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난 믿음의 소유자

 

 

 

[사도행전 3장 11-16절 말씀 묵상]

 

 

스코틀랜드 출신의 사무엘 리더퍼드(Samuel Rutherford)란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 습니다: “그리스도는 바람을 안고 계신다. 하나님은 당신을 그리스도 옆에, 그리스도와 같 은 방향으로 세워놓으셨다. 그러므로 당신은 바람이 불지 않는 산허리의 양지바른 곳을 기 대할 수 없다.” 그리스도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우리 또한 역시 바람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이 글 속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풍력에 저항하 면서 전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토저). 그런데 우리 인간의 본능은 산허리의 양지 바른 곳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토저 목사님은 그의 책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에서 ‘진짜 신앙’과 ‘가짜 신앙’에 대해서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진짜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 리스도의 승리를 믿기 때문에, 그 승리에 참여하기 위해서 어떤 고난도 마다하지 않는다. 반면, 가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바람이 싫고, 산허리의 양지 바른 곳이 좋다’라는 확신 만 있을 뿐이다. 모든 사람들은 당장은 평안을 주는 것 같은 가짜 신앙 편에 서야 할지, 아니면 영원한 평안을 주는 진짜 신앙 편에 서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저와 여 러분은 매일 어떠한 결정을 하고 계십니까? 당장 평안을 주는 것 같은 가짜 신앙 편에 아 니면 영원한 평안을 주는 진짜 신앙 편에 서고 계십니까? 사람으로부터 난 믿음의 소유자 는 “산허리의 양지 바른 곳이 좋다”고 그 곳만을 찾아다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난 믿음의 소유자는 예수님처럼 바람을 앉고 세상 풍력에 저항하면서 그리스도를 좇을 것입니다.

 

터 저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 3장 11-16절 말씀 중심으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난 믿 음의 소유자는 어떻게 믿음 생활을 하는가 한 2가지로 생각해 보면서 과연 우리는 예수님 으로 말미암은 믿음의 소유자인지를 점검해 보길 원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만일 우리 자신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아닌 다른 ‘믿음’ 또는 잘못된 착각 속의 믿음이 있다면 회개하면서 바른 믿음을 소요하는 계기가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난 믿음의 소유자는 자신이 주목을 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3장 12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 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가 이미 묵상한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 도하러 올라가다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고 있는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만나 “나사렛 예 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한 후 앉은뱅이 된 자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을 때에 그 가 뒤에 서서 걸은 이적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결국 이 이적으로 말미암아 베드로와 요 한은 “모든 백성”(9절)에게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 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였습니다(11절). 이 때 베드로가 그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절).

 

만일 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켜서 소문이 났 다면 어찌되겠습니까? 환자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놀라면서 ‘야 참 그거 기이하다’고 말 하면서 모이지 않겠습니까?(10, 11절) 예를 들어 몇 몇 잘 알려진 부흥사 목사님들이 치유 집회를 연다고 할 때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겠습니까? 그 때에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면 그 목사님은 요즘 말로 하자면 뜨는 것이여 유명해져서 그 교회를 요즘 말하는 교회 성장이 확 실히 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안하십니까? 문제는 그 후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인정을 받을 때에, 그들에게 인기를 얻고 내가 유명해지고 아주 잘 알려졌을 때, 과연 우리 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히이 여기며 놀라는 “모든 백성”들에게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이 아닙니다(12절). 이것이 바로 진 정한 믿음의 소유자의 고백이요 마음 자세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난 믿음의 소유자 는 오히려 자기가 주목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 이유는 자기 개인의 권능이 없음 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니 인간의 무능력함을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경건이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비춰볼 때에 아무 것도 아닌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행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므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는 게 부담스러운 것 입니다. 그러나 요즘 교회 안에서는 어떠한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까?   너무나 사람들 에게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사님이던 장로님이던 안수 집사님이던 많은 성도들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을 이겨 나아가 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주목을 받고자 하기보다 보이는 사람들에게 인정과 주목을 받으려고 하는 성숙하지 못한 믿음 때문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믿음의 소유자는 하나님 앞에서 살려 고 하기보다 사람 앞에서 살려고 하는 본능에 이끌림을 많이 받습니다. 그 결과 중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나기 보다 자기의 영광을 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결코 예 수님으로 말미암은 믿음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난 믿음의 소유자는 자기가 주목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 다. 자기들의 권능과 경건 같은 것을 자랑으로 삼아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자 애쓰지 않습 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명예욕에 유혹을 뿌리쳐야 합니다. 사람에게 주목받고 싶어 하는 인기 연예인과 같은 신앙인이 되서는 아닐 됩니다. 교회 안에는 슈퍼스타(superstar)가 없 어야 합니다.

 

마지막 둘째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난 믿음의 소유자는 오직 하나님께 영 광을 돌립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3장 13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 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하나님을 영화롭 게 한다는 말은 어떤 삶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영광스러움에 굴복하여 경외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앞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오직 하나님만으로 즐거워하 여,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모든 삶을 통해 밝혀 드러내고 증거하는 삶이다. 하나님을 가 장 높은 자리에 모시어 주권을 인정하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원하심을 따라 동행할 뿐 아 니라, 모든 삶과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하나남이 행하시 는 모든 일에 동참하는 삶입니다(인터넷). 성경 이사야 43장 7절을 보십시오: “무릇 내 이 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 들었느니라.”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 된 자의 치유 이적으로 말미암아 받는 모든 주목 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하나님께 영 광을 돌렸습니까?

 

  • 그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선포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3장 13-15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 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베드로는 솔로몬의 행각에 모인 모든 백성 들에게 이 앉은뱅이 된 자가 걷게 된 것은 그들이 잘 아는 언약의 하나님이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복음을 선포 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는 모인 모든 백성들에게 ‘너희들이 빌라도에게 넘겨주고 빌라 도가 놓아주려고 결안한 것을 너희가 ‘부인하고’(2x)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 하며 생명의 주고자 오신 주님을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13-15절) 그러나 하나 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을 살리셨다는 부활의 메시지를 선포하므로 모인 모든 백 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을 믿도록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백성들에게 높임을 받으려고 할 때에 오히려 자기를 낮추고[자기의 권능과 경건이 아 무 것도 아님을 고백함(12절)] 하나님을 높이면서 (하나님의 권능을 선포함) 예수 그리스도 의 복음을 선포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 된 자가 낫게 되었음을 선포하므로 하나님 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3장 16절을 보십시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모든 백성들이 베드로가 행한 이적에 놀라서 그를 높이 려 할 때에, 베드로는 그 영광이 자기에게 돌아올까 두려워하여 경계하였습니다(박윤선). 그는 오히려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진정한 이적은, 그것을 행한 인간을 중심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며 그를 증거함입니다(박윤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난 믿음의 소유자가 되고 싶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을 불편해하면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