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좋아하는 목사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레위기 109-11).

 

 

언젠가 미국에서 태어난 2세 목사님들 중에 술을 마시는 목사님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보수 신학교를 졸업했다는 분들인데 술을 마신다는 소리를 듣고 저는 좀 놀랐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목사님들이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 그리 놀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신학교에서도 유명하다는 교수님들도 술을 마시고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저는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나면서 보고 배운 것은 목사는 술과 담배를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적어도 술에 대해서는 성도님들뿐만 아니라 목사님들도 전보다 더 많이 열려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 레위기 10장 9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아론에게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명하고 계시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이것이 아론과 그의 자녀들이 지켜야 할 영영한 규례로서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의 자녀들이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까봐 이 규례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론에게 직접 말씀하신 이유는 아론의 아들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하나님 앞에 분향하다가(1절)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2절).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우리 목사들이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겨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나 많은 우리 목회자들이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는 방법대로 함부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도님들은 둘째 치고 우리 목회자들이 먼저 너무나 많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목회를 감당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모 선교사님의 말씀대로 교회 안에 인본주의 사상이 너무나 많이 들어와 있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 많은 목사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섬기기보다 사람의 방법대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두 가지로 오늘 본문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기 위해서 입니다.

 

성경 레위기 10장 10절을 보십시오: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녀들에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명하신 이유는 분별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분별력을 상실한 목사가 어떻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지 상상이 되십니까? 물론 우리 목회자들은 술에는 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치 술에 취하여 혼미한 상태에 있는 것처럼 지금 많은 목사들을 혼미하게 만드는 유혹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한 예를 든다면, 너무나 많은 목사들이 돈의 유혹에 넘어가 돈에 취하여 영적으로 혼미한 상태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도 재물의 유혹을 받아 넘어가 돈에 취하여 돈을 섬기며 돈을 위하여 삯꾼이 된 목사들이 얼마나 이 세상에 많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조차 ‘돈에 취한 목사’라는 손가락질을 받아도 아무 할 말이 없고 또 없어야 합니다. 물론 돈에 취한 목사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에 취한 목사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성적 타락을 범하는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 결과 지금 돈, 여자, 명예욕에 취하여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목사들로 인하여 주님의 교회는 이 속된 세상에 거룩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속된 세상에 거룩한 영향을 끼치기 위해선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분별력을 잃지 않기 위해선 우리는 술뿐만 아니라 돈이나 여자나 명예에 취해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롬12:2).

 

둘째 이유는,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입니다.

성경 레위기 10장 11절을 보십시오: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하나님께서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녀들에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명하신 또 다른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가르치는 자가 포도주나 독주에 취하여 거룩한 것과 속된 것,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할 수 없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과연 분별력을 잃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는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한 삶을 살라고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입술로는 가르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삶으로는 가르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방지하기 위해서 제사장 아론에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명하셨던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돈에 취한 목사가 성도님들에게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성적 타락하는 목회자가 성도님들에게 성적 유혹을 뿌리치라고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온갖 욕심과 탐심에 빠진 목사는 욕심과 탐심을 버리라고 제대로 성도님들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입술로는 가르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삶으로는 가르칠 수 없습니다. 물론 죄악 된 삶을 숨기면서도 표면적 삶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목사들이 그러한 삶을 살면서 성도님들을 가르치고 있다면 결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다 하나님께서 들춰내실 것입니다.

 

우리 목사들은 두려워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술과 같은 것들에 취해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가까이 해서도 아니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검이요 방망이와 같은 말씀에 취해 있어야 합니다. 술에 취해있지 말고 오히려 우리는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룩하고 속된 것을 잘 분별하여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 떼인 성도님들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속된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