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

 

 

 

[사도행전 10장 9-16절 말씀 묵상]

 

 

탄광촌을 방문한 어느 젊은 목사가 탄광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어둡고 더러운 갱 안의 통로에서 아름답고 하얀 꽃이 자라고 있는 것을 그는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이 시커 먼 탄광에서 이와 같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꽃이 피고 있습니까?”라고 그 목사는 광부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탄가루를 그 꽃에게 부어보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목사 가 그 말대로 했는데 놀라운 것은 탄가루가 꽃잎에 닿자마자 가루들이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그 꽃은 전대로 있었습니다. 꽃잎이 너무나 매끄러웠기 때문에 탄가루가 꽃잎에 붙지 못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소를 바꾸어도 꽃이 깨끗하게 피어나듯 이,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 수밖에 없으나 하나님은 인간이 다방면에서 죄 를 접촉한다고 해도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깨끗하게 지켜주시며, 죄악이 우리를 사로잡지 못하게 보호해주십니다. 죄악의 한가운데 서게 되는 것은, 마치 하얗고 아름다운 꽃이 갱 안에서 피는 것과 같습니다. 청결의 비결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 음의 비결, 하나님을 알 수 있음의 비결은 곧 마음의 청결에서 온다. 마음의 깨끗함은 하 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어떠한 환경에 처하 여도 완전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인터넷).

 

그런데 이 행복을 빼앗아 가려는 사탄의 계략이 있습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11장 3절을 보십시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로 하여 금 예수님을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우리로 하여금 부패케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탄의 방법 중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케 합니다.  사탄이 우리로 하여금 의심케 하 는 하나님의 말씀 중 하나는 바로 요한복음 15장 3절입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 미 깨끗하였으니.” 이 말씀은 요한복음 13장10절에 언급된 “이미 목욕한 자”로써 온 몸이 깨끗한 것을 가리킵니다. 즉, 영적인 목욕인 결과로 이미 우리는 깨끗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샤워나 목욕을 하면 깨끗하게 되듯이 우리들은 주님의 말씀으로 목욕한 결과 깨끗해 졌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영적인 목욕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중생의 역사를 가리킵 니다(유상섭). 이렇게 영적인 목욕을 한 자는 이미 깨끗한 자입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중생의 역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예수님을 향하는 깨끗함이 있습니다. 이 깨끗함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자신의 영혼을 깨 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합니다. 성경 베드로전서 1장 22절 을 보십시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과연 이러한 사랑을 우리 교회가 실천하고 있습니까? 저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 10장 9-16절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이란 제목 아래 한두 가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우리는 속되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0장 15절을 보십시오: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사도행전 9장 32절부터 보면 베드로는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서 애니아라는 8년 된 중풍 병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 로 낮게 한 후 욥바에서 이미 죽었던 주님의 여 제자 다비다 혹은 도르가를 다시 살립니다. 이런 놀라운 역사가 있은 후 베드로는 욥바에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 즉 피혁 영업을 하 는 사람의 집에서 유하였습니다(43절). 그가 그 피장 집에 유하고 있었을 때, 고넬료는 기 도하고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있었을 때 고넬료는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습니다. 그 때 하 나님의 사자가 고넬료에 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는 명령을 하 였습니다. 그 명령을 듣고(5절) 고넬료는 집안 하인 둘과 종들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욥바로 보냅니다(7-8절). 이튿날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욥바 성에 가까이 갔을 때 베드로는 머물고 있었던 시몬 집 지붕에 올라가 “제 육시”, 뜨거운 정도 때(박윤선) 베드 로는 환상을 봅니다(9절). 그 환상에서 베드로가 본 것은 저자 누가는 오늘 본문 11-12절 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 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이 환상을 본 베드로는 그 환상 중에서 들었던 하늘에서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은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13절)였습니다.   이 때 베드로의 반 응은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 나이다”였습니다(14절).   그 때에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들려주신 두 번째 음성은 “하나님 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말씀 이였습니다(15절).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갔습니다(16절). 여기서 베드로가 본 환상의 의미 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계시로서 땅의 동서남북 모든 지역, 모든 나라 들과 민족들, 인종 차별 없이 그 어디서든지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뜻입니다(박윤선). 이것은 베드로가 믿고 있었던 구약 시대의 유대교 사상과 어긋난(다른) 뜻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레위기 11장에 근거해서 볼 때에 이스 라엘 백성은 구약 시대의 어떤 종류의 동물들은 불결하다는 조건으로 먹지 못 하도록 하나 님의 법규를 받아들여 그 불결한 동물들을 먹지 않았는데 하나님은 지금 환상에서 베드로에 게 그러한 불결한 동물들을 잡아먹으라고 명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베드로가 구 약 시대처럼 그 법규를 문자적으로 지킬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박윤선). 다시 말하면, 하 나님의 명령은 이제 베드로는 신약 시대에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없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는 차별이나 편견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차별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학연, 지연, 혈연, 빈부의 차이 등 참으 로 숨이 막힐 정도로 차별을 합니다. 우리 민족이 하나님 앞에 가장 크게 회개하고, 고쳐 야 할 것이 서로를 판단하고, 차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교회도 사람을 외모로 취하고 차별하는 죄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교회 내에서 어떤 사람을 볼 때 영적인 성숙과 헌신과 영적인 정결함으로 바라보기보다 물질과 세상의 지위로 판단하는 모 습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교회가 회개하여야 할 일입니다. 만약 어떤 교회 가 가난하고, 연약한 자를 부끄럽게 만들고 괄시한다면, 부자가 높임을 받고 가난한 자가 교회에 와서까지도 고개를 숙여야하고 무시를 받는다면, 성도들이 서로 교제할 때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지위에 따라서 교제하는 그룹들이 나눠진다면 결코 참된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차별하는 것이 죄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차별하지 않기 위해 서 훈련을 해야 하는데 먼저 말투부터 고쳐야 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쓰는 말 가운데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말투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단어를 사용하기 전에 과연 이 단어 가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단어가 아닌가, 약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더 상처를 주는 말 이 아닌가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로, 수시로 우리 마음속에 차별하는 마음이 있나, 내 가 누구를 향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나, 만약 차별하고,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내 동기 가 무엇인가 살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차별하지 않는 것에서 마음속을 살피는 것에 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가난한 자, 연약한 자, 상처받은 자들을 돌 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인터넷).

 

마지막 둘째로,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은 깨끗한 것입니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먹지 않겠다고 거부한 베드로는 비록 그가 구약 레 위기 11장에 규정된 대로 불결한 동물들을 먹지 않았지만 그 규정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제된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0장 15절에서 “하나님께서 깨끗 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자 하지 말라”란 말씀에서 “깨끗케 하신”이란 말은 단순한 과거 동 사로서 역사적 사실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 셔셔 영광을 얻으신 사실로 인하여 모든 의식적 법규들이 해제된 것입니다(골2:14-15). 그 러므로 어떤 동물들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깨끗하다, 혹은 깨끗하지 않다고 하던 구분이 없 어졌다는 말입니다(박윤선).

 

안식교의 음식 문제의 교리는 이렇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의 부분이 있는데 하나 는 부정한 음식은 먹지 말라는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채식을 하라는 교리입니다. 안식교 는 레위기 11장에서 부정하고 가증하다고 하는 음식을 금하는 것을 교리로 가르치고 있습 니다.   즉 구약에서 부정하고 가증하다는 음식은 지금도 부정하고 가증하기 때문에 먹지 말 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 안식교의 교리가 성경적입니까?   레위기 11장의 부정과 가증의 규례는 구약의 규례이지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십 자가의 구속으로 이 모든 규례가 폐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에서 명백하게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너희를 폄론 치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6-17)(인 터넷). 성경 로마서 14장14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 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오히려 바 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딤전 4:3-5).

 

그러나 오늘 본문 사도행전 10:9-16절에서 말씀하는 요점은 음식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 그 음식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교훈을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 교훈 이란 다름 아닌 유대인들에 속되고 깨끗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방인들, 즉,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부정하게 여겼는데 더 이상 그러지 말 것을 베드로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말 씀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하여 베드로가 여겼던 부정한 짐승들과 같이 부정한 이방인들을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케 하셨으므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 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환상 가운데서 베드로가 부정하게 여겼던 짐승을 잡아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에게 찾아온 고넬료가 보낸 이방 사람들을 영접하고 환영하여 그들과 교제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유상섭).   마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부 정한 문둥병자를 만지시고, 부종한 죄인이로 여겨졌던 세리와 창녀들과 식탁 교제를 하셨던 것처럼 베드로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더 이상 유대인들의 정결 법을 준수하지 말고 하나님께 서 깨끗케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고 그들을 용납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 었습니다.

 

요즘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생각과 마음은 예수님처럼 사 회에서 버림받고 외면당하는, 즉 왕따 당하는 영혼들을 우리 교회가 용납하고 품고 함께 주 님 안에서 교제하면서 나아가야 겠다는 마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건강한 자에게 의 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다(눅5:31-32)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교회는 영적으로 병든 자, 죄로 병든 자들을 초청하여 주님의 사랑으로 품고 사랑으로 말미암아 회 개케 해야 합니다(32절). 성경 로마서 2장4절을 보십시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 함을 멸시하느뇨.” 교회는 세상에서 속되다고 여기는 외면당하고 버림받은 영혼들을 주님 의 사랑으로 대하며 용납하며 길이 참는 가운데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님의 나의 구세 주로 또한 주님으로 영접하는 구원의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하신 것을 우리가 속되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 리는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은 깨끗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 분을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되다 하지 말아야 합니 다.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깨끗케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영광스러운 그 날을 사모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