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

 

 

[시편 149]

 

 

여러분은 삶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삶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젠가(2007년12월)에 “삶은 아름답습니다(Life is Beautiful)”란 제목 아래 이런 마음의 글을 썼었습니다.

 

“삶은 아름답습니다/ 고통 중에서도 삶은 아름답습니다.

삶은 아름답습니다/ 기도의 눈물이 있기에 삶은 아름답습니다.

삶은 아름답습니다/ 사랑의 공동체인 가정이 있기에 삶은 아름답습니다.

삶은 아름답습니다/ 회복과 변화가 있기에 삶은 아름답습니다.

삶은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 안에서 볼 수 있기에 삶은

아름답습니다.

삶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에 삶은 아름답습니다.

삶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기에 삶은 아름답습니다.”

 

이 글이 생각난 이유는 바로 오늘 성경 시편 149편 4절 말씀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실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 성경에는 현재 형처럼 보이지만 영문 성경을 보면 장차 미래에 대한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들을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실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즉, 이 말씀은 종말론적인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 성도들에게 임함 구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임할 이 구원은 하나님께서는 필경 우리 성도들로 하여금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6-9절, 박윤선). 이러한 승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주실 “영광”입니다(9절).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광, 이러한 승리를 우리 성도들에게 어떻게 주시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6-9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이것으로 열방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저희 왕들은 사슬로, 저희 귀인은 철고랑 으로 결박하고 기록한 판단대로 저희에게 시행할찌로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입에 하나님께 존귀 영광의 높은 찬양을 드리게 하시며 또한 우리 손에 두 날을 가진 칼인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사 이것으로 열방 민족들을 보수하시며 벌하시므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은 무조건 마지막 때에 이뤄질 예언의 말씀으로만 해석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 이유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이 미래의 하나님의 아름다운 구원의 역사가 이미 현재 우리 성도들의 삶 속에서 부분적으로나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들, 즉 이 땅에서 고통당하는 성도들을 예수님의 재림 때에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실 것이지만 지금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역경과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역경과 고통 가운데에서 건져주시므로 우리를 아름답게 하시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장차 있을 구원으로 저와 여러분을 아름답게 하심의 충만함을 이미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분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약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연합된 자들로서 우리의 모든 죄는 이미 사함을 받았으며 또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연합케 하시므로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구원의 은총으로 우리를 아름답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2절) 우리 성도들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4절).

이렇게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말미암아 아름답게 하시는 은총을 부분적으로 나마 경험하면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그 하나님의 은총에 화답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다시 말하면, 이미 구원으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아름답게 하셨고 또한 앞으로 장차 미래에 하나님께서는 구원으로 우리를 아름답게 하실 것인데 그 “이미”(already)”와 “아직도”(Not yet)사이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드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입니까? 한마디로,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기뻐하셔서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께 기쁨과 즐거움으로(5절) 노래를 부르며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영광을 주시는 하나님께(5, 9절) 우리는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1, 2, 3, 5절을 보십시오: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찌어다”(1절),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시온의 자민은 저희의 왕으로 인하여 즐거워할찌어다”(2절),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찌어다”(3절), “성도들은 영광중에 즐거워하며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찌어다”(5절).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으로 저와 여러분을 아름답게 하여주신 은총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하루하루 삶 속에서도 영적 전쟁에서 오는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건져 주시고 승리케 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경험하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새 노래로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장차 예수님의 재림 가운데 허락해주시는 영화로운 구원으로 인하여 저와 여러분을 아름답게 하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숨질 때 되도록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함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2007년 12월경에 “삶을 아름답습니다”란 글을 쓴 후 한 2개월 지난 2008년 2월쯤에 “죽음도 아름답습니다(Even Death is Beautiful)란 글을 써 보았습니다: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슬픔 중에서도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사랑의 눈물이 있기에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순간적인 헤어짐 속에서 영원한 만남의 산 소망이

있기에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삶을 살았기에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의 아름다우심을 보기에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함께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기에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영광이 나타나기에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시사 이 추악한 세상에서 아름답게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호흡이 있는 동안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기를 헌신하면서)