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인해 놀라십니까?

 

 

 

[사도행전 8장 9-13절 말씀 묵상]

 

 

성령의 역사입니까, 사단의 미혹입니까?    성령의 현상과 미혹의 영의 현상을 어떻 게 분별할 수가 있습니까?    구별되는 점들을 한 다섯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인터넷):

 

  • 첫째,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의 변화와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삶으로 구 별됩니다.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자들은 한결같이 지금까지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삶으 로부터 행방되는 경험을 합니다. 그러나 사단의 역사에 의한 영적 현상은 체험한 자로 하 여금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삶을 살도록 할 뿐만 아니라 더욱 그러한 굴레에 빠져들어 가도록 합니다.

 

  • 둘째, 성령의 역사는 그가 사로잡은 자를 해방과 생명과 존엄으로 이끄나 사단 의 역사는 그가 사로잡은 자를 억눌림과 저주와 파멸로 이끕니다.

 

  • 셋째, 성령의 역사는 사단의 정체를 드러내고 그 권세를 깨뜨립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때 사단의 권세와 능력은 그 정체를 드러내고 깨뜨려집니다.

 

  • 넷째, 진리와 정결 그리고 허위와 더러운 것으로 구별됩니다.

 

  • 다섯째, 하나님의 능력에 비하여 열등합니다.

 

분별의 기준은 외형적인 유사성 때문에 신자들은 잘못 미혹의 영의 현상을 성령의 현상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양자를 구별하고 표적인 진정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능력을 체험한 장의 삶에 나타나는 열매를 살펴보아야 합니다(인터넷):

 

  • 첫째, 영의 사역을 하는 자의 가르침이 성경 말씀과 전통 교리에 일치해야 합 니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한다. 그러나 사단은 속이고 마음을 혼미케 하여 (고후4:4) 계시된 신구약 66권 이외에 다른 계시가 있다고 주장하고 전통적 교회의 가르침 과는 벗어난 이단적인 교리를 가르칩니다.

 

  • 둘째,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증거하나 사단의 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 셋째, 성령의 역사는 교회를 세우나 사단의 역사는 교회를 파괴합니다.

 

  • , 성령의 능력과 마술의 차이는 그것의 목적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성령의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으로 나타나지만 마술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이기적인목적을 위하여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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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째, 성령의 능력은 새사람이 되게 하나 사단의 능력은 불법의 종으로 만듭니다.

 

  • 여섯째, 도덕적 영적 열매를 보고 그 영적 출처를 압니다. 성령은 선한 열매를 맺고 미혹의 영은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 일곱째, 성령의 역사는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체계를 갖지만 사단의 영은 그렇 지 않습니다.

 

성경 요한일서 4장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 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저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 8장 9-13절 말씀 중심으로 시몬의 마술과 빌립 집사를 통한 이적을 생 각하는 가운데 과연 우리 가 무엇으로 인해 놀라고 있는지를 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혹시 우리는 “자칭 큰 자로 인하여” 놀라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사도행전 8장 9절을 보십시오: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성령 충만한 스데반 집 사의 순교한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1절) 그리스도의 제 자들이 흩어져 복음을 전하였는데(4절) 그 중에 빌립 집사는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았던 사 마리아 성에 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5절). 복음을 전파하면서 하나님께서 빌립 집사를 통하여 표적도 행하셨는데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앉은뱅이도 나았습니다(7절). 이 빌립 집사의 사마리 아 성에서의 사역과 표적을 말하였던 사도행전 저자 누가는 오늘 본문 서두에서는 자칭 큰 자라고 하는 시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몬이란 사람은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 오기 전부터 있었던 사람으로 그는 마술을 행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마술로 사 람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로 자부심을 가졌던 사람 이였습니다. 즉, 마술사 시몬은 마 술을 통하여 자기주장인 ‘나는 큰 자 혹은 위대한 자’임을 입증하였습니다. 마술사 시몬이 란 인물은 사마리아인들에게는 신적인 존재 혹은 이 땅에 나타난 하나님으로 간주되었습니 다(유상섭). 결국 사마리아인들 중 시몬의 마술의 속아 넘어간 자들은 이렇게 말하였습니 다: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 력이라 하더라”(10절). 자칭 “큰 자”인 마술사 시몬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그를 “크다 일컫 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였던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사마리아인들에게 큰 영향력이 있었는지 우리는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요즘 교회 안에서나 TV에서 거짓 목사들이 행하는 “이적”은 완전히 성도들의 눈을 속이는 속임수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이미 성경 마태복음 24장 24절에서 예언한 말 씀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놀라운 것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었고 또한 지금도 미혹되고 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된 표적과 기사에 미혹되고 있는 것입니까?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 데살로니가 후서 2장 9-12절을 보십시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 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며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이적”을 행한다 는 유명한(?) 목사님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행한다고 말하고 보이는 이적들 로 인하여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마치 자칭 큰 자라는 시몬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 기보다 자기의 영광을 들어내므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는 그러한 목사님의 마술 적 행위에 우리는 속아 넘어가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그들이 보이는 이적이라는 것들에 놀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둘째로, 혹시 우리는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으로 인하여” 놀라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사도행전 8장 13절을 보십시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 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성경은 마술사 시몬 을 청종하던 많은 사마리아 백성들이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 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았는데(12절) 그 중에 마술사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큰 능력입니까? 마술사 시몬을 청종하며 좇던 자들이 이젠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참 으로 이적 중에 이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칭 큰 자인 마술사 시몬까지도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후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오히려 사마리아인들을 자신이 속임수인 마술 로 놀라게 하였던 시몬 이 빌립을 통하여 나타나는 진정한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 얼마나 멋진 주님의 역사입니까? 우리가 한 가지 집고 넘어 가야 할 것이 있는데 오늘 본문 12절에 한국 성경에서는 “빌립이 …”라고 써져 있지만 영 어 성경을 보면 “그러나”(But)라는 접속사가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접속사가 우 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즉, 마술사 시몬은 마술을 행하여 백성을 놀라게 하면서 그 들 앞에서 자칭 큰 자로 여겨지는 참으로 인기가 있었겠지만 그러나 빌립은 마술사 시몬과 대조적으로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하였습니다. 흥미로 운 것은 사도행전 저자 누가가 지난주일 본문인 8장1-8절에서는 큰 핍박을 몰고 온 사울과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을 가지고 온 빌립을 대조하는 면을 보여줬는데 오늘 본문 사도행전 8장9-13절에서는 마술을 행하는 시몬과 큰 능력을 행하는 빌립 집사와 대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떠한 그리스도인이 돼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즉, 시몬처럼 속 임수를 써가면서 사람들 앞에 자칭 큰 자가 되고 자기 영광을 구하는 거짓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거짓된 그리스도인과 대조적이 돼야 합니다. 즉, 우리는 진 실 된 그리스도인이 돼야합니다. 우리는 오직 진리인 말씀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이 되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말씀과 표적과의 관계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즉, 빌립 집사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말씀만 선포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놀라운 표적의 역사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말씀 선포를 확증하는 각종 표적을 나타내셨다는 사실입니다(유상섭). 다시 말하면, 표적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우리는 던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술사 시몬 같은 경우에는 사 람들 보이게 표적인 그의 속임수 마술을 통하여 자기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칭함을 받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고 말하면, 빌립 집사 같은 경우는 그의 진정한 표적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 선포 확증이었습니다. 즉, 표적의 초점은 그 표적을 이루는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입니다. 사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빌립이 행한 표적에 일차적 인 관심을 두지 않고, 오히려 빌립이 하는 말에 전적으로 주복했던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 습니다(6절)(유상섭).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는 구절은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 들의 가르침을 집중적으로 받았던 사실을 상기시킵니다(2:42)(유상섭). 그리고 무리들이 표 적보다는 말씀의 가르침에 더욱더 관심을 기울인 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빌립의 사 역이 지속되는 동안 계속되었습니다(유상섭). 이러한 말씀 충만한 역사가 우리 가운데 지 속되길 기원합니다.

 

 

 

오직 말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