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말씀

 

 

 

[사도행전 14장 1-7절 말씀 묵상]

 

 

“로기스모이(Logismoi)”란 말은 희랍어로서 사막의 교부들이 사용하였던 단어입니 다. 이 단어는 죄를 짓게 만들고 절망에 빠트리는 거짓 생각과 욕망을 가리킵니다. 로기 스모이는 성경에 어긋나는 마귀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나쁜 일, 그리고 타락한 말 과 행동을 반드시하게 만듭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고 합니다: “우 리는 종종 악한 생각들과 걱정에 억눌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 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말씀을 통해 계시하시고 깨닫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묵상을 시작하는 이유다”(인터넷).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어떠하십 니까? 혹시나 죄를 짓게 만들고 절망에 빠트리는 거짓 생각과 욕망(로기스모이)으로 말미 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시지는 않은지요?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3절 말씀을 보면 저자 누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 “은혜의 말씀” 이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핍박을 받아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는(13:50) 그들을 핍박한 유대인들을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온 것입니다(51절).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 는 바울의 기본 원칙 따라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힘 있게 전하였습니다(박윤선). 그 때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성내 무리가 두 그룹으로 나뉘어졌 습니다(4절). 저는 그 두 그룹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어느 그룹게 속해 있어야 하는지 교훈 을 받고자 합니다.

 

첫 번째 그룹은, 은혜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은혜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은 어떠한 자들 이였습니까?

 

  •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의 말씀을 대적하는 이 무리들은 예수님을 불신하는 자들 이였습 니다. 이 첫 번째 그룹인 은혜의 말씀을 대적한 자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은혜의 말 씀인 복음을 듣고 나서도 그 복음의 핵심인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들 불신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13:48).   다시 말하면, 은혜 의 말씀인 복음을 대적하는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 은혜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은 불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 4절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은혜의 말씀을 듣고 이고니온 성내 무리가 나뉘어졌는데 그 첫 번째 그룹을 가리켜 유대인을 좇는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누구냐면 오늘 본문 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순종치 아니하는”이란 말 이란 헬라어 단어는 ‘설득을 당하기 싫은’ 혹은 ‘신앙을 억제하므로 순종하기를 억제하는 것’이란 뜻입니다. 불신앙과 불순종이란 연결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것, 곧 불신앙은 불순종입니다. “순종치 아니하는”이란 말씀은 “복음을 믿지 않고 또한 반 역하기까지 하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박윤선). 이들의 반역적인 행동은 무엇 이 였습니까? 그것은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는 자들인 성도 (신자)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였습니다(2절).

 

  • 은혜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은 주님의 종들을 핍박하는 자들입니다성경 사도행전 13장 5절을 보십시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믿지 않는 불신자 유대인들의 편에 선 일부 시민들과 유 대인들과 관원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공개적으로 능욕하고 돌로 쳐 죽이려는 음모를 세웠습 니다(박윤선). 이들은 공식으로 합작하고 주님의 종인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였습니다. 핍박하되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쳐 죽이려고까지 하였습니다. 마치 불신자 유대인들이 스 데반을 돌로 쳐 죽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은혜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은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이요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임을 명심하십시다.   이들을 세 마디로 말하면 ‘불신하는 자들’, ‘불순종하는 자들’ 그리고 ‘핍박하는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이들은 복음과 예수님만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자들 또한 대적합니다.

 

두 번째 그룹은, 은혜의 말씀을 좇는 자들입니다

 

은혜의 말씀을 좇는 자들이란 누구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복음을 좇는 자들입 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는 자의 죄를 거저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복음”을 좇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고 하나님 께 돌아온 무리들입니다. 이들은 두 사도인 바울과 바나바를 좇는 자들 이였습니다(4절). 이 은혜의 말씀을 좇는 자들을 한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 이 은혜의 말씀을 좇는 자들은 믿습니다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 1절을 보십시오: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 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이들은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입니다(13:48). 그러기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믿음을 선물로 받아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환영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도무지 믿지 못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 물로 주시기에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인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13:41).

 

  • 이 은혜의 말씀을 좇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 좋은 예를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과 바나바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 다.   그들은 어떠한 역경과 핍박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선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 3절을 보십시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 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예수님을 믿는 형제들에게 악심을 품게 한 상황에서도(2절)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오히려 더욱 담대하게 은혜를 말씀을 증거하며 표적과 기사를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능력 있는 사역과 말씀의 담대한 선포를 충분한 기간 동안 행하였습니다(유상섭). 그 이유는 그곳에 머물음이 평안한 까닭이 아니 고 핍박과 난관이 있었던 까닭 이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을 떠날 수가 없었습 니다. 그 이유는 믿는 형제들이 곤란에 빠진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 나바는 더 머물러 있으면서 성도들의 돕고자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말하였습니 다(박윤선). 그러한 가운데서 능욕을 당하고 생명의 위험을 느꼈을 때 바울과 바나바는 도 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 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였 습니다(6-7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좇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 에서 자라면서 하나님의 계명(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 혜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좇으십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 을 사모하는 지혜를 구하십시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떻게 우리에게 찾아올까요? 하나님의 은혜는 말씀을 통해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은혜를 담아두셨습니다. 말씀의 본 체는 예수님이십니다. 말씀이신 예수님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곧 말씀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은혜의 원천이십니다. 은혜의 샘물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을 충만히 받아 우리 내면에 간직해야 합니다. 말씀은 보배입니다. 말씀은 미래를 창조하는 씨앗입니다. 말씀은 치유하는 능력입니다. 말씀은 능력입니다. 말씀은 지혜입니다. 말씀은 생명입니 다”(인터넷).

 

 

 

은혜의 말씀을 사모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말씀의 순종의 축복을 누리고 싶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