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일까요?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사도행전 3장 2절).

 

 

여태껏 성경을 읽다가 무심코 지나친 부분입니다.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그냥 읽으면서 스쳐 지나간 성경 구절입니다. 그 성경 구절은 바로 오늘 본문 사도행전 3장 2절 상반절입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현대인의 성경)]. 여태껏 저는 사도 베드로가 사도 요한과 함께 성전에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6절)고 명하여 그를 걷게 한 이야기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새벽에 이 말씀을 다시 읽다가 얼마 전 새벽기도회 때 묵상한 요한복음 9장 1절 말씀에 나오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행3:2)이란 성경구절이 저로 하여금 이미 묵상한 요한복음 9장 1절에 나 오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생각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혹시 이 두 성경 이야기의 연관성이 있자는 않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일까요?”란 제목 아래 묵상하다가 과연 “그 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신 것(요9:3)이 무엇인지 3가지로 교훈을 받았 던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연약한 믿음을 더하시고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눈 을 뜨게 하셨습니다,

 

  • 주님께서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이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했던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의 불신의 죄를 들춰내시고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 주님께서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그의 눈을 뜨게 하 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3가지 받은 교훈을 생각하다가 그러면 왜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 3장 2절에 나오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사도 베드로로 하여금 걷게 하셨는지 (6-8절)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에게서 하나님이 하시고 자 하셨던 일이 무엇인지가 궁금해 졌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3장 2절에 나오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은 요한복음 9 장에 나오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처럼(요9:8) 사람들에게 “구걸”(행3:2)했던 사람이었 습니다. 즉, 두 사람 다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걸인”이었습니다.  날 때부터 맹금 된 사람은 “길”(요9:1)에 “앉아서 구걸”(8절)하였고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은 아예 걷지를 못하니깐 “날마다” “사람들”이 그를 메고 성전 “미문”에 두면 그는 거기서 성 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였습니다(행3:2). 날마다 구걸하되 아마도 나면서부터 앉 은뱅이 된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된 것을 보면(4:22) 그는 꽤 긴 세월을 “예루살렘”(4:16) 성전 미문에 앉아서 사람들에게 구걸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가 걷게 되어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을 때(3:8) “예루살렘에 사는”(4:16) “모든 백성”(3:9)이 그 모습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했습니다 (10절). 이렇게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란 불리는 행각에 모”인(11절)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설교를 하였습니다(12-26절). 그 설교 내용을 보면 베드로는 그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와 요한을 주목하는데서(12절) 그들이 거부하고(14절) 그들이 죽인 생 명의 주가 되신 예수님,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예수님(15절)을 주목하 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 모인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보고 아는 이 사람(나면서부 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걸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도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이었습 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온 바로 그 믿음이 여러분이 모두 보는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한 것입니다”(16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베드로는 그 모인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고 담대히 선포하였 습니다(19절). 이렇게 그가 설교를 하였을 때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남자의 수만 약 5,000명이나 되었습니다(4:4).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일이요 성령의 역사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까? 사도행전 2장에서는 성령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가 설교를 했을 때 “그 말을 받은 사람들”, 즉 신도의 수가 3,000명이나 더했는데(2:41) 이렇게 오늘 본문 사도행전 3장에서는 5,000명이나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 요 성령의 역사요 하나님께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통하여 하시고자 한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 가운데에는 사탄의 역사도 있었습니다. 그 사탄 의 역사란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3:9) 크게 놀라 솔로몬의 행각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11절) 베드로와 요한이 말을 하고 있었을 때 온 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개파 사람들(4:1, 현대인의 성경)이 와 서 그들이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을 보고 “크게 분개”한 것입니다(2절, 현대인의 성경).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마22:23, 행23:8)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사도들의 가르침과 점함을 좋아할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싫 어하여” (행4:2)]. 그래서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 다음 날까지 가두어 두었습니다 (4:3). 그리고 이튿날 유대인 지도자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율법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 였는데(5절) 그 중에는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 (대제사장의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다 참여하였습니다(6절).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한가 운데 세우고 그들에게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는 지를 물었습니다(7 절). 그 때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그들에게도 설교를 하였습니다(8-12절). 그의 설교 내용을 보면 베드로는 공회 앞에 모인 그 모든 사람들에게 ‘너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나님이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 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완전히 건강하게 되어 너희들 앞에 섰다’라고 말하였습니다(10절). 그런 후 베드로는 그들에게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한 사람 중에 구 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11-12절)고 담대히 선포했습니 다(13절). 이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대제사장들과 그들의 가문에 속한 사람들 및 유대인 지도자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은 놀랐습니다(13절). 그 이유는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제 대로 배우지도 못한 보잘 것은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담대히 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그들은 “병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 고 “비난할 말이 없”었습니다 (15절).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으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므로 그들 또한 부인할 수 없었습니 다(16절). 그래서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위협”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 지 말게 하려고(17절)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고 가르치 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18절). 이것이 바로 사탄의 역사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제자 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가르치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 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5장 17절부터 보면 “대제 사장과 그와 한패인 사두개판 사람들은 사도들을 몹시 시기하여 그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17-18절) 그들로 하여금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엄하게 명령”한 것입 니다(28절, 현대인의 성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그들에게 예수 그 리스도의 죽으심과 하나님께서 그 죽으신 예수님을 살리신 것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회 개하고 죄 사함을 받도록 하시려고 예수님을 자기 오른편에 높이셔서 왕과 구주가 되게 하 셨습니다”(31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했을 때 “이 말을 듣자 그들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 밀어 올라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33절, 현대인의 성경). 그렇게도 사탄의 종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매우 싫어할 뿐만 아니라 구주 예수님을 매우 미워 하고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만 십자가에 못밖에 죽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살리신 나사로도 죽이려 모의했고(요12:11) 또한 예수님의 사도들도 죽이려고 했습니다(행 5:33). 그 이유는 그들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자기들을 떠나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 다(요12:11). 이것이 바로 사탄의 악한 역사입니다.

 

이러한 사탄의 악한 역사 가운데서도 성령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담대 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행4:13). 복음 전함을 싫어하여(4:2) 자신들을 위협 하고 경고하는(17, 18절)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 및 여러 사람들 앞에서도(1, 6절) 베드 로와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19-20절). 또한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5:17) 자신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18절) 또한 심문하는 (27절) 대제사장들과 그들과 한패인 사두개파 사람들(17절) 앞에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29절). 그 결과 사 도들은 채찍질을 당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함을 당하고 놓임을 받았습니다 (40절).  그러나 놓임을 받은 사도들은 오히려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 한 자로 여김을 받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습니다(41절). 그리고 그들은 “날 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 했습니다(행5:42). 이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저는 여태껏 읽고 스쳐 지나갔던 성경구절의 한 부분인 “나면서 못 걷게 된 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란 말씀(행3:2)에 관심을 갖고 요한복음 9장 1절에 나오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과 연관해서 묵상하던 중 ‘과여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이었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유익한 고민을 가지고 사도행전 3-4장을 읽고 묵상하면서 내리게 된 결론은 하나님께서 나면서부터 앉은 뱅이 된 사람을 통해서 하신 하나님의 일은 바로 영혼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걷게 하셨고 그 계기로 많은 사람들을 모으사 사도 베드로로 하여금 그들에게 복음을 담대히 선포케 하셨습 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듣는 자들 중에 남자만 약 5,000명이나 되는 숫자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악한 역사가 있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운데 있었던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성령 충만한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 하여 예수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되며 또한 완성될 줄 믿습니다.

 

 

 

영적으로 “구걸”할 수밖에 없는 성령 충만하지 못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나 같이 담대하지 못한 자를 통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 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