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사도행전 2장 37-41절 말씀 묵상]

 

 

달라스 윌라드는 그의 “마음의 혁신”(Renovation of the Heart)이란 책에서 “내적 변화 없이 행동을 바꾸려는 노력은 헛수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행동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예를 들어서 요즘 많은 교회가 교회의 소프트웨어보다 하드웨어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교회문 화 연구소 홈페이지(2002.7.11): “’판’이 바뀌었다”란 인터넷 기사를 보면 세상이 어떻게 변 화하고 있는지 한 10가지로 이의용 씨가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셋째 변화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에로의 변화입니다. 피아노를 하드웨어 라면 악보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얼마나 크고 성능이 좋은 피아노 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피아노를 연주하는 방법, 악보 같은 것이 더 중요하게 됐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온 것입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상품을 만드는 데는 넓은 사무실이나 재료가 그다지 들지 않습니다. 컴퓨터 몇 대와 훌륭한 두뇌가 일할 공간만 있으면 됩니다. 기독교는 원래 소 프트웨어의 종교이지, 하드웨어의 종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요즘 교회는 하드웨 어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교회 건물, 실내장식, 부동산 같은 것보다 사람들의 영혼을 향한 가르침과 거기에 담긴 보이지 않는 기독교적 문화요소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기독교적 문화요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 과연 우리는 보이지 않는 내적 변화에 얼마나 초점을 맞추어 씨름하며 몸부림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적변화로부터 오는 행동의 변화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 생각해 봐 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이러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적변화가 결핍된 행동의 변화의 열매만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아니면 이러한 열매조차도 없는 것은 아닌지요? 달 란스 윌라드는 “내적 변화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부드럽고도 엄한 내적 변화의 과정은 우리 영혼과 주변 세계에 거하시는 하나님 은혜의 임재를 통해 시작되고 지속된다.” 과연 우리는 이 한해를 뒤돌아보면서 적어도 예배 가운데 하나님 은혜의 임재를 통해 내적 변화를 경험하였습니까?

 

성경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대를 패역한 세대(perverse generation)라고 말 씀하고 있습니다(눅9:41; 행 2:40). “패역한”(perverse)란 말은 “곧은/똑바른/일직선 의”(straight)의 반대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굽은, 만곡한, 뒤틀린”(crooked)입니다. 즉,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뒤틀린 시대란 말입니다. 뒤틀린 마음과 뒤틀린 생각, 뒤 틀린 행동들이 판을 치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뒤틀린 마음과 생각 가운데서 뒤틀린 말과 행동들이 자행 자해되고 있습니다. 한 예를 들어 금요 일에 들은 뉴스를 보면 한국에서 설문조사를 한 것 같은데 그 설문에 응답한 사람들 중 많 은 사람들이 진실(윤리)보다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택의 잣대 혹은 기준이 뒤틀려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자기의 또는 국가의 유익이 란 관점에서 판단을 합니다. 개별성을 강조한다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사람들은 상대론주의(relativism)에 빠져서 각자가 보기에 옳은 대로 선택하고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 리는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행2:40). 그 러기 위해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두 가지로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말씀에 반응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에 반응하고 무엇에 무반응 해야 하는지 혼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한다면, 우리의 ‘영적 반응/무반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는 듯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을 해야 함 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에 반응하기보다 세상의 염려와 물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 다.   “소화기계의 면역 무반응에 관여하는 세포 규명”(서울대 강창율 교수)란 인터넷 기사 를 보면 우리 몸에 “면역 반응”(immune response)과 “면역 무반응”(immunological tolerance)이라는 상태가 있다고 합니다.  면역 반응(immune response)이란 “외부에서 우 리 몸으로 들어오는 물질에 대한 면역계의 반응은 크게 해로운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면역 세포가 공격을 가하는 상태를 말하고 면역 무반응(immunological tolerance)이란 무해한 물 질에 대해 불필요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면역 무반응은 외부에서 들어온 항원이나 자신의 몸으로부터 유래한 항원(자가 항원)에 대해 면역 세포가 면역 반응 을 일으키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어느 면으로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안에 ‘영적 면 역 반응’이 작동되어 세상에서 우리 마음으로 들어오는 해로운 사상들과 유혹들, 죄악된 것 들을 면역 세포인 우리의 신앙이 공격을 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면역 무반응” 상 태에 있지 아니한가 생각됩니다. 우리는 무엇에 반응해야 하며 무엇에 무반응 해야 하는지 명백하게 구분해서 실천해 옮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 37절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에 반응을 한 3,000명의 사람 들이 나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을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 37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과연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한 3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41절을 보십시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 우리는 마음 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받아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길 가에 뿌리어 져서도 아니 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므로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 에 뿌리올 것을 빼앗아 가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돌밭에 뿌리어져서도 아니 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으므로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라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가시떨기에 뿌 리어져서도 아니 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 이 막혀 결실치 못하면 아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좋은 땅”에 뿌리어져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결실해야 합니다(마13:19-22).

 

  •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합니다(히4:1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 양심에 찔림(conscience-stricken)이 있 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 우리 마음은 점점 더 강퍅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 리는 마음 농사를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 밭을 가꾸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에 단단한 부분들을 부서트려 야 합니다. 괭이로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단단한 부분들이 부서지고 깨져 야 합니다.

 

  • 마지막 셋째로, “우리가 어찌할꾜”라고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받으므로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고 해도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결단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반응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의 하나님 말씀 선포를 듣고 그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41절) 마음에 찔림 속에서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었습니다(38절).   이들은 된 말 씀을 통하여 마음(양심)에 찔림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설교 시간에만 말 씀에 양심이 찔리고 설교만 끝나면 그냥 그 전 모습대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귀한 선포된 말씀에 대한 반응입니까? 과연 요즘 목사님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 들은 후 그 목사님에게 “제가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진정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신앙인들은 삶의 행동의 변화를 추구하는 자들임. 입 술로만 변화를 외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에 적극적으로 또한 능동적으로 변 화를 추구하고자 힘쓰고 애쓰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신앙인들이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에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받아야 하며 그 말씀으로 하여금 내 마음과 양심에 찔림을 사모할지언정 거부하며 피하려고 하면 아니 됩니 다. 더 나아가서, 그 말씀에 찔림 속에서 “내가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며 그 질문 에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답에 순종하므로 삶에 변화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 다.

 

마지막 둘째로,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죄 사함 을 얻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 38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 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 리니.” 오순절 성령 충만함 속에서 베드로가 모인 무리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 하였을 때 그 말씀을 받고 마음에 찔린바 되었던 심령들이 다 함께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그들에게 “죄 사함을 얻으라”고 대답하였습니다(38절). 여기서 죄 사함을 받으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그 말 씀은 다름이 아니라 회개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말씀입니다(38절). 여기 서 “회개”란 “마음의 변화”(박윤선)를 가리키는데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있는 무리들에게 제일 먼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 (36절)를 회개하므로 더 이상 예수님 을 미워하고 그를 주님과 그리스도이심(36절)을 부인하지 말고 마음으로 그를 자신의 주님 과 그리스도로 영접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음의 변화이 지, 생각의 변화가 아닙니다. 참된 회개는 우리의 행동까지 변화를 일으킬 마음의 변화입 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사실은 진정한 마음의 변화가 없이도 행동의 변화가 있을 수 있 다는 사실입니다. 실제적으로 회개는 우리의 ‘옛 사람’에 대해 반대 입장에 서고, 대신에 하나님의 편에 우리 자신을 두는 것입니다(인터넷). 우리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따르든지, 계속해서 우리 옛 행위를 고집하든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유의 부단해서는 아니 됩니다. 이러한 결단은 하나님과의 관계 설정에 본질적인 마음의 변 화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므로 네 가지 요소가 참된 회개의 증거로 나타납니다: 지성의 변 화, 감성의 변화, 의지의 변화, 그리고 행동의 변화.   또 한 가지, 죄 사함을 받으라는 말씀 은 회개하라는 말씀과 더불어 ‘세례를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세례”의 의미가 무엇입니 까? 저희 교회가 소속돼 있는 교단 헌법(PCA The Book of Church Order 56장)을 보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세례는 은혜의 언약에 인을 치는 것이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지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며, 죄 용서, 중생, 양자됨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인을 치는 것임을 의미한다. … 물로 뿌리거나 씻는 세례는 그리스도의 피의 공 로로 죄를 씻어 버리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효능으로 죄를 억제하고 죄악에서 벗어나 새 생명으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한 후 세 례를 받아야 합니다. 만일 이미 죄를 회개한 후 세례를 받았다면 우리는 마음의 변화를 추 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성의 변화, 감성의 변화, 의지의 변화, 그리고 행동의 변화 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그의 책 “마음의 혁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과 변화에 서 우리가 바른 방향과 꾸준한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받는다면, 반드시 우리 내면은 그리스도를 닮는 쪽으로 점점 변화된다. 외면생활, 특히 행동의 변화는 자연히 따 라온다”(윌라드).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꾸준한 행동” 중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신 실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받아야 하며 그 말씀에 내 마음과 양심이 찔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찔림 속에서 마음의 변화부터해서 행동의 변화까 지 이끌어 내야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또 우리가 해야 하는 “꾸준한 행동”은 회개 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보면서 들춰지는 죄들을 회개하므로 마음의 변화와 더불어 지성, 감성, 의지,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힘써야 합니다.

 

 

 

이 패역한 세대에 구원을 받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찔림이 있는 가운데 참된 회개를 하므로 죄 사함을 받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