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목사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사사기 185-6).

 

 

거짓 목사와 거짓 교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인터넷 뉴스엔조이를 보니까 몇 가지로 그 공통점을 말하고 있습니다(인터넷): (1) 자신을 향한 비난과 멸시 핍박을 도저히 못 견뎌 한다는 것 (2) 그저 잘한다, 잘한다, 칭찬하는 말에만 좋아라한다는 것 (3) 자신의 의와 믿음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는 것 (4) 속이 밴댕이처럼 좁고 폐쇄적이라는 것 (5) 자기밖에 모르고 잘못의 지적에 회개는커녕 화만 내는 것 여러분, 이 공통점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이 공통점 외에 또 다른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짓 목사는 거짓말을 하고 거짓 교인은 그 거짓말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짓 목사는 삯꾼입니다. 결코 그는 양들을 돌아보지 않습니다(요10:13). 그는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납니다(12절). 결코 거짓 목사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지 않습니다(11절). 오히려 거짓 목사는 자기 배만 채우는데 힘씁니다(겔34:2).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교인들은 그러한 거짓 목사를 좇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거짓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아멘”하면서 그 말을 확고히 믿습니다. 그 결과 거짓 목사나 거짓 교인들은 하나님께 죄를 범합니다.

 

성경 사사기 18장 5-6절을 보면 단 자손의 용맹스러운 다섯 사람(2절)과 미가의 집에서 제사장 역할을 하던 레위 청년(3절)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대화 내용은 단 자손의 다섯 정탐꾼들이 그 레위 청년에게 청함과 그 레위 제사장의 답변입니다. 그 다섯 정탐꾼들의 청함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5절)는 것이었고 그 레위 제사장의 답변은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였습니다(6절). 이 내용만 보면 우리는 단 자손의 다섯 정탐꾼들이나 레위 제사장이나 다 별 문제없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문맥을 보면 그들 모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단 자손의 다섯 정탐꾼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속해 있는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1절). 분명히 단 지파는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서 제비를 뽑아 그들의 분깃(땅)이 지정되었고(수19:40-46) 또한 그들이 그 땅을 어느 정도 점령하기도 했지만 오래지 않아서 그들이 그 땅을 아모리 족속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삿1:34-36). 그들이 이렇게 아모리 사람들에게 패배를 당한 원인은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모든 지파들 중에 단 지파가 가장 믿음 없는 지파로 드러났습니다(박윤선). 이렇게 가장 믿음이 없는 단 지파의 다섯 정탐꾼들은 믿음이 좋아보이도록 레위 제사장에게 자기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기를 청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그들은 삯꾼 제사장에게 청하였다는 사실입니다(삿18:5). 결국 그들의 불신앙은 참 제사장과 거짓 제사장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미가의 집에 있었던 레위 제사장이 거짓 제사장이요 삯꾼 제사장인 줄 알 수가 있습니까? 미가가 그 레위 청년에게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고 말하였을 때(17:10) 그 레위 청년은 미가와 함께 거주하기를 동의했습니다(11절). 이렇게 그 레위 청년이 미가의 제안에 동의한 이유는 그가 미가의 대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18:4). 그래서 그는 미가로 하여금 자기를 고용하게 하였습니다(4절). 그렇게 미가의 집에서 고용되었던 그 레위 제사장은 나중에 단 자손의 다섯 정탐꾼들이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19절)고 말했을 때 그 레위 제사장은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받아 가지고 그 단 지파 백성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20절). 과연 이 레위 청년이 참 제사장입니까? 삯꾼 제사장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삯꾼 제사장에게 단 지파의 다섯 정탐꾼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자기들이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자기들에게 알게 하라고 청한 것입니다(5절). 그 때 그 레위 제사장은 그 다섯 정탐꾼들에게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6절)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미가의 집을 떠난 그 다섯 정탐꾼들은 결국 라이스(Laish)는 곳에 이르렀는데 그 곳은 그들이 보기에 매우 좋은 땅이었습니다(9절). 왜 그들이 보기에 라이스는 매우 좋은 땅이었는가 하면 “그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10절). 그 땅은 넓고(10절) 평온하며 또한 안전하여 그 곳에 사는 백성은 염려 없이 거주하는(7절) 평화로운 백성이었습니다(10절). 그 백성은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사는 백성이었습니다(27절).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기에 그 곳에 사는 백성들은 부를 누리며 살고 있었습니다(7절). 그러므로 그 다섯 정탐꾼들은 다시금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가서 그들의 형제들에게 일어나 라이스를 치러 올라가자, “그 땅을 얻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8-9절)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거짓 교인들이 거짓 목사의 거짓말(예언?)이 성취되었다는 나름대로의 확신을 갖게 되면 그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단 자손의 그 다섯 정탐꾼들이 아무 부족함이 없는 라이스라는 곳을 이르러 그 땅을 보았을 때 미가의 집에 거하고 있었던 그 레위 제사장의 말대로 그들의 가는 길은 하나님 앞에 있었다고 확신을 했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장 믿음이 없는 단 지파의 그 다섯 명 정탐꾼들은 삯꾼 제사장인 그 레위 청년의 아첨의 말을 듣고 길을 갔을 때 라이스에 이르렀다고 확신 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라이스란 땅은 매우 좋은 땅이요 하나도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지만 결국 그 곳에서 단 자손들은 미가가 만든바 새긴 신상(27, 30, 31절), 즉 우상주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불신앙은 거짓 제사장을 보게 할 뿐만 아니라 그 거짓 제사장의 거짓말도 듣게 하고 믿게 하여 순종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는 불신앙은 단 자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케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단 자손들처럼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거짓 교인들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 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거짓 교인들이 추종하는 거짓 목사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짓 목사들의 거짓말을 듣고 그 말을 믿고 그 말에 순종하는 거짓 교인들을 보면 거짓 목사들이나 거짓 교인들이나 다들 거짓말에 속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거짓 목사의 거짓말에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확신 가운데 그 말을 따라 순종하는 열심을 보이는 열광적인 거짓 교인들을 보면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어찌 이것이 교인 탓이겠습니까? 이것은 거짓 목사의 책임이 큽니다. 그 책임은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책임은 그는 거짓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 책임은 우리가 싸구려 은혜를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 책임은 그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오히려 거짓 교인들의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딤후4:3) 아첨하는 교훈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거짓 목사는 무책임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거짓 목사는 라이스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짓 목사는 자기 보기에 매우 좋은 곳, 하나도 부족함이 없는 곳, 염려 없이 거주할 수 있는 곳,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곳, 평온하며 안전한 곳 그리고 부를 누릴 수 있는 곳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 목사는 비록 입술로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로 외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보다 부족함이 없는 삶을 더 사모하고 더 좋아하기 때문에 거짓 목사는 하나님 앞뿐만 아니라 교인들 앞에서 참으로 무책임합니다. 결국 거짓 목사의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거짓 교인들 또한 불신앙과 불순종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 목사들로 인하여 거짓 교인들이 이 세상에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비난 받아 마땅한데 칭찬을 받고 있으니 이 어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지적을 받을 때 회개해야 하는데 회개하기는커녕 화만 내고 있으니 참으로 문제가 심각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