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으로 기도하십시다!

 

 

 

[사도행전 4장 23-31절 말씀 묵상]

 

 

“믿음 좋은 며느리가 예수 믿지 않는 시어머니께 늘 핍박을 받으며 살고 있었습니 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영혼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하고 특별히 찬송가 395장을 부르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식구들이 시어머니께 합심 전도를 하러 갔습니 다. ‘할머니. 예수님 믿으시고 교회 나오세요. 며느님께서 할머니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계세요.’   ‘흥! 그것 다 왕 내숭 떠는 거예요.   나도 기도하러 갈 때 몰래 따라가 봤는데요, 이 시어미를 이겨 버리자는 노래만 부릅디다.’ 깜짝 놀란 집사님 한 분이 여쭈어 보았습니 다.   ‘무슨 노래였는데요?’   ‘거~ 뭐라드라.... 너 시어밀 당해 범죄치 말고 너 용기를 다해 늘 물리쳐라~ 너 시어밀 이겨 새 힘을 얻고~’"(인터넷). 이 한 예화는 핍박은 받은 한 며 느리의 간절한 기도와 찬양 가운데 그 찬양을 오해한 시어머니의 말을 통하여 웃습니다. 근데 여러분 찬송가 395장 “너 시험을 당해”의 후렴 기억하십니까?  “우리 구주의 힘과 그 의 위로를 빌라 주님 네 편에 서서 항상 도우시리.” 눈물을 흘리면 기도하는 핍박 받는 며느리, 그녀는 왠지 사무엘상 1장에 나오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생각케 합니다. 아기 를 못나므로 자기 남편 엘가나의 또 다른 부인인 브닌나로 부터 핍박을 받는 한나(6, 7절) 그녀는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였습니다(10절).

 

저는 요즘 한나처럼 마음의 괴로움을 갇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습니다. 한두 가 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1) 첫째로, 내 주위에 힘들고 어렵고 괴로움 가운데 있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마음의 괴로움을 갖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기도의 눈물이 메마르지 않길 원합니다.   (2) 둘째로, 제 자신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는 주님의 닮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마음의 괴로움을 갖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습니다.   이 두 가지 외에 교회를 향한 마음은 우리 모두가 사도행전의 120문도처럼 모이기를 힘쓰는 가운 데 한 마음 한 뜻으로 마음의 괴로움을 갖고 통곡하며 함께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성령 충만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선포하는 사람을 얻 는자가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4장 23절을 보면 초대 교회 성도들이 “일심으로 하나님께” 기 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과연 그들이 일심으로 기도한 것이 무엇인지 묵상하면서 그들의 기도 제목을 우리의 기도 제목으로 삼아 우리도 일심으로 하나님께 간구하길 원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일심으로 “예수님을 거스리지 말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4장 27절을 보십시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 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산헤 드린 공회의원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힐난할 말도 없고(14절)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였는고로 그저 그들을 위협한 후 놓아 주었습니다(21절).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 의 “동류”(companions)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도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는 제 사장들과 장로들의 경고와 위협의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23절)(유상섭).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베드로와 요한의 “동류”들은 누구입니까? 학자들은 그 “동류”가 사도들만을 가리키 는지 아니면 사도들과 다른 사람들을 포함한 소그룹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교회 전체를 가리 키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합니다(유상섭). 박윤선 박사님은 “사도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하 셨고 유상섭 교수님은 “치유 사건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믿게 된 백성”을 가리킨다고 해석하 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베드로와 요한의 “동류”들은 한 마디로 기도의 동 지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우리가 묵상한바 사도행전 2장42절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3,000명의 초대 교회 성도들인 기도의 헌신하고 있었던 것처럼 지 금 풀려나기 전까지만 해도 베드로와 요한의 동류들은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패턴(pattern)은 사도행전 12장 5절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에 베 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 게 말하였습니다: “핍박 중에 있는 신자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연락하며 교통함으로 힘을 얻 으며 어려운 시험을 이기게 된다. 그들이 합심하여 기도한 것은 귀한 일이다.”

 

이 베드로와 요한의 동류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풀려나 자기들에게 제사장들과 장로 들의 말을 다 고하였더니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24절) 합심하여 기 도하였습니다. 그 합심기도 내용 중 한 세 가지는 이러합니다:

 

  • 그들은 기도의 대상이신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4장 24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 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오." 여기서 “대주재” 란 말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심 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깐 베드로와 요한의 기도 동지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비록 복음을 전파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핍박을 받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있 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이 누구이신가’(Who is my God?)를 알 고 오직 믿음으로만 드릴 수 있는 기도입니다.

 

  • 그들의 기도 내용은 오늘 본문 25-26절을 보면 구약 시편 2편1-2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시편 2편 1-2절을 보십시오: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 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이로소이다.”   여기서 “열 방”과 “족속”은 각각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들 가리키고 또한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 들”(26절)은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를 가리킵니다. 이 관점에서 시편 2편1-2절의 예언의 말씀은 이미 예수님의 고난을 통하여 성취되었습니다.

 

  • 셋째로, 시편 2편1-2절의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으로만 성취된 것이 아니라 지금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서도 성취되고 있음을 일심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의 기도의 동지들은 다들 한 마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4장 29절을 보십시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 옵시고 ….” 여기서 “저희”는 헤롯과 빌라도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력인 산 헤드린 공회를 가리킵니다(유상섭). 이미 “위협”이란 단어는 17절과 21절에서 공회가 사도 들에게 가한 협박에 사용한 것을 여기 오늘 본문 29절에서 다시금 사용하므로 서 어떻게 시편 2편1-2절 예언의 말씀이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성취되어 가고 있음을 일 심으로 기도하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기도 내용 중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흥미로 운 점은 바로 27절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베드로와 요한의 기도 동지들은 일심으로 대 주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시편 2편1-2절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고 또한 지금도 성취되고 있음을 고백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반면에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님을 거슬러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였다 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합심하여 기도하는 반면에 그들을 대적하 는 사람들은 합동하여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거스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합심하여 대 주재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과 합동하여 분노 가운데 허사를 경영하는 예수님과 기도하 는 사람들을 거스른 자들 ….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러한 예수님을 거스른 무리들의 합동 대적 또한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4장 28절을 보십시 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합동 대적 à 합심 기도 à 합력 형통. 성경 로마서 8장2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 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모여서 예수 님을 거스른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교회를 거스리는 말 과 행동을 삼가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모이기를 힘쓰는 가운데 합심하여 하나님께 기 도해야 합니다: ‘주님, 주님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거스르지 말게 하옵소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을 거스르지 말게 하옵소서’, ‘주님의 나라 확장하는 일을 거스르지 말게 하옵소서.’ 오히려 우리는 일심으로 ‘대주재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일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4장 29절을 보십시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 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베드로와 요한 의 기도 동지들은 하나님께 일심으로 기도하기를 헤롯과 빌라도와 같은 위협적인 세력이 지 금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통하여 진행되고 있음을 하감해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합동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거스르고 있사오니 하나 님께서 즉시 조치를 취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유상섭). 유상섭 교수님은 이렇게 말 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도의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헤롯과 빌라도를 하나님의 예정된 뜻을 성취하는 도구로 삼으셨듯이 산헤드린의 반대와 위협도 하나님의 즉각적인 간섭으로 교회에 유익한 방향으로 바꾸어 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의 내용에서 우리는 교회가 그들의 어려운 현실을 성경에 비추어 이해하고, 이렇게 이해된 사실을 토대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 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의 기도에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성경의 성취에 대한 이해 와 간절한 기도가 함께 만나고 있음을 본다”(유상섭).

 

과연 우리는 이러한 일심 기도를 지금 드리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우리의 어 려운 현실을 성경에 비추어 정확히 이해하고 있습니까? 과연 성경의 성취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까? 과연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러한 어려움을 성경에 비추어 이해하므로 믿음으로 함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일심 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온 교회가 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마치 예수님을 합동하여 거슬렀던 무리들이 있었던 것처럼, 주님의 종에 가는 길에 또한 선교지에 가서 어떠한 거스른 일들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음을 믿 고 하나님께 우리는 합심하여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합심 기도 제목은 어떠한 위협이 있을 지라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 와 요한의 기도 동지들의 네 번째 기도 제목 이였습니다. 곧 그들은 말씀 사역을 위하여 일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캄벨 몰간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그들은 원수들의 박해가 그치기를 기도하지 않았으며, 그 핍박에서 벗어날 것을 기도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도리어 원수들의 적개심을 일으켰던 그들의 전도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기 원한 것이다.” 유상섭 교수님의 말입니다: “그들은 어려운 현실을 제거하기 위해서가 아니 라, 오히려 이러한 역경에서 말씀 전파의 사명을 더욱더 담대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해달라 고 기도했다”.  이것이 성숙한 기도라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는 고통 중에 있을 때 그 고통 을 없애달라고 엄마, 아빠에게 울면서 보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철이 든 자녀는 고통 중에 있을 때 그 고통을 없애달라고 부모님에게 보채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을 짊어지고 자기의 맡은 책임을 잘 감당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의 고통 과 핍박을 들은 그들의 기도 동지들은 일심으로 기도할 때에 복음 전하기 어려운 현실을 탓 하며 불평하는 가운데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않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 려 그들은 복음 전하지 말라는 위협 속에서 더욱더 복음을 담대히 선포할 수 있도록 하나님 께 일심으로 간구하였습니다.

 

믿음이란 고통과 고난의 어려운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러 한 관점에서 볼 때에 우리의 어려운 현실은 기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고통과 고난 중에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악인들이 교회를 박해하므로 교회가 얻는 유익을 한 세 가지 말하였습니다: 첫째, 참된 성도가 밝히 드러나 고, 둘째, 참된 성도들이 하나가 되고, 셋째, 참된 성도들이 연단을 받아 더욱 정미로워 짐 이다”(박윤선).   이 때(교회가 악인들에게 박해를 받을 때)에 우리가 기억할 것은 무엇입니 까? 첫째로, 선한 측에서 끝까지 선해야 된다는 것이다.   분노나 원망이나 교만으로 기도 하지 말 것입니다. 둘째로, 육신의 평안을 위하여 핍박을 없애주시도록 기도하지 말고 복 음의 승리만 위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과연 베드로와 요한, 이들의 담대함은 어디서 온 것 입니까? 어떻게 그러한 담대함을 가질 수 있었기에 그들의 기도 동지들 또한 종교 지도자 들의 위협함(29절) 가운데서 베드로와 요한처럼 담대하길 일심으로 간구하였습니까? 그것 은 바로 성령 충만함입니다.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성령강림 후 베드로는 2장 29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그리고 4장 13절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기탄없이” 즉 담대하게 말함을 종교 지도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겼습니다. 결코 베드로는 담대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계집 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했던 사람 이 였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 충만함을 받은 후 그는 변했습니다. 그는 핍박 을 두려워하던 사람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어서 그 복음을 박해 중에 담대히 선포하는 용감한 믿음의 사람 으로 변했습니다.   솔로몬 행각에 앉은뱅이가 걷게 된 기적을 보고 모여 베드로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심령들은 일심으로 베드로와 요한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 할 수 있도록 일심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드로와 요한처럼 박해 중에서 오히려 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일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의 담대함이 나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난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3 장4-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이 확신(담대함)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 로서 났느니라.”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일심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적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4장 30절을 보십시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 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여기서 “손을 내밀 어”에서 “손” 즉 “당신의 손”이란 말은 이미 28절에서 한국 성경으로 “하나님의 권능”, ‘당 신의 손’이고 적혀있습니다. 지금 베드로와 요한의 기도 동지들은 일심으로 하나님의 권능 을 치유와 같은 이적을 통하여 나타나길 간구하였습니다. 이 기도의 목적은 치유, 이적 자 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전파가 더욱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길 원하기에 이적을 위하여 일심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박윤선 박사님의 말입니다: “이것은 이적이 나타나기를 위하여 기도함인데, 이적 그 자체를 목적한 것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려는 목 적뿐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복음이 잘 전파되게 하기 위하여 이적과 기사를 행하 도록 도와주십니다(막16:17, 20; 요4:48, 20:30-31; 히2:4).

 

성경 요한복음 4장48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본능에 대해서 이 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예수님 말씀처럼 예수님 시대 때 유대인들이나 지금 이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하나 님의 이적을 보지 않고는 예수님과 그의 복음을 믿으려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많 은 사람들이 표적과 기사와 이적을 좇은 것입니다. 성경 마태복음 12장38-39절을 보십시 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 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 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이 표적과 이적과 기 사를 구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성경)인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진리를 구 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렘5:1). 먼저 진리(요17:17 하나님의 말씀=성경)를 구하고 진 리를 좇아 살려고 노력하면, 표적과 기사와 이적은 자연히 따라옵니다(요14:12, 막16:20).

 

하나님의 말씀(진리=성경)은 보지도 듣지도 아니하고 멀리하며, 표적과 이적과 기사만 구하 는 신앙은 절대로 옳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구하기를 원하시는 진리 (성경)는 구하지 아니하고, 병을 고치고 능력을 행하는 목사님들이나 좇아다니며 표적과 기 사와 이적만 구한다면, 그런 교인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속하여 의롭지 못한 교인이며,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터넷). 이적 중에 이적은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또한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입니 다. 성경 요한복음 6장29절을 보십시오: “…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 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 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인간의 의지대로 되는 것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성경 에베소서 2장8-9절을 보면 믿음 자체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 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적 중의 이적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베드로와 요한, 이들의 기도 동지들이 일심으로 기도했을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 니까? 그들이 일심으로 기도한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본문 사도행전 4장 31절을 보십시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 의 말씀을 전하니라.” 유상섭 교수님은 네 가지 현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 성도들이 모였던 장소가 진동했습니다. “그 장소의 일시적인 진동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임재와 간섭을 확인시켜준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강림하실 때 땅이 진동했 듯이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그들이 모인 장소의 진동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

 

  • 모인 성도들이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모 인 장소를 진동시킨 목적은 그들을 강력하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암시 한다.”

 

  • 모든 성도들은 성령 충만의 결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습니 . “… 베드로 사도에게 이미 주어진 성령의 충만함과 이에 따른 담대함이 모인 모든 성 도에게 주어졌음을 보여준다.”

 

  • 하나님께서는 치유와 능력의 역사를 위한 기도에도 응답하셨습니다. 사도들에 게만 치유와 능력의 역사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5:12-16), 심지어 스데반과 빌립 집사 같은 평신도들에게도 주어졌습니다(6:8; 8:4-7). 본 장의 합심 기도가 있기 전 사도들을 통해서 만 나타났던 기적들이 이 기도 후에 일반 성도들을 통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의 합심 기도에 응답하셨음을 보여줍니다(유상섭).

 

 

 

이적 중의 이적인 구원의 은총을 받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일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길 원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