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익을 주는 아볼로

 

 

 

[사도행전 18장 27절 말씀 묵상]

 

 

미주 복음신문을 보니깐 이광복 목사님이란 분이 “목자와 성도”란 제목 아래 이런 내용의 글을 쓰셔서 나눕니다: “동물학자의 실험 결과에 의하면 쥐는 고양이 소리만 들어도 도망하는 것을 포기해 버립니다.  살짝만 비켜 나오면 살 수 있는데도 고양이 소리에 질려 서 그 자리에서 벌벌 떨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가 바로 천적관계입니다. … 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리만 나타나면 도망도 포기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이리에게 생명을 빼앗기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은 혼자 못사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같이 있어 야 합니다”(미주복음신문). 모든 동물은 자기를 보호하는 수단이 있는데 유일하게 양은 그 런 공격적인 능력도 없고 방어적인 수단도 없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양은 느리기에 도망 가봐야 이리의 밥이 되고 맙니다.  여기서 “양”은 성도인데 “이리”는 누구입니까?  바 로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느낀 점은 양은 누군가 같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양은 누군가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를 생각할 때 성도님들은 목사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로도 적용을 해 볼수 있을 것입니 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오늘 본문 사도행전 18장 27절 말씀에 제 자신을 비춰볼 때 저는 저희 교회 식구들에게 “유익을 주는 목회자’가 돼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 18장 27절 말씀 중심으로 “유익을 주는 아볼로”란 제목 아래 과연 유익은 주는 아볼로는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한 5가지로 묵상하면서 제가 목사로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면 유익할 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서 말씀을 선포하고자 하는 것이며 듣는 여러분은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아볼로처럼 교회 성도 서로에게 유익한 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시면서 말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첫째로, 아볼로는 성경에 능한 자였습니다.

 

성경 사도행전 18장 24절을 보십시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 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에베소에 유대인 아볼로 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왔습니다. 알렉산 드리아는 로마 제국에서 두 번째로 제일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그곳은 교육과 철학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어느 학자 말로는 그 당시 알렉산드리아 도시의 자랑은 칠십만의 책들이 있 는 대학 도서관이었다고 합니다. 아볼로는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였습니다(24절). 여기서 “학문이 많고”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과 “학식이 있는” 사람. 또한 그는 “성경에 능한 자”였는데 그 말은 성경을 잘 알 뿐 아니라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비결을 잘 활용하여 사단의 궤계를 능히 막기까지 함을 말합니다(칼 빈). 성경 디모데후서 2장 15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둘째로, 아볼로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성경 사도행전 18장 25절을 보십시오: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 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는 주님의 도에 대해 체계적인 가르침을 이미 받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관한 내용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 중심 으로 구약을 이해할 수 있는 훈련을 철저하게 받았기에 그리스도에 관한 구약의 예언에 대 해 정확하게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볼로는 끊는 열정으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여기서 “열심으로”란 부사는 헬라어 본문 그대로 번역하면 “그 영으로 타오르다”입니다. 칼빈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는(아볼로) 가르치기 위하여 거룩한 열정으로 불타올랐다. 열정이 없는 교리는 정신이상자의 손에 있는 검같던지, 쓰이지 않고 아직도 차갑던지 혹은 헛되게 쓰이던지 악한 자랑에 쓰일 것입니다. 우리는 배운 사람들이 게을러지는 것을 봅니 다. 다른 이들을 더 심하게 야심을 품습니다. 그리고 제일 나쁜 것은 다툼과 언쟁으로 교 회를 어렵게 합니다. 그러므로 열정이 없는 교리는 매력이 없습니다.’ 성경 로마서 10장 2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 이 아니라.”

 

셋째로, 아볼로는 담대하였습니다.

 

성경 사도행전 18장 26절 상반 절을 보십시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  아볼로는 에베소 회당에서 주님의 도를 담대히 선포하였습니다.   아볼로 의 이 담대함은 구약 말씀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과 확신이 있으면 사람은 담대할 수 있습니다. 만일 아볼로가 성경에 능하지 못하고 열정만 있었다면 그의 담대함은 감정적인 것으로써 식어질 확률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근거 함과 더불어 열정까지 있었기에 그는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 사도행 전 4장 31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넷째로, 아볼로는 배우는 자세가 있었습니다.

 

성경 사도행전 18장 26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 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아볼로가 성경에 능한 자였지만 요한의 세례만 알았기에 아볼로의 부족한 가르침을 듣고 교정해 주고자 그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아볼로의 겸손한 마음, 즉 배우려는 자세입니다.   그는 탁월한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평신도 부부의 초대를 받아 그들의 집에서 자기 메시지를 보충하는 말씀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자신이 알 지 못하는 것에 대해 평신도로 부타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유익을 주는 성도는 배우는 자세가 돼 있는 겸손한 자입니다. 제자는 배우려는 자 세가 있어야(learnable) 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입니다(잠언 1:5).

 

다섯째로, 아볼로는 은혜를 아는 자였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8장 27절을 보십시오: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 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를 배워서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임을 확실히 알고난 후에는(26절) 지식보다도 은혜가 앞서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은혜로 말미암아 남들에게 유익을 주게 되 었습니다. 지식은 우리를 교만하게 할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겸손케 합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8장 1-3절이 생각납니다: “…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 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유익한 목회자는 성경에 능합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열심과 배우려는 자세가 있습 니다.   그는 담대합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압니다.   저는 이러한 유익한 목회 자가 되고 싶습니다.

 

 

 

성도님들에게 유익을 주는 목사가 되고 싶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가는 성경에 능한 자로 세움 받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