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관대”

 

 

 

[사도행전 11장 1-18절 말씀 묵상]

 

 

여러분들은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비난 할 때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비판을 진주로”라는 피영민 목사님(강남중앙침례교회)의 글입니 다: “바다 밑 모래 바닥에서 조개가 숨을 쉴 때, 잘못하여 모래알이 조개의 몸속에 박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연약한 살 속에 거칠고 딱딱한 모래알이 박히면 그 조개는 살을 가르는 통증을 없애려고 자기 몸의 진액을 짜내어 끊임없이 모래알을 에워싸고 또 에워싸고 인고의 세월을 보냅니다. 이렇게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이기고 나면 그 조개 속의 모래는 영롱한 색채를 내는 아름다운 진주가 됩니다. 그러나 조개의 몸 속에 들어온 모든 모래가 진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는 모래알 때문에 생긴 모진 고통을 이기지 못해 죽는 조개도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비판받는 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비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아 무 것도 행하지 않는, 아무 것도 아닌 인물이 되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비판을 통해 성숙해지고 비판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역사를 체험하며 모래를 진주로 만 들어가야 합니다”(인터넷).

 

저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 11장 17절을 보면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자기를 비난하는 할례 자들(2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 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 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저는 오늘 이 말씀에서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내가 누구관 대”란 제목 아래 오늘 본문 사도행전 11장 1-18절에 등장한 할례 자들과 베드로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힐난하는 할례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1장2-3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자들이 힐난하여 가로되 네가 무할례 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하나님께 서 환영하신 고넬료와 그 가정에 모여 있었던 모든 사람들, 베드로가 그들에게 화평의 복음 을 증거하고 있었을 때 성령님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온 사건 후 베드로는 예루살 렘에 올라가 교회 지도자들과 일반 교인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베드로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만남 속에서 할례 자 들은 베드로를 힐난하였습니다. 그 힐난한 내용은 왜 베드로가 무할례 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식사를 했냐는 비평 이였습니다. 여기서 “할례 자들”은 예수님 믿는 유대인들을 가리 킵니다. 이들이 베드로를 힐난하였다고 ‘힐난하였다’는 말씀은 ‘다투었다’는 뜻입니다. 베드 로와 다퉜던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먼저 모세의 율법을 지켜 유대인으로 귀하한 뒤에야 비로서 그리스도의 축복도 받을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였습니다(박윤선). 그랬기에 이방인 인 고넬료와 그의 집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사실에 그들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방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그 리스도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베드로와 다 투었습니다. 실제로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베드로를 힐난할 아무 근거 도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베드로가 무할례 자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식사를 한 것이 율법 에 의해 금지된 것이 아니라 랍비들의 유전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박윤선).   그러나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할례 자들이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식탁 교제한 것을 비난하는 것 같 이 보이지만은 실상은 유대인 베드로의 사역으로 인해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한 충격적인 사건을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비난은 예수님도 받았습니다. 성경 누가복음 15장 1-2절을 보면 예수님께 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탁 교제를 나눌 때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이 반 대하였을 때도 겉으로 보기에는 세리와 죄인들과 식탁 교제 때문에 원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교제가 의미하는 세리들과 죄인들의 구원 사건 때문에 예수님을 원망하였습니 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 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성경 누가복음 5장30 절에서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레위라는 세리가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 여 세리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고 비방하였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 인과 서기관들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에 그들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원망하며 비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신 것은 유대인 종교 지도 자들 관점에 있어서 말도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 님의 구원의 역사가 선민족인 자기들 유대인들에게 제한돼 있었다고 확고히 믿고 있었기 때 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의 역사가 예루살렘”(유대인)에게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 리아와 땅 끝까지였습니다(행1:8).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 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 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1-32).

 

둘째로, 설명하는 베드로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1장4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 명하여.” 자기를 힐난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인 할례 자들에게 베드로는 고넬료를 방문 하여 구원 얻을 말씀을 전했을 때에(14절) 성령님이 저희에게 임하신 사실(15절)을 차례로 설명하였습니다(4절). 그 설명은 베드로가 욥바에 시몬이라는 피장 집에 유하고 있었을 때 기도하는 가운데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본 일로 시작하여(5-10절), 때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 람들이 자기를 찾아 온 일(11절), 그 때에 성령님께서 베드로에게 의심 말고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고 명령하신 일(12절),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가서 고넬료로부터 천사의 지시대로 베드로를 초청하게 되었다는 보고를 들었다고 하는 것(13-14절)과 그리고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화평의 복음을 전하고 있었을 때 성령이 그 이방인들에게 임 하신 사건을 말하였습니다(15-16절). 그 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런즉 하나 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 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17절). 그는 그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 밖에 없고 이방인 고넬료에게 이루어진 모든 일,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 님을 선물로 받은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베드로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전인 간섭 가운데서 일어나는 구원의 역사에 통로가 돼야지 장애물이 되서는 아니 됩니다. 복음성가 중에 “축복의 통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내 안 에 나를 깨뜨리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있게 하셔서/ 온 세상을 사랑으로 품게 하시고/ 나를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메마른 땅에 단비가 되어/ 죽어가는 이들의 생수가 되는/ 하나 님의 크신 언약 전케하시고/ 나를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 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가 원하시는 곳 그 땅만 밟게 하소서/ 나를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 소서 (후렴) 나를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나를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나를 통하 여 모든 민족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신 축복을 누리게 하소서 축복을 누리게 하소 서.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할례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1장18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 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 라”. 베드로의 설명을 다 들은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인 할례 자들은 더 이상 비난할 수 가 없었기에 잠잠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베드로의 설명을 들었던 할례 자들의 마음에 확신 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확신이란 하나님께서 심지어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 셨다는 확신 이였습니다. 그러므로 할례 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베드로를 비난하고 힐난하던 할례 자들이 베드로의 설명을 듣고 이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 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유대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방 인들까지도 포함돼 있음을 깨닫게 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어느 면으로 어머니 교회(the mother church)라고 말할 수 있는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 기독교인들, 베드로를 힐난하던 이들도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는 사실을 베드로의 설명을 통 하여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이방인 구원 역사 전략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비록 베드로가 가이사랴에서 고넬료와 그의 집에 모인 모든 사람들 이 복음을 듣고 베드로나 다른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받은 동일한 성령님을 받았다고 할지라 도 선교 전략적인 측면에서 어머니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인정을 하지 않는다면 이방인 선교 전략에 있어서 차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루 살렘 교회 기둥 사도들 중에 한명인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고넬료와 그의 집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유대인들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 니라 이방인들도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므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교회 유대인 기독교인들의 힐난을 잠잠케 하시고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방인을 향하신 구원 의 역사를 인정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에 우리가 누구관데 이렇쿵 저렇쿵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니, 우리는 아무 할 말이 없어야 합 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의 일인데 우리가 누구관데 하나님을 능 히 막겠습니까.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막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막아서도 아니 됩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의 뜻을 이루 어 나아가심에 있어서 저와 여러분을 쓰시겠다고 하시면 우리는 그저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 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겠다고 하시는데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저 우리를 통해서라도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 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인생이 무엇이관데 이렇게 큰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지 알 수 없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비판과 비난 속에서도 묵묵히 주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여 쓰임 받는 주님의 일군들로 우리 모두가 세움 받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