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사도행전 2장 14-21절 말씀 묵상]

 

 

21세기에 들어와 대규모로 자주 일어나는 자연재앙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합 니까?   환경주의자들은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고 황폐하게 만든 탓에 기인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반하여 기독교 근본주의자는 이 세상이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종말에 가까웠다고 말합 니다. 이에 대하여 개혁 주의적 전통에 선 우리 복음주의자들은 이 두 가지 견해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연과 역사 섭리 안에서 서로 연결점을 가지면서 자연 재 앙 속에서 우리 인류에게 보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연 재앙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는 세 가지입니다(인터넷):

 

  • 첫째로, 개인의 죄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자연의 재앙을 통하여 우리 개인들이 자연에 대한 바른 삶, 이웃을 향한 바른 삶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야 할 것 을 경고하십니다.

 

  • 둘째로, 사회의 죄에 대한 경고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재앙은 윤리적 범죄였 으나 하나님은 하늘에서 유황과 불을 보내심으로써 도시를 소멸하셨다. 노아의 홍수도 마찬 가지로 그 시대에 불법이 가득 찼을 때 하나님은 홍수의 재앙으로 그 시대 사람들을 모두 쓰러가셨습니다.

 

  • 마지막 셋째로, 종말에 대한 징조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인자 때의 징조는 자연의 재앙과 더불어 시작합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 조가 있사오리까?” 라는 세상 종말의 징조에 관한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다음같이 답 변하십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 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24:3하-8).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 20절을 보면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염두에 두면서 그 주님의 날이 이르기 전 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한 3가지로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우리는 술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에베소서 5장 18절을 보십시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 15절을 보면 사도 베드로의 설교 중에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함을 받은 120문도들은 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 강림할 때 모인 천하 각국의 경건한 유대인들(5절)과 큰 무리들(6절) 앞에서 일어서서 설교 를 하면서 120 문도들이 술 취하지 않았냐고 말했는가 하면 그 이유는 그 모인 많은 사람들중 어떤 이들은 120 문도를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13절)고 조롱하고 있었기 때문입 니다. 그러나 그 때가 “제 삼시”, 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이기에 “120 문도들이 당시 문화 적인 관습상 그렇게 이른 시간에, 그것도 다른 때가 아닌 오순절 축제일에 술 취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함을” 베드로는 증거하였습니다(유상섭).

 

인터넷 뉴스를 보니 “美동포, 작년 1인당 소주 12병 마셔”라는 제목 아래 이 런 기사가 나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004년 한 해 동안 캘리포니아 주에서 팔린 소주(진 로와 두산의 소주 판매량)는 총 273만 병으로, 전해 228만 병에 비해 무려 20%가 증가했 다고 전했다고 합니다.  진로와 두산의 양대 브랜드인 참 이슬과 산 소주의 판매량을 집계 한 것으로서 소주 판매량을 연방 센서스의 캘리포니아 주 동포 인구자료(전체 24만1천923 명)를 토대로 계산하면 1인당 평균12병을 마신 셈이라고 합니다(인터넷).  교회에서 술 얘 기 나오면 주로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성경에 술 먹지 말라는 말씀이 어디 적혀 있는 가?’  성경 누가복음1장15절을 보십시오: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 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그래서 저는 “소주를 마시지 마십 시다!”라는 글을 누가복음1장15절 말씀 중심으로 묵상하면서 글을 써서 저희 교회 웹사이 트에 올려놓았습니다. 짧게 요약을 한다면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한국에 있을 때에 많은 젊은이들 가정 냉장고에 참 이슬 소주 한 병씩이 있는 것을 보고 좀 놀랬습니다.  어떤 형 제 집에는 양주가 있더군요. 그런데 한국에서 좀 더 살면서 한국 회식 문화를 좀 듣고 보면 서 술자리를 피하기가 참 힘들고 술 한 잔 권면에 ‘No’ 하기가 쉽지 않는 문화라는 것을 피 부로 조금 더 느꼈습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그리스도인 젊은이들이 세상 젊은이들과 같이 술 마시는 것에 대하여 놀랍게도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있지 않나 걱정스럽기도 합니 다. 저의 염려는 이것입니다.  그러나 실지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술 취함이 방탐함이다 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 술을 가까이 함에 있어서 단호히 "No"를 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염 려가 됩니다. 물론 술 취함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으니 술 한두 잔은 괜찮지 않습니까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왠지 술과 성령 충만함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는 생각입 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 충만함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술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술은 성령 충만함 삶을 추구함에 있어서 걸림돌이 됩니 다. 그러기에 바울은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엡5:15). 세상 적 지혜는 술을 마시라고 말할 것입니다. 마시되 취할 정도로 마셔서 방탕하여 세월을 허송세월하라고 말할 것입니 다(16절).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말고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눅1:15).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합니까? 술 취함으로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너희 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눅21:34). 생활의 염려로 말미암아 술 취해서도 아니 될 것이고 (만일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스트레스와 생활의 염려 등등으로 술을 퍼마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결국은 방 탕함으로 세월을 허송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회사일과 사업 상 할 수 없이 술을 마셔야 할 수 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단호히 술은 "아니오"하면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조심하여 술 을 입에 대지 아니함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 더욱더 좋은 모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둘째로,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우리는 술 취하지 말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 에베소서 5장 18절을 보십시오: “…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 17-18절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 중에 120문도들이 술 취해서 각 나라의 언어 로 방언한 것이 아니라 구약 요엘 선지자의 예언(요엘 2장28-32절) 말씀인 성령을 부어주 시마 하는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 것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 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 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 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그가 설교에 이 요엘 선지의 예언의 말씀을 인 용하면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큰 무리가 목격하는 120문도들의 각 나라의 방언을 통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11절)은 요엘 선지아의 예언 성취가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육 체”(17절), 곧 “자녀들, 젊은이들, 늙은이들, 남종과 여종들, 사회적인 모든 계층”이 다 성 령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이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성취된 사실입니다. 모든 계층 의 사람들이 성령의 부어주심을 받았을 때 일어나는 현상은 요엘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예 언하며,’ ‘환상을 보며’ 또한 ‘꿈을 꾸리라’입니다.  이것은 곧 구약 선지자들이 꿈이나 환상 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포하였던 것처럼 오순절 날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모두가 선지자가 되어 하나님의 놀라운 일, 즉 예 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에 대해 증거하게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유상섭).

 

우리는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수님을 높이고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소명 자는 낙심하지 않는다”란 책에서 저가 고 옥한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혹 죄인 줄 알면서도 어떤 죄를 계속 범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순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예배가 지겹습니까? 찬양하고 감사하는 기쁨이 없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 듣기가 힘듭니까? … 입이 무거워서 기도가 잘 안됩 니까? 그러면 당신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열심히 봉사하지만 심령이 답답하고 갈급합 니까? 그러면 당신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 전도가 힘듭니까?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해서 안타까운 심령이 타오르지 않습니까?  그러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 이유 여하 를 막론하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우리는 먼저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로이드 죤스 목사님은 성령 충만을 위해서는 사모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 다.  즉 자신을 드림과 함께 충만해 지고자 하는 소원이 있을 때 성령 충만을 받기에 적합 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케 되기 위한 소원 속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속 에 있는 죄를 판단하시고 제하시도록 하는 원함 또한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끈과 악한 제도로부터 주님께로 분리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살았다는 사실을 우리 삶속에서 효력을 보기 원해야 합니 다. 또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성령의 열매를 맺기 원하는 소원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도 됩 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성령의 충만은 참으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과 그 값을 치룰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들과 그것을 받는 것이 필요하여 다른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 이요(충만히 채워질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진정으로 성령에 의해 지배되기를 원하는 소원은 기도와 말씀의 풍성함에 의해서만 가능하 다는 점입니다. 기도와 말씀의 충만이 성령 충만 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 니다. 말씀과 기도가 뒤따르지 않는 원함은 지식적이고 피상적 사모합니다.

 

  • 우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스탓트는 성령 충만의 은혜가 잃어진 때에는 회개와 기도로 그것을 회복할 수 있다 고 하면서, 성령은 죄 때문에 슬퍼하시며(엡 4:30) 죄인에게 채워 주시기를 그치신다고 하 였습니다. 그런데 회개는 채우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레만 스트라우스는 생활 주위에 있는 모든 시기, 위선, 거짓, 더러운 것을 버리고 진실하도록 하라고 하면서 무 례하고, 불친절하고, 상냥하지 않으며, 용서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성령으 로 충만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회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죄를 회개하며 성결의 옷을 입고 사는 신자는 성령에 민감한 자이므로 성령 충만한 신자라고 하였습니다. 죄인이 내재하는 성령님의 책망을 듣고 그 죄를 스스로 버리지 않는 한 성령님은 그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자는 결코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도 이러한 의미에서 이해가 가능합 니다.

 

  • 우리는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성령의 충만을 받으려면 그 충만을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 에 거하시는 정도는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구하는가 않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의 의무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이다. 우리가 성령을 위하여 간구하고 그래서 그를 충만 히 받으면 우리는 우리로 하여금 그를 간구하도록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 다. 덤 라레이도 '자신을 살피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생각나는 모든 죄와 부족한 점을 모두 고백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완전히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다음 누가복음 11장 13절을 따라 성령의 충만을 간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오순절 이후로는 그리스도인은 오로지 간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 우리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독교의 모든 축복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옵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로 믿음으로써 죄책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며,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음으로써 죄의 세 력에서 거룩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결의 영의 더욱 충만한 내주는 행위에 의해서 받게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 의해서 받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로 성령과 그리스도를 구하여 믿음으로 기도하도록 하심이 사실이나 우리가 그의 내적 임재를 믿음으로 구하면 구 할수록 우리들의 생명 가운데 성령께서 더욱 충만히 오시는 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왜냐 하면 믿음은 성령과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어네 빠쉬(Rene Pache)는 성령 충만하기 위해 우리가 걸어야 할 첫 단계는 믿는 것이라고 하면서 믿음을 가지로 설 명하였습니다. (a)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먼저 그를 믿고 모든 일에 그를 바라보기를 요구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하며, (b) 둘째는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 기 원하는 것을 믿어야 하며 (c) 셋째로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채워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d)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조건으로 인하여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거니와 또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어떤 조건으로 보다도 이 조건에 의하여 성령 충만의 경험을 맛보게 됩니다. 토래이(Torrey) 목 사님은 성령 충만 받는 방법 7단 계중 4번째 단계에서 순종을 성령 충만 받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특히 순종을 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 순종은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우리 가 주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모실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의 순종 즉 하나님께서 명하 시는데 따라 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순종의 중심은 의지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의 지를 맡기는 일이야말로 성령의 충만을 받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의 하나라고 했습 니다. 결국 성령 충만이 성령의 지배받음을 의미 하는바 성령의 깨닫게 하심과 감동하심에 순종할 때 성령 충만의 실제를 체험케 되며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원하는 마음 과 의지의 순종 없이 성령께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해 주시도록 기다리는 것은 성령님이 인격 이시라는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음입니다. 인격은 상대 인격을 인정하는데서 그 관계가 유지 되고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격적 순종만이 성령 충만을 가능하게 합니다. 레만 스트라우스는 '빈 마음이 성령 충만의 첫 조건이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헌 신하고 완전히 복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성령으로 가득 채워 주실 것이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최후 분부하심을 순종한 무리들이 성 령을 충만히 받았던 점으로 보아서도 그리스도의 분부하심에 대한 순종이 성령 충만의 비결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인터넷).

 

셋째로,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불 러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 21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 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오늘 본문 19-20절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 중 요엘 선지자의 말씀인 말세의 징조들이 나오는데 “피와 불과 연기”는 많은 전쟁을 가리키며 해의 변함과 달의 변함”은 “여러 가지 하나님의 진노의 상징 표현으로 환란들이 있을 것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많은 전쟁과 환란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복음에 돌아오게 하려는 것 입니다(박윤선).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2004년 5월 전 세계 동시개봉) 를 아십니까?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녹아 북반구 전체가 얼음으로 덮이는 대재앙 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로서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녹아내린 빙하가 대서양 난류의 온도를 떨어뜨리면서 기상이변이 발생해 미국을 포함한 북반구 대부분이 인간이 살 수 없는 동토가 되는 비극적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에 미국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멕시코로 대거이동 하며 멕시코의 국경봉쇄로 비참한 궁지에 몰린다는 내용이 담긴 영화입니다. 2004년 5월 26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북극 기후를 연구하는 북극 인근 8개국 과학자들의 모임인 ‘북 극 기후영향평가 협회(ACIA)’는 "북극의 빙하가 무서운 속도로 녹고 있고, 북극의 빙하 지 대의 기온 상승 폭이 지구 평균치보다 2~3배나 높아 대재앙이 우려 된다"는 1천 8백 쪽 분 량의 방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합니다.   “북극 빙하가 지난 30년 동안 3분의 1이 줄어 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21세기가 끝나기도 전에 북극 빙하가 모두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멈추지 않고 있는 지구 온난화. 미국 남부를 쑥대밭으로 만든 카트리나 등 허리케인의 규모가 커지고 발생이 잦아진 것도 지구 온난화가 그 원인인 것으 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온난화의 증거는 북극에서 더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인터넷).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를 것입니다. 주님의 심판과 더불어 주임의 구원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될 것이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구세주로 영접하여 믿는 우리들에겐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 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21절).

 

하나님의 경고와 유예하십니다. 인류 역사상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이었던 홍수심판 도 하나님의 사전 경고와 충분한 유예기간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은혜를 입 은 노아에게 경고하셨습니다(창6:12). 이처럼 경고-예고-하신 하나님께서는 홍수에 대비하 여 방주를 짓도록 명령하시고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유예기간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기간은 노아에게는 홍수에 대비한 구원의 기회이며 당시의 인류에게도 죄에서 돌이켜 하 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셨습니다(히11:7). 그러나 당 시 패역한 인류는 노아의 날 방주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멸망 받았습니다(벧전3:20)(인터넷).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 이 이르기 전에” 술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술 취하지 말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 르기 전에”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술 취하지 말고 성령 충만함을 받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