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에스겔 4415).

 

 

먼저 저는 이러한 목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첫째로, 그릇 행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목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성경 에스겔 44장10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레위 사람도 그릇하여 그 우상을 좇아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 죄악을 담당하리라”. 이스라엘 족속이 범한 죄악은 그릇행하여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리할 때 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레위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죄악 된 길에 돌이키도록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선포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레위 사람들은 오히려 그릇행하는 이스라엘 족속을 따라 그릇행하여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요즘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는 희한한 현상 중 하나는 목사가 그릇행하는 성도들을 좇아 그릇행하는 것입니다. 누가 지도자고 누가 좇는 자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목사라면 교회라는 조직에서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해야할 책임이 있건만 오히려 성도들이 목사를 인도하는 반대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대 현상은 특히 성도들이 그릇행할 때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릇 행하되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그릇된 길을 선택하여 나아가고자 할 때 목사 또한 그 그릇된 물결에 휩쓸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목사가 지도자로서 지도(lead)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마치 뱀이 하와를 유혹하였을 때 아담은 가정의 가장으로서 하와를 지도했어야 하는데 그는 그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자기도 그릇 행하였던 것처럼 지금 교회 안에서도 지도자인 목사는 좇는 성도들을 지도하기를 거부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성도들뿐만 아니라 목사도 그릇행하여 교회가 표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궁극적 책임은 목사에게 있습니다. 목사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기에 그릇행하는 성도들의 물결에 휩쓸려 자기도 그릇행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목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목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성경 에스겔 44장 11절 1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들이 내 성소에서 수종들어 성전 문을 맡을 것이며 성전에서 수종들어 백성의 번제의 희생물과 다른 희생물을 잡아 백성 앞에 서서 수종들게 되리라 ... 그러나 내가 그들을 세워 성전을 지키게 하고 성전에 모든 수종드는 일과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맡기리라.” 이 말씀을 보면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비록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족속처럼 그릇행하여 그 우상을 좇아 하나님을 떠나므로 말미암아 “그 죄악을 담당하”게 되었지만(10, 12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계속 하나님의 성소에서 수종들게 하셨습니다(11, 14절).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그 죄악을 담당”하게(10, 12절)하시므로 말미암아 죄를 범하기 전의 영광스러운 직위에서는 떨어지게 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이전(죄를 범하기 전) 직분보다 낮은 것이라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박윤선). 그래서 그릇행하여 하나님의 멀리 떠난 레위 제사장들은 그들의 직분을 빼앗기고, 다만 성전에서 수직하는 일, “희생을 잡”는 일 같은 것을 맡게 된 것입니다(11, 14절)(박윤선).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요즘 교회 안에서 불 수 있는 또 다른 희한한 현상은 우리 목사들이 칠계의 죄(간음죄)를 범하고도 계속 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목사들이 여성도(들)과 간음을 하면서도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도들 중 바람을 피우는 그릇된 풍토가 목사들 사이에서도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무섭게 우리 목사들 사이에 번지는 전염병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영적 치매의 병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영적 치매를 앓고 있으면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있으니 겸손과 감사와 힘(능력)이 없는 목회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목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이러한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거룩한 직분을 지키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성경 에스겔 44장 15절을 보면 성경은 이스라엘 족속들이 그릇하여 하나님을 떠날 때에도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성소의 직분을 지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과 그들의 영적 지도자여야 하는 제사장 레위 사람들이 다 그릇행하여 하나님을 떠날 때에도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성소의 직분을 지켰습니다. 이스라엘 족속들은 이방인들을 데려와서 하나님의 성소 안에 있게 하여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혔습니다(7절). 레위 사람들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거룩한 직분을 가볍게 여기므로 이방인들에게 자신들의 직분을 대신 지키게 하였습니다(8절). 그러나 사독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성소의 직분을 지켰습니다. 이 사독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신실하고 충성되게 잘 감당한 주님의 종들 이였습니다.

 

요즘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는 안타까운 현상 중 하나는 직분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직분도 함부로 주고 또한 주어진 직분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데 사용하기보다 자신의 영광을 들어내며 자신의 이름을 세우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직분인데 지금 우리는 그 직분을 가볍게 여기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지금 우리는 그 직분을 남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목사들이 “목사”의 직분을 남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상실한 목사들이 목사의 직분을 함부로 남용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성도들도 목사란 직분을 가볍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엘리야와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7,000명의 선지자들처럼 죄악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직분을 지키는 목사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다들 그릇행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할지라도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직분을 지키는 목사들이 분명히 이 세상이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목사들 중에 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직분을 지키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 수종드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성경 에스겔 44장 15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성경은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수종을 들되 하나님 앞에 서서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하나님께) 드릴지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11절과 대조를 이룹니다. 에스겔 44장11절을 보면 그릇하여 “그 우상을 좇아 나(하나님)를 멀리 떠”난 레위 사람들(10절)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전에서 수종을 들되 “백성의 번제의 희생과 및 다른 희생을 잡아 백성 앞에 서서 수종들게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반면에 하나님의 성소의 직분을 충실히 지킨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백성 앞에 서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앞에 서서 수종들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였습니다(15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백성들 앞에 서서 수종드는게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 수종드는 주님의 종이 된다는 것 이 얼마나 큰 은혜의 특권입니까.

 

요즘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는 어리석은 현상 중 하나는 목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보다 성도들에게 너무 가까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보다 사람을 더 가까이 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서서 주님을 수종들어야 하는데 우리 목사들이 사람들 앞에 서서 먼저 교회를 수종들고 있으니 어떻게 교회가 주님 중심된 교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 중심된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먼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 앞에 서서 주님을 수종드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삶으로 가르치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성경 에스겔 44장 23절을 보십시오: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다들 그릇행하여 자신을 떠나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성소의 직분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었던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분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었던 이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백성들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당연한 이유는 자기 자신들 조차도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못하여 그릇행하고 있었던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키워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능력을 상실한 제사장들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맡기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에게 이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의 직분을 지키고 있었던 제사장들에게 또 다른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요즘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는 죄악 된 현상 중 하나는 담이 무너져 죄악의 물결이 교회 안에 넘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죄악 된 물결 중 하나는 바로 인본주의입니다. 너무나 교회가 사람 중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된 교회가 돼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러한 인본주의 외에 교회 안에 넘치는 죄악 된 물결은 바로 혼합주의입니다. 순수한 신앙(믿음)이 무엇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다 섞여 있는 듯 해 보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 외에 유교 사상, 불교 사상, 뉴에이지 사상, 인본주의 사랑 등등 이것저것 다 섞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하기도 너무 어려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거룩한 본을 보이는 성도들이 줄어드는 듯 해 보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세속화 되어가는 목사들은 더욱더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적어도 표면적으로 말입니다). 너무나 세속화 되어가고 있기에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돼 있고 또한 그러한 능력을 상실한 교인들을 배출해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 세속화 되어가고 있는 목사들의 책임입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 능력을 거룩한 말씀을 통하여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능력에 힘입어 우리는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로만 아니라 삶으로도 거룩한 삶을 성도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할 때 속된 것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된 것을 버릴 수 있는 능력도 생기게 됩니다. 저는 이렇게 삶으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 토요 새벽기도회 때 에스겔 44장 9절로 15절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후 기도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 두려운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다시금 선포한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러한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기도의 제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의 제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드리기 위하여 다시금 이 말씀을 15절 중심으로 묵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주시는 은혜를 두 가지로 나눠서 여기 적어보았습니다: (1) 먼저 저는 이러한 목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2) 저는 이러한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릇행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목사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목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거룩한 직분을 지키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 수종드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저는 성도들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삶으로 가르치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주님여, 이러한 목사로 세워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