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사람

 

 

 

[사도행전 5장 12-16절 말씀 묵상]

 

 

인도의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케리(William Carey, 1761-1834)를 아십니까? ‘제 화공이었던 윌리엄 케리는 인도 선교의 꿈을 가지고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 등을 공부한 후 영국 침례교로부터 파송을 받아 인도로 갔습니다. 그는 인도어를 공부하여 영인사전을 편찬하고 인도어로 성경을 번역한 후 출판하기 위해 영국에서 인쇄기를 도입하고 기술자들 을 불러 조판을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케리가 지방 순회전도를 나간 사이 불이 나서 인쇄 기와 원고가 몽땅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케리는 낙망하지 않고 잿더미 위에서 무 릎을 꿇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믿음과 인내와 용기를 구했습 니다. 드디어 1801년 벵골어 성경을 시작으로 24종의 인도 방언으로 성경이 번역 출판되었 습니다. 실패와 성공은 그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믿는 자의 위대함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데 있습니다. 하나님 이 함께 하심을 믿는 사람들을 우리는 크리스천이라고 부릅니다(인터넷).

 

오늘 성경 사도행전 5장 14절을 보면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믿는 사람”이란 제목 아래 과연 믿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한 4가지로 묵상하면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믿는 사람은 다 마음을 같이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5장 12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 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사도행전 4장30절 을 보면 그들의 기도 제목 중 하나는 “손을 내밀어 병을 낮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 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도행전 4장의 기도가 오늘 본문 5장12절에서 응답 된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응답의 역사 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솔로몬 행각에 모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과 감히 합류하지 못했습니다(13절). 여기서 나머지 사람들은 아마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신 자 중에 위선자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으로 인하여 두려움이 있었 기 때문에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를 보고 믿는 자들과 감히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칭찬)을 받습니다. 오늘 성경 사도행전 5장 13절에서도 믿는 사람들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서 모였을 때 감히 합류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백성이 칭송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 다. 이미 사도행전 2장47절에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은 것을 우리 는 알수 가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입니까? 세상 사람들 에게 칭찬 받는 교회 말입니다.   그러나 요즘 교회들을 보십시오.   세상 사람들에게 과연 칭찬을 받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 교회는 어떠합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습니까? 교회가 쇠약해 가는 것은, 신자들의 마음이 흩어짐으로 시작됩니다(박윤선). 성도들의 마음이 흩어질 때 교회가 쇠약해 간다는 말씀, 과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심 으로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흩어집니다. 믿음으로 함께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의심 속에서 두 마음을 품은 것입니다(약1:6-8). 결국 요동할 수밖에 없습니다(6절).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5절에서 “믿음도 하나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는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우리는 다 함께 마음을 같이하여 모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의심 가운데서 기도를 하면 교회가 요동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흩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으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하시지 만 또한 흩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신명기 28장 6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 네가 그곳에서 너와 네 열조의 알지 못하던 목석 우상을 섬길 것이라.” 하나님께서 흩으실 때에는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게 됩니다. 특히 돈을 우상으로 삼고 돈을 위해 사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교회가 돈 때 문에 갈라지고 싸우고 흩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한 믿음으로 다 함께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둘째로, 믿는 사람은 주님께로 나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5장 14절을 보십시오: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하나님께서 초대교회 성도들의 일심으로 간구하는 기도를 들으시사 사도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므로 말미암아 믿는 사람들이 다 마음을 같이 하여 모 이고 백성들에게 칭찬까지 받은 결과 믿고 주님께 나오는 자가 더 많아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합니다. 이미 우리가 묵상한 사도행전 2장47절 말씀에도 주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신 역사를 우리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어떠한 교회에 사람들이 모이겠습니까? 믿음으로 다 마음을 같이한 교회,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교회에 사람들이 모이겠는가 아니면 두 마음을 품어 의심하는 성도들이 자꾸만 흩어지는 교회에 사람들이 모이겠습니까? 인터넷을 보니 깐 “가고 싶은 교회, 매력 있는 교회란?” 제목 아래 글이 있어 나눕니다: “교회가 그리스도 의 몸으로서 공동체의 영성을 가지며, 모든 성도들이 이것을 경험 하는 것 또한 교회본질이 다. 우리는 바울이 자주 교회를 하나의 가족으로 이야기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렇다 교 회 그것은 ‘또 하나의 가족'인 셈이다. ...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주인과 노예, 때론 서로 다른 인종들…, 그 각기 다른 사람들이 한 데 모여 가족을 이루 는 것이다.  …   물론 이 서로간의 간격, 그 다름의 간격을 이어주는 인력은 사랑이다.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함께 바라보는 사람들의 형제의식이다. 교회의 매력은 여기에 기인 한다. 한 번 오면 떠날 수 없는 매력, 그것은 마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진한 하 나됨을 맛보기 때문이다. 공동체성, 그것은 다양성과 함께 존재하는 하나 됨의 힘이다”(인 터넷). 한 마음 한 뜻으로 다 함께 모이는 사랑의 공동체, 그 공동체에는 주님께서 믿는 사람을 더하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한 공동체 안에는 믿는 사람들이 주님께 나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러한 교회가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인력으로가 아 닌 주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 구원받는 자가 매 주일마다 더해지는 교회, 주님께 그 모습 그 대로 나오는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 말입니다.   저는 그런 교회를 꿈꾸며 기 도합니다.

 

셋째로, 믿는 사람은 바랍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5장 15절을 보십시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 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하나 님께서 사도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많이 행하게 하시므로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주변 마을들로 부터 교회가 모이는 솔로몬의 행각에 모였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병자들을 거 리로 운반해 와서 들것과 간이 침상과 요 위에 뉘였습니다(15절). 왜 사람들이 이렇게 행 하였습니까? 유상섭 교수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베드로 사도가 지나 가다 그의 그림자가 병자들에게 미치면 치료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것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베드로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을 이미 40년 동안 앉은뱅 이 된 자를 일으킨 것을 목격하였고 또한 들었기에 그들은 혹시나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 이면 치료 받을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이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사람들은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 시기를 사람들은 원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었습니다(막6:53-56). 또한 바울도 그가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사람들이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 져다가 병자에게 얹을 때에 그들의 병이 나았습니다(행19:11-12).

 

성경 히브리서 11장1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믿는 사람은 바랍니다.  믿는 사람은 소망합니다.  믿는 사람은 바 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는 자들입니다. 바로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그랬었습니 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롬4:18). 찬송가 539장 3절을 보 십시오: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 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 리라.”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다 끊어져도 오히려 예수님 안에서 내 소망 더욱 커지는 역사 를 체엄하는 삶이 바로 믿음 생활입니다.

 

마지막 넷째로, 믿는 사람은 나음을 얻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5장 16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여기 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는 말씀의 원어 뜻은 “(질병의) 어떤 종류든지 모두 다 고침이 되 더라”입니다. 이 말씀은, 어떤 질명이든지 사도둘로 말미암아 못 고쳐지는 것이 없다는 뜻 입니다(박윤선). 크로솨이데(Grosheide)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박윤선): “사도들에게 이렇 게 못 고칠 병이 없이 모두 다 고치는 능력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일이 그대로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스도께 서 부활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신 까닭이며,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과 약속대로 된 일이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이 명백하다.”

 

찬송가 528장 “주여 나의 병든 몸을” 1절을 보면 가사가 이렀습니다: “주여 나의 병든 몸을 지금 고쳐 주소서  모든 병을 고쳐주마 주 약속하셨네 내가 지금 굳게 믿고 주 님 앞에 구하오니 주여 크신 권능으로 곧 고쳐 주소서”. 이러한 치유의 역사가 믿는 사람 에게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다 마음을 같이 합니다. 믿는 사람은 주님께 나옵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은 바랍니다. 즉 믿는 사람은 소망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믿는 사람은 나음을 얻습 니다. 이러한 치유의 역사가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 삶 가운데 있길 기원합니다.

 

 

 

믿음으로 소망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오직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