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1)

 

 

 

[사도행전 7장 17-29절 말씀 묵상]

 

 

2004년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교갱협) 제9차 영성수련회 떼 교갱협 대 표회장이신 고 옥한흠 목사님의 말입니다: “한국교회는 1910-1930년대까지 엄청난 부흥을 해서 불과 몇 천 명밖에 되지 않던 교인이 30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그 당시 부흥의 화두 는 ‘회개’였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으며, 변화되었고 삶이 바뀌었습 니다. 이후 195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불과 30만 명밖에 안되던 교인이 갑자기 1천만 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교회는 또 한 번 폭발적인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이 때 부흥의 화두는 복이었습니다.   형통이었다 라면서 ‘하지만 형통과 복에 매력이 있어서 천 만이 부흥을 했습니다마는 결국은 교회를 더 세속화시키고 타락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 다’고 언급하며 오늘 한국교회 위기의 원인을 지적하였다”(인터넷). 옥한흠 목사님은 “진정 한 지도자는 위기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처한 이 위기를 바로 사용하면 전무후무한 지도자들이 배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위기를 감지하지 못 하고 적당히 하고 넘어간다면 한국교회의 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고 말하며 목회자 자 신부터 갱신에 앞장서 줄 것을 부탁했다”(인터넷).

 

저는 “진정한 지도자는 위기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고 옥 목사님의 말씀에 일 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 교회 안에서는 진정한 지도자가 만들어져야 함에도 불 구하고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도자가 부족한 상황에 있습니다. 추수할 곡식 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한 때입니다.   특히 자격 있는 교회 일꾼들이 너무나 부족한 상황입 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인 존 스토트 박사는 오늘날 세계 곳곳을 다녀보아도 바울처럼 자기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진정한 기독교의 지도자들을 찾아보기가 너무 나 어렵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지도자들은 모두 너무 강하고 너무 지혜롭고 너 무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수많은 교회가 ‘나는 부자라’고 자랑했던 라오디게아 교회 처럼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인터넷).

 

오늘 본문 사도행전 7장17-29절에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위대한 지도자로 여기는 모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오늘 모세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지도자를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세우시는지 도전을 받기를 기원합니다.

 

첫째로, 모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기였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7장 20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 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 지금 우리는 사도행전 7장2-53절에 나오는 스데반의 연설을 묵상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한 이주 전에 그의 연설의 첫 번째 부 분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해서 묵상한 후 지난 주일에는 “요셉의 하나님”에 대해서 묵 상했습니다. 오늘 본문 7장17-29절에서는 모세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시는 과정 속에서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서 번성하여 많아졌”다고 스데반을 연설하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게 하신 약속입니다.  성경 창세기 15장5절을 보십시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 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할 때가 가까이 오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번성케 하셨습니다. 이때에 또 다른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가고 있었는데 그것 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 400년 동안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7장6절을 보 십시오: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을 성취해 나아가심에 있어서 그 때가 가까워지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엄청나게 번성하였으면 또한 동시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18절) 올라 하나님 의 약속 성취를 좌절시키려는 방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게 하되 태어나는 남자 어린 아이들을 내어 버려 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19절).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자 모세를 애굽 땅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태 어났을 때 오늘 본문 20절을 보니깐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성취의 때가 가까이 올 때에 “번성”과 더 불어 동시에 오는 것은 극심한 ‘괴로움’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성취의 때가 가까이오매 애굽에서 약 400년 동안 살면서 75명밖에 안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 200만 명 정도로 번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동시에 사탄의 역사가 더 욱더 극심해졌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 왕 바로가 왕위에 올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왜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습니까? 그 이유를 성경 출애굽기 1장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두렵건데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 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애굽 왕 바로는 이스 라엘 백성들이 점점 더 번성해지니깐 두려워서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애굽 편에 들지 않고 오히려 애굽의 원수 편에 서서 애굽과 대적할까봐 두려워하므로 이스 라엘 백성들을 괴롭게 하였습니다(출1:11). 그러나 놀라운 것은 출애굽기 1장12-13절에 보면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 여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 학대 받을수록 더욱더 번성하는 이 스라엘 백성들, 번성할수록 애굽 왕 바로는 더욱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이 패턴을 보십시오: 하나님 약속 성취 --> 이스라엘 백성 핍박 --> 더욱더 번성 --> 더 욱더 괴롭힘.

 

이러한 고난과 고통의 때에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세가 애굽에 태어났습니 다. 애굽 왕은 산파를 통하여 남자 유아를 은밀하게 살인하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공공연히 온 백성에게 이스라엘의 남자 유아를 나일 강에 던져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무 렵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유상섭).  난세는 영웅을 낳고 영웅은 난세를 이끌어간다 는 말 이 생각납니다.  난제 가운데 인재가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서 큰 난제가 임했을 때 모세라는 인물이 태어났습니다. 근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난제 가운데 태어난 모세를 가리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 다. 출애굽기 2장 2절에서는 아기 모세를 가리켜 “준수”(beautiful)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 니다. 여기서 “준수함”으로 변역된 히브리어는 ‘선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모세의 얼굴의 아름다움을 의미함에 국한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스데반이 여기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하고 말한 것은, 모세는 나면서부터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은혜를 입었음 을 가리킨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박윤선). 모세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은혜 를 입었다는 사실입니다. 극심한 고통과 고난의 시대에 태어난 모세, 그의 아름다움은 하 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셨기 때문 이였습니다.

 

제 짧은 간증입니다.  제 아내가 제일 아름답게 보였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1997 년 4월26일 결혼기념일 때였습니다. 주일 예배, 오후 성경공부 다 마치고 엘에이 어린이 병원(L.A. Children Hospital)에 갔었을 때 아기는 파랗게 피가 통하지 않아서 죽어가고 있 는 것 같았고 아내는 아기가 누운 곳에서부터 한 6피트 정도 떨어져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내와 함께 해주시고 계심을 보았기에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 자녀의 아름다움을 말입니다. 괴로움 가운데서도 나타나는 함께하시는 하나 님의 은혜입니다. 그러한 아름다움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로, 모세는 버려졌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7장 21절을 보십시오: “버리운 후에 바로의 딸이 가져다가 자 기 아들로 기르매.” 하나님의 약속 성취의 때가 가까운 때에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 세가 났는데 그의 부모님은 그를 집에서 석 달을 길리워졌습니다(20절). 모세의 부모님은 믿음으로 그 아이의 아름다움을(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줄을) 식별하였으며, 믿음으로 왕의 명령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출2:1-2; 히11:23)(박윤선).   3개월간 은밀하게 양육되었다 가 결국 아기 모세는 버려졌습니다. 출애굽기 2장을 보면 아기 모세가 갈 상자(파피루스로 만든 상자)에 넣어져 나일 강에 띄워졌는데 목욕하러 온 바로의 딸에게 발각되어 미리암을 통해 유모(모친)에게서 키움을 받다가 자라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의 아들로 입 양했습니다(출2:3-10). 그러나 스데반은 이러한 상세한 내용을 소개하지 않고 모세가 버려 졌을 때에 바로의 딸이 아기 모세를 입양하여 친아들로 양육했다고 그저 간략하게 말하고 있습니다(행7:21).  그리고 스데반은 모세가 바로의 딸에게 입양되어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당시 고대 근동 사회에서 가장 탁월한 지혜를 가진 애굽 사람들의 학문을 다 배웠다는 스데반의 주장은 그가 얼마나 모세를 긍정적으로 높게 평가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사실은 스데반이 모세를 대항했다는 고소 자들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음을 폭로하고 있습니다(유상섭).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버려진 아기 모세,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은혜 를 입고 있었기에 모세는 그의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바로의 딸을 통하여 아기 모세를 물에서 건져내어 주셨습니다. 성경 출애굽기 2장10절을 보십시오: “… 그가 그 이름을 모 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버려진 아기 모세를 물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버려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 400년 후에 모세를 통해서 앞으로 건져내어 주셨습니다. 버려지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경험한 모세, 결 국 그는 세상에서 버려졌다고 느낄 수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데 도구로 쓰임 받 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버려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인터넷 기사 중 흥미로운 사설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 사설 제목은 “국제결혼과 혼혈아 새로운 인식을”입니다: “국제결혼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30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과의 결혼은 총 4만3121건으로 전년 비 21.6%나 늘었다. 전체 결혼 에서 국제결혼이 차지하는 비중은 13.6%로 100쌍 가운데 14쌍이 국제결혼을 한 것으로 조 사됐다. 특히 농어촌 남성은 지난해 10명 중 4명이 외국 여성을 아내로 맞았다. 국제결혼 비율은 2000년 3.7%에서 2003년 8.4%,2005년 13.6%로 빠르게 커지고 있다”(인터넷). 이 러한 국제결혼 사이에서 태어나는 혼혈아는 부모님에게도 버려지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사회에서도 버려집니다. 특히 단일민족인 한국 사회에서는 잘 용납되지 못하고 왕따 시키 는 분위기입니다. “영웅의 귀향… 혼혈아 관심 촉발”란 기사도 보았습니다(인터넷): “미국 프로 풋볼리그(NFL) 결승전 슈퍼볼의 최우수선수(MVP)인 하인스 워드가 한국에서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고 외신들이 소개했다. AP, 로이터통신 등은 3일 워드의 인천공항 도착 장면이 한국 TV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됐으며, ‘영웅의 귀향’으로 소개됐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또 그가 ‘한국인의 자랑’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전했다.” 어느 면으로 한국 사회에 서 버림받은 많은 혼혈아들에게 하인스 워드라는 한국계 혼혈아 미국 프로 풋볼 선수는 세 계에 흩어져 있는 한국계 혼혈아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버려짐으로 얻어지는 은혜가 있습니다. 모세, 그는 아기 때 버려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록 아기 때 난제 가운데 버려 졌지만은 하나님에게서는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 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는 지도자로 준비되어 갔습니다.   그는 버려짐 가운데 바로의 딸 양 자가 되었고 애굽에서 모든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 는데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버려지는 고통과 아픔 속에서 마 음에 죄악된 것들 또한 버려지는 것 같습니다.   버려야 할 단어들 그리스도인이 꼭 버려야 할 단어 21가지가 있다고 합니다(인터넷): 중독, 이기심, 염려, 편견, 탐욕, 게으름·안주, 침체·우울, 비난, 불평·원망, 조급, 교만, 외식·위선, 다툼·갈등, 포기, 방탕.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악된 것들을 우리 안에서 없애 버리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그는 세상에 버림받는 고통과 아픔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며 그 러한 가운데서 우리의 죄를 회개케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죄악들을 버리는 가운데 우리는 주님께 쓰임 받는 그릇이 되도록 준비되어 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모세는 형제를 돌아볼 생각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7장 23절을 보십시오: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나일 강에 버린바 된 아기 모세, 바로의 딸이 가져다가 자 기 아들로 길렀습니다. 모세는 한 40년 동안 애굽에서 자라나면서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웠던 모세는 나이 사십이 되어서는 자기의 형제인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났었습 니다(23절). 여기서 “돌아본다”는 말은 사람에게 대한 하나님의 간섭을 가리킵니다(시 89:31-32; 렘9:9, 25, 11:22)(박윤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간섭은 괴로움을 당하는 그들을 바로 왕의 손에 서 구원하시고자 모세를 세우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이 사십이 되어서 모세는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간섭하게 되었습니다(행7:24). 즉, 모세는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의분을 발해 그를 압제하는 애굽 사람을 원수 갚는다는 생각으로 쳐 죽였습니다(박윤선). 모세는 정의감을 가지고 자기 동족을 구 원하고자 애굽 사람을 쳐 죽였지만 그의 방법은 잘못되었습니다(박윤선). 인간의 혈기로 정의감에 불타올라 자기 동족을 구원하고자 애굽 사람을 쳐 죽였으니 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모세가 착각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7장 25절을 보십시오: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 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 모세는 자기 동족 한 사람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므로 이 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착각하 였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를 구원자라고 생각해 주길 기대했습니 다. 그러나 모세는 아직 준비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 삶 속에 간 섭하셔서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계획과 모세가 자기의 인간의 방법인 혈기로 이스라엘 백성 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계획과는 다릅니다. 이 살인사건이 있은 후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 이 (서로) 싸울 때에 모세가” 그들을 화목 시키려 하여 “너희는 형제라 어찌 서로 해하느 냐”라고 말했을 때(26절) “그 동무를 해하는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가로되 누가 너를 관원 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 냐”(27-28절)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모세는 이 말로 인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주하여 거기 서 나그네 되어 아들 둘까지 낳았습니다(29절).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려고 찾 아서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갔습니다(출2:15).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도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모세를 봅니다. 유 상섭 교수님의 말입니다: “스데반은 모세의 도피 사건을 직접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배척한 사건에 돌림으로, 그가 미디안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궁극적으로 이스라 엘 백성이 그를 인정하지 못한데 있음을 강조한다.” 아름다운 모세, 버림받은 모세,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자(지도자)로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 해 볼 때에 그 원인은 아직 모세가 준비되지 못해서입니다. 성경 디모데후서 2장 2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여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모세는 주님의 쓰심 에 합당한 그릇이 아직 되어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또 다른 40년 광야의 훈련 기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돌아볼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준비된 마음이 필요합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나의 관심이 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일에 우리 또한 간섭을 해야 합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에서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셨을 때 종려나무 잎사귀를 사용한 데서 유래되었습니다(요 12 :13). ‘수난주간'으로 알려진 십 자가의 주간은 종려주일에 시작하여 그 다음 주일인 부활주일에 끝났는데, 이 기간이 구세 주에게는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린 기간이었습니다.” 예수는 그 날의 "호산나" 소리가 머지 않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소리로 바뀌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것을 아시면서도 예 루살렘의 입성하셨던 예수님 ….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은 독생자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버림을 받으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구원하 시고자 인간의 역사 가운데 섭리하시며 간섭하시되 약 2000년 전 베들레헴에 아기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시사 그의 이 땅에서의 결국은 저주의 나무 십자가에 죽도록 버리시므로 우 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우신 독생자 예수님을 믿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추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