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

 

 

 

[사도행전 2장 22-36절 말씀 묵상]

 

 

가락국 건국 신화에 나오는 삽입가요 중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두껍아 두껍 아 헌집 줄께 새집 다오.” 무슨 뜻인 줄 아십니까? “옴두꺼비”라고 불리는 독을 가진 두 꺼비가 있는데 이 두꺼비는 알을 품으면, 전에는 뱀이 무서워서 피해 다니던 두꺼비가, 일 부러 독사를 찾아가서 독을 뿜어내며, 있는 힘을 다해 싸운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독 사에게 잡아먹히게 되지만, 독사에게 잡아먹히면서 남겨둔 독을 독사 뱃속에서 쏘아 독사도 죽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엄마 두꺼비 뱃속의 알들은, 엄마 옴두꺼비와 독사를 먹이로 하 여 건강한 새끼 옴두꺼비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에 서 헌집은 바로 자식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하는 어머니를 말하고, 새집은 자식을 뜻한다고 합니다(인터넷). 이 예화에서 얻는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여기서 “헌집”은 어느 면으로 보면 예수님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십자가에 희생하신 예수님, 십 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새 집”인 우리는 새로운 생명,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 리가 예수님을 늘 배반하여도 “주 널 위해 비네 늘 빌으시네”(찬송가412장)처럼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사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 22-36절은 오순절 날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도 베드로가 많은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14절)에게 설교를 하는 내용 중 두 번째 부분입니다. 그는 첫 번째 부분(2:14-21)에서 120 문도들이 술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세 례 및 성령 충만함을 받았음을 요엘 선지자의 예언 말씀의 성취로 강조하면서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20절) 주님의 이름을 불러 구원 얻을 것을 권면하였습니다(21 절). 그런 후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승천하시사 하 나님 아버지께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14절)이 보고 듣는 성령님을 120문도들에게 부어주셨음을 설교하고 있습니다(33절). 그의 이 설교 내용 중 오늘 본문 36절을 보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란 말씀이 나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핵심인 예수님에 대하여 한 4가지로 묵상해 보면서 베드로의 설교를 통 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먼저 베드로가 설교한 예수님은 어떠한 예수님이신가?

 

첫째로, 베드로가 설교한 예수님은 “내어준 바” 되신 예수님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 23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 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 여기서 “내어준 바” 되신 예수님이란 예수님 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은 내어준 바 되셨습니까? 이것은 곧 영원 전부터(딤후1:9)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대속 죽음(atoning death)을 이미 예정하셨고 또한 계획하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MacArthur).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 을 명심해야 합니다:

 

  • 첫 번째 사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자 죽으신 것은 하나의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 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박윤선). 누가복음 22장 22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 예수님의 십자가 의 대속 죽음은 이미 창세전에 작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정된 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 또 다른 사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유대인들과 불법 자들에게 내어주 시지 않았다면 결코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 실을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9장 10-1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 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다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유대인들과 불법 자들에게 내어주셨습니까? 바울은 이 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롬4:25).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고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를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께 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 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8:32). 우리에게 최고이신 예수님을 내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내어 주시지 아니 하시겠습니까?

 

둘째로, 베드로가 설교한 예수님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 2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 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즉, 십자가에 내어준 바 되신 예수 님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다시 살리셨습니다(부활). 이 사실을 목격한 베드로는 예수님께 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음을 설교한 것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 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그러면서 그는 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자기가 목격한 것 외에 또 다른 증거로 구약에 다윗을 들고 있습니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 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 시리라 하더니”(30-31절). 여기서 베드로는 시편 16편 말씀 인용의 핵심인 다윗이 하나님 에게 받은 그 맹세(“맹세로 맹세하사”)인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 중에 나실 것을 예 언한 맹세로서(삼상7:12) 다윗이 “알고”(행2:30) 또한 ‘미리 본 것’(31절)은 그리스도가 십 자가의 죽으시고 부활하여 그의 왕위에 즉위하게 될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유상섭 교수 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메시아를 다윗의 왕위에 즉위시키기 위해 메시아의 부활은 절 대적으로 필요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이것을 결정적으 로 성취하신 것이다”(유상섭).

 

이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육체로 하여금 희망에 거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 26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 는 희망에 거하리니.”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31절)신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 육체는 희망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육체가 희망에 거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 27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 영혼을 음부 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그러나 만 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육체는 희망(소망)이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 이 없다면 우리는 어떠한 자들입니까? 고린도전서 15장 19절을 보십시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 라”. 그러나 우리는 소망이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 육체는 소망이 있습 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우리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을 보십시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 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 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 이 있느니라”. 또한 빌립보서 3장 20-21절을 보십시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 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 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 리라.”

 

셋째로, 베드로가 설교한 예수님은 생명의 길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 28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여기서 “생명의 길”이란 무슨 말씀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말씀합니다. 그리 고 이 구원은 영육이 아울러 얻는 구원을 말합니다(27절, 박윤선). 베드로는 성령 충만한 가운데서 시편 16편8-11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죽으심(23절)과 부활하 심(24절)으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영육의 구원이 있음(21절)을 선포하였습 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생명의 길을 걷기보다 멸망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기를 거부하고 믿기를 거부하면서 멸망의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의 문 앞 에서도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하면서 죽음 후에 삶을 부이하는 자들, 그들에게는 죽음이 최 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건한 자에게는 죽음이 최후가 아닙니다(박윤선). 오 히려 죽음이란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이 시작을 의미합니다. 다윗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 니다. 그가 시편16장10절 (행2:27)에서 고백을 한 것은 메시아가 죽음에서 부활할 것을 미 리 내다본 것임을 사도 베드로를 그의 설교에서 강조하면서 다윗이 그 미리 내다봄으로 말 미암아 “기쁨이 충만”하였던 것처럼 우리 또한 기쁨이 충만해야 할 것을 도전하고 있습니 다. 그 이유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우리가 있게 될 때에 그것이야 말로 참 으로 행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 다윗은 시편 27편 4절에서 이렇게 하나님께 한 가지 청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 게 하실 것이라.”

 

 

마지막 넷째로, 베드로가 설교한 예수님은 높이심을 받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 3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님)를 높이”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하늘로 올려가 시사 그의 오른편(손)에 앉게 하셨음을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의 보좌 우편 에서 다윗의 왕위에 즉위하셨습니다(유상섭). 이 하나님 우편에 즉위한 사건은 하나님께서 메시아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 느니라 하니라.”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천상보좌에 천상 통치자로서 최초로 행한 통치 행위는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아 오순절 날에 120문도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사건입니다(33절). 유상섭 교수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오순절 사건은 예수께서 통치를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합법적으로 개시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역사적인 대사건이다. 사도 베드로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이스라엘 온 집이 분명하게 알기 를 촉구했던 것이다(행2:36).  이제 예수께서 천상에서 주와 그리스도로 세움을 받은 보이 지 않는 사실을 볼 수 있게 한 것이 오순절 날에 있었던 성령의 부어주심 사건이다.”

 

누가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았습니까? 로마 군인입니까? 대제사장들입니까? 아니면 유대인들입니까? 찬송가 144장 2절을 보면 “저 무지한 사람들 메시야 죽였네”라고 적혀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부를 때 자주 ‘저 무지한 제임스 메시야 죽였네’라고 바꿔서 부 르곤 합니다.  그 근거는 히브리서 6장 6절입니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 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 라.” 물론 여기서 “배교”를 말씀하고 있지만 찬송가 412장 제목처럼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므로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이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 에 매여 있을 수 없으셨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 여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높이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어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의 길을 걸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