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능력

 

 

 

[사도행전 16장 11-40절 말씀 묵상]

 

 

레이 프리차드는 “생각을 뛰어넘는 기도”라는 제목의 글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 기도는 너무 작다!” … “’종교개혁의 아버지 마틴 루터에게는 프레드릭 마이코니우 스라는 좋은 친구이자 조수가 있었다. 1540년, 마이코니우스는 병들어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죽음을 기다리며 루터에게 편지를 보내 다정한 작별 인사를 전했다. 루터는 그 글을 읽자마자 회신을 보냈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대가 살 것을 명령한다. 왜 냐하면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아직 그대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주님은 절대로 그대가 죽었다는 말을 내가 듣지 않게 하실 것이며, 그대가 나보다 더 오래 살도록 하실 것 이다. 이것을 위해 나는 기도하고 있다. 이것이 내 소원이니, 내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 되게 하기만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 글이 대담하고 막무가내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루터의 답장이 도착했을 때 말할 기운조차 없던 마이코니우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6년을 더 살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루터가 세 상을 떠나고 두 달 후에 죽음을 맞이했다. 기도의 능력에 대한 얼마나 놀라운 간증인가! 이렇게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하는가? 믿음으로 기도하라”(인터넷).

 

지난 주 수요기도회 때 시편69편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떠한 자가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지 한 네 가지로 묵상했었습니다. 그 네 가지 중 첫 번째가 바로 “주님을 찾 는 자” 또는 “주님을 바라는 자” 혹은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자임 을 배웠습니다(시69:6). 시편 기자 다윗은 그를 미워하는 참으로 많고 강한 원수들이 그의 생명을 끊고자 하는 핍박으로 인하여 그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1절) 하 나님을 간절히 찾았습니다. 특히 그러한 고통 중에 있을 때에 그의 형제들까지도 그를 외 면하는 외로움 속에서 긍휼이 여길 자와 위로할 자를 찾았지만 찾지 못하므로 말미암아(20 절) 다윗은 더욱더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성경 잠언 8장 17절을 보십시오: “나를 사 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16장11-40절 말씀 중심으로 “기도의 능력”이란 제목 아래 한 세 가지 사건을 통해서 기도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 다.

 

첫째로 기도의 능력이 나타난 사건은 자주 장사하는 루디아와 그녀의 가정 에 나타났습니다.

 

결론적으로 루디아와 그녀의 가정에 나타난 기도의 능력은 그녀와 온 가정이 다 예 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행16:15).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은 성령님의 인도 하심 따라 하나님께서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자기들을 부르신 줄로 인정하고 (10절)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11절) 거기서 마게도냐 지경의 첫 성이요 로마의 식민지였던 빌립보에 이르러 수일을 유하다가(12절) 안식일에 그들이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로 나아갔습니다. 주로 사도 바울은 선 교에 있어서 언제나 유대인 회당을 출발점으로 삼았는데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 회당을 언급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빌립보 성에는 공식적인 유대인 회당이 없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바울과 그의 일행은 유대인 회당으로 향할 수가 없어 기도처를 찾았습니다. 그 때에 만난 사람이 바로 두아디라 성의 자주 옷감 장사하는 루디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루디아란 여자는 큰 재력가였습니다(유상섭).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그 당시 소아시아 에베소 근처에 있는 두아디라 성은 옷감을 자주색으로 염색하는 산업의 중심지로서 자주 옷 감은 귀족을 상대로 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당시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업종 이였기 때 문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주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이것이 바로 기도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 고자 하는 그 영혼의 마음을 열어주시사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반응케 하십니다. 다시 말 하면, 기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복음을 듣는 자들의 마음 문을 열어주시게 하는 방법입니 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능력이 기도 가운데 있습니다.  물 론 마음 문을 열어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습니다.  루디아 외에 그 기도처에 다 른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님께서는 루디아의 마음 문만 열어 주시사 바울의 말을 청종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는 바울과 그의 일행의 기도 가운데 일어졌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 에스겔 36장3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한 우리 에게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  하나님께서는 그의 주권 속에 서 뜻하시고 계획하신 바를 이루시지만 그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심에 있어서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이루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언젠가 오늘 본문 중심으로 기독교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는 어느 이민 교회 목사님 의 설교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 때 그 목사님이 ‘기도하는 사도 바울과 기도하는 루디 아가 만났다’는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마음에 다가온 말씀 이였습니다. 하 나님을 공경하였던 루디아, 그러나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치 못하고 있었던 루디아, 그녀가 기도처에서 다른 여인들과 앉아 모여 있었을 때 하나 님께서는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을 아시아로 가려던 것을 막으시고 결국 마게도냐로 향하게 하시사 결국 루디아의 마음을 여시사 바울의 말씀을 청종케 하시므로 빌립보 교회의 첫 회 심자로 만드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까? 결국 오늘 본문 사도행전 16장 15절을 보면 저자 누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 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하니라.” 하나님께서는 루디아와 그녀의 가정을 회심시키시사 빌립보 교회의 시작 청신호를 알리셨고 결국 빌립보 교회를 통하여 더 나아가서 유럽 선교의 길을 열으셨습니다.

 

둘째로 기도의 능력이 나타난 사건은 귀신들린 여종에게 나타났습니다.

 

이 두 번째 사건도 첫 번째 사건인 루디아의 구원의 역사와 유사한 점은 바울과 그 의 일행이 “…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영에 사로잡힌 귀신 들린 여종 하나[무당과 같은 자 (박윤선)]를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한 사건입니다(16절).  다시 말하 면 두 사건 모두 다 기도와 연관이 있습니다.  기도의 능력이 나타난 첫 번째 루디아 사건 도 바울과 그의 일행이 기도처를 찾다가 루디아를 만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었고 이 두 번째 사건도 바울과 그의 일행이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물론 두 사건의 다른 점은 루디아는 구원을 받은 반면 귀신 들린 여종은 영적 구원이 아닌 육신적 건지심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귀신 들린 여종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서 귀신이 즉시 나 오게 된 치유의 사건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선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기도 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나타내는 강력한 도구임을 볼 수가 있습니다(유상섭).  흥미로 운 것은 과연 이 무당 같은 여인이 예수님의 구원의 길을 알고 있었냐는 질문입니다. 17절 을 보십시오: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 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하며.” 이 구절을 한국어 성경으로 보면 이 귀신 들린 여자는 “구원의 길”을 아는 듯해 보이지만 원어 성경 헬라어를 보면 이 “구원의 길”이란 말씀 앞에 “그”라는 관사가 없습니다.  그 말은 이 귀신 들린 여자는 오직 한 구원 의 길인 예수님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구원의 길들 중 예수 그리스도가 그 중 하나라는 것을 외쳤던 것입니다. 이 귀신 들린 여인은 많은 날 동안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의 뒤를 좇아오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외쳐대므로 바울 일행을 성가시게 하고 괴롭혔습니다(유상섭). 아마도 바 울과 그의 일행은 이 귀신 들린 여자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기는 하였지만(“지극히 높은 하나님”) 잘못된 구원의 길을 계속 바울과 그의 일행을 좇아 다니면서 외쳤기에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많은 날 동안 괴로움을 당하다가 하루는 자기와 일 행을 좇는 귀신들린 여인에게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외쳤던 것입니다(18절). 그 때 귀신이 즉시 나왔습니다 (18절). 바울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 귀신으로 하여금 순종케 하였던 것입 니다.

 

성경 사도행전3장6-8절을 보면 이와 비슷한 치유의 사건이 나옵니다. 성전 미문 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던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에게 사도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 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을 때 앉은뱅이 된 자가 뛰어 서서 걸 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치유의 역사의 근거는 바로 예수님의 권세입니다. 사도 베드 로 속에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앉은뱅이가 치유를 받았던 것처럼 오늘 본문 에서도 귀신 들린 여자가 치유를 받은 것은 사도 바울의 능력이라기보다 바울 속에서 역사 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치유를 받은 것입니다(유상섭).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이 예수 님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를 받는 역사를 사모 해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기도의 능력이 나타난 사건은 간수와 그의 가정에 나타났습니다.

 

이 마지막 세 번째 사건은 두 번째 사건과 연관돼 있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 도의 이름으로 귀신 들린 여자를 치유하므로 말미암아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market)로 관원들에게 끌어가서(19절) 결국 관들이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를 많이 친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 하여 든든히 지키게 하였습니다(22-23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내일이면 처형당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였을 때(25절)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문이 다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26절). 그 때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 생각 하고 자결하려고 하였습니다(27절). 그 때 바울은 간수가 자결하려는 것을 막은 후 (28절)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한 간수는(29절)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나온 후 “선생들 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질문하였습니다(30절). 그 때 사도 바울의 대 답은 바로 이것 이였습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 리라하고”(31절). 그런 후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간수와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 하였습니다(32절).  그 결과 “…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34절).  그러므로 큰 기쁨이 그 가정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 간수와 그의 가정의 구원의 역사 이야기를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구절은 바 로 25절입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 라”. 여기서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는 감옥에서 구출을 바라는 기도가 아니 라,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기도였습니다(유상섭). 칠흑같이 어두운 한 밤중에 감 옥에 갇혀 두 발이 착고에 매인 상태로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돌리는 기도를 드렸다는 것 은, 그들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난 받는 것을 달게 받아 들였는지를 보여줍니다(유상섭). 이것이 바로 사도들의 자세였습니다: “사도들은 그(예수 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 라”(5:41).  이것이 바로 기도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기도의 능력 은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큰 지진이 일어나 바울과 실라가 갇혀 있었던 감옥까지 흔들 리게 하여 옥문들이 다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게 하였습니다(26절). 그 결과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건짐을 받았다기 보다 그들을 지키고 있었던 간수와 그의 온 가정이 하나님을 믿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34절).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은 기도의 능력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세상의 수많 은 그리스도인 일꾼들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기도하지 않고 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재의 연구와 교회 일에 열심히 매달리고 설교와 사람들과의 대 화에 정성을 쏟지만 끊임없는 기도가 부족하다. 성령의 확실한 약속과 위로부터 오는 능력 의 통로인 기도가 없다. 강력한 영적 삶이 부족한 이유는 다름 아닌 기도하지 않는 죄 다!”(인터넷).

 

 

 

기도의 능력을 더 크게 체험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길 사모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