령대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사 모했습니다.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기에 그는 지 체하지 않고 급히 예루살렘으로 향하였습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감에 있어서 여 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도전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 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수18:8).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취하러 가기 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는 여호수아의 권면은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 입니다. 어느 때까지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경영에 있어서 영혼 구원이라는 분명한 목적 을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을 어느 때까지 지체할 것입니까? 우리는 복음 전파함에 있 어서 바울처럼 지체하지 않는 조급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긴급성 (sense of urgency)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예레미야 48장 10절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 니다: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

 

사역의 자세는 위로하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사역의 자세는 작정(결심)하는 것입 니다. 복음 전하기로 작정하며 또한 그 목적을 이루는데 헌신하는 것이 바로 사역의 자세 입니다. 그리고 사역의 자세는 협력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역의 자세는 지체하지 않는 것 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사역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있길 기원합니다.

 

 

 

사역자의 성품과 자세를 중요시 하는,

 

 

제임스 김 목사

(존재에서 행함이 나와야 함을 더욱더 깊이 깨달아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