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사도행전 1장 12-26절 말씀 묵상]

 

 

직분이란 무엇입니까? 직분은 직위(position)가 아니라 직능(function)입니다. 직 분의 목적은 섬김이요, 희생이요, 종입니다. 직분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고후4:4). 섬김과 희생이 없다면 직분 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위선자에 불 과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직분을 받았기에 직분에 충성해야 합니다.

 

직분 자에 대하여 우리가 말할 때 직분자의 자격이 나와 있는 디모데전서 3장1-13 절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회 직분자로서 갖추어야 할 자격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책망할 것이 없는 자, 즉 교회 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도덕적인 면에서 흠이 없어야 하며, 모든 일에 절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근신해야 하는데 근신이라 함 은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니 말과 행동, 생각 등을 삼가 조심해야 함을 가리킵니다. 나그네 대접하기를 좋아하며, 술을 즐기기 않는 자가 되어야 하며, 구타하거나 다투지 말고, 모든 일에 관용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되며, 제 고집대로 행 하지 아니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상이 직분자의 기 본적인 자격입니다(인터넷). 과연 우리 직분을 맡은 자들은 어떻게 이 직분을 감당해야 하 는 것인가 질문을 던져 봅니다. 교회 직분자의 태도는 이렇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 여야 합니다(고전9:16-18). 교회의 직분은 스스로 맡은 것이 아니라, 조직 기능을 통하여 임직하므로 솔선수범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즐거움으로 해야 하며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특히 교회의 직분 자를 모든 일에 본이 되게 봉사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인터넷).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에 충성하지 못하고 배도하므로 그 직분을 박탈한 예수님의 제자가 나옵니다. 그의 이름은 우리가 잘 아는 ‘가롯 유다’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 12-26절 말씀 중심으로 “그 직분을 타인에게 취하소서”란 제목 아 래 직분에 관하여 한 3가지 면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그 직분”이란 무엇입니까?   “그 직분”이란 “사도의 직분”을 가리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25절을 보십시오: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 한글 성경엔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라고 적혀있는데 원어 헬라어 본 문에서 이에 상응하는 구절의 뜻은 “이 직분, 곧 사도직의 지위”입니다(유상섭). 과연 사도 의 직분이 아직도 있습니까? “가톨릭은 교황을 가리켜 베드로의 사도직분을 계승하고, 그 리스도의 대리자며, 전체교회의 머리이고, 무오한(오류가 없는) 존재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황의 교시를 성경보다 높게 생각합니다”(인터넷).  그러나 우리 개혁주의 신앙은 사도직 의 계승을 부인합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21-22절에 나오는 사도 의 자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어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 사도직의 계승을 부인하는 이유는 사도직이란 요한의 세례로부터 예수님께서 부 활 승천하실 때까지 1세기 시대 때 사도들과 함께 있었던 자들로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 한 자가 사도직을 계승 받을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이 지금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직은 전체 적으로 일회적이며 반복 불가능합니다.   직접 부활한 주님을 목격 했고 직접 주님의 사자로 서의 임무를 받은 원시 교회의 일원일 그들을 후계자가 대신하거나 대리할 수 없습니다. 직접 목격자이며 직접 파견 받은 자로서의 사도직은 반복과 계속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 직분”, 곧 “사도의 직분”이 더 이상 존재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직분”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비록 “사도직”이란 독특한 직분은 반복될 수 없지만 사도들의 교훈과 사도의 사역을 우리 교회가 받아들이고 순종할 책임이 있다고 믿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란 말은 ‘보냄을 받은 자’란 뜻인데 어느 면으로 보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세상에 보냄을 받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그 직분”이란 사도들 처럼 주님으로부터 세상에 보냄을 받아 우리의 입을 열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내용을 담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복음의 진보).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인 자 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며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세워야 합니다(믿음의 진보). 이것이 바로 우리를 보내신 분이신 주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보냄을 받은 자들’로서 우리를 ‘보내신 분’이신 주님의 이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우리 직분 자 들의 책임입니다.

 

둘째로, 왜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도록 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그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 한 명이였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사도 베 드로는 유다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여야 한다고 “다락”(13절)에 모인 나머지 사도들과 더 불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포함한 모인 수 약 120명의 무리들(15절) 앞에서 설교를 하 였습니다. 이 베드로의 설교 가운데 흥미로운 점은 가룟 유다의 배반(배도)은 이미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 16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 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여기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란 오늘 본문 20절 상반 절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 20절 상반 절 말씀은 시편 69편25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저희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그 장막에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결국 베드로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 20절에서 시편 69편 25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유다의 죄는 예수님을 체포하는 자들을 예수님께 안내한 죄”로서 예수님을 배척하는 죄를 범했는데 이 죄는 어둠 의 세력 곧 사탄의 세력과 협력한 죄로서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된 것을 알 려주고 있습니다(유상섭). 그러므로 그는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채울 사람을 세움으로서 20절 하반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시편 109편 8절 하반 절 말씀인 “… 그 직분을 타인이 취 하게 하시며”를 성취해야 할 당위성을 오늘 본문 21-22절에서 역설했습니다.

 

요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직분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에서가 장자의 권리를 가볍게 여기므로 동생 야곱에게 “식물을 위하여” 팔므로 히브리서 12장16절에서 이러한 영적 직분을 경홀히 여기는 에서를 망령된 자, 곧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너무나 많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 에게 주신 직분을 가볍게 여기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어느 면으로 보면 이렇게 교회의 직분에 대해서 소홀히 여기는 경향은 타당할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교회의 직분은 어떤 권세를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큰 명예가 따라 다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 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교회 직분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그리고 그는 충성의 우선순위를 교회 직분에 둡니다. 바로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가 그랬습니다. 그는 대통령 으로부터 체신부 장관직을 제의 받았을 때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고 있는데 장관직을 맡게 되면 아이들을 주일마다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교회학교 교사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자 그때서야 그는 장관직을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이면 비행기를 타 고 고향에 내려가 어린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한번은 기자들이 워너메이커에게 장관직이 교 회학교 교사직만도 못하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교회 학교 교사직은 내가 평생 동안 해야 할 본업입니다. 그러나 장관직은 한 두 해 하다가 말 부업이 아니겠 습니까?”   이 얼마나 귀한 자세입니까?   세상의 어떤 높은 직책 보다 하나님 섬기는 직분 을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 여기에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가 있습니다(인터넷).

 

셋째로, 어떻게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까?

제비를 뽑으므로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 26절을 보십시오: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 하니라.” 가룟 유다의 배도로 말미암아 시편 109편8절 하반 절 말씀에 응하여야 했기에 유다를 대신한 사도를 선택함에 있어서 자격 요건인 요한의 세례로부터 예 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실 때까지 다른 11사도들과 함께 했었던 사람을 천거했는데 바사바라 하는 요셉(별명: 유스도)과 맛디아라는 두 사람이 후보자로 천거되었습니다(행1:21-23). 이 두 후보자들 중에 한명을 가룟 유다 대신 사도의 직분을 맡기기 위하여 선택함에 있어서 약 120문도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 24-25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 로 갔나이다 하고.”   이러한 약 120문도의 기도는 사도를 선택하심에 있어서 밤새도록 기 도하신 후에 제자들을 선택하신 예수님의 모범(눅6:13)을 본받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것 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 예수께서 두 후보 중에 이미 택한 자 한 사람을 보여 달 라는 기도입니다(유상섭). 그리고 그들은 기도 후 주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제비를 뽑았 습니다. 그리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뽑혀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행 1:26). 그 당시에 제비뽑기 방식은 아마도 구약의 제비뽑기 관습에 따라 각각의 돌에 두 후보자의 이름을 기록하고 그릇에 넣어 흔들어 먼저 나온 돌에 이름이 적힌 자를 선택한 것 으로 보입니다(레16:8; 수18:6-8:10; 대상24:5, 31, 26:13-16; 느 10:34, 11:1; 시 22:18; 겔21:21)(유상섭).

 

과연 제비뽑기 방식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용한 방법입니까?   예장합동총회는 새천년의 원년인 2000년에 개최한 제85회 총회(장소: 진주 교회당. 총회장: 김동권 목사)에서 총대전원 만장일치로 총회임원 선거규칙과 제도를 성경대로 제비뽑는 선거법으로 개정하였 다고 합니다. 그 이후 기득권자들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서 무산 될 위기를 맞이하였습니 다. 그러나 주권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21세기의 원년에 열린 제86회 총회(장소: 충현교회. 총회장: 예종탁 목사)에 재 상정하여 총회는 성경적, 신학적인 토론과 논쟁을 거친 후 절 대 다수 총대들의 지지를 받으며 재결의 하였다고 합니다(유상섭). 왜 제비뽑기를 하고 있 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선거의 부정과 부패를 막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상섭 교수님에 의하면 제비뽑기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성경대로 제비 뽑 힌 분들의 책임과 의무와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쁘게 여기시고 합당히 여기셔 서 제비뽑아 주셨으면 그 누구보다도 겸손하게 주님의 마음에 흡족하도록 주님의 뜻을 이루 어 드림으로 하나님과 사람으로 하여금 칭찬과 존경과 신임을 받아야 할 책임과 의무와 사 명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제비뽑아 주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기대를 저버린 사울같이 교만하여 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자기 뜻대로 자기주장대로 자행자지 하다가 버림을 받는 불행한 사역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다”(유상섭).

 

어느 한 집사님 이야기입니다: 그 집사님은 교회 개척 때부터 십 수 연간을 교회에 서 봉사활동을 해 오신 분이랍니다. 그 집사님이 뒤늦게 직장을 다니게 되어 믿음생활을 예전만큼 충실히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다른 성도님들의 본보기가 되 어야 할 사람이 믿음생활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하여 신년 초에 그 집사님의 직분을 박탈하 였습니다. 그러자 그 집사님의 딸이 말하기를 도대체 엄마가 무엇을 어떻게 잘 못 하였기 에 가지고 있던 집사님 직분에서 잘렸느냐며 창피해서 교회에 나가지 못하겠다고 하더랍니 다. 또한 그 집사님 남편도 슬슬 눈치를 보면서 당신 괜찮은 거야? 정말 괜찮은 거야? 하 며 걱정을 많이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은 목사님께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교회에 서 한번 맡은 집사직분을 박탈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도대체 제가 무엇을 잘못 하였기에 집사직분에서 자른 겁니까? 하며 따졌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길 이OO성도! 교 회에서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불성실 할 경우 직분을 박탈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OO성도가 집사직분을 박탈당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 집사님은 할 말이 없었습니 다. 자신을 돌이켜 보건데 직장을 다닌 이후부터 교회생활 및 믿음생활을 등한시 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은 집사직분 박탈당한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묵 묵히 교회생활을 하였답니다. 그러나 주변에서 보는 다른 성도님들은 어떻게 한번 맡은 집 사직분을 박탈할 수가 있느냐. 이건 좀 심한 것 아니냐. 하면서 그 집사님을 위로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집사님은 개의치 않다고 하며 묵묵히 믿음생활을 하였습니다. 목 사님의 생각은 ‘내가 이OO 성도의 집사직분을 박탈했던 것은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어야 할 이OO성도가 믿음 생활을 등한시하기에 반성하라는 차원에서 집사직분을 박탈했던 것이 고 또 다른 사람들도 이OO 성도의 경우를 보고 믿음생활을 더욱더 열심히 하도록 하기 위 한 것이었다고 함합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직분에 충성해야 합니다. 맡은 자 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고전 4:2)(인터넷).

 

 

 

직분 받은 자로서 충성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겸손, 섬김,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