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는?

 

 

 

[사도행전 8장 26-40절 말씀 묵상]

 

 

오늘의 미국 목회자들의 자화상은 무엇입니까? 교회와 목회, 신앙 관련 사회조사 기관인 바나 그룹(The Barna Group)이 미국 전역에서 목회자 627명을 뽑아 '목회자 자기 인식'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 설문조사 결과 드러난 미국 평균 목회자들이 가 지고 있는 목회와 대인관계 등에 대한 자기인식에 대하여 한 7개 항목으로 요약을 했는데 그 중에 2번째 항목이 좀 오늘 본문만 연관이 있어서 나눕니다: 교육자로서, 제자훈련지도 자로서, 그리고 지도력에 있어서는 높은 자기 확신을 보였습니다.   “'나는 유능한 성경 교사 다'에 98%의 목회자들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10명의 9명은 '나는 유능한 지도자다', '분명 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10명의 8명이 '나는 유능한 제자훈련지도자다'라고 응 답했다. '지역사회에 긴밀하게 참여하고 있다'에도 10명의 7명이 긍정적인 응답을 했다.” 과연 우리 목회자들은 이 설문조사에서 미국 목회자들이 말한 것처럼 “유능한 성경 교사” 요, “유능한 지도자” 그리고 “유능한 제자훈련 지도자”입니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만일 미국 목회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자아인식대로 저나 우리 한국 이민 교회 목회자 들이 진정으로 유능한 성경 교자요, 지도자요 그리고 제제훈련 지도자라면 과연 우리의 열 매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일 수 있을 것입니다:   (1) 우리 목회자의 자아인식이 착각이던지 (2) 아니면 성도님들이 성경공부를 제대로 못하고 목 회자의 지도를 받기 거부하면서 제자 훈련을 받으면서도 제자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던 지. 이번 조사의 디렉터를 맡은 데이비드 킨너먼이란 사람은 이러한 말을 하였다고 합니 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은 했지만, 자기 교회의 당면 비전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목회자는 거의 없다. 또한 지역교회에 긴밀하게 참여한다고 하는 목회자들도, 그들의 교회를 보면 교회 담장 밖을 벗어나지 못하는 교회 중심 프로그램 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기 교회는 신학적으로 보수적이고 유능한 제자훈련 지도자라고 응답한 목회자가 다수지만, 성경적 세계관을 개발하고 있는 교인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인터넷).

 

과연 우리 교회는 어떠합니까? 우리 교역자들의 자아인식은 어떠합니까?   과연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유능한 교역자라고 생각합니까? 혹시나 유능한 제자훈련지도자 라고 생각하고는 있지 않습니까?   과연 교인들은 어떠한가?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려고 애쓰고 힘쓰는 교인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저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 8장26-40절 말씀 중심으로 “예수님의 제자는?”란 제목 아래 예수님의 제자인 빌립 집사를 통하여 과연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말씀에 비춰보면서 교훈을 받고 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제자는 성령님께 순종합니다.

 

성령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성령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우리가 성경 말씀의 가르침에 충실한 가운데 성령님께서 그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 실 때 그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순종하기로 결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통치하시고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그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인도하심 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의 삶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님께 순종하기 위해 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우리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8장 26절과 29절 말씀을 보 십시오.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빌립 집사가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빌립 집사를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26절과 29절을 보십시오: “주의 사 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26절),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29절).

 

  • 우리는 성령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떠나서 청종하고자 하는 마음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 예레미야 42장 6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 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 ….” 오늘 본문 사도행전 8장 26-27절을 보면 빌립은 주님의 음성을 순종함에 있어서 인간의 관점으로 볼 때에 좋지 않으면 이 한 두 가지 정도 있었습니다:

 

  • 첫째 문제는, 성령님께서 빌립에게 가라고 명하신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 ”는 길은 광야의 길이였습니다.

 

즉, 그 길은 위험한 길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빌립 집사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 니다. 그 때에 내시가 가던 길은 황막한 사막 길이었으니, 위험하기도 하였습니다.

 

  • 둘째 문제는, 에디오피아 내시는 피부색이 검은 이방인이였고 또한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에 신체적인 불구로 간주되는 환관, 즉 고자 된 관리였습니다(박윤선).

 

이러한 자는 유대인들의 눈에는 부정하고 불결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유상섭).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은 성령님에 음성에 순종하였습니다. 어느 면으로 보면, 빌립 집사 는 선입관이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꺼리던 사마리아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부정하고 불결한 사람으로 간주된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다가갔습니다.

 

  • 셋째, 우리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우리에게 복이 있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 예레미야 42장6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 소리를 청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의 말씀을 순종하면 축복, 불순종하면 저주입니다. 빌립은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어 떻게 했습니까? 성령님께서 ‘일어나 가라’고 명하셨을 때(행8:26) 빌립 집사는 ‘일어나 갔 습니다’(27절).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성령님께서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고 명하셨을 때에(29절) 빌립 집사는 에디오피아 내시가 타고 있었던 병거로 ‘달려갔다’는 사실입니다 (30절). 빌립 집사는 성령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에 민첩하고 즉각적 이였습니다(박윤 선). 우리는 어떠합니까?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에 있어서 민첩하고 즉각적 입니까?

 

‘나쁜 습관을 버려야 성공합니다’: “흔히 세일즈에 있어 항상 경계해야 할 3가지 나쁜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Perfection, procrastination, Paralysis”를 지적하며 이를 3P”라고 합니다(인터넷):

 

  • 첫째로, “Perfection”(완전, 완벽):

 

무슨 일에든 실패를 두려워하고 모든 면에서 '완전'하기 만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절대로 실수하면 안 되고 남에게 허점을 보여서도 안 되고 남에게 욕 을 먹어서도 안 됩니다. 하는 일마다 틀림없는 일만 해야 하고 칭찬만 들어야 하고 절대로 실수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도전적이 될 수 없습니 다.   일시적인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성공합니다.

 

  • 둘째로, “procrastination”(지연, 연기, 꾸물거림):

 

무슨 일이든 닥치면 곧 바로 하는 법이 없이 그저 '다음에 하지. 다음에 하지'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겁 많은 친구가 도둑이 담을 넘어오는걸 보고는 '이 놈의 도둑, 마당에만 들어와 봐라' 마당에 들어오니 '이 놈의 도둑, 마루에만 올라와 봐라' '방에만 들어와 봐라' 하다가 방에까지 들어와 모든 것을 훔쳐 달아나니 '이 놈의 도둑 다시 오기만 해봐라'했다 는 웃지 못 할 얘기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뒤로 미루는 사람은 이렇게 벼르기만 하다가 마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 셋째로, “Paralysis”(무기력):

 

매사에 의욕이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도도 해보지 않고 '내 주제에, 내 팔자에' 하면서 주저앉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나쁜 습관들 중에 오늘 본문과 연관해서 생각해 볼 때에 우리가 매우 경계해야 할 나쁜 습관은 바로 “procrastination”, 즉, 지연하는 것, 연기하는 것, 꾸물거리 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달음을 주시고 음성을 들려주셨을 때 에 빌립 집사처럼 즉각적으로 순종해야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순종 하기를 꾸물거리며 미룰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예로 엘리야 시대 때에 꾸물거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들 수가 있습니다. 성경 열왕기상18장21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 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 니하는지라.” 머뭇머뭇 거리는 것, 침묵하는 것, 다 순종함에 있어서 즉각적이지 못하고 민 첩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립 집사처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첩하게 즉각적으 로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빌립처럼 성령님께 민첩하게 또한 즉각적으로 순종 합니다.

 

마지막 둘째로, 예수님의 제자는 복음을 전합니다.

 

빌립 집사가 성령님의 말씀에 민첩하게 또한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모습과 에디오피 아 내시와의 대화(dialogue)를 통하여 우리는 복음 전파 방법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며 배울 점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일어나 가라”는 음성에 즉각 순종해 야 합니다그 성령님의 음성에 가는 것이 내기치 않는다고 그저 앉아서 계속 안가고 있으면 아니 됩니다.  특히 금년도 표어대로 “사람을 얻는 자”(잠11:30)가 돼야 할 텐데 사람을 얻 기 위해서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말씀으로 역사하셔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영혼(사람)에 게 일어나 가라고 명하실 때 우리는 “예”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 령님께서 “일어나 가라”고 말씀하실 때에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감 에 있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마리아 성에서 빌립 집사 를 통하여 이적도 베푸시고 또한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다가 갑자기 한 사람, 그것도 이방인이며 또한 신체적으로 부정하고 불결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에디오피아 내시에 게 빌립 집사를 보내셨습니까? 박윤선 박사님은 그의 주석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전도자 빌립 집사를 성령으로 지시하여 이방인 한 사람에게 인도하신 사실을 보고 이렇게 한 3가 지로 말을 하였습니다: (1)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구원을 위하여 열심이 계심을 우리 가 알 수 있고, (2) 둘째로, 다만 한 사람에게 전도하시기 위하여서도 얼마나 큰 성의를 기 울이심을 알 수 있고, (3) 셋째로, 그 내시가 마침 이사야의 글을 일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 서 빌립을 그에게로 인도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신자가 깨어 은혜를 사모할 때에 그를 더욱 각근히 권고하신다는 증표입니다(박윤선).

 

  • 령님께서 “가까이 나아가라”고 명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빌립 집사에게 에디오피아 내시가 타고 있었던 병거에 가까이 나아가라고 명하신 것을 보면 우리가 우리 태신 자들에게 다가감에 있어서 신중함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룹 세팅에서는 빌립 집사처럼 사마리아 성에서 백성들에게 복음을 담대히 선포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 영혼에게 다가감에 있어서는 무대포로 그냥 다가가기보다 상대 방에게 가까이 나아가 머물러 있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결국 빌립 집사는 에디오피 아 내시가 타고 있었던 병거에 가까이 나아갔을 때에 에디오피아 내시가 빌립 집사를 병거 로 초청하는(“청하여”) 모습을 보게 됩니다(31절).

 

  • 상대방 상황(입장)에서부터 대화를 하는 게 좋습니다.  여기서 상대방 상황에서 대화한다는 말은 빌립 집사가 에디오피아 내시가 타고 있 었던 병거로 가까이 나아갔었을 때에 에디오피아 내시가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는 것을 듣고 “읽는 것을 깨닫느뇨”라고 물은 것을 말합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는 말씀이 28절과 30절에 두번이나 언급한 것을 보면 에디오피아 내시는 이사 야의 말씀 중 특히 이사야 53장7-8절 말씀을 이해하려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음을 우리 는 알 수가 있습니다(유상섭). 그러기에 빌립 집사의 첫 대화 질문은 에디오피아 내가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이사야서에 관한 것이였습니다. 우리는 전도할 때에 좀 상대방 에게 민감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고민도 좀 듣기를 속히 해야 합니다. 그저 내 말하기에 바쁘면 아니됩니다. 성경 잠언 18장 2절을 보십시오: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 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그러나 명철한 사람은 어떻게 한다고 성경 잠언 20장5절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 으니라 그럴찌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 예수님을 가르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8장 35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빌립이 다가가 읽고 있는 것을 깨닫느냐고 물었을 때(30 절) 에디오피아 내시는 지도하는 사람이 없어 깨 닫을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31절) 빌립을 병거로 청한 후 읽고 있었던 이사야 53장7-8절에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빌립에게 물었습니 다(34절). 그 질문에 빌립 집사는 입을 열어 이사야 53장7-8절 글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 님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파하였습니다.   유상섭 교수님의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사 야서 53장의 내용이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같이 고난 받은 여호와의 종, 곧 고난 받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으로 이해한 학자들은 전무했다.   당시 학자들은 이 구절을 선지자 이사야 자신의 고난으로 보든가 아니면 이스라엘 국가 전체의 고난으로 보았다.   더 욱이 메시아의 고난이란 개념은 그들의 사고 속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사 람들은 이사야서에 언급된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이 다윗의 자손 메시아라고는 꿈에도 생각 지 못했다”(유상섭). 그러므로 에디오피아 내시도 이사야 53장7-8절 말씀이 이사야 선지자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행8:34)라고 빌립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에 빌립 집사는 이사야 53장7-8절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좋은 소 식으로 전파하였습니다.

 

  • 세례를 줘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8장 38절을 보면 길 다가가 물 있는 곳을 보고 에디오피아 내 시가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36절)라고 말한 후 병거를 머물 로 내려 서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28장19절 말씀을 순종하고 있는 빌립 집사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 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는 가서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삼아 교회로 인도하여 목사님을 통하여 세 례를 주도록 해야 한다고 적용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는 성령님께 순종해야 합 니다. 순종하데 우리는 성령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않음을 떠나서 청종해야 합니 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 다. 우리는 이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가서 죽어가는 영혼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제자인,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여 듣고 순종하는 자로 세움을 받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