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는 위로자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사도행전 11장23절)

 

'과연 나는 내 삶에 무엇을 보고 있으며 또한 무엇을 보길 원하는가? 나는 내 가정 가운데 무엇을 보고 있으며 내가 섬기는 교회 공동체 가운데 무엇을 보고 또한 보길 원하고 있는가?'란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져 보았습니다. 교회적으로는 양적 성장을 보길 원하는 ' 유혹'도 있을 때가 없지 않아 있고 질적 성장인 믿음의 진보를 간절히 보고 싶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교회적으로는 사도행전 4장 말씀에서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말씀인 (1) 기 도의 능력 --> (2) 성령 충만 --> (3) 담대히 복음전파 --> (4) 주님께서 믿는 자를 더 하심 --> (5) 사랑의 공동체를 보길 원하고 있습니다. 가정 적으로는 우리의 죄를 볼 때 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 적으로는 제 평생 기도제목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정 식 구들이 서로 사랑하며 또한 서로의 삶 가운데 예수님을 볼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 다. 개인 적으로는 주님이 저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인 요한복음 6장 1-15절 말씀이 성취 되길 간절히 보길 원하며 또한 주님의 종으로 섬기는 교회에 주신 약속의 말씀인 마태복음 16장18절 말씀이 성취되어가고 있음을 제 자신과 교회 지도자들에게서 보고 있습니다.   그 러나 오늘 본문 사도행전 11장 23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도전은 바나바처 럼 하나님의 은혜를 보기를 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제 자신과 가정과 특히 교 회 가운에 하나님께서 타나내시는 영적운동(spiritual revival)을 볼 수 있길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성경 사도행전 11장 21절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였던 위로자 바나바가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가운데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21절)는 은 혜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는 과연 어떠한 위로자였는지 한 3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 다.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는 위로자는 굳은 마음으로 권하는 자입니다.

 

성경 사도행전 11장 23절을 보십시오: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 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여기서 "굳은 마음"이란 말은 '마음에 목적을 세워가지고"(with purpose of heart)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을 보면 스데반의 순교와 관련하여 일어난 대대적인 박해로 인해 흩어진 자들이 소아시아 지역 인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와서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복음을 증거하였습 니다(19절). 이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흩으신 목적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극소수가 안디옥에서 헬라인들에게도 주 예수님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파하였습니다(20절). 그 결과 놀라운 개종의 역사는 유대인들에게보다 헬라 인들 편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는 마음이 주님의 목적을 세워가지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던 극소수의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들에게는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 문입니다(21절). 주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일을 감당했던 이들의 이방인들 복음 전파 에는 놀라운 열매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면서 새로 믿는 초신 자들을 굳은 마음으로 권면하였습니다. 그의 권면 내용은 '주님께 붙어있으라'였 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나바는 그들에게 주님께 지속적으로 충성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이방인 초신 자들은 다시 옛 본능대로 안디옥의 삶인 이방인들의 우상들을 섬 기며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다시 타락할 위험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나바는 이들에게 우상숭배 유혹가운데서 주님께 끝까지 충성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안디옥이라는 도시는 제가 살고 있는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와 비슷하다고 생 각합니다. 로마 왕국에 3번째로 큰 도시였던 안디옥(로마, 알렉산드리아, 그 다음이 안디옥) 은 놀라운 건물들(magnificient buildings)들과 발달된 길, 또한 바쁜 항구 및 부의 중심 도 시였습니다. 그 도시에는 헬라 신들, 로마 신들 그리고 시리안 신들이 숭배를 받았습니다. 그러한 환경 가운데 있는 이방인 초신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했던 바나바는 주님께 지속적으로 붙어있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5장4절 말씀이 적용 구절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주님 안에 붙어 있는 다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 를 보고 기뻐하는 위로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되 주님께 붙어있으라고 마음에 이 목 적을 세워가지고 권면하는 자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는 위로자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인 것입니다.

 

성경 사도행전 11장 24절을 보십시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 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이 24절 처음에 나오는 접속사 "for"(영어성경 NASB에 나와 있고 한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음)는 23절을 설명해주는 구절입니다. 즉, 24 절은 23절의 설명 구절입니다. 바나바가 굳은 마음으로 이방인 초신 자들을 권면할 수 있었 던 이유는 그의 사람 혹은 신앙인의 됨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은 존재(being)에서 행함(doing)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착하고 영적으로 풍성한 은혜 의 소유자가 돼야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면서 형제, 자매들을 위로하며 권면할 수 있 습니다. 그리할 때 바나바처럼 그를 통하여 "큰 무리가 주께 더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 다(24절).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는 위로자는 가르치는 자입니다.

 

성경 사도행전 11장 26절을 보십시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 을 받게 되었더라.” 안디옥 교회에 큰 무리가 주님께서 더하시므로 교회가 양적으로도 성 장하니깐 바나바 혼자서는 목회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소까지 가서 사울, 즉 바울을 만나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 "(26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는 자는 바나바처럼 목회자들끼리 경쟁의식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팀 목회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일 년간 가르친 결 과는 놀라왔습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Christians)이라 일컬음을 받 게 되었더라"(26절).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 바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그들도 바나바가 보았던 하나님의 은혜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쁨으로, 또한 인격적으로 1년간 열심히 가르친 결 과, 안디옥 교회의 새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매우 닮은 추종자들로 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는 과연 나의 삶, 나의 가정, 나의 교회 가운데 무엇을 보고 있으며 무엇을 보길 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 봅니다. 그 대답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길 원하다 는 고백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나 자신과 가정 식구들과 교회 성도님들을 마음에 목적 을 세워가지고 권면하길 원하며, 나의 됨됨, 가정의 사람 됨됨, 그리고 교회 성도님들의 사 람 혹은 신앙인 됨됨이 바나바처럼 영적으로 은혜가 풍성한 소유자가 되길 간절히 원합니 다. 하나님의 은혜로 진리의 말씀을 기쁨으로 또한 인격적으로 잘 가르치므로 말미암아 하 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는 자들이 더하는 역사가 있길 간절히 기원합 니다.

 

 

 

오직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간절히 고백하길 원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