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도행전 14장 8-18절 말씀 묵상]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타락 한 영혼들은 절망 중에 있고, 마음속으로는 자신을 구원해 줄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황폐해진 사회와 이웃을 향해 해야 할 가장 급 선무는 진리와 자유를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전 도를 하지 못하는 이유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전도하면 남을 강요하는 것이 되며 신 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전도할 때 상대가 거절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때 문입니다. 셋째, 신앙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예수 믿는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생활에 거리끼는 점이 많을 뿐만 아니라 구원의 확신도 없고 복음의 내용도 확 실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더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전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입니 다.   서툴게 말할지라도 영혼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고 하나님의 역사입 니다. 만약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기뻐할 대상은 사탄뿐입니다. 전도는 영적 싸움 입니다. 악의 세력이 이기느냐 성령의 역사가 이기느냐 하는 싸움의 시작입니다. 영혼을 죄와 심판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뿐이라는 사실을 늘 기 억하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임을 가슴 깊이 새기고 복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인터넷).

 

오늘 본문 말씀 사도행전 14장8-18절을 보면 바나바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루스드라 사람들을 향하여 달려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특히 15절을 보면 두 사도는 왜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왜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그 두 가지 이유를 묵상하면서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 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이유는 헛된 일을 버리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 15절을 보십시오: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헛된 일”이란 신들을 인간으로 형상화하여 섬기는 이방 종교를 가리킵니다(유상섭).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도망하여 ‘루스드 라’라는 이고이오에서 한 30마일 서남 쪽에 있는 도시로 갔었는데(8절, 박윤선) 거기서 걸 어 본적이 없는 앉은뱅이를 바울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침을 받아 뛰어 걷게 되었습니다 (9-10절). 그 때 무리들이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그 지방 사투리인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라고 외쳤습니다(박윤선). 그러면서 이 들은 바나바를 로마의 최고신인 쥬피터(Jupiter) 신을 가리키는 헬라어 명칭인 “쓰스”(Zeus) 라고 부르고 바울은 대변하는 신인 “허메”(Hermes)라고 불렀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루 스드라 무리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우상화했습니다. 그들은 성문 밖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제사장은 급히 황소와 화관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성문에서 무리들과 함께 두 선교사에게 제사하려고 하기까지 했습니다(13절).  그 때 바나바와 바울은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 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 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라고 외쳤습니다(15절).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복 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그리한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이 헛된 일, 즉 사람을 신격화 하 는 우상숭배의 죄를 버리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라고 말씀하고 계 십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으신 분들은 오늘 바울과 바 나바가 전하는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이 세상의 헛된 일을 버려야 합니다. 즉,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죄악된 본능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롬1:23). 다시 말하면, 우리의 죄악 된 본능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 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롬1:25). 그러므로 복음을 받아들인 다는 것은 이러한 우리의 죄악 된 본능을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돌이켜야 합니다. 우상숭배의 죄를 버려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라면 오늘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명한 말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 라 …”(빌1:27).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먼저 돌이켜야 한다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하면,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주님께 더욱더 가까이 나아감에 있어서 방해가 되고 있습니까? (딤후 3:2-5) 자기 자신을 사랑함입니까? 돈을 사랑함입니까? 자긍?  교만?  훼방?  부 모님을 거역하는 것? 감사치 아니하는 것? 거룩하지 아니하는 것?  무정한 것?  원통함 을 풀지 아니하는 것?  참소하는 것?  절제하지 못하는 것?  사나운 것?  선한 것을 좋아 하지 않는 것?  배반하는 것?  조급한 것?  자고한 것?  쾌락을 사랑하는 것?  경건의 모 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것?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한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 15절을 보십시오: “…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궁극적인 목적은 그 들로 하여금 헛된 일인 우상 숭배를 다 버리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였 습니다. 언제까지 루스드라 이방인들은 헬라 전설인 죽은 신들인 쓰스(Zeus)나 허메 (Hermes)를 섬길 것입니까?    그들은 전설을 믿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루스드라 사람들 은 죽은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죽은 신들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복음 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지나간 세대(과거)에 모든 족속들 이 자기의 길, 즉 우상을 섬기는 생활을 하였을 때 묵인하셨지만 결코 자기 자신을 증거하 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선포하였습니다(16-17절).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방인들에게도 그를 알게 하시는 증거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연계에 나타나신 능력과 혜택입니 다.   그 실례로 바나바와 바울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셨음을 들었습니다(17절, 박윤선).   이것들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인간세계를 향한 보편적인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유상섭).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불신자들은 핑계할 것이 없습니다. 결코 하나님을 몰라서 경배하지 못했다는 변명이 불가능합니다. 그 이유를 로마서 1장20-21절에서 바울은 이렇 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 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 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께서 지나간 세대의 모든 민족들 우상을 섬기 는 생활을 했어도 묵인하셨다는 말씀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들의 죄가 정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끈질긴 인내로 참아 오셨음을 말씀하고 있습 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끈질긴 인내로 참고 계신 것입니까? 그 이유를 바울은 이렇게 말 하고 있습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2:4).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회개케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즉, 이방인 민족들을 향하여 길이 참으신 것은 회개하고 우상 생활의 죄를 다 버리고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 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 18절을 보면 바나바와 바울을 통하여 이 복음을 들은 루스드라 사람들은 “자기의 길들”(16절)인 우상을 섬기는 생활을 버 리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바 나바와 바울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하는 것을 바나바와 바울이 겨우 말렸습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1장 9절 을 보십시오: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버릴 것은 확실히 버 리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1:9).   그 리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렸습니다(10절).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 복음을 전하시는 이유는 헛된 일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 리가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면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또한 세상에 헛되고 헛된 일 속에서 살아가는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헛된 일들을 버리고 또 버리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복음을 통하여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계속해서 일어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