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흥왕

 

 

 

[사도행전19장8-20절 말씀 묵상]

 

 

21세기 선지자로 불려졌던 A. W. 토저 목사님은 그의 책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 가?” (That Incredible Christian)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은 유약한 그 리스도인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무엇인가 재미있는 것들로 즐겁게 해주어야만 교회에 나온 다. … 그러므로 그들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연약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기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신앙을 힘 빠진 손으로 겨우 붙들고 있다.” 과연 원인이 무 엇입니까? 세일즈맨이 그의 상품의 장점만을 강조하고 단점을 숨기듯이, 균형을 상실한 복 음전도자는 부정적인 면을 숨기고 오직 긍정적인 면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짜 복음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의 길을 가르쳐 주지 않고 천성의 길을 강조하는 것, 다시 말하면 광야가 없이 약속의 땅을 강조하는 것, 마치 죽음이 없는 부활만을 강조하 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가짜 복음입니다. 우리는 가짜 진리가 판을 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짜 진리가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도들의 마음 을 너무나 편안하게 해주되 섬기기보다 섬김을 받고 싶어 하는 나약한 그리스도인을 양육하 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짜 진리가 충만한 성도가 돼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진짜 말씀이 충만한 교회가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말씀 사도행 전19장20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말씀의 흥왕”이란 제목 아래 어 떻게 말씀의 흥왕이 우리 교회 가운데 나타날 수 있는지 한 3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 교회 가운데 말씀의 흥왕이 나타나기 위해선 우리 모두 다 주 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9장 10절을 보십시오: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성경 사도행전18장19-21절을 보면 바울이 그의 2차 선교 사역 말기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직전에 방문했던 에베소에 서 말씀을 선포했을 때 유대인들이 바울의 메시지에 대해 아주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바울에게 좀 더 머물러 주기를 요청한 일이 나옵니다. 그 때 바울은 그 요구를 거절하면서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면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바울은 그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기회 를 주셔서 다시 에베소에 온 것입니다(19:1). 오늘 본문 사도행전 19장 8절을 보면 바울은 회당에서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그랬을 때에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했습니다(9절). 이들은 바울 이 선포한 말씀을 믿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강퍅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영적 상태가 회복 불능의 완고한 불신의 상태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상태 에서 그들은 공격적으로 나왔습니다. 즉 바울의 복음을 사람들 앞에서 비방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는 제자들을 따로 세워서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날마다 강론하였습니다(10 절). 서방 사본은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집중적으로 강의한 시간을 제5시부터 제10시(오 전11시 - 오후4시)였다고 밝힙니다(Metzger). 이것은 소아시아 지역의 문화적인 관습을 잘 반영하는데 그 때 당시 오전11시부터 오후4시까지는 사실상 더위를 피해 낮잠을 자거나 휴 식을 취하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휴식 시간을 이용하여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바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적으로 배웠던 것입니다(유상섭). 그 결과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10절). “아시아”란 에베소 외에 북쪽 비두니아, 동쪽 갈라디아, 남쪽은 루기아를 경계로 한 아나톨리아(Anatolia) 반도의 서 부 해안을 따라 펼쳐진 아시아 지방을 말합니다(J.A. Harrill).   당시 에베소의 인구만도 25 만 정도에 육박했는데 그 인근 지역의 인구를 모두 합치면 숫자는 크게 상회할 것으로 보입 니다. 이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란노 강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가를 시사합 니다(유상섭).

 

여기서 “말씀의 흥왕”이이란 지역적으로 말씀이 퍼져 숫자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복 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한다면, growing words (말씀의 성장)은 growing numbers of believers and growing faith입(믿는 사람들의 숫자의 성장이요 또한 믿음의 성장)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말씀이 흥왕 하는 가운데서도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마음을 강퍅하게 하며 말씀에 순 종치 않는 무리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그 말씀을 비방하는 공격적인 자세 를 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사람들을 두 종류의 무 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 그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 아니면 그 말 씀을 듣지만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사람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순종 하는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가운데 말씀의 흥왕이 나타나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 교회 가운데 말씀의 흥왕이 나타나기 위해선 주 예수님의 이름을 높여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9장 17절을 보십시오: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 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오늘 본문 배경인 사도행전19 장11-17절까지는 바울의 손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나타났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 다.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이것은 바 울의 사역이 예수님의 사역처럼 말씀과 능력의 사역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아시아인들이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의 능력이 병 고침과 귀신 축출을 통해 나타 났기 때문입니다(유상섭).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바울이 증거하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임함과 동시에 사람들을 사탄과 귀신들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는 역사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일어난 또 다른 사건은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크게 망신당한 사 건입니다(13-16절). 어떤 유대인들이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면서 전문적으로 귀신을 축출 하는 일을 했는데 그 중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자들은 스게와의 일곱 아들입니다(스게와는 본문에서 대제사장으로 소개되었음). 이들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귀신을 축 출하려고 했지만(13절) 악령(악귀)은 그들에게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것니와 너 희는 누구냐”(15절)고 물었습니다. 악귀는 진실히 믿지 않는 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귀는 참 신자가 누구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귀의 조롱거리, 또는 침략거리가 안 되려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에 진실해야 됩니다(박윤선). 그런 후 악귀 들린 사람이 스게와의 일곱 아들에게 뛰어올라 억제 하여 이겨(16절) 저희가 상하 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였습니다.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게 된 후 두려워했습니다.   물론 이 두려움은 하나님께 대한 경건과 존경을 자아내 는 두려움 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이 모든 사 람들 앞에서 높이셨습니다.

 

여기서 “말씀의 흥왕”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므로 주 예수님의 이름이 높여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이 누구를 통해서 나타났습 니까? 악귀들도 알고 두려워하는 신앙을 가진 바울(13-16절)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악 귀들이 바울도 안다고 말한 것을 보면 바울의 신앙이 참된 것인 만큼 악귀들이 무서워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15절). 특히 참된 신앙자인 바울과 예수님이 함께 계셨기에 악귀들 은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 가운데 말씀의 흥왕이 나타나기 위해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높여져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 교회 가운데 말씀의 흥왕이 나타나기 위해선 우리 모 두 다 자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9장 18절을 보십시오: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하나님께서 이렇게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일 때 많은 신자들과 불신자들 편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18-19절). 이미 예수님을 믿은 자들이 와서 자백하며 행한 일을 고했습니다(18절). 여기서 “행한 일”이란 그들이 바울의 말씀 사역 결과로 예수 님을 믿은 이후에도 버리지 않고 여전히 행해 왔던 마술적이고 주술적인 행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유상섭). 마치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 중에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사주보고 관 상보고 또한 점을 보고 하는 사람들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겉으로는 예수님을 믿고 있었지만 그 삶은 과거의 부끄러운 삶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상섭). 19절에 등장하는 자들은 아직까지 주님을 믿지 않은 전문 주술인 들에게서 일어 난 변화입니다. 많은 자들이 주술과 관련된 책들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불살 라 버렸습니다. 이것은 주술과 관련된 책들에 포함된 내용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거짓된 것으로 고백하는 행위였습니다.   이때 불살라 없어진 책들의 값을 모두 계산하면 은화 5만 개에 상당했습니다. 한 은화가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한 드라마크와 같은 가치고 학자들이 볼 때에 그 때 불살라 버린 책들의 값어치는 50,000일의 품삯에 해당되는 엄청난 액수였습 니다.

 

여기서 “말씀의 흥왕”이란 무엇입니까? 주 예수님의 이름이 존귀케 되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을 믿는 자들로서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부끄러운 죄악을 자백하며 포기하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의 흥왕이란 주 예수님의 이름이 높여지므로 말미암아 불신자들도 회 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입니다. 그러한 말씀의 흥왕의 역사가 우리 교회 일어나길 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주님의 말씀이 흥왕 하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님 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죄악 된 옛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마치 믿지 않던 주술인 들이 주술적인 직업을 포기하고 주 님께 돌아왔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던 자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사탄이 세력과 싸워 승리하길 위하여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 다. 그 말씀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는 역사를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자복하는 가운데 말씀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Sola Scriptu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