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는 삶

 

 

 

[사도행전 5장 1-11절 말씀 묵상]

 

 

왜 스트레스 받는 여자는 말을 하려 할까요?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남자의 두 뇌기능 중 공간지능과 논리기능이 활발하게 작동합니다. 반면 여자는 언어 기능이 활발해 져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따라서 여자는 열을 받거나 스트레스를 느끼면 들어줄 사람을 찾아 나서고 그 사람을 앞에 놓고 한없이 얘기를 합니다. 친구들을 상대로 몇 시간에 걸쳐 문제점을 말하는가 하면 구체적인 사항을 낱낱이 말합니다. 그러면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 말하는 과정 그 자체가 여자에게는 위안이요 격려입니다. 왜 여자는 할 말을 다 해야 직성이 풀릴까요? 남자의 두뇌는 고도로 구획 화되어 있어서 정보를 분리, 저장하는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하루일과가 끝나갈 무렵 아무리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도 남자의 두뇌 는 그것을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경우는 다릅니다. 정보가 저장되지 않고 머 릿속을 계속 휘젓기만 합니다. 따라서 여자는 어떠한 문제를 머릿속에서 제거하는 방법으 로 마음속의 모든 말을 쏟아내면서 그 문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남자 들은 감정을 숨기는 것입니까? 현대의 남자들은 씩씩해야 하고 또 허약함을 내비쳐서는 안 된다는 유전자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의심이 많고, 경쟁적이며 절제 적 이다. 또한 수비적인 존재이므로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자 하 며 자기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혼자서 일처리 하기를 좋아합니다. 한마디로, 남자는 감정 을 내보이는 것이 허약함의 표시라고 생각합니다(인터넷).

 

진실에 충실한 사람이라면 어떤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까? 한 4가지만 나눈 다면 (1) 첫째로 결코 거짓말 하지 말 것이고, (2) 둘째로 진실을 숨기는 행위가 항상 거짓 말을 하는 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상당히 의미 있는 도덕적인 결 정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가 아니라면 진실을 숨겨서는 안 됩니다.   (3) 셋째로 진실을 숨기는 결정은 개인적인 필요에 토대를 두어서는 안 된다. 즉 권력, 호감, 혹은 도전으로부 터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4) 넷째로, 진실을 숨기는 결정은 상대방 입장에 서서 내려야 됩니다(인터넷).

 

저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 5장 1-11절 말씀 중심으로 “감추는 삶”이라는 제목 아래 한 3가지로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이미 묵상한 “나눔의 삶”이란 말씀과 대조적으로 오늘 은 “감추는 삶”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감추는 삶은 하나님께 거짓말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5장 4절을 보십시오: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 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 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로다.” 하루에 몇 번이나 거짓말 하고 살까요? 1997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사람이 하루에 몇 번이나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갈까를 조사했답니다.   조사 결과 사람은 하루에 8분에 한 번꼴로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20명의 몸에 소형 마이크를 부착해 조사했는데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약속시간 늦었을 때 '차가 막혀서'였고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는 직업으로 점원, 정치인, 언론인, 변호사 세일즈맨 심 리학자 순으로 나타났답니다(인터넷).

 

오늘 본문 배경을 보면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성도들이 일심으로 기도한 후 다들 성령 충만하여서 나눔의 삶을 살았습니다(행4:32-37). 그 중에 바나바와 같은 모범되는 성 도도 있었습니다(36-37절). 그는 자기 밭을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 다(37절).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그와 대조적인 부부를 저자 누가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입니다(5:1). 이 부부는 바나바와 달리 그들의 소유를 다 판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팔았고(1절) 또한 그 판값에서 얼마를 감추고 나머지를 가지고 와서 사도들 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2절). 근데 놀라운 것은 다들 성령 충만해서 한 마음 한 뜻으로 나눔의 삶을 살았는데 이들과 대조적으로 아나니와아 삽비라 부부는 한 마음 한 뜻으로 감추는 삶을 살므로 하나님께 거짓말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나니와와 삽비라 의 죄가 어떠한 것인지, 그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 좀 생각해 봐야합니다.

 

  • 그들이 범한 죄는 ‘횡령죄’(sin of dispossession)였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4장 2절에 이 부부가 소유를 판값에서 얼마를 감추었다고 말 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감추다’라는 단어는 “착복하다 혹은 횡령하다’라는 동사로서 오늘 본 문 2-3절에 두 번 나오고 디도서 2장10절(“떼어 먹지 말고”) 또 한 번 나옵니다. 그리고 구약 칠십 인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아간이 전리품 중 일부를 착복 한 것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수7:1)(유상섭). 즉,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횡령죄는 신 약의 새 아간의 범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횡령죄는 큰 죄입니다. 한 예 를 들면 2006년 1월10일 인터넷 연합뉴스를 보니깐 “'황교수 수사' 사기ㆍ횡령죄 적용 할 듯”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황 교수팀이 1998년부터 작년까지 과학기술부, 교육부, 경기도 등 관련부처와 지자체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은 순수 연구비 113억5천600만원, 실험실 등 연 구시설비 510억 원 등 모두 623억 원이다. 황 교수팀은 이중 ‘고능력 젖소 복제생산’에 19억4천만 원, ‘장기이식용 복제돼지 연구’에 21억9천800만 원 등 84억3천800만원을 집행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법 356조에 규정된 업무상횡령죄는 ‘업무상 임무에 위배해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재물을 횡령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규정하고 있다. 연구비 추가 횡령사실 드러나 횡령액이 5억 원 이상이 될 경우 특정 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게 되고 50억 원 이상일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된다”(인터넷).

 

  • 아니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범한 죄는 공모죄(sin of conspiracy)였습니다.

 

오늘 성경 사도행전 4장 2절은 남편 아나니아가 소유를 판값에서 얼마를 감추었을 때에 그의 아내 삽비라는 “알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어 NASB를 보면 “with his wife’s full knowledge”라고 쓰여 있습니다. 즉, 아니니아가 횡령죄를 범할 때에 그의 아내 도 충분히 다 알고 있었습니다. 지난 78년부터 美해군정보국에서 근무하고 있던 로버트 김은 지난 96년 9월 강릉 앞바다에서 좌초한 북한잠수정에 대한 기록을 한국정보장교에게 알 려주었다가 FBI 에 체포된 그의 죄목은 ‘국방 기밀 취득 공모죄(간첩죄의 일종)’으로 미국 형법 제793 조를 적용해서 그에게 법정 최고형인 징역 9년 및 보호감찰 3년을 선고했었습 니다. 로버트 김씨 후원회는 23일 국가기밀누설죄로 미국 연방교도소에 수감됐다 석방된 로버트 김의 인생역정을 담은 로버트 김 자서전 `집으로 돌아오다'(한 길사 刊)를 펴냈다고 합니다. 그 책을 보면 로버트 김씨는 당시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미온 적이었던 한국 정 부의 태도는 나를 우울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하기를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나는 공모자 없는 공모 죄로 외롭게 싸워야 했다"고 솔직한 감 정을 털어놨다고 합니다(인터넷).

 

  •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범한 죄는 ‘마음을 지키지 못한 죄’(sin of not keeping one’s own heart)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4장 3절을 보면 아나니야는 사단이 자기 마음에 가득하도록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잠언 4장23절을 보면 지혜자 는 우리에게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이 유는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사탄이 자기의 마음을 성령에게 거짓말하고 땅값의 일부를 착복할 생각으로 가득 채우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조치 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도행전 4장32-37절에 나오는 바나바나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재산 공유 생활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기도 하는 가운데 함께 성령 충만함을 받지 못하고 다른 마음과 다른 뜻을 품도록 무방비 상태에 서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소유를 다 판 것처럼 마음도 사탄에게 다 팔았습 니다. 베드로와 모든 성도들은 성령으로 충만할 때 아나니아는 성령과 교회 공동체의 생각 에 반대되는 불순한 생각으로 충만했던 것입니다(유상섭).

 

  •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범한 죄는 ‘외식한 죄’(sin of hypocrisy)입니다.

 

이 둘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자 자기들의 영적인 것을 날조(가장)한 크리스천들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이들은 “믿는 무리” (32절) 안에 있었고 성령님과 연루 되어 있었지만(3절) 그러나 위선자로 남아있었던 것입니다(MacArthur).

 

  •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하나님께 거짓말 하는 죄(sin of lying to God)를 범 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4장 4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의 지적은 아나니아가 사람인 베 드로와 사도들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짓말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것이 바로 사탄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거짓말의 아버지인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유 혹하여서(훔쳐서) 결국은 진리의 영을 거슬러서 하나님께 거짓말하게 만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거짓말 하지 마십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삶을 살아가도록 힘쓰십시다.

 

둘째로, 감추는 삶은 성령님을 시험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5장 9절 상반 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  여기서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주님 의 영이신 성령님을 시험한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시험하다’는 말씀은 그가 나를 심판하시기 전에 도망갈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을 시 험한다는 말씀은 그를 이용한다는 말입니다. 과연 그가 그의 말씀을 실행으로 옮기실지 두 고 보는 것입니다.  그를 심판의 한계까지 도달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Bible Knowledge). 그 예로 구약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에서 떠나 르비딤에 장막을 쳤을 때에 마실 물이 없으므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7절을 보십시오: “…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 라.”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주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궁핍 한 상황에 쳐해 있을 때에, 우리가 고난과 고통 중에 있을 때에, 과연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가를 의심하므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 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아나니아가 처음에는 성 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자기의 소유를 판 것은 잘했지만은 그러나 중도에 사탄의 유혹적인 인도를 택하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성령 하나님을 속인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부부일심동체래서 그런지 부인인 삽비라도 성령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 말하는 “함께 꾀하여”라는 말씀은 그들이 악 을 행하되 한 영으로 하듯이 서로 단합하여서 행함을 가리키는데 (박윤선) 아나니아와 삽비 라는 일심으로 성령의 인도하심 받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성령 하나님을 일심으로 속였던 것 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도 베드로도 이들이 거짓말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하물며 성 령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값의 일부를 착복하기로 함께 꾀한 것을 모르실리라 없으실 텐데 그들은 성령님을 시험하였고 또한 속였습니다(3절). 주님의 영을 시험한다고 함은, 그들이 성령의 무소부지(알지 못하심이 없으심)하신 성품을 믿지 못하고 의심한 중에 서 성령의 뜻을 거슬러 잘못 행한 것을 의미합니다(박윤선).

 

우리가 은밀한 죄를 범하고 그 범한 죄를 감추려고 할 때에 우리 또한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무소부지하신 성령님의 성품을 의심하면서 그의 뜻을 거슬러 범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18절에서 우리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행하는 것들을 다 보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코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은밀한 가운데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을 모르실리라 없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에베소서 5장11-12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이 세상 불행의 반은 현재의 자신 과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런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는데서 출발합니다(맥도날드). 누구에게나 이런 유혹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유혹, 게다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성령이 거하실 때만 가능한 신앙의 행위를 잘못된 동기 를 가지고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려는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을 거스른 행동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려 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 없이 이일을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을 속이며 그를 시험하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합 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닫게 해주실 때에 우리는 그 말씀을 믿고 순 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감추는 삶에는 하나님의 벌(징계)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5장 5, 10-11절을 보십시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 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 하더라”(5절), “곧 베드로의 발 앞 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10-11절).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받은 벌은 죽음 이였습니다. 남편 아나니아는 사도 베드로의 책망(3-4절)을 듣고 즉시 사망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박윤 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아나니아가 죽은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에 의한 것이었다. 그 권능은 베드로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임한 것이다. 이 사실은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라는 말씀이 증명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멸망할 자들에게는 사망을 준다(사11:4; 고후2:16).” 오늘 본문 사도행전 5장 6절 말씀을 보면 아 나니아가 죽었을 때 교회의 젊은 사람들이 그를 천으로 싸서 들고 나가 매장했는데 왜 이렇 게 급히 장례를 치렀는가 하면 유대인의 장례 관습에 죽은 지 24시간 내에 매장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자살한 사람, 국가 반역자, 출교된 자, 배도자, 범법자와 같은 사람들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이 분명할 경우에는 적절한 장례 절차를 거 치지 않고 시신을 지체 없이 매장했다고 합니다(유상섭).  결국 아나니아의 즉각적인 매장 은 예루살렘 교회가 그의 죽음을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 실입니다. 아나니아의 사건이 있은 후 3시간 정도 지났을 때 그의 부인인 삽비라가 사도들 이 있는 곳으로 들어왔는데 그녀는 자기 남편이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으로 죽은지도 몰랐 습니다(7절). 그녀 또한 남편과 함께 꾀하여 성령님을 시험한고로 삽비라도 결국 아나니아 처럼 즉시 쓰러져 죽었습니다(10절).

 

결국 이들의 죽음을 통하여 초대 교회 성도들의 반응은 한 마디로 두려움 이였습니 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5장 5절과 11절을 보십시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5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11절).  유상섭 교수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세 시 간 간격으로 동일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으로 죽임을 당한 것은 참으로 큰 두 려움을 가져다 줄만한 사건이었다. 하나님의 엄숙한 심판 사건을 목격한 온 교회는 교회가 성령이 내주하는 성령의 공동체임을 깊이 인식했을 것이다. 아울러 이 공동체에서 사도들 을 속이는 것은 성령을 속이는 것과 같음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잊지 않았을 것이다. 이로 써 사도들의 권위는 하나님에 의하여 확증되었고, 어느 누구도 사도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 다는 인식을 깊이 심어주었다.” 박윤선 박사님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에서 깨달을 것 몇 가지를 말하였습니다: (1) 첫째로, 남들을 속여서 인기와 명예를 얻음보다는 인기 없이 정직한 자가 하나님 앞에 합당하다는 것, (2) 둘째로, 급한 벌을 받는 자의 죄악은 아주 극 도에 달한 죄악이었다는 것, (3) 셋째로,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였을 때에 누구든지 그 교 회를 무시하는 죄를 범하면 용서 받지 못 한다는 것, (4) 넷째로,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고 교회의 옳은 일을 실행하여 나가는 지도자를 무시함은 위험 하다는 것, (5) 다섯째로, 성령 은 신자들의 자유를 무시하지 않으신다는 입니다. 사람을 강압적으로 인도함은 성령의 역 사라고 할 수 없음. 소유를 바치는 여부는 자유로이 실행되었던 것입니다(5:4).

 

감추는 삶은 하나님께 거짓말 합니다. 감추는 삶은 성령님을 시험합니다. 그리고 감추는 삶에는 하나님의 벌(징계)이 있습니다. 우리는 감추는 삶을 살아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감추는 삶이 아닌 나눔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거짓을 미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