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증인

 

 

 

[사도행전 1장 6-11절 말씀 묵상]

 

 

쓰나 미나 카트 리나 허리케인과 리타 허리케인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합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주님의 재림에 앞서 있어야 하는 말세지말의 징조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 다. 성경 누가복음 21장 25절을 보십시오: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 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 리”(the roaring of the sea and the waves)란 문구를 읽으면서 자연과 우주를 움직이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재림에 앞서 역사하고 계심을 깨닫게 해줍니다. 사실 누가복음 21장 31절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한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첫째로, 우리는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눅21:34).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도록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를 경계해야 합니다. (2) 둘째로, 우리는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눅21:36).  이러한 예수님의 재림에 임박함을 알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사람들이 돼야합니까?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6-11절 말씀을 토대로 우리에게 주시는 대답은 “예수 님의 증인”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증인”(witnesses)이란 무슨 말입니까? “증 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알리는 자들입니다(MacArthur). 원어 헬라어의 의 미는 ‘그의 믿음을 위하여 죽는 자’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데 지불해야 할 값이 죽음 이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파생된 단어가 바로 “순교”(martyrs)입 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중심으로 “예수님의 증인”이란 제목을 걸고 예수님의 증인은 어떠한 자인지 한 3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삶으로 증거하는 예수님의 참된 증인이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증인은 주님의 권한에 복종하는 자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 7절을 보십시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때와 기한”(times or epochs)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할 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6절). 즉, 제자들은 예수님 께서 예언하신 성령 세례를 받을 때가(5절) 이스라엘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실 것인지를 주님께 여쭤본 것입니다. 제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 이스라엘에 하나님 나라 회복은 로마 정부로부터 정치적 회복 이였고 또한 경제적 회복과 사회적 회복이었습니다(김세윤). 결국,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국가 이스라엘에 국한시키는 오류를 범했던 것입니다(유 상섭). 이 “때”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잘못된 하나님 나라에 대 한 개념을 수정해 주시기보다 제자들의 질문 초점인 “때”에 대하여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그 대답은 ‘너희의 알 바 아니다’(7절)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 “때”는 하나님 아버지의 권 한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의 답변에 제자들은 잠잠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희 교회에 한번 반영해 보았습니다.   만일 저와 여러 분이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하나님 나라 회복을 그저 한국이라는 나라 또한 이 미국 땅에 한 국 동포들에게만 제한시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데 그렇지 않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 리 가운데 역사하시사 작년 교회 지도자 성경공부 시간에 사도행전 11장을 묵상하는 가운 데 우리 교회가 이 지역 사회인 히스패닉 커뮤니티를 복음화 해야겠다는 비전속에서 히스패 닉 사역자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특히 사도행전 11장19-20절 말씀을 통하여 스 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인하여 흩어진 유대인들이 복음을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이방인인 헬라인에게도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안디옥 교회에 세워진 역사를 깨닫게 해 주시사 우리 교회 적용케 하시므로 히스패닉 사역을 꿈꾸 게 하시고 기도케 하시사 금년에 주님께서 주님의 종을 보내주시사 히스패닉 사역을 시작케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구원 사건으로 인해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이스라엘 나라에게만 국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의 구원 사건으로 인해 도래한 하나님 나라는 이제 인종적이고 국가적인 차원을 뛰어넘는다 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 미암은 구원의 역사는 한국 민족에 게만 제한 되서는 아니 됩니다. 히스패닉 사람이든 아 시아 사람들이든 중동 사람이든 구원의 역사는 전 세계의 모든 민족을 향하여 뻗쳐 나아가 는 것이지 한 민족에게만 제안 돼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회에 주 님의 세우시는 역사는 우리 관점에 변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우리 교회는 한국 교회 이니 한국 사람들만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인 1.5세나 2세들뿐만 아니라 이 주위에 많은 히스패닉 사람들을 복음화 해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함 께 팀 사역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 안에서 다양성 속에 통일성을 지켜 나아가는 귀한 사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순종의 자세가 곧 주님께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고 계심을 증거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음성인 사도행전11장 19-20절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세,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복종하는 아름다운 자세라 생각합니다. ‘왜 히스패닉 사역을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한 사람도 공적으로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어느 면으로 보면 오늘 본문 7절 말씀에서 “너희의 알 바 아니요”란 말씀처럼 우리가 주님의 뜻을 온전히 알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뜻이라는 사실에 그저 복종케 하셨기에 이렇게 히스패닉 사역을 시작케 하셨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의 권위(authority)에 복종하는 예수님의 증인들의 아름다운 신앙의 자세라 믿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증인은 권능을 받은 자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십시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 라.” 제자들의 질문인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6절, 유상섭)란 말에 예수님의 두 번째 답변(첫 번째 답변은 7절)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오늘 본문 8 절 말씀입니다. 이 예수님의 답변 자체가 제자들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지 적하고 있습니다. 즉,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이스라엘 나라에 국한하였지만 예수님께서 는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시면 그들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 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복음의 지리적인 확장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인 사마리아와 심지어 땅 끝 까지 이를 것이라는 이 예수님의 말씀은 아직 권능을 받지 못한 제자들의 생각이 잘 못되어 있음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을 것 이라는 예언은 저자 누가가 누가복음 24장49절에서도 말하였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 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위로부터 능력”, 즉 “권능”은 무엇입니까? 여 기서 말씀하고 있는 ‘권능’은 제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었던 정치적인 파워나 구약에서 말씀 하고 있는 경건한 생활의 개인적인 능력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로 하여금 땅 끝 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만드는 능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주석).   이 권능은 예수님 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기도하고 있을 때에 그에게 임한 성령이 그로 하여금 본격적인 복음 사역을 능력으로 시작하게 했듯이,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동일한 성령님이 능력으로 역사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유상섭).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다면, “위로부터 능력”, “권 능”은 복음 사역을 감당케하는 능력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이미 이 권능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하여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3:16).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 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믿 음으로 우리 마음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선포(전파)하는 삶을 살기를 위해서 우 린 간구해야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이렇게 간구할 때에 주님께서는 더 넘치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 보십시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 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들로서 권능을 받은 자들이기에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 도의 복음을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의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 끝까지”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면서 내재 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 도의 복음 사역을 신실하게 감당해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예수님의 증인은 재림의 소망을 가진 자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 11절을 읽으십시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 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 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의 오심에 대한 약속의 말 씀을 마치시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셨음(승천)(9-10절). 이것 을 유심히 주목하며 쳐다보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갑자기 두 천사가 나타나 두 가지 사실을 인식시켜 주었습니다(유상섭): 하나는, “너희 가운데서 승천하신 이 예수님”이란 표현을 강 조함으로써 승천하신 예수님은 재림하실 예수님이란 사실과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승천 방 식이 곧 재림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천사의 말에 두 가지 중요한 사실에 좀 더 주목해 봐야 합니다:

 

  • 첫째로, 제자들의 질문에서 제기된 “때”(시기)에 관한 요소가 예수님의 답변에 전혀 등장하지 않듯이 천사들의 말에도 예수님의 재림 시기에 관한 내용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가복음 13장32절에 나와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 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하시느니라”.

 

  • 둘째로, 승천하신 예수님이 동일한 방식으로 재림할 것이라는 천사들의 예언이 제자들에게 던져주는 의미입니다. 같은 방식의 재림에 대한 천사들의 예언의 의미는 제자 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승천 과 재림 사이에 청지기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성령으로 말미암 아 끝까지 잘 감당 해 나아가야 할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청지기로서의 사역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백성을 말씀의 양식으로 양육하는 것(눅12:35-48)으로 요약한다면 복 음 전파와 말씀 양육의 사역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즉,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 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사역인 복음 전파와 말씀 양육 사역을 감당케 하시되 성령님을 통하 여 계속 감당케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증인들로서 우리는 승천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성령님을 통하여 계속 이어 나아갈 책임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 림을 기다리면서 그가 다시 오시는 그 날 그 순간까지, 우리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복음 전 파와 말씀 양육의 사역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증인 이였던 “캐시 버낼”에 대한 “나에게 총을 겨눌지라도”란 글이 있습 니다. 1999년4월20일 콜로라도 덴버의 고등학교에서 두 학생의 총기 난사로 13명의 학생 과 교사가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을 여러분들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 사 건을 저지른 이들은 히틀러의 생일을 맞아, 이런 광기 어린 학살을 감행했습니다.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학생들을 캠퍼스의 한군데에 모아놓고, 한 사람씩 총구를 갖다 대며 이렇게 물 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느냐?’ 이 질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살기 위해서 ‘믿지 않는 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음흉한 미소를 띠며 그들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공포 분위기 가운데서도 확실한 신앙의 결단을 한 학생이 있었습 니다. 그 학생의 이름은 캐시 버낼입니다. 그는 죽음의 총구 앞에서도 담대하게 말했습니 다. ‘그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다. 그리고 너희도 역시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만 한 다.’ 이 말을 들은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네가 믿는 하나님의 곁으로 가라” 하며 총을 쏘 았고, 결국 캐시 버낼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있은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미국의 십대들 사이에서 엄청난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캐시 버낼의 순교 앞에서 자신들의 비겁함을 한없이 부끄러워했습니다. 얼마 후, 남아 있던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들도 캐시 버낼과 같은 담대한 증인으로 서야 되 겠다는 신앙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급기야 미국 전역의 각 학교에서는 ‘우리도 캐시 버낼 의 길을 따르자’라는 운동이 벌어지게 되었고, 캐시 버낼의 순교적 결단을 기념하는 국기 게양대 앞 기도회는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인터넷). 캐시 버낼은 예수님의 증인이 었습니다. 우리도 캐시 버낼과 같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길 기원합니다.

 

 

 

참된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 싶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예수님의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성령님의 권능으로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